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다 함은 마16:21-28, 갈2:19-21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1세기 말에 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황제였습니다. 로마 황제들 가운데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신격화하여 황제숭배의 제의를 지내도록 강조한 황제들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와 칼리 큘라 황제가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었고, 반면에 대부분 황제들은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도 황제 숭배를 대단히 강조하였으며 황제들이 황제숭배를 강조하면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사교가 되어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네로와 칼리 큘라 황제 다음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조카 도미틸라와 조카사위 클레멘스가 기독교인이었음을 색출하여 투옥하고 다른 기독교인들을 적발하여 처형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로마 황제는 황제숭배를 강조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를 왕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었고 혹 기독교인들이 다른 왕을 내세우며 반역을 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잡혀 온 기독교인들을 황제가 친히 국문 하였습니다. 황제는 기독교인들이 늘 새로운 땅과 하늘,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고 하는데 언제 어디서 그 나라를 세우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끝에 오는 것으로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이들의 대답을 듣고는 근본적으로 무시하게 되었으며 아예 바보로 취급하고 그냥 놓아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세상 권력자나 부자의 눈에 비친 초대교인들의 모습은 ‘바보’였습니다. 기독교인으로 발각되면 공직에서 추방되고, 재산 몰수, 투옥, 태형, 화형, 사형 등의 엄청난 희생을 당하는데 왜 하찮은 종교로 화를 자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돈을 열심히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있는 돈 써가며, 나눠주며, 없애가며, 빼앗겨 가며 무엇 때문에 이런 바보짓을 왜 하는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도와 믿음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불신자들에게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바보처럼 보일 수박에 없습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아 “예수를 믿는다 함은”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 함은,
1.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서신서 본문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했습니다. 영어성경인 NIV역에 보면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지금까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왔고, 지금도 십자가에 못 박혀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나도 불행하고, 가정도 불행하고, 교회도 소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죽지 않고는 온전히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했습니다.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반드시 죽어야 됩니다. 지금보다 더 죽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옛 사람의 교만도, 자랑도, 자기 의도, 고집도, 시기와 질투, 미움과 다툼, 분쟁, 방탕 등의 옛 사람의 성품도 같이 사라지게 됩니다.
바울이 예수님 만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 후 자기 의가 죽었습니다. 바울은 주님 만나기 전에 율법에 관한한 엘리트라 생각했습니다. 율법으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고 구원받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 중에도 바리새인이었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한 학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할만한 의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갈2:19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했습니다. 그는 전에 세상 자랑으로 충만한 교만한 자였습니다. 그는 로마시민권자입니다. 로마시민권은 세상에서 큰 특권이고 혜택입니다. 그러나 로마시민권으로 결코 천국에 들어가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의 길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다소 출신으로 헬라 철학에 능통한 지식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지식으로도 구원을 얻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마시민권이나 헬라철학은 오히려 자신을 더 교만하게 할 뿐임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랑하던 모든 것이 구원을 얻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을 알고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봅니다. 죄인 괴수인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오직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의 증인이 되어 살았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체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서신서 본문 갈2:20에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먼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의 소망을 오직 예수님께 두고 산다는 말입니다.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삽니다. 여기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모든 것을 믿음 안에서 생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 안에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만이 나의 구원이 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다음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성 프란체스코(St. Francesco)는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은 뒤 어느 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오, 주님! 제가 죽기 전에 꼭 두 가지의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먼저 저로 하여금 저의 육체와 영혼이 십자가의 고통을 체험하게 하시고, 다음에는 예수께서 우리 죄인을 사랑하신 뜨거운 사랑을 저의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위에 십자가는 많이 있고, 십자가 없는 교회는 없지만 진정 십자가 사랑이 살아있는 교회와 성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그 십자가 사랑 때문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가슴과 행동으로 사랑하며 사는 모습이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2:21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믿는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주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주를 찬양하고 주께 경배 드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있기에 죄 가운데 살지 아니하고 주의 몸 된 교회에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부흥전도자였던 무디(D.L Moody)를 찾아온 여자 교인이 말합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 해도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던가, 아니면 벌을 내리지 않는 하나님이 분명해요." 말을 듣던 무디는 부인을 바라보며 다시 말합니다. "부인, 부인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인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교회를 얼마나 오랫동안 출석 했는데요". 반문하는 그녀에게 무디는 말합니다. "당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로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시지 않습니다. 혹 가면을 쓰고 다닌 것은 아닙니까? 이제 가면을 벗고 실체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고, 주님을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복음서 본문 마16:24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주님을 모르고 살았던 나의 옛 생활을 벗어 버려야 함을 말합니다. 주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옛 습관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더럽고 추한 죄악 된 생활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엡 4:22)고, 그리고 “옛 생활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골 3:9)고 말씀합니다. 히 12:1-2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했습니다. 오직 예수님 바라보고 나의 생각, 나의 계획, 나의 야망을 과감하게 벗어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나의 욕심, 나의 정욕, 나의 교만, 나의 이기심을 과감하게 벗어 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나를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십자가 질 것을 예고하시자 자기 생각만 하고 그리 마옵소서 하다가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음에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소극적인 것이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적극 적인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빛의 사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선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두움은 빛을 싫어합니다. 불의는 의를 싫어합니다. 악은 선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모든 선지자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핍박을 받는 것은 빛의 자녀 된 것 때문에 질 수밖에 없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딤후 3:12에 보면"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믿지 않는 가정에서 먼저 나와서 믿는 이들 가운데 핍박받는 이가 많습니다. 가정의 핍박이 있습니다. 직장의 핍박이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핍박받을 때 이것은 의를 위해서 받는 핍박이므로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성도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올바로 주를 좇아갈 수 있습니다. 올바로 주님을 따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십자가 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짊어지기를 좋아합니다. 명예, 재물, 쾌락, 자랑, 욕심, 정욕 등을 지고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거듭난 새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따르는 길은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영원한 본향을 향한 소망의 길이요, 영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십니다. 우리를 친히 인도하여 주십니다. 주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주님은 우리를 앞서 가시면서 발자취를 남겨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딴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우리 곁에서 우리와 보조를 맞춰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 뒤에 계십니다. 우리가 힘들어 할 때, 지쳐 쓰러질 때, 우리를 등 뒤에서 붙들어 주십니다. 지치고 쓰러져,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을까봐 우리를 등 뒤에서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께서 "너는 어떤 십자가를 지고 왔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여러분은 무슨 흔적(stigma)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의 흔적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주님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 사람은 진정 살게 됩니다. 진젠돌프 (Nicolaus L. Zinzendorf) 백작은 십자가의 감동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뒤셀도르프 미술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그림을 보는 순간 피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림은 독일 화가 스텐버그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림에는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주었건만 너는 날 위해 무엇 주느냐” 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진젠돌프는 그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주님을 위하여 지금까지 한 것이 무엇이냐?' 라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회개하였습니다.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남겨진 십자가의 고통을 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유하고 있던 영토를 개방하였습니다. 당시 피난민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마음대로 영지를 경작케 하였더니 오백여 가정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예배당을 짓고 함께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려 선교사를 보내자고 제안하였더니 선교사 50명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진젤돌프는 경건 운동을 펼쳤으며 훗날 모라비안 교파의 모태가 되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으로 믿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다가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예수를 믿는다 함은,
1.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2.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의 소망을 오직 예수님께 두고, 주님의 사랑으로 살고, 은혜로 산다는 말입니다.
3.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날마다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 발자취 따라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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