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여호수아

가정을 복되게 하는 선택 수24장14-18

nam씨 2020. 5. 15. 19:52



가정을 복되게 하는 선택 수2414-18, 10:1-8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는 대기업을 일구어 성공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고향에 조그마한 집 한 채를 지었습니다. 아주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집을 본 동네 사람들이 너무 초라합니다.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 라며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포드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입니다.”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 기념관에 가면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의 성공의 비결은 꿈꾸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이 함께 이룬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부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진 성도의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기도는 능력의 통로입니다. 사람은 약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경건하게 기도하는 가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가정을 복되게 하는 선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가정을 복되게 하는 선택은,

 

 

1.하나님만을 경외하기로 하는 선택입니다.

 

구약 본문 수24:14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를 경외 한다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포로서의 두려움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나약함과 허물을 지닌 죄 성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영적 두려움을 느껴야 마땅한데, 그것이 바로 경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깊을수록,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경외심은 높아집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과의 차이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 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체험한 후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될수록 자신이 죄인 중 괴수임을 고백하였고, 그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지는 당연한 감정이며 복된 길입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 고넬료는 로마 총독부 소속으로 로마군의 중심 세력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본문 행10:2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그의 경건한 신앙의 모습을 보면,

 

*먼저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절에 그가 경건하여했습니다. 고넬료라는 이름의 뜻은 경건입니다. 그는 그의 이름대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경건했다는 것은 진실하고 겸손하며 덕망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뜻합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와 윗사람은 물론 가난한 자들을 돕고 잘 섬기는 사람이었으며 많은 사람 앞에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에게는 그들의 위대한 문화와 막강한 정치적 배경에 대한 우월감이 강했습니다. 더욱이 백부장으로서 식민지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그 특권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포기하고 가장 겸손하게 봉사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경건하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삼가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고(33:8) 하나님에게 자신의 몸을 바치어 공경하고 봉사했다는 말입니다. 그의 경건한 삶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고, 사람에게 영적으로 유익을 끼치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본문 2절에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 치하에서 그들의 착취와 학정에 시달림과 고난을 당했는데, 로마의 군인인 고넬료가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는 일은 실로 놀랍고 귀한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삶이 하나님의 기억하신바 된 은총 중에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성도들의 할 일 중에 전도 다음에 중대한 일은 구제입니다. 내적인 경건한 신앙이 외적으로 전도와 구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나를 쫓으라 하시니”(19:21)라고 하셨습니다. 1: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했습니다. 고넬료는 신앙과 구제에 탁월했을 뿐 아니라 항상 기도를 하는 종이었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일은 하나님이 고넬료를 기억하시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입니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자기 직분의 일을 감당 하면서 하루에 세 차례 기도하는 유대인들의 규례에 따라 기도하던 중 천사의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구제를 더하고, 구제에 열심히 기도를 한 그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행10:4-5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여호수아와 고넬료처럼 하나님만을 경외하기로 선택하는 가정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온 가족이 함께 하는 선택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었던 지도자 여호수아는 굳건한 신앙으로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 백십 세가 되어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수령들을 세겜에 불러 모으고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유명한 고별사를 하였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가족 공동체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여 부부를 중심으로 가정을 이루게 되고 거기서 나는 자녀들과 더불어 형성된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개성이 다르고 가치관에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서로 신뢰하는 믿음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화목을 이룰 때 복 된 가정이 됩니다. 133:1-3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서 혈연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이라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는 없습니다(21:19) 세상에는 부부간에나 부모, 자식 또는 형제간에 서로 반목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틈이 생기고 깨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족장시대부터 가정은 신앙 공동체의 기본적인 단위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자자손손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의 규범을 지켰습니다. 아브라함이 평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가 이삭을 결혼시킬 때도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서 자부 감을 선택하였습니다(24:3-4). 이삭도 그의 아들 야곱에게 가나안 사람의 딸들을 택하지 말고 네 외삼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28:1-2).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것으로 예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13:18).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은 개인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가족은 모두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러한 신앙을 본받아 온 가족이 하나님만을 경외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는 본문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만 경건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경건한 삶을 살도록 힘썼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가족들의 신앙이 철저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입니다.

 

신약시대의 교회는 주로 가정에서 가족들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하고 묻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16:30-31). 복음을 받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되고, 그 사람을 통하여 온 가족도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26:18, 1:13). 바울이 복음을 전한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지역에서도 처음 시작된 교회는 대부분 가정에서 가족 중심의 교회였습니다(4:15, 고전 16:19). 그중에도 바울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빌레몬과 압비야와 아킵보 가족은 가정교회의 표본입니다(1:1-2).

 

근간 우리 사회의 현실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경찰 대학을 나온 경찰 간부가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일전에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어머니는 보험금을 타내려 입양한 딸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13세 중학생은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말하자 잔소리가 듣기 싫어 아파트에 불을 질러 가족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심각한 가정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돈을 두려워하고 권력도 두려워하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가정의 목표를 돈과 자녀 출세에 있다고 말하며 살아가지만 가정들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한 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이혼율, 자살률, 흡연율, 낙태율, 해외 입양 율 세계 1위입니다. 가정의 질서는 깨어지고, 아버지 권위는 추락하고, 청소년 탈선, 성적 타락과 가정폭력, 동성애 자들의 증가, 미혼모의 급증과 노인문제 등으로 가정은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수아와 고넬료의 가정처럼 온 가족이 함께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과 사람들의 인정받는 진실한 신앙의 선택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생애를 통해 한 번도 곁길로 나가지 않은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을 범했다거나 불신의 그릇된 곁길로 빠진 적이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위기 앞에서 여러 번 흔들렸고, 다윗도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위기에 봉착했고, 징계의 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그의 흠이나, 그의 범죄나 흔들림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여호수아는 일관성 있게 한 생애를 신앙과 충성으로 산 사람입니다.

 

모세가 보냈던 12명의 가나안 정탐꾼 중 하나였던 그가 그 중 다수 10명이 부정적인 불신의 보고를 하여 백성들이 크게 낙심하여 폭도로 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여호수아는 갈렙과 함께 불신앙의 열 명과는 달리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 말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느니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때려죽이려 했습니다. 믿음의 소수 의견을 신실하게 관철하려던 여호수아가 좌절을 겪어야 했던 당시 사회의 현실이었습니다.

 

그가 모세와 함께 위기를 만났지만 하나님의 개입과 도우심으로 대적하는 무리들이 심판을 받게 되었고, 불순종한 그들은 광야에서 스스로 선택한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잠시 큰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켜 하나님의 길을 택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애초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들과 그 후손이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를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안수하여 세우십니다.(27:18-23) 그 때부터 더욱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두려워 할 때 하나님은 내가 모세와 함께 한 것처럼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두려워 말라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을 뿐 아니라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실제로 다 그를 따랐습니다. 다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의 힘든 일을 해냈습니다.

 

신약 본문 4절에 네 기도와 구제함이 하늘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하였습니다. 고넬료가 가진 경건은 자신에 대한 미덕이요, 그가 행한 구제는 사람에 대한 동정이요, 그가 시간을 내어 한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넬료는 위로 하나님께 대하여 아래로 사람들에 대하여 흠이 없는 양심을 가진 깨끗한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구제라 하여 반드시 귀하고, 기도라 하여 반드시 귀한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명예를 위하여 거리에서 나팔 부는 구제는 이미 사람 앞에서 받아야 할 상을 다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인정 하시는 귀한 구제가 될 수 없고,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거리에서 자랑하는 기도는 상달은 고사하고 위선이 가득한 가증스러운 기도 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구제를 가장 잘하는 민족은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가정마다 구제 헌금 통을 만들어 놓습니다. 유대인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구제(쩨다카)에 참여 하여야 합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수입의 십분의 일을 구제에 쓰는 것이 보통 수준입니다. 이십분의 일이나 그 이하를 구제에 쓰는 사람은 인색한 사람입니다. 구제 대상의 우선순위는 가족입니다. 그리고 친족, 이웃사람 순으로 나아갑니다.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구제를 가르칩니다.

 

구제할 때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구제는 명예가 아니라 섬김이요,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구제할 때 불이익도 따르고 비난도 따를 수 있지만 결코 구제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 추하게 보이는 것은 구제에 인색한 사람입니다. 탈무드에 물질을 다스리라. 그러면 그 물질은 너에게 참으로 유익한 충복이 되리라. 그렇지 못하면 물질은 너에게 폭군이 되어 너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John Wesley)예수께서 우리의 돈주머니를 다스리기까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되기 원한다면 물질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향하여 구제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여호수아와 고넬료처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진실한 신앙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가정을 복되게 하는 선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가정을 복되게 하는 선택은,

 

.하나님만을 경외하기로 하는 선택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선택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의 인정받는 진실한 신앙의 선택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