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 안에 있는 자들 렘31:31-34, 엡2:11-22
어떤 사람이 기나긴 사막 길을 걷다가 양식이 떨어져 배고파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탈진하여 금방 쓰러질 것 같았는데 눈앞을 보니 큰 자루 하나가 놓여 져 있었습니다. 그는 혹시 거기에 먹을 것이 있나 하고 뒤져보았는데 그 안에는 진주와 값진 보석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찾고 있는 것은 허기진 배를 채워줄 양식이었지 진주나 보석이 아니었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서 그 진주와 보석은 굶주려 죽어가는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 인간이 처한 영적인 현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 인생들이 사는 동안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보석도, 쾌락도 아닙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암 8:11에서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40일을 주리신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리라”하시며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외면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 것들을 탐 하다가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너무나 안타까워하십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두 본문을 중심으로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새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담긴 언약입니다.
구약 본문 렘31:31-32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되고, 은총을 받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73:28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 살려고만 합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불행에 처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출애굽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고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계명을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그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32절)고 탄식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내로 맞이하여 온갖 사랑을 다 베풀기를 원하셨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으니 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이것은 마치 결혼한 여인이 남편을 배반하고 정부와 바람을 피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 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고, 세상 연락을 더 사랑하고, 명에 권세를 더 사랑하고, 사람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아나돗이라는 지역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스무 살 쯤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흔히들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가 유난히 많이 울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이 울었습니까? 남달리 눈물이 많아서 그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죄로 인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더욱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나라가 망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렘 25:3에 보면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십삼 년 동안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미가와 나훔과 하박국과 스바냐와 같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 렘25:5-6에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 너희는 다른 신을 따라다니며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상 숭배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연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의해서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징계에 관한 예언의 말씀 속에서 놀랍게도 우리는 희망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칠십 년간 바벨론 왕을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후 친히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31절에서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범죄 한 백성이지만 포로 생활의 고달픔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 새 언약을 약속하십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와 고통을 불러오지만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용서와 평안과 새로운 소망으로 넘치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 속에 사는 길이 있고, 참된 복이 있음을 믿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영원히 변치 않는 언약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 12:24에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했고, 히 9:15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은 눅 22:20에서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세우신 새 언약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구약 본문 렘 31:34에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했습니다. 우리가 새 언약 안에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안에서 우리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으시고 회개할 때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경외하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게 되고,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새 언약 안에 사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마치 돌아온 탕자의 마음과 같을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다 염치 불구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살아 돌아온 것만을 기뻐하며 반겨 주시고 잔치까지 베풀어 주시는 그 사랑을 받게 되었을 때 어찌 다시 아버지의 사랑을 잊거나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감사였을 것입니다. 전에는 철이 없어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으나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좋은 조건 속에 살았지만 좋은 줄 모르고 불평하며 살았지만 매사가 분에 넘치는 감사로 다가 왔습니다. 자격이 없어 품꾼 중에 하나로 여겨줘도 감지덕지 할 일인데 소중한 아들로 대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다시 아버지를 떠날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 온 탕자가 누구일까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나 같이 못나고, 더럽고, 추한 죄인을 위해 생명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믿는 내가 바로 돌아온 탕자가 아닐까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은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서로 간에 막힘 담을 자기의 육체로 허셨습니다. 십자가 앞에 설 때 인간의 교만이 무너집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 1903년 여름 원산에서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선교사들이 여름 수련회로 모였습니다. 수련회를 인도하는 한 선교사가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도한다면서 나는 너무 교만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무시하였습니다. 말만 앞서고 생활에 도무지 변화가 없는 조선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복음의 문, 전도의 문, 생명의 문을 가로막은 죄를 회개합니다. 하디 영 목사님의 회개가 선교사들의 가슴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선교사수련회에서 시작된 회개가 그 주일 강단에서 쏟아졌습니다.
이 교만의 죄를 회개하는 가운데 서로의 가슴에 가로막고 있었던 장벽들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곳마다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회개의 역사가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교회에 대 부흥의 역사가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새 언약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주는 확실한 보증의 언약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피의 언약은 확실한 보증의 언약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능력이 됩니다. 먼저, 십자가는 새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신약 본문 엡2:11-15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모든 죄 값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고 돌아가시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라 이제는 의인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1절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절에 보면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새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6절에 보면 영생할 존재로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멘.
다음에 십자가는 하늘 새 가족으로 변화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엡2:16-19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에게만 선민의 자격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들에게만 하나님의 가족으로 인정하는 할례를 주셨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예수 믿는 이방인에게까지도 구원을 주시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시기로 작정하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안에서 선민과 이방인이 따로 없고 모두가 다 동일한 천국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롬8:15)(롬1:7)(고전1:3)
그리고 십자가는 새 성전으로 변화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엡2:20-22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 완성되어져 가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먼저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이 사시는 영적 성전이 되었습니다.(고전3:16)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공동체인 교회가 영적 성전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후에 영원한 하늘 성전인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천국은 또한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은총을 주시려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세상 죄를 지고 십자를 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 한 사실을 알고 믿게 하시기 위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고 언약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높여 주시고,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게 하십니다.
하이램(Hiram)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를 양육하는 것이 귀찮아서 어린 나이에 강제로 육군 사관학교에 보내버렸습니다.
153㎝밖에 되지 않았던 그는 그곳에서 늘 키가 작다고 난쟁이로 놀림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이곳을 졸업한 그는 신체적 왜소함 때문에 장교로도 임관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육체적 결함을 비관하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조용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는 많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북전쟁이 터져 장교가 더 필요하게 되자 그는 북군 장교로 싸우게 됐습니다. 비록 상관이나 부하들로부터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북군을 승리로 이끌어 링컨 대통령의 신임을 받게 되었고, 마침내 그의 성실한 삶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얻어 미국 최초의 육군대장이 됐으며 미국의 제18대 대통령에도 당선됐습니다. 그가 바로 율리시스 그란트 대통령입니다.잠언에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버려도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함께 하십니다.
우리 모두 새 언약을 주시고 예수님 안에서 영생 얻는 후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 영원한 하늘 후사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두 본문을 중심으로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담긴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영원히 변치 않는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주는 확실한 보증의 언약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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