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주일설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입니다. ‘이신칭의’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종교개혁, 루터,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일 겁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올해로 50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의 정신, 그리고 믿음과 구원에 대해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실 때, 고침을 받은 병자들에게 반복해서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① 혈루증 고침 받은 여인에게는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라고 하셨고,
② 거지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실 때는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막 10:52) 하셨고,
③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죄 지은 한 여자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고,
④ 문둥병을 고침 받은 10명중 돌아와서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라고 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 기적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거의 판박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과 구원은, 우리 인간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시작과 끝입니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사실은 어느 학자나, 종교 개혁자들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우리 예수님이 항상 강조하고, 선포하셨던 진리의 말씀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면, “카톨릭 교회가 돈을 받고 ‘면죄부(면벌부)’를 팔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아주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대답입니다.
그러나 면죄부를 돈으로 사고파는 상황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들은 전부 앞서 성경 말씀에서 소개해 드린 대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는 말씀을 삭제하고, 축소하고, 왜곡하고, 상품화했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는 것을 상품화 한 상징적인 현상이 바로 면죄부였습니다.
오늘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왜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그 근본적인 이유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앞으로 신앙생활 하면서 500년 전의 종교개혁정신을 본받고 이어가는 결단과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첫 번째 이유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의 자리에서 점점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점점 성장해 가면서 많은 인원을 관리하기 위해 조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조직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점점 서열화, 계급화가 되어 갔습니다. 서열에 따라 주어진 권한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의 정점이 교황제도이고, 사제들의 서열화 였습니다.
교황제도가 정착된 것은 예수님 사후 무려 60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제64대 교황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레고리오스 1세(재위: 590년 9월 3일 - 604년 3월 12일)때입니다. 교황제도를 만들면서 초대교황에 베드로 사도를 세우고, 베드로 사도 이후 600년 동안 로마 교회의 감독을 지낸 인물 위주로 63명의 교황을 세웠습니다.
이 그레고리우스 1세를 기준으로, 이전의 600년 시대를 초대교회시대, 그레고리우스 1세부터 종교개혁까지 약 900년의 기간을 중세교회시대, 종교개혁부터 현재까지를 근세교회시대라고 구분을 합니다.
교황과 사제가 중심이 된 교회는 점점 교회의 주인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이 주인이라고 선포했지만, 모든 권력, 모든 행정, 모든 이익까지,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었습니다. 결국 교황은 어떤 오류와 잘못된 판단도 하지 않는다는 ‘교황 무오설’이 등장합니다.
사제들은 죄 사함의 권세를 위임 받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일반 신자들의 고해성사(죄의 고백)를 듣고, 사죄의 선언을 행하는 참람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베드로 교황으로부터 이어진 카톨릭 교회 단 하나만이 유일하다고 하면서, 카톨릭 교회에만 구원이 있고, 다른 집단이나 모임에서는 결코 구원이 없다는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교황이 흠이 없으신 예수님의 자리 앉아서 무한한 권력을 행사하고, 사제들이 예수님의 죄 사함의 권세를 마음껏 유린하고, 자신들의 이름이 있는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이 주장들은, 예수님을 교회의 주인 자리에서 내쫓고, 자기들이 그 주인의 자리에 앉아 천년만년 권세를 누리겠다는 최악의 결정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먼저 교황과, 사제와, 교회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문지기처럼 딱 가로 막고 있는 한,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 구원의 자유, 소망의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신자들의 만남을 방해하고, 제한하고, 허락을 받아야 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거대한 조직구조를 깨트리자는 것이 바로 종교 개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루터가 주장한 것이 바로 ‘만인 제사장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데 있어서는 교황이나 사제를 통하지 않고서도 누구라도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자유롭게 직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만인 제사장설의 핵심입니다.
만인 제사장설은 교회안과 밖에서 주인의 자리에 다시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것이고, 우리 모두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은 주인의 자리에서 점점 밀려나 있는 예수님을 다시 우리의 주인으로, 교회의 주인으로 회복시키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배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언제든지 우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늘 감사하고 기뻐함으로 우리 주님과 항상 교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만인제사장의 신분을 회복한 우리가 정말 주의하며 살아갈 것은, 제사장의 신분에 걸 맞는, 구별된 몸과 마음가짐, 거룩한 선택과 책임적인 행동, 그리고 담대히 주님께 나아가는 반복적인 습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솔직하게 잘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이 일어 난지 무려 504년이 지났고, 교황과, 사제, 카톨릭 교회는 우리를 더 이상 방해하지 못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제사장이 아닌 것처럼, 우리 주님을 주인의 자리에 모시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간이 많이 있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다함께 반성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거룩한 제사장임을 잊지 마십시오. 몸을 씻고, 복장을 갖추고, 속죄제물을 드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던 그 제사장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내가 만인제사장의 신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주인되시는 예수님앞에서 항상 거룩함을 유지하시고, 예수님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인의 명령만을 온전히 따르는 순종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두 번 째 이유는,
“성경만이 유일한 진리의 말씀이며, 성경만이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 교회에서는 라틴어로 된 성경만 사용했습니다. 사제들만이 성경을 소유하고, 사제들만이 성경을 낭독하고, 사제들만이 성경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성경자체에 접근하지도 못할뿐더러, 성경을 준다고 하여도 라틴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 내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교지나, 사제의 설교만이 일반 신자들이 성경 말씀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정보였습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하지 못한 카톨릭 교회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진리의 말씀을 다 은폐하고, 돈으로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면죄부를 판매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린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중에 52번째 항목을 보면, “면죄의 증서를 통해서 구원에의 희망을 갖는 것은 헛된 것이다. 비록 판매 위탁자가, 아니, 교황 자신이 그 증서에 대해서 자기 영혼으로 보증한다 하더라도 헛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교황은 인간에 불과 하기 때문에 그가 백번 천 번 서명한 문서가 산더미같이 쌓인다 하여도 그것으로 인해 구원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을 근거로 해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습니다. 이것은 나의 주장도 아니요, 카톨릭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도 아니요,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영원한 진리의 말씀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보다 더 권위 있는 근거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곳저곳에서 설교하면서, “성경을 아는 평신도가 성경을 모르는 교황보다 훨씬 신령합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궁극적 권위입니다. 성경이 다른 모든 것들의 맨 앞에 자리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교회와 성도의 삶의 형태와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충분한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삶의 유일한 법칙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성경을 무시하고, 다른 것들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 여러분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성경 말씀이 교회의 기둥이 되고, 모든 신자들의 삶의 지표가 될 때, 우리의 구원은 반석위에 세워진 집 같이 견고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이 권위를 잃어버리고, 성경 대신에 사람의 말이 앞세워 지고, 세상의 논리와 비 진리에 믿음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면, 우리의 구원은 위태롭게 됩니다.
지금 시대는 성경 말씀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시대입니다. 지난 50년간 성경은 전 세계적으로 약 40억 권 이상 판매 되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는 온, 오프 라인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지고 있습니다. 성경 관련 연구도서와 신앙도서도 수 없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와 아주 가깝고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성경 말씀에 관한 좋은 환경에 있는 우리의 믿음은 루터의 시대보다 더 강력해지고 견고해졌을까요?
2017년 성도들의 성경읽기 정도의 설문 조사를 보면, 매일 읽는다. 20%, 일주일에 1~2번 읽는다. 20%, 1주일에 한번 미만이나 거의 읽지 않는다. 60% 였습니다. 성경을 잘 읽지 못하는 이유들로는, 의지가 약해서 40%, 습관이 안 되어서 30%, 삶이 너무 바빠서 30% 였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신자들이 성경을 가까이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오래되지 않은 젊은 세대나 청년들을 기준으로 하면, 이 통계 수치는 더욱 내려갈 겁니다.
루터의 시대에는 교회법과 조직의 권위에 의해 강압적으로 말씀이 차단되었지만, 이 시대에는 자발적인 연약함에 의하여 말씀을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입니다. 정말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제 2의 종교개혁 운동 같은 강한 충격요법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루터는, 교황과 카톨릭 교회를 공격한 것과, 루터 자신이 지은 책을 파기하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거부하면 파문당하고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황제 앞에 서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는 말씀 안에서 진리를 깨닫고, 복음의 정수를 발견했는데, 내가 어찌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내가 여기 있다.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내가 있다. 나는 다른 일(판단 번복)을 할 수 없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소서!” 죽음과 맞서는 절규의 소리를 내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Here I stand”, 라고 외쳤던 루터의 단호함이 바로 성경 말씀만이 줄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의 외침이었으며, 종교개혁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저도 말씀을 많이 강조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린 적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라는 씨앗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고, 우리는 말씀을 먹고, 마시고, 자라나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장성한 분량의 구원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 없이는 믿음도 없고, 말씀 없이는 성장도 없고, 말씀 없이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말씀만이 나를 예수님 안에서 강건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몇 번에 걸쳐 강조를 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종교개혁의 화두는 100% 성경 말씀에서 추출된 결론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부터 믿음의 확신을 배우고, 말씀으로부터 구원 영생으로 나아가는 진리의 길을 발견하는 일을 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또 다시 종교개혁 이전의 참담한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함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성경만이 진리이고, 성경만이 내 인생의 등불이고, 성경만이 내 구원을 이루어가는 최고의 영양제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말씀 안에서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구원”의 보화를 발견하시고 취하시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세 번째 이유는,
“신자들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안주하게 하여, 더 이상 진정한 회개의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인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로마 카톨릭의 불법과 불의에 항거하는 행위였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신자 개개인의 회개 행위를 촉구하는 신앙각성운동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시작되는 1~4항 까지를 읽어 드립니다.
1. 우리들은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은 고해성사, 즉 사제들이 집행하므로 시행되는 죄의 자복과 사면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3.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 같은 심적 회개가 육체의 여러 가지 정욕을 외적으로 죽이지 못한다면 그런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따라서 참된 심적 참회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네 항목을 한 마디로 말하면, 회개하라, 입으로만 회개 하지 말고, 내적인 감동에 의해 회개를 했으면, 외적인 행위까지 철저하게 죽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다. 이런 뜻입니다. 루터는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나부터 회개하는 운동을 하자라고 선포했습니다. 회개하는 것이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최고의 지름길임을 루터는 호소했던 겁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근본으로 돌아 가자라고 외쳤고, 종교개혁의 5대 정신을 일컬어,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은혜 (Sola Grat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루터와 같이 시대의 흐름(패러다임 쉬프트, Paradigm Shift)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것이 개혁이라고 불려 지지만, 일반 성도들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개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 개혁의 방법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는 거창한 개혁정신을 다 이해하지도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개혁정신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기초적인 신앙의 본질인 “회개”하고,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이것 하나에만 집중하여 성공에 이르면, 사실상 모든 개혁은 다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믿음은 견고해지고, 좌고우면 하지 않고 오직 구원과 영생의 길로만 거침없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면 가족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고, 목회자가 먼저 회개하면 성도들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고, 교회가 먼저 회개하면 사회와 국가가 믿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저부터 더 회개에 힘쓰겠습니다. 모두 동참해 주셔서, 근본으로 돌아가게 되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드리자는 운동이었고, 말씀(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고, 회개에 힘쓰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개혁을 내세워서까지 부르짖어야 하는 것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평소에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들입니다.
종교개혁 504년이 지난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믿음의 각성을 결단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운동의 정신으로 새롭게 무장하고, 다시 회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이 땅의 모든 교회들과 신자들의 절실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들 각자 각자가 새롭게 결단하시고 실행하심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 영생 소망의 길로 당당하게 나아가는 굳건한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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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종교개혁의 정신이 우리 모두에게, 한국교회 위에 충만하게 임하여, 근본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에 힘쓰는 믿음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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