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존귀한 그리스도인 계3장14-22

nam씨 2017. 10. 19. 22:36


존귀한 그리스도인 창18:1-15, 314-22

 

우리가 믿음생활 하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존귀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성경을 아는 지식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귀한 직분을 가졌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신앙의 연조가 깊어진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깊은 믿음과 믿음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선행행실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을 달이나 궤도를 향해 쏘아 올린 인공위성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인공위성이 무사히 궤도나 달에 안착하는 것 같이 우리의 믿음생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까지 안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때 로켓의 본체가 있고 이 로켓을 추진시키는 보조 로켓이 있습니다. 일전에 무궁화호를 발사 할 때도 로켓의 본체와 6개의 보조 로켓이 한데 붙어서 같이 올라갔습니다. 6개의 보조 로켓은 로켓의 본체가 궤도에 진입하기 전까지 밀어주는 추진 로켓입니다. 이 보조 로켓은 연료를 다 쓰고 난 다음에는 자동적으로 본체에서 떨어지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한 개의 보조 로켓이 분리되지 않아서 그 중량 때문에 본체 로켓이 계획된 궤도에 들어가지 못해서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본체 로켓과 같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물질과 지위와 가정과 모든 것은 보조로켓입니다. 신앙이라는 로켓이 잘 나갈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이 우리의 모든 삶입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보조로켓은 모두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본 로켓인 우리의 신앙만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보조로켓인 건강과 물질과 지위와 가정이 주가 되어서 떨어지지 아니하면 본 로켓은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신약 본문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준 물질이 하나님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믿음이 식어졌습니다. 물질에 빠져서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히 식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일수도 있습니다. 물질, 명예, 세상 연락 등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어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데 실패하게 합니다. 이런 신앙은 존귀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존귀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존귀한 그리스도인은 영적 분별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사람도 있고, 대적하여 물리쳐야 할 자도 있습니다. 1: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대적해야 될 사단의 미혹에 빠져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하고 전 인류에 죄를 오염시키고, 고난을 자초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잘 하다가도 시험에 빠져 넘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 시험은 오늘 나에게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요한일서 4:1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했습니다. 만일 분별력을 가지지 못하고 믿고 영접한다면 사단은 내 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고 자기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고, 이단에 빠지게 되기도 하고, 마귀의 수하가 되어 가롯 유다처럼 불의의 도구로 쓰임을 받다가 멸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성도가 받는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입니다. 이는 믿음의 시련이며, 우리의 순종 여부를 알아보는 테스트이며, 우리의 신앙 성장과 연단이 그 목적입니다. 또 하나는 마귀가 주는 시험입니다. 이는 유혹”, “미혹으로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즉 사단의 시험은 범죄 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성도가 이 시험을 받을 때 즉시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기도 하시다가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신명기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마귀가 주는 시험(유혹)은 죄를 짓게 합니다. 어떤 달콤한 방법을 써서라도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존귀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시험을 주는 마귀(사단)를 믿음으로 무장하여 이겨야 합니다. 대적하고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더욱 복되고 즐거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멀리할 자들을 멀리하며, 대적할 자를 대적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존귀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존귀한 그리스도인은 최선을 다해 영접하고 대접하는 자가 됩니다.

 

우리가 존귀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영접할 자를 최선을 다해 영접하고 대접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 창18:2-4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언약 백성으로 나그네의 모습으로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 중에 가장 뜨거운 오정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영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했으며(18:2), 몸을 땅에 굽혀 겸손한 자세로 쉬어 가시기를 요청했습니다. 물을 가져와 발을 씻게 하고, 그늘에서 쉬게 한 후 급히 떡을 만들고,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요리하게 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이 같은 아브라함의 행위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이 나그네가 변장을 하고 찾아오신 하나님과 천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획적으로 한 일이 아니라 부지중에 나그네를 대접한 일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3:2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했습니다.

 

신약 본문 계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을 주신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주님을 문밖에 쫓아 낸 모습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영접하여 나의 주인이 되게 하고, 교회의 주인이 되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문 밖에 쫓아내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었고, 신자들이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영접 하지도 않고, 자기들이 주인노릇을 하여 주님은 문 밖에 세워두고 자신들의 만족을 추구하며 산, 주객이 전도 된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비극적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입니다. 눈이 멀고, 미지근하고, 가련하고 곤고한 발가벗은 수치스런 모습입니다.

 

주인의 자리를 차지한 라오디게아교회의 신자들을 향해서 주님이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면서 문을 열어 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일입니다. 이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에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오늘 나와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은 아닙니까?

 

190716일 저녁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설교하시던 길선주 목사는 문을 열어 달라고 호소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바로 장대현 교회에 모인 2천여 명의 신자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날 저녁 길선주 목사의 설교 제목은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이었습니다. 귀빈이 오셔서 문밖에서 서서 문을 열어 달라고 호소하는 일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인이 아니면서도 주인처럼 집안에 들어앉아서 귀빈이 와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데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것은 참으로 괴이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괴이한 주인이 바로 장대현 교회에 들어 앉아 있는 길선주 목사와 신자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 성령이 오셔서 장대현 교회와 그리고 신자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아직도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즉 회개하고 마음을 깨트리기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계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아직도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설교 도중에 여기, 저기서 통회의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교회당은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임재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로부터 장대현 교회의 교회당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신자들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었습니다. 이 날이 한국교회의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한국교회 안에 들어와 계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교회는 주님을 문밖으로 쫓아 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고 최선을 다해 대접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존귀한 그리스도인은 귀한 사귐과 열심을 품고 주님과 이웃을 섬깁니다.

 

3:20 하에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먹는다는 말이 헬라어로 명사형으로 데이프논(deipnon)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헬라인들은 하루에 세끼를 먹는데 보통 아침식사는 간단히 마른 떡() 한 조각을 포도주에 찍어서 먹습니다. 점심은 아리스톤이라고 하는데 도로변이나 가로수, 또는 광장이나 일하는 현장에서 먹습니다. 저녁식사는 여기서 말하는 데이프논인데 풍성합니다. 온 가족이 집에 함께 모여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초대한 손님과 격의 없이 친교를 나누며 식사를 합니다. 이 시간은 가장 즐거운 친교와 애정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더불어 먹겠다는 말씀은 저녁식사 초대에 응하겠다는 말로써 주님께서 격의 없이 우리와 친교를 나누겠다는 것입니다. 함께 먹는 것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주님과 함께 먹는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솔로몬 왕 주변에는 왕의 사랑을 받으며 늘 왕과 함께 하는 술람미 여인이 있는가 하면 공적인 행사 때만 솔로몬 왕의 얼굴을 보는 비빈들이 있었고, 먼발치에서 절기 때만 솔로몬 왕의 얼굴을 바라보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있고, 아예 보지도 못하고 왕에 대한 소문만 듣는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랑 되신 예수님과 교제를 나눌 때 술람미 여인처럼 주님과 항상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성도가 있고, 행사 때만 얼굴을 보는 비빈과 같은 성도, 멀찍이 떨어져 먼발치에서 주님을 뵙고 따르는 예루살렘 여인과 같은 성도들이 있고,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는 성도들이 있는데,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과 사귐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제부터라도 날마다 주님의 얼굴을 뵙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술람미 여인 같은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성도들은 기도하는 일, 예배 참석하는 일,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에, 주님을 본받아 소외된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에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됩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며 계3:19에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존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며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나그네는 창18:10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 노년에 이삭이라는 아들을 얻게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어느 목사의 간증입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영양실조에 걸려 얼굴이 노랬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집사가 목사께 해 드리라며 닭 한 마리를 목사 댁으로 가져 와 그 걸 고아서 드렸습니다. 목사는 일 년에 한 번이나 겨우 먹는 귀한 닭을 먹으려 하는데 문 밖에서 먹을 것을 좀 주시오. 배가 고픕니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여니 아주 험하게 생긴 걸인이 서 있었습니다. 목사는 속으로 거지가 하필 이때 오냐?’라고 생각하는데, 성령님께서 너는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이런 것 먹을 수 있지만 저 거지는 언제 먹겠느냐?’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들어오시오. 마침 여기 닭 한 마리가 있으니 같이 먹읍시다.”라고 했더니, 걸인이 들어와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니 양손에 닭다리를 들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먹는지 삽시간에 다 먹어버렸습니다. 목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습니다.

 

걸인이 잘 먹었습니다.”하고 나가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목사님이 따라 나가보았습니다. 그 목사님 댁이 외딴 곳에 있어 1km 반경 안에는 집이 한 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혹시 화장실에 갔나 하고 화장실에 가 보아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라고 하는데, 마음에 평안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듯 솟아났습니다.

 

그 때부터 성경을 읽으면 해석이 잘 되고 설교를 하면 행복이 넘쳐나고 교회도 은혜로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닭 한 마리를 대접하고 그렇게 큰 복을 받으신 것입니다. 나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을 잘 대접해 드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잘 대접하고 섬기면 그 일이 부지중에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 되고, 천사를 대접하는 일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복을 받게 하심을 알고 주님과 귀한 사귐을 가지면서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존귀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존귀한 그리스도인은 영적 분별력이 있습니다.

 

.존귀한 그리스도인은 최선을 다해 영접하고 대접하는 자가 됩니다.

 

.존귀한 그리스도인은 귀한 사귐과 열심을 품고 주님과 이웃을 섬깁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