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현인 징계 삼하15:13-23, 히12:1-14
탐험대원을 이끌고 탐험을 하던 탐험 대장 존 프랭클린은 어느 날 눈과 빙산 사이에서 추위에 떨며 잠든 일행을 보았습니다. 탐험 대장은 30분이 지나면 경험으로 보아 의식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깨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얼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얼마간 쉬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제발 가만히 잠자게 내버려 두시기 바랍니다.
30분이 지나자 그들은 대장이 말 한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탐험 대장은 그들을 치고 때려서 잠에서 깨웠습니다. 그들은 텐트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갔고 따뜻한 음료수로 몸을 녹여 그들은 살아났습니다. 그들을 때린 손이 그들을 구해 낸 손이 된 것입니다.
건방지고 으스대며 고집을 피우는 사람은 좋은 말로 가르쳐 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주먹으로 때리고 손바닥으로 쳐야 말을 듣습니다. 이 같이 하나님도 말로 해서 듣지 않는 성도들에게 가혹하게 치고 때리는 징계의 일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름다운 의에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사랑의 표현인 징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징계는 성도가 마땅히 행할 길을 가지 않을 때 옵니다.
구약 본문 사무엘하 15:23에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했습니다. 이 모습은 다윗의 범죄로 인한 징계의 내용 중 하나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마땅히 행할 길을 배우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행할 것을 명하시고,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케 되고 형통케 될 것이라고 누차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어그러진 길을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항상 깨어 있지 못하면 어그러진 길을 가게 됩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통일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은 매우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차기 이스라엘 왕을 선출할 것을 명하셨을 때, 사무엘은 장자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하자,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고 하시면서 막내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붇도록 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악기로 찬양할 때 사울 왕에게 역사했던 악신이 떠나갈 정도로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시기하여 무고히 자기를 여러 번 죽이려 한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왕이라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할 줄 아는 신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갈 때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하는 말씀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이 된 후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아비나답의 집에 수 십 년간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친히 모셔왔으며, 그는 호화로운 궁에 기거하면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천막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성전을 건축하기로 계획하고, 많은 은금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바쳤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좋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절대 순종한 다윗은 후대 왕들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국가를 잘 통치한 왕들을 평가할 때 아비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거나, 조상 다윗의 행한 대로 행하였다고 평합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많은 시가 시편으로 전해 오는 것으로 보아 성령으로 충만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사람 다윗에 대해 하나님은 만족히 여기시면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신앙의 인물이지만 그도 역시 범죄 하였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0:12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했습니다.
그의 범죄는 그가 왕으로 다스릴 때 충성스런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을 하고 그 여인이 임신하자 이것을 은폐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부인과 자리를 같이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런 우리아는 동료들이 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생각하고 그의 아내 곁으로 가지를 않습니다. 결국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명하여 전사한 것처럼 가장하여 간접 살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간통과 살인은 요즘도 가장 흉측하고 포학한 가정 파괴범에 속합니다. 이런 잔혹한 범죄를 믿음이 좋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복하는 다윗이 범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이처럼 어그러진 길로 갈 때 하나님은 호되게 징계 하셨습니다.
그 징계는 먼저 밧세바가 낳은 아들의 죽음에서 시작합니다. 이, 아들을 하나님께서 치시니 다윗은 하나님께 엎드려 금식하고 철야하며 간구하였지만 결국 일주일 만에 죽습니다.
다음에 암논이란 아들이 그의 이복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는 사건, 그 일로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사건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이 그의 이복형 암논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다가 잔치 날 살해하는 살인 사건으로 비화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다윗이 범한 죄가 그대로 자녀들에게서 재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압살롬의 모반으로 이어집니다. 압살롬은 그의 용모를 앞세워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아버지의 왕권에 도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부도덕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다윗의 후궁 10명이 백주에 모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아들 압살롬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다윗의 부도덕한 죄의 후유증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한 가정과 가문을 넘어 이스라엘 전 국민이 양분되어 요단강 동쪽 넓은 평지에서 사생을 결단하는 전쟁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지도자 한사람의 실수는 결국 국가의 내란을 야기 시켰고, 백성들은 양분되어 명분 없는 싸움에서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이 모습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우리 모두 죄에는 형벌과 심판이 따름을 바로 알고 항상 깨어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회개하고, 버려 성결한 신앙인으로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징계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신약 본문 히12:6-8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했습니다. 성도가 징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3:19에도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했습니다. 고전11:32에서는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징계가 없는 사생자들은 징계가 없으니 더 마음 놓고 악을 행하다 영원한 심판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징계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기에 받는 것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우리는 사생자에 불과합니다. 어느 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 목사에게 어떤 여자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 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분이신 것이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 목사는 부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부인! 부인은 지금 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 라고 부인이 반문하자 무디 목사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요." 교회에 많은 출석을 하였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내가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관계를 갖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징계는 자녀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그대로 방관할 수 없어서 사랑하는 자녀를 향해서 사랑의 채찍과 매를 듭니다. 그처럼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징계가 올 때 기도하면서 징계로 깨닫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징계는 하나님이 나를 아들로 대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징계를 받을 때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성도의 잘못을 고치기 위함이고 또 다른 면은 신자를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고난을 당할 때 신자들은 결코 낙심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되며 그 고난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잘 못된 것을 회개하고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 때 롬8:28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겸손히 회개하며 하나님을 의지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돕는 자들을 붙여 주시어 환란의 시험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징계가 올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줄 알고 감사함으로 받아 큰 유익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큰 유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다윗은 징계를 통해 죄로 인해 얼마나 심각한 고통을 초래하게 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죄를 멀리하고 성결한 삶을 살면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을 때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잘 견디고 연단을 받으면 복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신약 본문 히12:11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징계 하시는데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아버지와 격의 없이 교제를 나누는 자들이요, 장차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하셨고, 본문 히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도가 잘못된 길로 갈 때 징계를 받게 되는데, 징계로 인해 회개하여 죄를 그치고, 의로운 일을 힘써 행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 갈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깃들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과 평화하게 되고, 이웃과도 평화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성도들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훈련시키는 수단이며, 내세에서의 더 큰 상급을 보장해 주는 축복의 도구인 것입니다.
한 어린 소녀가 그녀의 음악 교사에게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했더니 그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픈 줄은 나도 알지만 손가락이 튼튼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단다." 그 말을 들은 소녀는 "선생님,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가 아픈 것 같군요."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을 결코 헛되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징계를 통한 괴로움과 슬픔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매우 사랑하시며 고통의 통로로 다가오는 귀중한 영혼을 강하게 하십니다. 욥은 불 시험을 당하면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고한 신앙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있던 찌꺼기 같은 교만이나 죄와 허물들이 제거되고 정금처럼 순결한 신앙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징계가 이러한 유익이 있기에 본문 히12:12-13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묘사된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발, 다리라는 표현은 모두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장기 레이스인 마라톤을 하고 있다면 손과 무릎, 발, 다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손이 피곤하고 무릎이 연약해 지고, 발이 아프고, 다리를 전다면 절지 않도록 치료하고 힘을 내어 달려야 합니다. 이 말씀은 히 12:1-2에서 말씀한 믿음의 경주 장에서 수많은 증인들이 응원하는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 저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이 때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치료약은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든 부끄러움을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지금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믿음의 경주 자체가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 주님을 바라볼 때 힘을 주시고 피곤한 손과 저는 다리와 연약한 무릎을 치료해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성도의 삶에서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때 그 증상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이를테면 요즘 성인병인 당뇨가 있다면 그 증세는 무엇입니까? 입이 마르고 물을 많이 마신다든지, 전신이 노곤하고 쉽게 피로하며 일할 의욕이 없어지거나 손발이 저리고 피부가 가려운 증상이 나타난다고 의학서적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경주에 피곤함과 저는 증세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그 중에 가장 큰 증세는 예배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때는 주일이나 수요일 밤 예배, 기도회가 그렇게 기다려졌는데, 이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고 가기 싫다면 신앙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증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교사나 성가대원, 식사 등 여러 가지 봉사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알았는데 여기에 회의가 생기고 피곤감이 몰려드는 증세가 있다면 이 역시 믿음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증세입니다.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 보다 세상 것을 더 좋아하는 증세가 있다면 내 믿음 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 기쁨과 감격이 있었는데 무감각한 증세가 있다면 처음 사랑을 잊은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과 평안 대신 불평과 원망 불안한 마음이 있다면 믿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치료 받고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 의지하여 고침 받고 승리하여 주님과 함께 영광에 이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사랑의 표현인 징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징계는 성도가 마땅히 행할 길을 가지 않을 때 옵니다.
▣.징계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큰 유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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