본이 되는 신앙 왕하4:8-17,42-44, 9:36-43
요즈음 자판기가 곳곳에 있어 편리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커피 자판기나 음료수 자판기는 기본이고 라면, 피자, 튀김, , 정육, 심지어 철물점 자판기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유타 주에는 동전을 넣으면 이혼서류가 나오고, 프랑스에서는 솔향기 산소를 뿌려주는 자판기가 있고, 동전을 넣으면 담배 한 개 피에 불까지 붙여주는 자판기도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더 희한한 것들이 나올 것입니다.
장사란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면서 물건이 좋네, 나쁘네, 깎아 달라. 까짓것 기분이다.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감정'을 주고받는 것인데, 그런 감정이 깃든 장사는 점점 사라지고 손가락으로 누르기만하면 되는 '무감정'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도 이렇듯 무감정 자판기 신앙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런 신앙은 형식적인 종교 행위에 지나지 않아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신 것처럼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죽은 신앙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본받을 만한 참 신앙인의 모습을 두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본이 되는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이 되는 신앙은,

 

1.말씀을 잘 받고 말씀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생명과 빛이 되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나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그 중에 소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고, 영생을 얻는 하늘 백성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잘 받고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이 귀합니다. 구약 본문 42-44절에 보면 한 사람이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를 가져왔습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무리에게 나누어주어 먹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100명이나 되는 무리에게 턱 없이 부족한 것인데 어찌 주겠습니까하니 엘리사는 그들이 먹고도 남으리라고 여호와께서 말씀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믿고 나누어주어 먹게 하니 엘리사의 말대로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본문44절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아멘.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분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더니 말씀 그대로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독일에 죠지 뮐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독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가서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고아들을 많이 돌보는 고아의 아버지였습니다. 독일 사람인 그가 영국으로 간 것은 세계 제1차 대전 때 독일이 전쟁으로 많은 영국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결국 독일이 패전국이 되었지만 전쟁 중에 영국 사람들이 많이 희생된 것을 알았기에 나라가 지은 죄를 사죄하는 마음으로 나라도 영국에 가서 그 빚을 갚으리라 마음먹고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독일 군대들이 죽인 아버지 어머니로 인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들, 딸들을 전부 끌어 모아 고아원을 운영하였습니다. 그런데 뮐러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그는 일생에 5만 번 기도 응답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기도 응답의 일화 가운데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에도 저녁거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고아원의 선생들이 오더니 원장님!” “왜 그러지?”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뮬러는 식탁을 차려 놓으시오 저녁 먹을 것이 없다고 하면 그 아이들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식탁을 차려 놓고 포크와 접시를 가져다 놓고 기다렸습니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먹을 것이 있어야 어떻게 하지요? 죠지 뮐러는 기도할 때 덮어놓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꼭 찾아서 하나님 여기에 이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면 응답을 받곤 했습니다.
그 날도 본문에 나오는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다 먹고 남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주십시오. 왜 엘리사에게만 주십니까? 조금 있으려니까 말들이 방울을 울리면서 몇 대의 마차가 옵니다.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우리가 빵 공장을 크게 하는데 그만 빵을 많이 주문했던 분이 사정이 생겨서 취소를 했습니다. 이 빵을 그대로 두면 내일 못 팔아먹지 않습니까? 그 때 고아원 아이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얼마나 빵이 먹고 싶을까? 그 아이들이나 가져다주어서 실컷 먹게 하자 싶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냥 풀어서 베풀어주는데 실컷 먹고도 남았습니다. 

말씀대로 믿고 기도했더니 말씀대로 먹고 남았습니다. 이것이 말씀대로 믿는 믿음입니다. 이런 말씀의 능력을 믿고 말씀에 근거한 믿음은 모든 사람이 본받을 복된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잘 받고 말씀대로 믿는 자들이 됩시다.


2.사랑으로 잘 베푸는 신앙입니다.
신앙인에 따라 성향과 기질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받는 것에만 익숙하고 베풀고 나누는 일에는 매우 인색한 신앙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받는 것 보다 베풀고 나누는 것에 매우 익숙하고 기뻐하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어떤 신앙이 복 있는 신앙일까요?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했습니다. 주는 사람은 부지중에 주님을 대접하고, 천사를 대접하고, 선지자를 대접하여 후에 큰 상을 받게 됩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수넴에 사는 여인은 베푸는 일을 잘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본문 8절에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고 했습니다. 수넴 여인을 가리켜 귀한 여인이라고 했는데, 귀하다는 말의 뜻은 고상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받아 고상해지고 예수 믿고 은혜를 받으면 말과 행동이 고상하신 주님을 닮아 고상해집니다. 

17:11에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신사적이었다.’고 말하는데, 신사적이라는 표현이 바로 고상하다는 말입니다.
귀하다.’는 또 다른 뜻은 '부요하다'입니다. 수넴 여인에 관한 전체문맥을 살펴보면 그녀는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고, 무엇보다 믿음으로 부요한 여인임을 보여줍니다. 주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은 믿음이 부요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성경 곳곳에서 보여줍니다. 당시 엘리사는 선지자로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 선지학교를 돌볼 뿐 아니라, 이스르엘과 갈멜산을 오고가며 백성들을 살피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여 분주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스르엘 평지가 있는 곳에서 갈멜산으로 가려면 수넴 지역을 통과해야만 했는데 이곳에 바로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귀하고 고상한 여인이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엘리사를 대접한 것입니다.


신약 9장에 나오는 다비다 역시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36절에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13:16) 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다비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욥바에 사는 많은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비다는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과부들은 다비다가 만들어 준 옷을 입으면서 성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는 이유 중에 하나가 대접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 사람들만큼 대접 잘하는 민족도 흔치 않습니다. 세계에 흩어진 한국인들이 특히 어려운 재난을 당한 지역에서 헌신적인 봉사로 감동을 주는 일이 많습니다. 한국을 연구한 석학들 중에도 한국인의 민족성은 석유 자원보다도 더 소중한 자원이 한국인의 민족성 가운데 있다는 것을 여러 예를 들어 증거하고 있습니다. 대접한다는 말과 비슷한 말이 영접한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을 영접한다는 것은 인격적인 대접을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접을 잘하는 민족이라서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잘 믿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 좋은 전통을 잘 지켜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잘 베푸는 신앙인으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


3.감동을 끼치는 신앙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은 남편과 상의 하고 하나님의 종을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0-12절에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했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정성어린 대접을 받으면서 마음에 감동을 받고 그 여인에게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환에게 여인을 불러오라 했습니다. 13절에 보면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구할 것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부족한 것이 없다 말하자 무슨 도울 일이 없을까 궁리하다 사환과 의논하니 아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여인을 불러 한 해가 지나 이 때 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고 말합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여인은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 후 아이가 자라다 갑자기 머리를 감싸고 죽게 되자 다시 엘리사를 통해 죽은 아이가 살아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여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기회가 되어, 마치 욥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 같은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다비다는 병들어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서 그녀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람들이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베드로가 욥바에서 가까운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을 했다고 38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사람도 병들어 죽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죽을 때 그 사람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져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사랑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결국 성도의 죽음은 귀중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도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합니다. 베드로를 통해 그녀가 다시 살아나게 되자 42절에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했습니다. 다비다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므로 감동을 준 신실한 신앙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본이 되는 믿음의 사람을 위해 주님은 귀한 상급과 면류관을 예비해 주신다고 말씀을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한국 전래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거지가 이 집 저 집 다니며 구걸했으나 밥 한 술 얻지 못하고 매우 시장하게 지나다가 젊은 부인이 들에서 일꾼에게 점심을 주고 광주리를 이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밥 한 술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남은 것이 없어 망설이다가 돌아앉아서 자기의 젖을 짜서 거지에게 주며 "이것이라도 잡숫고 기운을 차려보시오."했다고 합니다. 그 거지는 젖을 받아 마시고 백배사례하며 굳이 부인의 이름을 알려고 하자 사양하다 마지못해 `청룡골 조씨 부인'이라고 했습니다. 후에 이 일이 온 동리에 퍼져 시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며 "저런 년을 그냥 두느냐"라고 하며 구박이 막심하였습니다.
하루는 암행어사가 이 청룡골에 출두하여 조씨 부인을 찾았습니다. 이 어사는 조씨 부인에게 젖을 얻어먹은 거지였습니다. 어사는 조씨 부인에게 다시 치하를 하고 조씨로 하여금 그 고을 원님으로 임명하였다고 합니다. 조씨 부인은 부지중에 어사를 대접하게 되어 그 가문에 영광과 복을 얻었다고 합니다. 불신자들도 대접을 잘하면 복을 받는데, 하물며 상주시는 하나님께서 상주시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감동을 끼치는 신앙인으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본이 되는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본이 되는 신앙은,
.말씀을 잘 받고 말씀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사랑으로 잘 베푸는 신앙입니다.
.감동을 끼치는 신앙입니다. 아멘.
<2025. 05. 25.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축복의 순간 저주받았다. (왕하 7;·1-10)

 

 

아람과 이스라엘은 항상 긴장관계였습니다. 아람 왕은 눈에 가시같은 이스라엘을 없애 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람왕이 저 곳을 치려고 저 곳으로 가면 이스라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곳을 치려고 이 곳으로 가면 이 곳에 이스라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람 왕이 가는 곳마다 이스라엘 군대가 이미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람왕이 말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간첩이 있다.>

그 때 신하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엘리사는 얼마나 영음을 잘 듣는 지 왕의 침실에서 하는 소리도 다 듣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엘리사부터 잡아야 겠다. 엘리사가 어디 있느냐?>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도단성에 있나이다>

그래서 아람왕은 도단성을 둘러 쌌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적을 물리쳤습니다. 그 후 아람왕 벳하닷은 새로운 전법으로 사마리아 성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이 사마리아가 항복할 때까지 포위하고 있을 작정이었습니다. 자기 군사들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싸움 한번 하지도 않고 사마리아 도단 성안에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항복하고 나오기까지 포위하고 있을 작정이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사마리아 성안에는 먹을 것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극심한 식량난이 벌어졌습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들만 살펴 봅니다.

 

1.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이 되었습니다(왕하 6;25)

1 세겔은 노동자 한 명이 4일간 받는 금액입니다. 5만원 받는다면 1세겔은 20만원입니다. 그러므로 80세겔은 1,600만원입니다. 식량은 다 먹고 짐승은 다 잡아 먹고 이제 남은 것은 타고 다니는 나귀인데 나귀 머리 하나에 1,600만원이 될 정도로 심각하여진 상태입니다.

 

2. 합분태 4분의 1 가격이 5세겔이 되었습니다(왕하 6;25)

합분태는 전쟁할 때 먹는 식사입니다. 밥 한끼에 20세겔 즉 400만원이나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3. 말을 5마리만 남기고 모조리 잡아 먹었습니다(왕하 7;13)

만은 당시 전쟁에는 꼭 필요한 짐승입니다. 말없이 전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5마리만 남기고 잡아 먹었습니다.

 

4. 더욱 기절할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6;26-30)

왕이 민정시찰을 나갔습니다. 갑자기 한 여인이 달려오더니 하소연하였습니다.

<왕이시여!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옆 집 여인이 오더니 오늘은 네 아들을 같이 잡아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같이 잡아 먹자고 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제 내 아들을 그 여인과 같이 잡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 여인이 자기 아들을 숨기고 잡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판결하여 주옵소서.>

 

왕은 옷을 찢으며 울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 자기 민족을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 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하고 보리 두 세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7;1)

 

엘리사가 이 말을 할 때에 아람왕이 가장 아끼는 장관이 나서더니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2)

 

이렇게 비난하고 믿지 못 하는 장관을 보고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 것을 먹지는 못 하리라.>(2)

 

그 날 밤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람 군대는 갑자기 병거소리, 말 소리, 큰 군대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쳐들어가지도 않았는 데 하나님이 이런 소리를 내주셨습니다. 아람 군대는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애급 왕과 헷 왕과 동맹을 맺고 3 국 연합군이 쳐들어 오고 있다.>

자기들끼리 이렇게 생각하고는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군량미, 무기 모든 것을 챙길 틈이 엾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가서 보니 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보리값이 내리고 밀가루 값이 폭락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아 예언한 대로 되었습니다. 왕은 그 장관에서 성문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아우성이기에 질서를 잡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장관이 성문을 꼭 지키고 있자 화가 나서 밟아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에리사가 예언한대로 장관은 그런 기적으로 보기만 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왜 장관은 보기만 하고 죽었을 가요?

 

1.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 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하고 보리 두 세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7;1)

 

엘리사는 당시 최고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이렇게 말했으면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관은 믿지 못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는 이렇게 믿지 못 하는 장관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 것을 먹지는 못 하리라.>

 

믿음이 있었으면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죽었습니다. 12 정탐군 이야기가 바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오라고 12명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정탐군들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 왔습니다. 10명 정탐군은 다녀와서 믿음이 없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가서 보니 아낙 자손 거인들이 살고 무기들이 강하고 성이 너무나 든든하니 가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가 모두 인간적이었습니다. 믿음의 소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은 다 맞는 데 하나 보지 못 하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이기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두 명은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10명 정탐군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 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믿음이 생명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많이 학살한 곳입니다. 나는 아우슈비츠에 가서 보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 지 모릅니다. 그 곳에서 매일 수 천명을 학살하였습니다.

매일 연병장에 유대인들을 세워 놓고 독일군이 지나가면서 아무나 임의로 지명하면 그대로 독까스 실로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유대인은 기도하면서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나는 안 죽는다.

그리는 죽지 않을 것같이 살았습니다.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작업장으로 끌려 가다가 길거리에 유리 조각을 보면 얼른 몰래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날카롭게 갈아서 수염을 깍았습니다. 항상 얼굴이 말끔하였습니다.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살 것처럼 살았습니다. 아침마다 연병장에서 독일군이 죽일 사람을 뽑아 갈 때에 그렇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싱싱한 그 사람은 차마 지적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살아 남게 되었습니다.

장관은 믿음이 없어서 죽었습니다.

 

2. 말을 잘 못 하였기에

장관이 축복 앞에서 죽은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말을 잘 못 하였기에 죽었습니다. 엘리사가 내일이면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을 때 기껏 말한다는 것이 이런 말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래서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 것을 먹지는 못 하리라.>

 

믿지 못 하고 방정맞게 말하는 장관을 엘리사는 저주하였습니다. 축복앞에서 저주받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사실의 말을 하지 말고 믿음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서 제자들의 말을 보면 믿음의 말을 하는 제자와 사실의 말을 하는 제자로 갈라졌습니다.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빈 들입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200 데나리온도 부족합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쓰시지 않았습니다. 안드레가 52어를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말했습니다.

<예수님! 어린 아이가 52어를 가지고 있는 데 이 것 가지고 어떻게 해보시지요.>

예수님은 사실의 말을 하는 제자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믿음의 말을 하는 안드레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52어로 5000명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항상 믿음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장관은 기껏 한다는 말이 하나님을 놀리는 말을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나는 우리 어머니를 영영 잊을 수가 없습니다. 6.25때 해주에서 피난을 나오시다가 자는 데 안방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너무나 놀래서 심장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심장병으로 고생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문호야! 나는 내 몸을 잘 알아. 50을 못 넘겨...50을 못 넘겨...> 나는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1000번도 더 들었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돓아가셨습니다. 나는 어느 날 호적등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만 4936415시간을 사셨습니다.

오후 3시에 돌아 가셨습니다. 9시간만 더 사시면 50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억울하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내가 어머니 입술의 말을 바꾸어 드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때 내가 이런 영적인 법칙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말씀하시게 아였을 것입니다.

<문호야! 나는 내 몸을 잘 알아. 100살을 못 넘겨. 100살을 못 넘겨....>

이렇게 말씀하셨더라면 지금도 살아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관은 말을 방정맞게 하여서 죽었습니다.

 

어느 중환자가 병원에 왔습니다. 의사가 진단결과를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은 3개월을 못 넘길 것입니다>

그 환자는 자기가 죽을 날을 정확히 3개월되는 날에 표시하여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에게도 그 날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하게 그 날 죽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양 쪽 신장이 다 망가져 버렸습니다. 하루에 투석을 4번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2년 살면 많이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런 말을 듣고도 늘 나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면 나을 것이다.>

그는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7년 동안 굿굿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이 장관처럼 방정맞은 말을 하지 않는 입술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입술을 늘 훈련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덴막의 동요작가 안델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10살 때였습니다. 글을 써서 선생님에게 보여 드렸습니다.

<이것도 글이라고 썼니?>

야단만 맞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었더니 반응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안델센을 인정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속이 상하여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안델센은 할머니에게 기분 나쁜 사실을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조용히 안델센을 데리고 꽃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막 싹트고 있는 꽃몽오리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안델센아! 이 꽃몽오리 좀 보아라. 지금은 이렇게 보잘것없은 싹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주 아름다운 꽃이 될 것이다. 너도 그래. 지금은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큰 사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할머니가 한 마디 하여 준 것이 안델센을 세계적인 동화 작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6;2)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니라>(25;11)

 

장관이 축복 앞에서 죽은 이유는 말을 잘 못 하였기 때문입니다.

한 소년이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소년은 침묵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다음부터는 훔쳐서라도 준비물을 가져오너라.>

17년 후 이 소년은 지존파의 대부 김기환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사형당하였습니다. 그의 최후 진술은 이런 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제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말 한 마디가 중요합니다. 한 마디 말을 잘 못 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3. 회개가 없어서

장관이 축복앞에서 죽은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회개가 없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11;8-9)

 

장관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 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하고 보리 두 세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7;1)

 

이튿날 보니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빨리 엘리사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선지자님! 잘못 하였습니다. 내가 선지자님의 예언을 믿지 못 하고 말을 잘 못 한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정말 잘 못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했으면 엘리사는 틀림없이 용서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관은 회개할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축복을 보자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밟혀 죽는 아픔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 본문을 붙들고 기도하는 데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회개는 빠를 수록 좋고 민감할 수록 좋다.>

 

엄격하게 말하면 장관은 믿음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말을 잘못 하여 죽은 것도 아닙니다. 회개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장관은 축복앞에서 축복을 누리지 못 하고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왜 죽었을 가요?

1. 믿음이 없어서 죽었습니다.

2. 말을 잘 못 하여 죽었습니다.

3. 회개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기도문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받았으나 누리지 못 하고, 심었으나 추수하지 못 하는 이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포도를 심었으나 다른 사람이 따먹고, 집을 지었으나 다른 사람이 살게 되는 불행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아람 장군은 고생만 하다가 축복이 왔을 때 축복의 문턱에서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말을 잘못 하였기에,

회개가 없었기에 자초한 죽음이었습니다.

 

겨울이 물러가는 우수 절기의 이 아침,

온 성도들을 축복하시사

심었으면 거두게 하시고

축복을 받았으면 누리게 하시고,

보았으면 차지 할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강문호목사 설교 중에서

 


원한을 푸는 믿음의 간구 왕하4:1-7, 18:1-8

 

오래전에 태평양을 횡단하던 배가 파선되어 20일 이상 뗏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리건 베이커라는 선장과 젊은 두 선원이었는데 그들은 뗏목을 타고 20일 동안 바다에 떠돌아 다녔습니다.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으로 온몸이 타들어갔고, 밤에는 얼어 죽을 듯한 추위와 상어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무시무시한 절대 절망의 상황에 한없는 고독 가운데 바다 한 가운데 23일을 표류했습니다.

 

23일 동안 그들은 시편 23: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는 말씀과 마태복음 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는 말씀을 암송했습니다. 이렇게 성경 구절을 암송하면서 그들은 힘을 얻었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구조될 수 있었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잡히는 것 없는 깜깜한 밤일지라도 말씀에 의지하여 낙심치 않고 기도할 때 이처럼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원한을 푸는 믿음의 간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태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온갖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 문제와 싸워서 이기는 자는 승리하는 자요 지는 자는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 본문의 주인공인 여인은 지금 어떻게 할 수조차 없는 큰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여인이 살면서 만난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죽었습니다. 가정의 기둥인 가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정의 기둥이 쓰러진 것입니다. 남편의 죽음은 곳 가족 전체의 생계를 위협하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이 여인의 남편은 생전에 선지자가 되기 위해서 엘리사와 동문수학하던 엘리야의 문하생이었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죽으면서 남겨준 유산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많은 채무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지금도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남편이 죽은 슬픔도 가시기 전에 채주가 와서 빚 독촉을 합니다. 남편이 생계를 위해서 진 물질적인 부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먹는 문제 쓰는 문제 등의 물질의 문제는 항상 우리의 생활과 분리할 수 없이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이 물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당하는데 이 시험을 잘 극복하는 사람도 있고 넘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궁핍하기 때문에 물질로 인하여 시험에 빠지기도 하고, 부한 사람은 가지고 있는 물질 때문에 시험에 빠져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굴 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간구합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 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30:7-9)했습니다.

 

이 여인은 설상가상으로 자식을 빼앗길 위기에 빠졌습니다. 채주는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면서 빚을 갚지 않으면 두 아들을 노예로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어미로서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을 만난 것입니다. 어떤 집 자식들은 부모 잘 타고나서 호의호식하면서 잘 지내는데 가난하고 그리고 아버지까지 일찍 죽어서 굶네 먹네 하는 판에 이젠 빚으로 아들들까지 빼앗기게 되었으니 그 어미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신약 본문 눅18: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라고 말씀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사는 도시에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나의 이 억울함을 해결해 달라고 호소를 하였습니다. 이 과부는 힘이 없고, 배경도 없고, 가진 것이 없이 혼자 된 여인이 억울한 일을 당하였으니 해결해 달라고 법에 호소한 것입니다. 법이 왜 있습니까? 경찰서나 법원이나 검찰청이 있는 것은 잘못하고 나쁜 짓 하는 사람들 처벌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있습니다.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법으로 해결해 주고 보호해 주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하고 잘못된 사회는 오히려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을 보호해 주고 정작 보호를 받아야 할 약하고 힘없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혹독하게 대합니다. 이러한 사회일수록 후진사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법에 호소를 하였으나 불의한 재판관이 처음에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세상만사는 순풍에 돛을 달고 망망대해를 가는 것 같이 신바람이 나다가도 갑자기 어디서 불어온 바람인지 시련의 바람이 불어오고 연단의 폭우가 쏟아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웃음이 왔으나 저녁에는 슬픔이 오고 밤에는 평안히 자고 났으나 새벽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의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요, 내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아마도 별의 별 생각을 다 할 것입니다. 술독에 빠져 패인처럼 살기도 하고, 차라리 이와 같이 고통을 당할 바에야 죽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울어도 해결이 안 되고 근심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으면 해답도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를 두려워 말고 해답을 찾는 자가 됩시다. 이 여인들이 어떻게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은혜를 입게 되었을까요?

 

 

2.문제 앞에서 낙심치 말고 믿음으로 간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하나님의 종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가서 탄원을 하였습니다. 왕하4:1"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이 여인은 온갖 시련과 환난이 닥쳤을 때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찾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첫 번째 관문이 되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로써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문제를 아뢰고 겸손히 간구 하면 죄의 문제, 가난 문제, 질병 문제, 심령 문제, 가정의문제,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나 낙망하지 않고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은 결코 부르짖는 자의 간구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도움이 되시고,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며, 약한 자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환난 중에 기도하면 그 환난이 물러가고, 시련과 역경 중에 기도하면 그 시련과 역경이 물러가는 동시에 더욱 합력 하여 선을 이루고 유익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낙망한다고 하는 것은 삶의 의미와 용기와 희망을 잃은 사람을 말합니다. 낙망을 헬라어로는 엥카케인이라고 합니다. 그 뜻이 지치다’ ‘상심하다’ ‘절망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에는 not a faint 또는 not give up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용기를 잃지 말라” “약해지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삼심하거나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6절에 불의한 재판장이 한 말을 들으라하셨고,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하셨으며, 8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하셨습니다.

 

본문 6-8절에 기도 응답의 비결을 말씀합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하던 불의한 재판관도 그녀의 끈질기고 포기하지 않는 그 노력과 열심으로 인해 결국 여인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으시겠느냐는 반문입니다. 7: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기도하고 부르짖는 호소를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도 이 본문의 말씀과 같이 *어떤 답답한 일이나 억울한 일이 있어도 낙망하지 맙시다. 절망하지 맙시다. 자포자기하지 맙시다. *또한 끈질기게 기도합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여인처럼 기도의 응답받을 때가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시다. 그리고 주님 오실 때가지 *믿음을 잘 간직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하나님은 믿음의 간구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구약 본문에 보면 여인이 엘리사를 찾아가서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였을 때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야?" 고 물었습니다. 여인이 대답하기를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기름 한 병이 있을 뿐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역사를 이루는 과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여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고 있는 것 가지고 역사 하십니다. 이 여인에게는 한 병의 기름밖에 없는데 그 기름 한 병 가지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큰불도 작은 불씨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우리들의 심령에 믿음의 불씨, 소망의 불씨, 성령의 불씨, 사랑의 불씨, 기도의 불씨만 있으면 태산 같은 문제도 능히 해결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피신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목동 생활을 하는 중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 속에서 "네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 지팡이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가르기도 하고, 반석에서 샘물을 내기도 하고, 지팡이를 든 손을 들어 기도할 때 아말렉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손에든 막대기와 물맷돌 가지고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삼손은 나귀 턱뼈 하나로 불레셋 군대 일 천명을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한 소년이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나의 됨됨이가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내가 가진 재능이나 소유가 너무 보잘 것 없어도 그것 그대로 믿음으로 주께 맡기면, 그래서 주님이 역사하시면 상상 못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음에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그릇을 준비했습니다. 본문 왕하4:3"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많이 빌리라" 고 했습니다. 성도는 믿음의 그릇, 은혜 받을 그릇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온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축복하시되 가장 좋은 것으로 넘치도록 만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03:5)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데 문제는 그릇이 작은 것이 문제요 그릇을 많이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큰 은혜와 복을 주시고자 하셔도 그릇 만큼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81:10에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큰 믿음, 큰 그릇 준비하여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넉넉한 은혜와 복을 받아 복의 근원으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믿음을 통해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그릇 준비하라 했을 때 이웃에 가서 많은 그릇들을 빌려왔습니다. 문을 닫고 그릇에 기름을 따르라 하니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왕하 4:5-6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했습니다. 엘리사가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생활 하라하니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역사를 일으킨 사람들은 반드시 순종하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문제 해결의 열쇠요, 지름길입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간 환자는 의사의 지시대로 순종을 하여야 합니다. 시간을 맞춰서 약도 먹고 또 음식도 의사가 지시하는 대로 먹어야 빨리 고칠 수가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은혜를 구하며 축복 받기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열왕기하 5장에 기록된 나아만 장군도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니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진흙을 말라주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할 때 소경이 순종하여 그대로 하니 눈이 떠졌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하인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고 하시고 "떠다가 연회장에게 주어라" 할 때 그대로 하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문 앞에 서신 예수님이 "무덤 문을 열라" 고 할 때 말씀대로 순종하여 무덤 문을 여니 주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니 죽어 장사지낸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고 하시니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하니 그물을 들 수가 없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미국의 대 기업가이며 큰 재산을 가진 갑부로 살았던 존 녹스 박사는 자신이 세상을 마감하면서 임종 전에 가족들을 불러 놓고 3가지 유언을 남기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너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를 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네 몸에 병드는 줄을 알라. 둘째는 너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라 그리하지 않으면 네 기업이 기울어지는 줄을 알라. 셋째는 너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에 종을 괴롭게 하거나 불화하지 말라 그리하지 않으면 네 가정에 평화가 깨여지는 줄을 알라. 존 녹스 박사의 후손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순종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건전하게 기업을 성공시키는 후손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내게 있는 것을 주님께 맡기고,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순종하는 믿음으로 은혜와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원한을 푸는 믿음의 간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문제 앞에서 낙심치 말고 믿음으로 간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간구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멘.



섬기는 자 왕하4:8-16, 20:20-28

 

고려 말 공민왕 때의 사람이었던 문익점은 그 당시에는 겨울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해 얼어 죽는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당시 겨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서운 죽음의 계절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한 때 문익점은 사신으로 중국의 원나라에 파견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날씨는 중국이 더 추운데 이상하게도 얼어 죽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베옷을 입고 있는데, 그들은 목화를 재배해서 그것으로 따뜻한 솜옷을 만들어 입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익점은 나라를 위해서, 백성들을 섬기기 위한 마음으로 목숨을 건 결심을 했습니다.

 

그 당시 중국 측 국경 경비대의 검문은 아주 살벌했습니다. 원나라에서도 목화를 재배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함부로 목화씨를 가지고 나가다가는 죽음을 면키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는 궁리 끝에 자기가 쓰는 붓 뚜껑 속에 목화씨앗 세알을 몰래 감추었습니다. 그리고는 가까스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씨앗을 심고 가꾸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국적으로 목화가 재배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 문익점은 자기의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물레 만드는 법과 베 짜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도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 공동체 안에, 나라 안에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소망스런 교회, 아름다운 공동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섬기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먼저 섬기는 자의 모습에 대해 상고해 봅시다.

 

'섬김(dia,konoj / diakonos)'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식사 시중을 하다(waiter)입니다. 고급 식당에 가면 웨이터가 있는데, 손님들의 식사를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달려와서 즐겁고,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자를 말합니다. *'돌보다, 돕다(to serve)'입니다. 나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서 돌보아주고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영어 표현인 service 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또한 이 단어에서 servant()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원래 집사라는 단어 역시 섬김, '디아코노스deacon'에서 나온 말입니다.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분은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섬기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섬김이란,

 

먼저 나보다는 먼저 남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섬긴다는 것은 나보다는 먼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필요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섬김은 나보다는 먼저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의 태도로부터 출발합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부단히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분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웨이터를 불러 화장실에 마지막 남은 화장지를 쓰고 나왔는데 화장지를 갔다 놓으면 좋겠습니다.”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남을 섬기는 일에 익숙한 분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이 바로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왕하4:13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했습니다.

 

다음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입니다. 남보다 자신을 높이고자 하면 절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낮추셨습니다. 이 낮아짐의 마음이 바로 섬김입니다. 사람들은 높아지기를 원하면서도 낮아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높아지려고 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두 제자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요청을 합니다. 21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여전히 자꾸 높아지려고 한다면 섬김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섬김은 자신을 희생하고 주는 것입니다. 나를 주지 않고서는 남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섬김은 물과 같고 소금과 같습니다. 물은 형태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퍼주는 것이 물입니다. 갈증을 해결해 줍니다. 식물이 자라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소금 역시 스스로를 녹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음식의 맛을 냅니다. 부패를 방지합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을 위해 계속해서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자꾸 베풀면 더 풍성해 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 이라는 책을 쓴 스티븐 코비는 '고갈의 관념''풍요의 관념'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것을 주면 모든 것이 다 고갈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집니다. 그래서 자꾸 모으려고 하고,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자꾸 남을 위해 줍니다. 주면 줄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축복의 원리입니다. 우리 모두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마음, 자신을 희생하고 주는 섬김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섬기는 자의 생활에 대해 상고해 봅시다.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떠나 사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섬기는 일이 인생의 본분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목적에 어긋난 삶은 아무리 선하게 산다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도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은 우리의 안락한 생활과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와 천국에서까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했습니다. 19:4-5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가까이 하며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습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모습입니다. 그런 자는 항상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기울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힘씁니다.

 

그리고 형제와 이웃을 섬기는 생활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이 그렇게 했습니다. 왕하4:8-10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했습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간권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남편과 상의 하여 거처할 방을 마련하여 언제든 불편함이 없이 그 곳에서 머물게 했습니다.

 

신약 본문 마20: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섬겨야 합니다. 칼빈은 "왕이라도 섬김이 없이는 진정으로 의롭게 다스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목사도, 집사도 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 직분이 높아지면 으스대고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직분이 높아질수록 예수님을 더욱 닮은 모습으로 주님이 본을 보이신 것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도 섬기기를 잘 해야 좋은 목사가 됩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잘 섬기고 형제와 이웃을 잘 섬기는 자가 귀한 자요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높여 주시고 더 큰 은총을 주십니다.

 

한 초등학생이 하굣길에 구덩이에 쓰러져 있는 한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자신도 물에 빠진 생쥐 신세여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집의 위치를 물어 할머니를 모셔다 드렸습니다. 간호도 하고 말벗도 했습니다. 어린 소년의 이 같은 보살핌에 감동을 한 할머니는 건강을 되찾고 찾아와 소원 하나를 들어 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말했습니다. “제 소원은 너무 큰 것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도대체 그 큰 소원이 무엇이어서 그러느냐며 답변을 재촉했습니다. 소년이 수줍은 듯 말했습니다. “교회 예배당을 새로 짓고 싶어요.” 자신이 주일마다 다니는 교회 예배당이 너무 오래돼 낡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예배당을 짓겠노라고 결심했다고 소년은 설명했습니다. 할머니는 이 교회에 새 예배당을 지어줬습니다. 할머니는 큰 부자였던 것입니다. 이 소년은 비록 어리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아이였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이런 아이를 통해 하나님은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잘 섬기고, 형제와 이웃을 잘 섬기는 성도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섬기는 자가 받는 복에 대해 상고해 봅시다.

 

구약 본문에 보면 수넴 여인의 정성어린 섬김을 받은 엘리사가 하루는 그 종 게하시에게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여인이 들어오자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느냐물으니 여인은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는데 무엇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사양하자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 여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게하시는 이 여인에게 아들이 없는데 남편은 이미 늙었습니다.” 라고 하자 엘리사가 그 여인을 다시 부르다가 말하기를 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고 하니 여인이 말하기를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십시오.” 라고 했는데 정말 그 후 일 년이 지나매 엘리사가 축복한 대로 여인이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섬기는 자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높여 주십니다. 신약 본문 마20:25-27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겸손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겸손은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들어내고 자기 스스로 높여야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낮아지고 사랑으로 섬기면 그것이 위력이 되는 것입니다.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높아지려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와 알베르 까뮤는 모두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박사 학위만도 네다섯 가지나 되는 사람인데 아프리카 람바레나에 가서 흑인 병자들을 치료해 주며, 사랑으로 섬기면서 그의 삶을 바쳤습니다. 그가 모든 명예를 버리고 아프리카 적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를 미쳤다고 했었습니다. 그는 노벨 상금으로 아프리카에 병원을 짓고 흑인들을 치료해 주며 생애를 보냈는데, 사람들은 오늘날 그를 20 세기의 태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까뮤는 상금을 가지고 한적한 교외에다 자신을 위해 멋있는 별장을 짓고 신나게 승용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다가 전신주를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그의 생애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남을 섬기는 생활이 바보 같고 어리석어 보여도 이것이 보람 있는 생활이요, 복된 생활이요, 선한 일에 부한 생활이요, 하늘에 상급을 쌓는 일입니다. 그런 자가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요, 자기도 행복해집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본받아 몸에 밴 모습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섬기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섬기는 자의 모습에 대해 상고해 보았습니다. *섬김이란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희생하고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섬기는 자의 생활에 대해 상고해 보았습니다.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받는 복에 대해 상고해 보았습니다. 섬김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영원한 복을 예비하는 지혜자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 섬기는 자가 됩시다. 아멘.

 


기적을 경험하는 삶 왕하41-7, 10:46-52

 

성경에는 많은 기적의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기적으로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태양과 달이 머물러서는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속에서 해를 받지 않았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 속에서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았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넘는 많은 무리들이 먹고도 남는 역사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쨌든 이런 사건들을 가만히 보시면 더 이상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기적과 역사들이 성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분이 모두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의 역사 속에 어떠한 축복으로 이루어 가셨느냐? 어떠한 기적으로 임하셨느냐? 그런 모든 내용들이 성경에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기적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난제들도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때 보다도 더 큰 기적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보여주는 신앙은 기적의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윤리만을 가르치는 종교라면 세상에 아무 소망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성과 상식을 존중하지만 이성과 상식을 초월하여 이성과 상식이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복음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삶 밖에 없다. 한 가지는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삶이요, 또 한 가지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후자, 즉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오늘 우리가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말씀도 기적의 사건을 다룬 내용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기적을 경험하는 삶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 때 기적을 경험할 까요?

 

1.바른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합니다.

 

1)주님을 바로 고백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과부가 된 선지 생도도의 아내는 학자들에 따르면 이 여인의 남편이 빚을 지게 된 것은, 당시 아합 왕에게 핍박받던 선지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과부는 주의 일을 하다가 빚을 지고, 채주에게 아이까지 빼앗길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런 남편을 죽게 한 하나님을 원망하고, 빚만 남겨 놓고 간 남편을 원망하면서 주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의 종 엘리사에게 찾아갔습니다. 이 여인처럼 아무리 어려운 여건을 만나도, 아무리 큰 시험을 당하여도 주님을 향한 마음이 변치 않고, 흔들림이 없는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신약 본문의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소경이었습니다. 시각장애가 있기에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에 한부분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다른 부분이 감각이 발달합니다. 시각 장애인들은 손끝 감각이 발달합니다. 청각이 발달합니다. 그러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민감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는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특별히 북쪽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마다 그 여리고를 지나갑니다. 그러니 바디매오에게 갈릴리에서 사역하시던 예수님의 소식이 들렸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디매오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치유 하시고, 예수님이 행하신 여러 가지 기적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소경이기에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자기가 아는 바로는 그분은 메시야가 확실했습니다. 그는 이사야 35장에 이미 약속된 메시야가 오실 때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35:5-6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라고 한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분은 분명히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임이 틀림이 없다고 믿고 주님 오시는 골목에 기다려 서 있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질 때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신뢰한다는 것은 참 그 사람을 흐뭇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신뢰해 주는가? 친구끼리도, 부부 간에도, 가족 간에도, 성도들 간에도, 이웃 간에도 얼마나 신뢰 하는가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믿는 무리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뢰하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자기도 걷기를 원하여 걷다가 믿음 대신 두려운 마음이 생겨 빠져가는 베드로를 향해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주님을 신뢰 할 때 노아처럼 주변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해도 말씀대로 방주를 예비하는 믿음으로 살 수 있고, 욥처럼 불 시험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어떠한 시련과 모함 중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으며, 골리앗 앞에 선 다윗처럼 두려움 없이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만 하시면 내 종이 낳을 줄 믿습니다.”라고 백부장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의 여인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의 종을 찾아 와서 자신의 문제를 토로하게 된 것입니다. 신약 본문의 소경 바디매오 역시 주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주께서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물었을 때 저는 거지니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임을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뢰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 합니다.

 

3)믿음의 그릇을 넓혀야 합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이웃에 가서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서라도 그릇을 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여기 그릇은 믿음의 크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종종 소원을 가지고 나온 자들에게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편 8110절 말씀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542절 말씀에는 "네 장막 터를 넓히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큰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도 있고, 작은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만큼만 역사하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의사였던 윌리엄 오슬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사람은 아무 것도 해낼 수가 없다. 그러나 믿음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큰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조지아 주립대학교 데이비드 교수는 성공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의 학력과 조건을 조사한 후에 성공의 비결은 얼마나 좋은 대학을 졸업했는지, 얼마나 좋은 환경과 집안에서 성장했는지 보다, 본인이 얼마나 크게 생각했느냐 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성공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고, 좋은 집안에서 자랐다고 할지라도 생각이 좁고 믿음이 적으면 좁은 인생밖에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열악하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생각이 크고 믿음이 크면 하나님께서 큰 믿음 대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큰 믿음을 가지고 믿음대로 받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기도로 기적을 경험합니다.

 

1)문제를 주님 앞에 아뢰어야 합니다. 구약 본문 왕하4:1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했습니다.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는 약하고 불쌍한 자의 대명사입니다. 하루아침에 사랑의 대상을 잃고 의지할 데조차 없이 막연하게 인생을 홀로 살아가야 하는 과부야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본문의 과부는 엘리사 선지자가 운영하는 선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던 제자의 아내였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 남긴 것은 빚이었습니다. 그 빚 때문에 채권자는 두 아들을 데려다가 종으로 삼겠다고 날마다 찾아와서 으름장을 놓습니다. 먹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두 아들들이 종으로 팔려야 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하나님의 종 엘리사 앞에 가져와 부르짖어 고한 것입니다.

 

신약 본문의 바디매오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리를 지르기를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선을 다하여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주님께 아뢴 것입니다. 붙잡지 않는 기회는 속히 지나가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신앙이 될 때 구원과 은혜를 받고, 기적을 체험하며, 주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을 때, 은혜 받을 때, 찬양할 때, 기도할 때, 전도 할 때, 봉사할 때가 있습니다. 늙으면 못하고 기회 지나가면 못합니다. 두 사람 모두 문제를 주님 앞에 가져와 해결함을 받았습니다.

 

2)믿음의 기도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라는 믿음의 통로를 통해서 응답해 주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본문에 한 과부가 엘리사 선지자에게 나아와 호소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일하셨기에 선지자에게 나아가 사정을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어떤 문제를 만나던지, 그 어떠한 답답한 환경에 놓이든지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 받는 비결입니다. 50: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이 여인처럼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본문 막10: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라고 들었지만 "다윗의 자손 예수여!" 그렇게 외쳤습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나사렛 사람으로 본 것이 아니라 메시야로 믿는 믿음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메시야는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오심을 예고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 제자들을 시켜 "당신이 정말 오실 메시야입니까?"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하라”(11:5).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나의 먼눈을 뜨게 하실 수 있는 메시야로 확실히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3)장애물을 극복하는 인내의 기도라야 합니다. 바디메오가 소리를 지르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꾸짖기를 잠잠하라! 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많은 사람을 큰 군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애를 뛰어 넘었습니다. 실망하고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은혜 받는 사람의 특색은 어떤 난관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가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 큰소리를 지르자 그의 소리를 듣고 드디어 예수님이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이 걸음을 멈추기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님은 낙망치 말고 부르짖어야 할 이유를 눅18:1절 이하에 불의한 재판관에게 부르짖는 과부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목적이 있는 한 장애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과정일 뿐입니다.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실망하면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 믿음으로 기도하고, 장애물이 있어도 응답을 받을 때까지 인내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3.순종과 헌신으로 기적을 체험합니다.

 

1)부르심에 즉시 응답하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왕하4:2-6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했습니다. 본문에서 여인의 순종을 보게 됩니다. 그릇을 빌리라 하니 빌렸고, 문을 닫으라 하니 닫고, 그릇에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 그대로 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명령이나 순종한 결과, 기름을 빈 그릇에 쏟아 부을 때에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차고 넘치는 기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15:7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란 뜻은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명심한다는 뜻이요, 그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무엇이든지 응답을 주시고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미국의 대 기업가이며 큰 재산을 가진 갑부로 살았던 존 녹스 박사는 자신이 세상을 마감하면서 임종 전에 가족들을 불러 놓고 3가지 유언을 남기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너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를 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네 몸에 병드는 줄을 알라. 둘째는 너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라 그리하지 않으면 네 기업이 기울어지는 줄을 알라. 셋째는 너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에 종을 괴롭게 하거나 불화하지 말라 그리하지 않으면 네 가정에 평화가 깨여지는 줄을 알라. 존 녹스 박사의 후손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순종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건전하게 기업을 성공시키는 후손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순종이라는 믿음의 통로를 통하여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2)어려울수록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 여인의 가정이 빚을 지게 된 것이 핍박 받는 선지자를 대접하는 일 때문이었다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남은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뿐이었습니다. 엘리야를 대접한 사르밧 과부도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선지자를 대접할 때 흉년이 끝날 때까지 통에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없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모세에게 있는 지팡이를 통해 기적의 역사를 이루시고, 한 소년이 내어 놓은 오병이어를 통해 기적을 행하시고, 이 여인에게 있는 기름 한 병을 통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나는 없어서 헌신할 수 없고, 사정이 어려워서 헌신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받으십니다. 어느 교회에서 연합회 총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사정이 어려운대도 목사님들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자진하여 섬기는 교회에서 모임을 가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주일날 광고했습니다. 이 광고를 듣고 힘들게 사는 성도 한분이 자원하여 대접에 필요한 30만원을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님의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아파트가 속히 팔려서 아들의 카드빚을 갚는 것과 건축헌금 2천 만 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0만원 헌금하고 그 다음 다음 날 화요일에 그렇게 팔리지 않던 집이 팔린 것입니다. 그것도 19천 만 원에 내놓은 집이 25천 만 원에 팔린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신갈 지역에 아파트 값이 순식간에 약 5천 만 원 정도 오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시기에 팔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믿음이 좋으냐면 계약금을 먼저 하나님 앞에 드렸다고 합니다. 그 돈으로 아들 빚을 갚아야 할 턴대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린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이 정말 물질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보고 눈물로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적이 우리 성도들에게도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3)하나님은 기적을 통해 큰 은총을 주십니다. 왕하4:7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했습니다. 여인의 모든 문제가 해결함을 받은 것입니다. 10: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눈을 뜨고 보게 되었으며,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빈 그릇에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비우는 종교가 아니라 채우는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비움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먼저 마음에 있는 더럽고 추한 것을 버리고 비운다음에 선한 것으로 채우라고 합니다. 믿음은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입니다. 얻고 채우는 것이 바른 신앙적인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0장에서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을 쫒아 내시고 빈집의 위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채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얻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특히 우리의 기름으로 풍성히 채우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 여인이 기름으로 그릇이 가득 차게 된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심령에도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원하시고, 말씀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 하고, 은혜가 충만하기를, 사랑이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따라가며 사명 감당하는 자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때보다 기적이 필요한 이 시대에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려면

 

.바른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합니다. 1)주님을 바로 고백하고, 2)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3)믿음의 그릇을 넓혀야 합니다.

 

.기도로 기적을 경험합니다. 1)문제를 주님 앞에 아뢰어야 하고, 2)믿음의 기도라야 하고, 3)장애물을 극복하는 인내의 기도라야 합니다.

 

.순종과 헌신으로 기적을 체험합니다. 1)부르심에 즉시 응답하는 순종이 있어야 하고, 2)어려울수록 헌신이 필요하며, 3)하나님은 기적을 통해 큰 은총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기적을 체험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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