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집이 무너지면 (고후 5:1-10) (입관예배)
이 시간에 “장막집이 무너지면”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장막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왜 장막으로 비유했을까요? 우리 육체는 영혼이 사는 집과 같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영혼이 사는 집이예요. 영혼이 떠나면 죽는 것이고 떠나지 않으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육신을 장막이라 했습니다. 왜 장막이라 했을까요? 이스라엘은 유목민들이기 때문에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짐승의 가죽을 연결해서 장막을 만듭니다. 그런데 장막이 처음에는 새 것이라 좋지만 날이 갈수록 빛이 바래고 줄어들고 찢기고 때가 묻고 보잘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젊을 때는 그렇게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지만 나그네의 세월 조그만 살다 보면 늙고 병들고 볼품이 없게 됩니다. 바람만 불어도 장막집이 무너질 때가옵니다.
그러나 좀 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대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입혀진다는 말입니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4) 하지 않았습니까? 아주 신령한 몸을 입게 됩니다.
그러니까 몸도 두 가지입니다. 신령한 몸이 있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할 영광스러운 몸이 있습니다. 신령한 몸과 부활의 몸은 다릅니다. 신령한 몸은 완전히 영적인 것이지만 부활의 몸은 육신입니다. 육체가 죽지 않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합니다. 바울은 성도가 육신을 떠나면 신령한 몸을 입는다고 말씀합니다. 성도에게는 죽음이 결코 죽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치 성도의 죽음은 다시 태어나는 나방과 같습니다. 벌레가 자라서 죽고 그 벌레의 몸에서 나방이 나옵니다. 벌레와 나방은 아주 다릅니다. 벌레는 날지 못하지만 나방은 날고, 벌레는 풀을 먹지만 나방은 꿀을 먹고, 벌레는 흉측하지만 나방은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날 때 그 영혼은 참으로 행복하고 자유롭고 기쁨이 있고 아름답고 완전한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유로운 몸입니다.
마음만 가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무엇이든지 알 수 있고 찾을 수 있고 걸어갈 수도 훨훨 날아갈 수도 광속도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을 구속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엄청난 신비가 성도에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몸은 영혼이 잠시 거하는 육체의 장막집입니다. 우리의 앞날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소망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장막집을 벗는 날 우리는 예수님 그리고 앞서 가신 성도들 그리고 우리 권사님을 다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 사실 깊이 기억하시고 가족들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아오는 시간이 되시고 모두들 신앙생활 잘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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