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신명기 2장1-37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회상

nam씨 2015. 3. 14. 12:36

 

말씀 신명기 2:1-37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회상

 

1장에서는 38년전 최초 가나안 진군 명령이 주어질 당시에 일어났던 두 사건을 회고하였고, 이어서 2장에서는 반역과 불순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 때문에 이스라엘이 광야를 유리했던 38년간의 기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출애굽 제 40년 가데스에서 진군하여 모압 평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만 회고하고 있다. 2장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1-23절은 정복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접전(接戰)을 피한 종족들, 즉 에돔(1-8), 모압(9-15), 암몬(16-23)과 거기에 얽힌 사연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24-37절은 하나님의 정복 명령에 의해 행한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 땅의 정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2장은 가데스에서 모압 평지에 이르는 동안에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욕심에 따라 마구잡이로 적국을 침범하며 정복 전쟁을 벌인 것이 아니라 오직 근신과 순종함으로 여호와께서 허락하시는 전쟁만을 치루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의 욕심이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하시는 일만 행해야 함을 교훈한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절대자로 일의 시종을 아시는 분이며, 또한 우리가 참으로 누리기 원하는 하나님의 큰 복은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평안, 명예, 천국의 복락 등이 다 그러하지 않은가?

 

  또한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사실은 출애굽 제 1세대와 2세대가 동일하게 가데스에서 가나안 진군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가나안 진군 명령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상반된 태도 때문에 그 결과로서 엄청난 차이가 생겨났다. , 1세대는 가나안을 향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약 38년 동안을 세일 산 주변에서 맴돌며(1) 온갖 시련과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다 진멸되고 말았다. 그러나 제 2세대는 가데스에서 모압 평지까지 약 10개월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작정하신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을 멸하는 대성과를 올렸다.

      

이처럼, 여호와께 불순종했던 자들은 아무런 역사도 이루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결국에는 광야에서 전멸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나, 여호와께 순종했던 자들은 단기간에 놀라운 역사를 성취할 수 있었다. 이것이 주는 구속사적 의의는 실로 크다. 하나님은 오직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당신의 구속사의 은혜를 주시기 원하신다. 따라서 인간들이 하나님에 불순종할 경우에 하나님은 그들을 순종적인 사람들로 바꾸시든지, 또는 그들이 끝내 불순종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을 찾으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때 이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구속사가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것이 아니지만, 인간의 편에서 볼 때는 매우 지연되는 것이며 나아가 그 구속사의 결과 주어질 은혜에 동참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실하게 그 뜻을 준행할 때 구속사는 속히 완성될 것이며 성도들은 더욱 빨리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에돔에 관한 명령(1-8)

 

 

 

 

 

 

가데스 바네아 반역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길로 들어가서 세일 산 근처 에돔 산악 지대에서 약 38년 동안 방황하는 생활을 하였다(1-3).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가나안을 향해 진군할 것을 명령받았는데 이때 하나님은 에돔 족속을 공격하지 말고 평화하라고 말씀하셨다(4-8). 그것은 에돔 족속이 에서의 후손으로서 에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야곱과는 형제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에서에게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이었다(25:23, 36:6-43).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이르기에 가장 적합하고 빠른 길인 에돔 땅을 우회하여 홍해의 아카바 만에 위치한 엘랏과 에시온 게벨을 거쳐 모압 평지에 이르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는데 하나님은 이방인까지도 당신의 구속 사역에 포함 시키고 계시다는 점.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우리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점. 성도들은 불의와 악행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근절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웃과 형제들에게 긍휼을 베풀기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7절에 보면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40여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단편적으로 잘 보여 준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은 오늘날 험난한 이 세상을 순례하는 당신의 백성들의 앞길도 친히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보호해 주시고 부족한 것이 없도록 채워 주신다(23:1-4; 48:17).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온전히 순종함으로 기쁨을 누림은 물론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구원의 축복도 누려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은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어떻게 훈련하셨습니까(1,2)? 하나님은 이들에게 어떤 새로운 방향을 주셨습니까(3)?

 

 

2. 하나님께서 에서 족속에 대해서 어떤 명령을 하셨습니까(4-5)? 왜 그런 명령을 하셨습니까(5)?

 

 

*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4) - 에돔 족속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정복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하지 않게끔 조심스레 행동하라는 뜻이다.

 

* 그들과 다투지 말라(5). - 원어는 소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행위 뿐만 아니라 그 싸움을 부채질 하는 행위까지 포함하고 있다.

 

* 6, 돈으로 물을 사서(단순히 물을 산다는 의미 보다 스스로 물을 공급받기 위해 남의 땅에 우물을 팔 수 있도록 허가권을 받는데 돈을 지불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것은 에돔 족속과의 분쟁을 막기 위한 근본적 방법이었다. 사실 고대 근동 사회에서의 분쟁은 부족이나 국가의 주요 재산인 '양식'''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양식과 물에 대한 정당한 구매행위의 촉구는 다툼을 없애는 방법이며 동시에 남의 재산에 대한 인정을 내포하고 있다. 폭력에 의한 남의 재산을 탈취하는 불한당의 하나님이 아니라 남의 것을 인정하는 공의의 하나님임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정당한 구매행위 촉구의 또 다른 면은 에돔에 대한 약속을(36)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보여주므로 선민이 아닐지라도 한 번 맺은 약속은 언제나 이행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임을 드러낸다.

 

* 7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에돔 족속으로부터 양식과 물을 사서 먹을 수 있는 까닭을 말해준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38년 동안의 광야 생활 동안 결코 물질의 궁핍이 없었다(8:4). 그들의 광야 생활 중에 가축의 수가 늘어났고(32:1) 오래 거한 곳에서 땅을 경작하고 가까운 사막의 족속들과 교역함으로써 재산을 늘렸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보호하심을 보여 주는 단적 증거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로 당신의 자녀를 환난 가운데 두시지만 그 환난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여건들, 혹은 능력을 허락하시는 것이다(4:13).

 

 

롯의 자손에 관한 명령(9-23)

 

 

에돔 족속과 싸우지 말라는 명령에 이어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자손들과도 교전(交戰)하지 말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명령이다. 본문은 크게, 롯의 큰 딸이 롯에게 낳은 모압의 후손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9-15)과 롯의 작은 딸이 낳은 암몬의 후손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16-23)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모압과 암몬 족속을 공격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들이 에돔 족속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는 형제 민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아낙 자손과 같이 강대했던 르바임 족속을 멸망시키고 가나안 동편에서 거주했다(10-12 , 20-22).

 

 

한편 롯의 자손에 대한 이러한 공격 금지 명령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이 형제 민족이라는 데 주안점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명령을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롯의 자손 중 모압 족속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 훗날 모압 족속의 여인 중 룻은 흉년을 피해 모압 땅에 이주한 유다 사람 나오미의 며느리가 되었고, 나중에 보아스와 재혼하여 다윗의 증조모가 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랐던 것이다(1:5-17).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며, 또한 너무나 오모하다.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벌써 몇 백년 이후의 일어날 일까지도 작정하시고 예견하시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3. 하나님께서 모압 족속에 대해서 어떤 명령을 하셨습니까(9)? 왜 그런 명령을 하셨습니까(9)?

 

 

*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이러한 조치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여기의 ''은 비록 육적이었지만, 극도로 타락한 형태의 음행과 악행에 심령을 상할만큼 신앙의 양심을 소유했었고(벧후 2:6-8),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의 은총을 입었던(19:15-23) 사람이었다.

 

* '아르''도시'의 뜻을 지닌 성읍 이름으로 모압과 암몬의 경계선인 아르논강 남쪽 유역에 위치해 있는데 모압 전체를 대표하여 지칭되고 있는 것을 보면 모압의 수도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4.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에 대해서 어떤 명령을 하셨습니까(18,19)? 왜 그런 명령을 하셨습니까(19)?

 

 

5. 가데스 바네바에서 세렛 시내까지 몇년이 걸렸습니까(13,14)?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왜 다 멸절하게 되었습니까(14b,15; 1:35)?

 

 

6. 5번 문제의 사실과 10-12, 20-23절의 괄호 쳐진 부분과 어떤 대조를 이루는 것 같습니까?

 

 

* 10절부터 12절까지에는 에돔과 모압 족속이 어떻게 현재의 그 땅에 살게 되었는지를 말해준다. 에밈(엠의 복수형) 사람. '''두려운' 혹은 '무서운'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이름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키가 크고 힘이 세어 강성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11절은 그들이 고대 근동 사회에서 '아낙 족속'과 함께 '거인'을 뜻하는 '르바임 족속'으로 분류되었음을 말한다. 이것은, '엠 사람''아낙 족속'과 거와 비슷한 인종적 특성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렇듯 '르바임', '', '아낙 자손' 등은 큰 거인을 일컫는 용어들이다. 12절의 호리 사람 - '동굴'을 뜻하는 '호리'라는 이 종족의 이름은 이들이 에돔에 있는 세일 산에 많이 있는 주거하기에 적합한 동굴 속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 것인데 후에 에서 족속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이 행한 것과 같았느니라'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써 다른 종족을 축출하고 그 땅을 차지하여 산다는 점에서, 에돔 족속과 이스라엘은 동일하다는 뜻이다. 물론 이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나안 땅 정복은 필연적 성취를 보장하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그 땅은 이미 정복된 것과 다름없었다.

 

 

20-22절은 암몬 족속이 어떻게 현재의 땅에서 살게 되었는지를 말해준다. '삼숨밈''콧노래 부르다' 혹은 '웅성거리다'를 뜻하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이러한 단어의 뜻은 그 종족의 성격이 요란스러울 것임을 어느 정도 추측케 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일을 이루어 나감을 보여주고 있다.

 

 

23절의 '갑돌'은 블레셋인들이 가나안으로 옮겨 오기 전에 거하던 지중해에 있는 크레테(Crete) 섬을 가리킨다(27:7). 갑돌 사람들은 헬라 본토인들의 침공으로 크레테 섬을 떠나 애굽을 거쳐 팔레스틴의 남서부 해안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온 블레셋 민족을 뜻한다. 그들의 후기 명칭은 '이주자'를 뜻하는 '블레셋'인데, 이 종족명이 아브라함과의 관계 속에서 사용되고 있다(21:32-34). 이에 의거해 볼 때 결국, 그 종족의 가나안 정착은 기원전 2000년경에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아위 사람'이 완전히 멸절되지는 않았고 여호수아에 의한 가나안 정복기에 블레셋 사람들 틈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었다(13:3). 여기서도 블레셋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있었던 데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있었기 때문임을 밝힌다. 이러한 언급의 반복(12, 22)을 통하여,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족속에 대한 정복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공할 수밖에 없음을 주지시켜 또 다른 불순종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고 확신을 갖게 하려 했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리라'(1:8) 하신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얻기만 하면 되었는데도 얻지를 못했는데 모압 족속들은 마치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도 얻듯이 아낙 자손처럼 강하고 많고 키가 큰 엠 자손들을 거뜬히 물리치고 그 땅에 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말 다음에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14)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시혼과의 전쟁(24-37)

 

 

지금까지 회고한 것은 이스라엘이 더불어 싸우지 말아야하는 민족들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더불어 싸우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명령에 관하여 회고하고 있다. , 일전에 모세가 헤스본 왕 시혼에 대해 받은 명령을 회고한 것이다(21:21-32). 이것은 시혼을 공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24,25). 시혼에 대한 모세의 요청(26-29), 헤스본 왕 시혼의 강퍅함(30), 시혼과의 전쟁에서의 승리(31-37)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시혼의 왕국은 요단 동편에 있었기 때문에 본래 이스라엘이 정복하려 했던 가나안 땅과는 무관했고, 또한 이스라엘의 주요 공격 대상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처럼 이스라엘의 제 1차 공격 목표가 된 것은 그들에게 내재된 죄악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단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시혼과 그 왕국을 심판하였을 뿐이다. 물론 시혼이 멸망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토 통과를 거부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진 까닭이었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완악해진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도록 역사하셨던 것이다. 사실 시혼이 속한 아모리 족속은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멸망당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15:21). 그런즉 하나님은 400년 동안 유보해 오신 그들에 대한 심판을 이제야 단행하신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귀중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는데 사악한 자들은 그들의 행동이 매우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자기의 뜻대로 완고하게 행하는 자의 결국은 멸망이라는 것이다(1:28).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마침내 무서운 징벌이 닥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신 뜻과 섭리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온 우주의 절대적 통치자이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와 긍휼에서 제외된 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오직 철저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뿐이라는 것이다.

 

 

7. 하나님께서 헤스본에 대해서 어떤 명령을 하셨습니까(24,25)?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멸하시려고 어떻게 하셨습니까(26-35)?

 

 

* 24절의 '일어나'()는 문자적인 '기립'이 아니라, 어떠한 중대한 행위에 앞선 단호한 마음의 결단을 의미한다. 지금 나에게도 이것이 필요하지 않는가?

 

* '헤스본 왕'이라는 말은 아모리 족속은 여러 부족의 연맹체로 여러 명의 부족 왕들이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그 중의 하나가 '시혼'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왕의 원어는 '멜렉'인데 왕을 뜻하긴 하나 전제군주 정치체제하의 왕이 아니라 부족연맹체의 우두머리나 족장을 의미한다.

 

* '싸워서 그 땅을 얻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저절로 성취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다만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힘입어, 그것의 성취를 위해 노력할 때만 가능하다.

 

* 30절의 완강하게 완고하게 하셨다는 표현은 겉으로 드러난 의미만을 볼 때 이러한 결과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원인이 있는 듯이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헤스본 왕이 이러한 마음을 품도록 그냥 방치하셨음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재귀형으로 스스로, 자신이 완강해지고 완고해진다는 뜻을 지닌다. 시혼 자기 스스로가 완강해지고 완고해진 것을 하나님께서 방치해 두셨다는 뜻이 더욱 선명해진다. ,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해서 하나님께서 간섭을 하지 않으실 경우 필연적으로 그 마음은 스스로 '완강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헤스본 왕은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으로 말미암아 진멸 당하는 것이다.

 

 

8. 이스라엘이 취한 곳과 취하지 못한 곳이 어디입니까(36,37)? 왜 모든 곳을 취할 수 없었습니까(37b)?

신명기 21-37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회상

1.에돔에 관한 명령(1-8)

1). 하나님은 불순종한 이스라엘(1,2) 하나님은 새로운 방향을 주셨습니다(3)

 

 

2). 하나님께서 에서 족속에 대한 명령(4-5)

 

2.에돔 족속과 싸우지 말라

1) 하나님께서 모압 족속에 대한 명령(9)

 

2)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에 대한 명령(18,19)

 

3) 가데스 바네바에서 세렛 시내까지 (13,14)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다 멸절하게 됨(14b,15; 1:35)

 

3.시혼과의 전쟁(24-37)

 

1) 하나님께서 헤스본에 대한 명령(24,25)

 

2) 이스라엘이 취한 곳과 취하지 못한 곳(3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