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피난처인 도피성 수20:1-9, 3:14-21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1892-1978)은 네델란드에서 태어난 신앙의 거인입니다. 그의 가족 들은 유태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온 가족이 독일의 라벤스브룩이라는 참혹한 수용소에서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 때 가족들 중에서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코리는 기적적으로 살았습니다.

 

코리 텐 붐은 나치 수용소에서 4개월 간 독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어둑컴컴한 바닥에는 더러운 물이 고여 있었고, 옆방에서는 낮밤 구분 없이 질러대는 죄수들의 비명소리 때문에 자신이 고문을 받는 것처럼 두렵고 떨려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서 마치 자신을 짓누르는 벽을 밀어내기라도 하듯이 손을 뻗쳤습니다. 그리고는 공포에 질려서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 견딜 수 없어요. 이제는 믿음도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가 눈에 띄었습니다. 개미는 걸음을 옮기다 고여 있는 물이 있는 것을 보자 급히 벽의 조그만 구멍으로 달려 들어가 몸을 숨겼습니다.

 

"그때 마치 주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 개미를 보아라. 바닥에 물이 있는 것을 보고는 숨을 곳으로 달려가지 않느냐. 코리, 너의 약한 믿음을 보지 마라라. 내가 바로 너의 피난처이다. 저 개미와 같이 너는 나에게로 달려오너라.'" 그 때 그녀는 용기를 회복하였고 주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확신으로 수용소 생활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석방되어 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연사로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33년 동안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고난과 기쁨에 관해서 증거 하다가 1983491세 생일날 저녁,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코리 텐 붐은 자신의 연약함을 언제나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음을 그녀의 옥중생활에서 체험하였습니다. 그 체험이 그녀를 환난에서 건져 냈고, 믿음의 거장이 되게 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원한 피난처인 도피성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도피성은 죄인이 피하여 죽음을 면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구약 본문 수20:3부지중 오살(誤殺)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도피성(逃避城)제도를 통해 고의성이 없이 부지중에 이웃의 생명을 해친 자들에게 화를 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유대 법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일가친척들은 끝까지 살인자를 추적해서 생명을 해함으로 복수 할 수 있는데 그때 살인자가 도망가서 목숨을 구제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도피성입니다. 도피성을 아레 함미클라트라고 하는데 받아들이는 성읍”, “안식처”, “피난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지중 오살한 자를 위해 도피성 제도를 만드신 것은 인간의 연약한 모습에 대한 사랑의 배려입니다. 이 말씀은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닙니다. 꼭 칼이나 무기로 살인을 해야 살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 마5:22절에 형제에게 라가 라고 욕하고 미련한 놈이라 고 하는 자도 이미 살인한 자라고 합니다.

 

내가 던지는 말이 상처를 주고 때로 살인을 하는 줄도 모르고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부지중에 오살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가정에서 남편이 반찬투정을 하니까 부인이 `쥐꼬리만큼 벌어다주면서 뭘 바라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이 말 때문에 남편이 일주일 동안 가슴앓이를 하고, 그게 신혼 때 있었던 일인데 20년 동안 담고 있어도 상처가 됐습니다. 20년 후에 남편이 돈을 잘 벌게 되자 이혼을 하자고 하더랍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부족하고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에 전혀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일이 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피성 제도를 두게 하심으로 우리가 설령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부지불식간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할지라도 도피성에 들어갈 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도피성 제도에는 깊은 사랑의 배려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도피성으로 가는 길목마다 푯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멀리서도 보고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음에 항상 열려 있습니다. 도피성 문은 항상 열려있게 했습니다. 도망 처 왔는데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틈도 없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잡혀 변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받아들입니다. 본문 9절에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한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 뿐 아니라 외국인,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는 도피성을 세울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이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이 큰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성도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도피성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신약 본문 요3:14-16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요르단에는 느보산이 있는데 그 곳에는 모세의 기념교회가 있고, 그 앞마당에는 이탈리아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의 작품으로 장대에 달린 놋 뱀과 십자가가 있습니다. 판토니는 놋 뱀과 십자가를 한 작품에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놋 뱀 사건은 구약 민수기 21장에 나와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 광야에 서식하는 독사인 불 뱀에 물려 죽게 되자 백성들이 깨닫고 모세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그 처방으로 장대에 놋 뱀을 만들어 달게 해서 누구든지 그 놋 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게 하였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불신앙에서 옵니다. 오늘 우리도 살아가면서 기쁨과 감사 대신 불평하고 원망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로마의 시저가 큰 잔치를 마련해 놓고 많은 귀족들과 친구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잔칫날은 아주 좋지 못한 날씨였습니다. 시저는 기분이 몹시 상해 화가 나서 엉뚱한 명령을 부하들에게 내렸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하들은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았습니다. 그러나 부하들이 쏜 화살은 되돌아와서 그들의 머리에 떨어져 많은 중상자가 생겼습니다.

 

어떠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하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환경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원망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와 박히는 화살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의 결과로 사람을 물었던 불 뱀은 우리의 마음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면 불 뱀은 머리를 들고 우리를 물어버립니다. 원망하고 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데 여전히 속이 쓰립니다. 원망하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꼬여서 더욱 골치 아프게 합니다. 우리의 입에 원망이 마음에 불 뱀이 되어 우리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불 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를 위한 처방으로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보게 해서 살렸습니다. 3: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 말은 놋 뱀이 장대에 높이 달린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갈라디아 3:1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저주의 죽으심은 심판과 형벌 대신 신약 본문 15절에 있는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대로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받는 능력이 되고, 사랑으로 용서하는 능력이 되고, 치유하는 능력이 되고, 감사하는 능력이 되고, 평안을 얻는 능력이 되고,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 모두 영원한 도피성 예수님 안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도피성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징표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도피성은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독생자를 주시므로 저주를 받아 마땅한 내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사랑의 대상으로 바뀌게 되었고, 심판과 영벌 대신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전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오래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목사님과 장로님이 아주 절친하게 지내는 은혜로운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아들만 열 명이 있었고 장로님께서는 자녀가 하나도 없었답니다. 그래서 고아원에서 입양을 하려고 오랫동안 기도하고 생각하다가 목사님가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목회하시느라고 수고 하시고 어려우신데 자녀가 너무 많아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뵙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부부도 그 장로님의 말씀을 듣고 어렵게 승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사모님과 함께 누구를 보낼 것인가를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서 첫째부터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을 했고, 둘째는 첫째를 대신해야 하고, 셋째는 공부를 잘하고, 넷째는 몸이 약해서 더 돌봐주어야 하고, 이렇게 다섯째 여섯째.... 막내는 막내이고 이렇게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생각해도 보낼 아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로님께 그 말씀을 드리고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답니다. 열 아들이 있어도 그 중 하나를 선뜻 양자로 보낼 수 없는 마음이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도피성 제도 하나 하나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피성을 가리키는 푯말에서, 항상 열려 있게 한 것에서, 누구든지 차별 없이 들어오게 한 것 외에도 성읍 이름 하나 하나에까지 오묘하신 은혜와 사랑의 섭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구약 본문 수 20:7-8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도피성이 있는 곳의 지명입니다. 도피성은 요단강 서편에 3, 동편 3곳에 지으라고 하신 지명에 중요한 뜻을 갖고 있습니다.

 

1) 가데스는 거룩한 곳이란 뜻입니다. 성도들이 주님 앞에 나와 보혈로 성결해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거룩한 주님과 교제 하다 보면 성령의 도우시는 은혜로 거룩해 지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2)세겜은 어께, 능력이란 뜻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능력이 주어져 대적을 이기고, 죄와 유혹을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3)헤브론은 교제, 친구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주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서로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교제를 통해 하늘 영광스런 교제로 이끄십니다.

4)베셀은 안식, 평안함, 요새를 뜻합니다. 참 안식은 영원한 피난처와 요새가 되시는 주님에게만 있습니다. 그러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시며 쉬게 하리라고 약속 하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5)길르앗 라못은 높임, 영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을 알기 전에는 부끄러운 죄인이었지만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 신분을 가진 자로 높여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들로 세우셨습니다.

6)바산 골란은 마지막 나오는 도피성으로, “벗기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시어 십자가를 통해 죄 짐을 벗기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모든 죄의 포로에서, 사단의 올무에서,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영생의 소망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되게 하십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외면하지 말고 기쁨으로 받아 누리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원한 피난처인 도피성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도피성은 죄인이 피하여 죽음을 면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도피성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도피성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징표입니다.

 

아멘.

 


도피성의 은혜 (20:1-9)

이 시간에 도피성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위험에 처할 때 우리가 피할 곳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잘 아는 대로 보트 피플이라 해서 베트남이 공산화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가 받아주지 않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죽어갔는지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제력이 있는 경우 핵전쟁에 대비하여 지하 벙커를 마련한다든지 더 안전한 나라로 이주한다든지 등의 도피처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중 한 예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요르단의 고대유적지인 페트라(Petra)도 그 중 하나입니다.

페트라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산악 도시로 페트라 입구는 그 폭이 3m도 채 안 되는 거대한 자연 절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협곡이 1km 이상 이어져 있어 사람들은 이곳이 대환난 중에 피할 곳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피할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예수가 반석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이 지상에서 피할 곳이 없습니다.

18:2-3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피할 곳을 내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한한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발견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도피성은 부지중에 오살한 자를 위한 특별한 보호처로 요단 동쪽에 세 곳 서쪽에 세 곳 모두 6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도피성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예표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 피하는 자에게 주실 은혜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 피하는 사람에게 어떤 복이 있을까요?

 

1. 거룩해지는 복이 있습니다.

 

도피성에는 갈릴리 게데스의 도피성이 있습니다. “게데스는 히브리 말 카도쉬에서 온 말로써 그 뜻은 거룩을 의미합니다. 거룩은 구별과 성결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 구별과 성결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별히 구별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피로 용서를 받고 그의 성령으로 인격이 성결해집니다(1:7). 그래서 고후5:17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했습니다.

거룩하고 싶습니까? 예수 믿고 그의 영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인류가 죄를 이겨보려고 수천 년 동안 수양과 도덕과 각종 종교를 만들었지만 다 헛수고였고 예수 믿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한 구도자라면 그 헛된 것 다 버리고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도자입니다.

2. 예수님께 피하면 짐을 내려놓는 복이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이라는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세겜이란 어깨를 의미합니다. 구약 사람들의 물건 나르는 습관은 어깨에 메는 것이었습니다(9:6).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님께로 오면 우리의 모든 짐을 다 져주신다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하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예수님께 가까이하기만 해도 마음의 짐이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것을 힘들어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고통을 당해도 마음에 예수가 있는 사람은 힘들지 않는데 예수가 없는 사람들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신세를 한탄하고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진실로 예수님께로 돌아오면 우리 마음의 짐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도 다 져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저주와 염려와 근심과 수고한 삶의 무거운 짐까지도 다 맡아 주시고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도피성 되신 예수님께 피하는 자가 받는 은혜입니다.

 

3. 예수님께 피하면 신령한 교제가 있습니다.

 

유다 산지의 헤브론이라는 도피성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헤브론하바르라는 말인데 이는 연결(joint)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납니까? 간단해요. 예수 안에만 오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모든 것의 답이 예수예요.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를 보는 것이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사귐도 예수 잘 믿으면 대인관계에 자신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 만나게 하시고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요일1: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했습니다. 혹시 여러 방향에서 막히시는 분 계시면 예수 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4. 예수님께 피하면 승리의 복이 있습니다.

르우벤 지파에 베셀이라는 도피성의 있습니다. “베셀이라는 말은 요새지를 말합니다. 요새지란 천혜의 난공불락의 성이거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고 진지를 구축한 곳입니다. 요새지에도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 있으면 어떤 시험도 악마도 핍박도 절망도 덮쳐 올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시험이 와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다 이길 수 있어요. 찬송가에 만세만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 대고 환난풍파 없도다하지 않았습니까?

 

마귀보다 세상의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가장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일4:4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도피성 되신 예수님께 피하면 온전한 승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5. 예수님께 피하면 영광의 복이 있습니다.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의 도피성이 있는데 라못은 들어 올리고 높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다윗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다윗 같은 비천한 자라도 그 믿음을 보시고 거름더미에서 드셔서 영광스런 위치에 오르게 하시듯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셔서 영광스런 자녀 삼으로시고 높이 되신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그 영광과 승리와 복락을 누리게 하십니다.

6. 예수님께 피하면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도피성 중 마지막으로 므낫세 지파의 바산 골란의 도피성이 있습니다. “골란기쁨또는 희열을 뜻합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 있으면 진정한 구원의 감격과 희열과 참된 평안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 피하는 것이 이 모든 복을 누리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자꾸 딴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다윗도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다윗은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그럼에도 사탄은 위해 자꾸만 산으로 피해라. 산으로 피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1:1-3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하나님만이 진짜 피할 곳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피했더니 잡으러 와도 잡지 못합니다. 사람이 환경이 지혜가 이모로 돕고 저모로 돕고 삼상 19장을 보면 잡으러 왔던 사울이 성령의 은혜를 받아 스스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27:1-3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찬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입니다. 그런데 도피성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피하지 않으면 우리를 쫒는 피의 보수자로 인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목숨을 바쳐 사력을 다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절대 진리에 서고 성령 충만 받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구원과 행복과 평안을 누려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 떠나는 일이 없이 항상 도피성 되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떠날 수 없는 자들 수24:14-21, 6:63-71

 

실력 있는 오르간 연주자이며 신학 교수였던 슈바이처(1875-1965)는 여행 중에 우연히 벌거벗은 흑인 상을 보고서 남은 생애를 밀림의 불쌍한 원주민들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5년 뒤 의사가 된 그가 헬레네와 사랑에 빠지자 주변 사람들은 그가 사랑 때문에 그 동안 계획해왔던 아프리카 행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마침내 슈바이처는 사랑하는 헬레네와 자신의 결심 앞에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녀와의 만남을 피하고 방황했습니다. 슈바이처가 자신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헬레네가 어느 날 그를 찾아왔습니다. 슈바이처는 헬레네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결심이 선 듯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난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하지만 오랫동안 계획해왔던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돕는 의사의 꿈을 버릴 수 없소. 당신의 남은 생애를 밀림 속에서 나와 함께 할 수 있겠소? 만일 당신이 이러한 나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요.'

 

헬레네는 슈바이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핼쑥해진 모습은 그동안 그가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헬레네는 사랑하는 슈바이처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긋이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습니다. '그 동안 왜 혼자서만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하셨나요. 저도 정식으로 간호 교육을 받은 사람이에요. 간호사인 저 없이 당신 혼자 그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헬레네는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위한 간호사이자 슈바이처의 아내로서 평생 동안 살았습니다.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슈바이처를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슈바이처를 아프리카를 위한 사명자로 가게 했고, 남편을 사랑한 헬레나가 기꺼이 그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결코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을 떠날 수 없는 자들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을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 가운데는 질병을 고침 받기 위해서,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혹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은혜를 받고 새로워지지 않는 한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습니다. 주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떠나는 자들은

 

먼저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들은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은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 남았다는 기적의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 한 무리들이 주님 앞에 나아와 우리의 임금이 되어 달라고 부탁할 때 주님은 생명의 떡에 대한 교훈을 하신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인 세 번째 부분은 세상적인 것을 찾기 위해 예수님께 나온 무리들이 주님의 영적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여 이 말씀이 어렵다 하며 오히려 불만과 실망으로 예수님 곁을 떠나가는 무리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들은 정치적인 억압과 지배의 설움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허덕이는 절박함 가운데에서 세상적인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예수님께 왔다가 그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것에 대한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여 떠나고 만 것입니다. 부자 관원도 세상적인 영달을 위해 예수님을 좇으려 했다가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셨을 때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다음에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떠나게 됩니다.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본문 요 6:65에 나오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모태로부터 택하셨다고 고백한 바울은 믿음의 본을 보인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행하여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1:4)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하셨습니다. 전도자들을 통해 청함을 받아 교회에 오기는 했지만 믿음생활 하다 고난이 왔을 때, 신앙으로 인해 박해를 받을 때, 삶이 풍요로워져 세상을 사랑하다가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택함을 받고, 받지 못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택함을 받은 자들은 무슨 일을 만나도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통해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떠나게 됩니다. 주님을 임금 삼고자 하는 무리들에게 내가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단지 광야에서 먹었던 기적의 양식을 예수님이 계속해서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말씀을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갖지 못하면 인간의 이성으로 알지 못합니다. 육의 생각으로 가득 찬 그들의 그런 기대에 어긋났기에 예수님을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이성적 판단에도 맞지 아니하였습니다. 어떻게 자기 살을 먹게 하고 자기 피를 마시게 하겠는가? 어렵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구약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의 바알 신을 섬기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욕심을 따라 바알이 자기들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인 줄 알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들,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영적인 일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결국 주님을 떠나게 되고 맙니다.

 

2.결코 주님을 떠날 수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많은 무리들이 주님 곁을 떠나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신약 본문 67절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결코 주님 곁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왜 떠날 수 없을까요?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을 바로 알고 믿는 자들은 떠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고, 깨닫는 마음이 생겨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어떠한 일을 만나도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믿음의 승리자가 됩니다.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미국의 갑부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가 뉴욕의 한 교회에서 신앙 간증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간증하였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 년에 용돈이라고는 50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 가정은 파산지경이 되었고, 아버지는 47세 나이에 6개월밖에 못산다는 병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리 어렵던 가정이 어머니의 신앙 때문에 다시 일어나게 되었노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어머니는 살림을 맡아 거친 일을 하면서도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라고 늘 찬송하였습니다. 밤에는 자녀들의 잠자리에 다가와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아주신다" 라며 잠이 들 때까지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가난했음에도 저녁을 굶고 잠자리에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말합니다. "당시 한 조각의 빵 속에는 어머니가 계셨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어머니의 믿음으로 아버지는 89세까지 장수하셨고, 카네기 같은 훌륭한 자녀들이 배출된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고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은 복됩니다.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가정은 복됩니다. 구약 본문에 여호수아는 그 은혜를 받았고,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한 것입니다.

 

또한 주님 사랑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떠날 수 없습니다. 8:3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했습니다. 제자들은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지만 믿음이 약하여 주님이 막상 십자가 지시기 위해 잡혀가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예수님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주께서 문초를 받으시고, 온갖 수난을 당하시는 것을 지켜보다가 무리 중에 있던 사람이 당신도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니 엉겁결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 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보고 낙심하여 다시 고기 잡는 옛 생활로 돌아갔지만 주님은 말씀하신대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 다시 고기 잡는 시몬 앞에 나타나시어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신 후 내 양을 먹이고, 치라는 사명을 다시 받은 후 오순절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되자 박해도, 채찍도, 옥에 갇히는 것도, 죽음도 더 이상 두려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주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담대히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하다가 기꺼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구약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금세 잊고, 주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을 떠나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바알 우상을 섬기게 되었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수많은 기적을 베푸시는 사랑을 결코 잊을 수 없었기에 온전히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만 의지 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들은 결코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신약 본문에서 너희도 가려느냐?”는 주님의 질문을 받고 베드로는 68-69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심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것은 말씀을 모두 이해해서가 아니라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비록 이해하지 못해도 따르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다 알고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기에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인간적이 생각이나, 이성이나, 자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신뢰함으로 그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 은혜의 세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열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성도,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 주님 안에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참으로 귀한 자들은 오직 주님만 섬기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 가운데에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가 있고,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있고, 형식적인 종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먼저 믿음 생활 하는 자들 가운데도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가라지, 쭉정이, 염소, 심판 때 주님의 왼편에 있는 자들, 등은 있되 기름이 없는 미련한 다섯 처녀 등 모두 같은 부류의 무늬만 신자인 거짓 신자들입니다. 이들의 운명에 대해 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하셨습니다. 25: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하셨습니다. 13: 30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 본문 14-15절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고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간곡히 당부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신을 겸하여 섬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십계명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하나님과 우상, 하나님과 재물,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귀한 자들은 오직 주님만 섬기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여호수아가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자들을 사랑하시고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톤카(Tonka)는 불도저와 같은 중장비 완구들을 만들어서 성공한 회사입니다. 회장은 로버트 토어니어(Robert L. Tourneau)인데 신앙이 독실한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완구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많은 고전을 했습니다. 한번은 친구로부터 신앙에 대한 도전을 받고 완구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하나님만 열심히 섬기리라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부흥회를 참석하였습니다. 무릎 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향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짐을 체험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완구 만드는 기계를 모두 버리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교회에 가서 담임목사와 함께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의논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가운데 완구 회사를 계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나의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을 하리라결단을 내리고 완구기계를 다시 모아 회사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리고 톤카 회사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순이익의 90%를 자선사업과 교육사업, 선교에 사용하였습니다. 정글 크러쉬(Jungle Crusher)라는 기계를 만들어 정글을 헤치며 원주민 선교에 이바지합니다. 토어니어는 톤카의 세계야말로 축복의 세계라고 고백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아닙니까?

 

섬김은 이론이 아닙니다. 섬김은 형식이 아닙니다. 섬김은 삶 그 자체입니다. 잡다한 생각 없이 오직 하나님만 향하는 순수한 마음과, 어떠한 유혹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마음가짐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자를 귀히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제자들의 고백처럼 주님만 따르고 사랑하며 섬기기를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기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1.주님을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들이요, 다음에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이요,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통해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떠나게 됩니다.

 

2.결코 주님을 떠날 수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을 바로 알고 믿는 자들이요, 또한 주님 사랑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요, 그리고 주님 안에서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들은 결코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3.참으로 귀한 자들은 오직 주님만 섬기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먼저 믿음 생활 하는 자들 가운데도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는 것, 또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참으로 귀한 자들은 오직 주님만 섬기고 따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사랑하여 결코 떠날 수 없는 신앙, 오직 주님만 섬기고 따르는 신앙을 가지고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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