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에 나타난 보혈의 은혜 렘31:31-34, 마26:26-29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번은 많은 관료들과 함께 군인들의 행진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육군이 여왕의 앞을 지나가고, 뒤를 이어 모든 군인들이 여왕을 향하여 경례를 하며 지나가고 있을 때 여왕은 손을 흔들면서 답례를 했습니다. 뒤를 이어 해군이 지나갈 때도, 공군이 지나가고, 여군이 지나갈 때도 앉아서 손을 흔들면서 답례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다른 군인들에게는 자리에 앉아서 손을 흔들며 격려를 했는데, 이 사람들만큼은 자리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니 모든 관료들도 자리에서 전부 일어났습니다. 여왕이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자 다른 고위 관료들도 전부 박수를 치면서 환영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상이군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피를 흘리며 싸웠던 용사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에서 싸우다가 손이 잘려 나가서 없고, 어떤 사람은 발이 없고 전부 부상자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걸어가지만 어떤 사람은 휠체어를 타고 그럼에도 줄을 맞추어 지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역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행한 희생의 흔적은 언제나 아름답고 감동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보여주신 최고의 사랑은 바로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주신 것이고, 그 사랑의 절정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언약에 나타난 보혈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1.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선민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약속을 하며 삽니다. 한 인생에 있어서 결혼의 언약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평생을 결정합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약속도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은 다 약속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교통의 질서도 하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도 약속에 의해서 유지됩니다. 법을 만드는 것도 약속입니다. 이번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최순실 게이트도 법을 지키는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할 국가의 통수권자가 법을 어기고 비밀을 지켜야 할 청화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 시키고, 권력을 남용해서 불법을 행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일직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선민이 지켜야 할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을 통해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선민에게 복을 주시고,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복을 주시고자 그 언약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말씀을 믿고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약속하신 복을 주십니다.
언약 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신실이란, 이름과 실질, 속과 겉, 말과 행위가 똑같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름 그대로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참되고 완전한 신성을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과 외적 표현, 말과 행위가 항상 동일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거짓도 없으십니다. 또한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실하게 지키십니다. 성도들의 믿음이란 그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믿음과 소망의 근거요 기쁨과 감사와 평강의 원인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신실한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신7:9)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미쁨(신실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항상 신실하시니”(딤후2:13)라고 했으며,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히10:23)했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롬3:4)하셨고,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거짓말하지) 않으신다.”(민23:19)하셨습니다.
이처럼 신실하신 언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언약을 통해 약속하신 복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새 언약은 언약을 파괴한 선민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구약 본문 렘31:31-32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했습니다. 전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을 어기므로 언약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깨어지지 않을 새 언약을 세우셔서 자기 백성들과 영원히 함께 동행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깨어버린 백성들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며, 다시 새 언약을 세워 그 속에 자신의 영과 말씀을 두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영광스러운 동행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언약을 깨었기에 너희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시면서 내 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은 용서 하시고 받아 주신 것입니다.
유명한 사회학자가 최근 미국 사회가 앓고 있는 질병의 원인을 진단했습니다. 그 원인은 계약 파기(broken Covenant)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계약이 파기되었기에 온갖, 모든 문제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안식일(주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를 안식하게 되면 이 사회의 많은 생태학적 문제와 인간의 질병이 치유되고 건강해 집니다. 주일을 주님의 날로 잘 성수 하면 남은 엿새를 축복으로 받게 됩니다.
블루 먼데이(Blue Monday)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말을 진탕 탕진하고 출근한 월요일은 몽롱하고 멍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기업에서는 중역 회의 날짜를 화요일로 옮겼다고 합니다. 블루 먼데이에는 도무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성수하지 않고 세상과 벗하며 연락을 즐긴 사람들일수록 ‘블루 먼데이’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주일 성수 그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일을 지키지 않음으로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신령한 복을 상실해 버렸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신 언약을 어기고, 불효하고, 도적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함으로 평안과 행복과 기쁨을 잃어버리고 불행을 자초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집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그리고 돌아 왔을 때 얼싸 안고 기뻐하시는 아버지처럼 새 언약을 통해 은총을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하며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남은 삶이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보혈 언약은 하나님 사랑과 은혜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신약 본문 마26:26-28에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두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잔을 가지고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생명의 떡으로 세상에 오셔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몸이 상하시고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시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몸은 생명의 산 떡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피는 죄를 씻어주는 속죄의 피, 언약의 피 입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인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저주와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 사랑 때문에 내가 죄에서 해방이 되고 저주와 형벌에서 자유 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통한 보혈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그 사랑의 모습을 여러 부분에서 나타내 주십니다. 그 여러 부분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최고로 표현 하시는 것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입니다. 롬5:8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요일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했습니다.
*은혜의 절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십니다. 자연과 만물을 통해 주신 은혜, 때를 따라 영육 간에 주신 은혜를 우리 인간이 측량할 수 없습니다.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서양 격언에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의 조건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감사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요, 교만한 마음 때문이요, 남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며, 마음속에 있는 욕망으로 인해 감사를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은혜 중의 은혜는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의 길,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주님을 가리켜 요1:29에서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5:9-10에서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했습니다.
*복의 절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 최고의 복은 아들 예수님을 주신 복입니다. 롬8:32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했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 뭔들 못 주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 안에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함을 얻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여 많은 복을 받게 되었고,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대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고, 언약대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셨고, 언약대로 심판을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을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기름등불 예비 하고 있다가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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