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라 히 4:1-13
모세의 인도함을 받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에,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다 죽고 맙니다.
이 일을 거울삼아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히브리서의 말씀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같은 맥락의 교훈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에 다 들어가도록 힘쓰라는 권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1-2절에 보면 안식에 미치지 못할 자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출애굽한 유대인들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은 유대인들에게 안식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불신하고 거역한 죄로 출애굽 1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예비하신 가나안의 안식을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유대인들에게 가나안의 안식이 약속되어졌지만,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사실을 강조하며,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라고 경고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대한 약속을 져버리고 믿음이 흔들려서 하나님을 거역한 것처럼,
동일하게 약속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으면,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에 대한 복음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므로 구원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권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안식은 무엇입니까?
3-11절에서 말씀해 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가나안 땅의 안식도 안식이려니와 그 안식 말고 다른 안식이 예비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도록 권하고 잇습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부터 이미 안식의 문이 열려 있음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은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쉬신 사실을 말씀해 줍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제 7일에 쉬셨다는 뜻을 하나님께서 피곤하시어 육체적으로 쉬신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제 7일에 쉬셨다는 뜻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창조된 만물을 보시며 즐거워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이란 아무 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즐거워하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7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또다시 시편 95편을 인용합니다.
이를 통해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시편 95편을 지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차지한 지, 이미 500년이 지난 후입니다.
이미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정복이 이루어졌고, 가나안의 안식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안식의 날이 '오늘'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안식말고 다른 안식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8절의 말씀처럼, 만일 여호수아가 준 안식으로 안식이 끝났다면, 그 후의 다른 날을 말씀할 필요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누렸던 안식말고,
예수님이 예비하신 안식이 있음을 말해주고자, 이렇게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안식과
오늘 신약시대에 우리들에게 주신 안식을 비교하면서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속하시기를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언약을 지키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뿐 아니라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언약이 복음이었으며, 이 복음을 듣고 순종하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나안의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우리들도 예수님을 통해 복음이 전달받았으며, 그 복음을 듣고 믿어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구약의 가나안의 안식은 예수님에 의해 주어지는 안식의 모형입니다.
주님께서 주실 영원한 안식을 이해하도록 하나의 예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만약 안식이 여호수아 시대에 끝났다면,
시편에 다시 안식을 얻도록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씀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편은 또 다른 안식, 예수님을 통해 예비된 영원한 안식이 있으니, 그 안식을 얻기 위해 힘쓰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12-13절에 보면, 느닷없이 말씀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12-13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
말씀의 능력을 여러 말로 표현합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우리를 고치고 새롭게 하는 말씀'이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마치 의사가 수술해서 환자를 고치듯,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고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고치는 능력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불순종하는 자들을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경고의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이 임하지만,
거역하는 자들은 화를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육체적 죽음 뿐만 아니라, 영적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감출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불순종의 행위와 죄악들이 하나님 앞에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가 참된 안식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함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불순종으로 가나안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오늘 이 시대에도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고, 순종하기를 거부한다면,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안식에 이르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결론적인 말씀은 11절입니다.
11절,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오늘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불순종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 안식은 마지막 때에 받을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이지만,
오늘 우리가 누려야 할 안식이 있습니다.
이는 죄 사함을 받아 누리는 마음의 평화와, 또 세상 욕심과 미움 시기 질투에서 해방된 자유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가 세상 욕심과 갈등과 미움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평화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까지 말씀에 검에 찔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았고, 활력있는 말씀이 내 속에 역사하여, 이제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일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평화와 자유를 누릴 뿐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 주신 참된 안식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히브리서 강해 / 히 4:1-13|작성자 짱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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