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세의 찬송과 죽음에 대한 예고(신32장)
2-1. 서론(1-3)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1). 모세가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자신의 말에 귀기울이라고 한 것은, 곧 천지를 증인으로 채택하여 1) 그 말의 '불변성' 과 이 노래가 2) 전우주의 관심이 집중되어야 할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2). 모세는 자신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메마른 사람의 영혼을 새롭고, 기름지게 만드는 단비와 이슬 같다고 선언하고 있다(Keil). 이스라엘이 옥토(沃土)와 같은 마음 밭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줄 것이다. 물이 귀한 지역에서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비유의 신선함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히 6:7, 8). 팔레스타인에는 이슬이 많이 내리는데 그 원천은 지중해의 습한 바람이다. 8-9월 중에 많이 내리는 이슬은 팔레스틴에서는 수자원(水資源)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특히 비가 제때 안 내릴 경우 이슬은 한 해의 농사에 큰 구실을 한다. 따라서 만약 이슬이 제대로 내리지 않으면 가뭄의 피해는 가중된다. 이런 점에서 이슬은 비 못지 않게 중요한 자연의 혜택이었다. 가는 비(사이르)는 '머리카락', '털'에서 파생된 단어로 '가볍게 내리는 비'를 가리킨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생명을 돋아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력'을 상징한다. 단 비(레비빔)는 '풍성함', '많음'에서 파생된 단어로 '소나기'(KJV, showers), 또는 '많은 비'(NIV ,abundant rain)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사람들의 눈에 현저하게 띄일 정도로 크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력', '강권력'(强勸力)을 상징한다. 이와 같이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메마른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힘이요, 삭막한 심령에 풍성한 결실을 보장해 주는 능력이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3)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성품과 놀라운 역사를 전파할 것이다. 그러면 이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2-2. 신실하신 하나님과 타락한 백성(4-9)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4). 반석이라는 말은 자신을 찾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안전하고 불변 부동(不變不動)하는 영원한 피난처가 되심을 의미한다(Lange, Keil). 성경에는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한 구절이 많은데(삼상 2:2;시 18:2;19:14;31:3), 특히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신령한 반석'(고전 10:4)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바람에 날리는 모래와는 달리 언제나 제자리에 변함없이 우뚝 서있어, 사막의 온갖 위험으로부터 여행자들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 주는 거대한 반석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완전하며,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불의(iniguity)가 없으시며,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5)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패역할 뿐 아니라 강퍅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40년 광야 역사를 통해서도 나타났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 사랑과 은혜를 저버린 패역하고 목이 곧은 백성이었다(9:6;출 32:9).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이러한 질책성 경고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를 향한 준열한 꾸짖음이기도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마 3:7-10).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셔서 그들을 자기 자녀로 삼으셨다. 본문에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칭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조성하신 참 하나님이시다(사 44:2,24).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양육하시는 분이시다(10-14절; 사 43:2).
3) 부모가 자녀에게 공경 받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로부터 당연히 경배 받으실 분이시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7). 이스라엘의 역사는 거듭되는 인간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로 점철된 사랑과 긍휼의 역사였다. 이는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거듭 하나님께 죄악만을 쌓던 이스라엘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신 사건만을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가운데 베풀어주신 갖가지 은혜를 오늘에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성도가 항상 정도(正道)를 걸으며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 드릴 수 있는 영원한 생의 찬송 제목이 된다. 가정을 중심한 히브리인들의 교육 방식은 어느 민족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었다. 히브리 어린이들은 1차적으로 자기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었다(6:7).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 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8). 열국의 기업을 주셨다는 말은 열국의 모든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강조하는 말이며(단 4:35), 인종을 분정했다는 말은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의 언어가 분립(分立)되고, 지역적으로 인류가 흩어지게 되었던 때를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창 11:1-9).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유익을 염두에 두시고 세계를 분할하셨다'는 뜻이다(Calvin).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의 전개를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특수성을 미리 염두에 두셨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9). 택하신 기업이란 말의 문자적인 뜻은 '그의 토지로 측량해 놓은 것', 또는 '그의 상속 재산으로 정해 놓은 것'을 의미한다(시 16:6).
2-3. 이스라엘 창조에서의 여호와의 선하심(10-14)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10). 황무지와 광야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여 년 동안 방랑하던 황량하고 삭막한 땅이다. 실로 그곳은 아무런 수확도 기대할 수 없고 단지 짐승의 울음만이 스산하게 들려오던 두렵고 낯선 오지(奧地)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극진한 사상과 세심한 배려가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은 결코 그곳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Herxheimer). 눈동자는 인간의 신체 부위 중 가장 귀중한 것일 뿐 아니라, 가장 쉽게 다칠 수 있는 약한 부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말은 '최우선적으로 아끼며 조심스럽게 보호한다'(시 17:8;잠 7:2)는 의미이다(Lange, Keil, Wycliffe).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11-12).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을 날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둥지에서 새끼들을 떨어뜨려 날게 한다. 그런 후 주위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보다가 새끼들이 힘에 부쳐 떨어질 때는 재빨리 그 강한 날개로 받쳐 결코 새끼들이 해(害)를 당하지 않게 한다. 이런 방법을 반복함으로써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독수리답게 강하고 튼튼하게 키운다. 모세는 바로 이러한 사실에 비유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답게 양육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사랑과 공의로 훈련시키셨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출 19:4).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13-14). 여기서 '땅의 높은 곳'이란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성경에는 종종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간다'는 표현이 나오는데(창 12:10; 26:2; 42:1-3). 이는 가나안 땅을 높은 곳으로 여기고 있는 히브리인들의 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타고 다니게 하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자신의 소유로 삼을 것을 의미한다(Keil, Lange, Wycliffe, Pulpit Commentary).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얻는 다는 말은 가나안 땅의 기름진 상태를 묘사한 말이다(11:9). 이 말은 가장 척박한 곳에서도 가장 귀한 소산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젖 기름'('헤므아')은 '치즈'나 '버터'와 같이 절반 정도 응고된 우유를 가리킨다. '바산'(Bashan)은 갈릴리 동북쪽, 길르앗 이북에 위치한 고원 지대이다<3:1>. 이곳의 땅은 매우 비옥하고 목초지가 많아 가축사역과 밀 경작으로 유명하였다(시 22:12;사 33:9).
2-4. 이스라엘의 번영과 배교(15-18)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지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15-16). '여수룬'은 '예수룬'을 음역(音譯)한 말로서 , 이 말은 이스라엘을 명예롭게 일컫는 시적(詩的) 표현 또는 별명이다(33:5, 26;사 44:2). '여수룬'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의로운 자가 된 이스라엘'을 의미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처럼 명예롭고 존귀한 명칭이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사악(邪惡)함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다. 즉 마땅히 그 이름의 뜻답게 의로운 길을 걸으며 살아가야 할 백성들이 오히려 사곡한 배교(背敎)의 길을 걷고 있으므로, 이를 꾸짖기 위해 이스라엘을 풍자적으로 '여수룬'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Calvin).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자,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배신하였던 것이다(Luther). '경홀히 여겼다'(나발)는 말의 원 뜻은 '시들다, '마르다'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겼다'(KJV, lightly esteemed), 또는 '거부했다'는 뜻이다(미 7:6).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17-18). 마귀(쉐딤)는 본래 반신 반인이란 뜻을 지닌 앗스르의 수호신(守護神) '쉐두'(Shedu)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은 이를 '귀신'(demons)으로 번역하였다(Keil, Pulpit Commentary).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은 '이방 우상들'을 의미한다. '근래에'(믹카로브)라는 말은 통상 시간적, 장소적 근접 상태를 모두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시간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근래의 신들은 이스라엘이 열조 때부터 알아왔던 신, 곧 여호와 하나님과는 다른 새롭게 만들어진 신들이었다. 상관치 아니하였다는 말은 '무관심하였다'는 말이다.
2-5. 이스라엘에 내리신 여호와의 심판(19-27)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한 연고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19-20).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숨기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관계하지 않으시고, 그들에 대한 모든 보호와 긍휼을 중단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악하고 신실하지 못한 자녀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21). 본절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느끼시는 감정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묘사한 구절이다. 즉 이는 한 남편이 음란한 아내에게 자신이 멸시 당하고 있음을 알고, 그 역시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함으로써 보복하는 질투 심리를 연상시켜 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나 보복은 미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랑에 근거한 교육적 차원의 징계이다. 이 선고(宣告)는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 로마 등과 같은 이방 민족이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그들을 괴롭힘으로써 역사상 성취되었다. 한편 신약 시대의 사도 바울은 본문을 구속사적 측면에서도 이해하였다. 즉 그는 복음을 거절한 유대인들보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을 먼저 교회 안으로 이끄심으로써, 유대인들로 하여금 시기 나게 하여 그들도 마침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실 하나님의 구속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본문을 인용하였다(롬 10:19;11:11).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도 불이 붙게 하는도다"(22). 하나님의 분노를 '불'에 비유한 표현은 성경에 자주 타나난다(렘 15:14 ; 17:4 ; 애 4:11). 실제로 하나님은 불로써 이스라엘에게 분노를 표하기도 하셨다(민 11:1-3). '음부'('쉐올')는 신약 시대의 '지옥'(하데스)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구약시대 당시에는 '사후(死後)의 세계'에 대한 계시가 명확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쉐올' 곧 '음부'(陰部)는 선악간을 막론하고 일단 죽은 자들이 가서 거하는 곳으로 여겼던 '지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내가 재앙을 그들의 위에 쌓으며 나의 살을 다하여 그들을 쏘리로다"(23). 하나님의 재앙이 위에서부터 쏘아대는 화살에 비유되고 있다(시 7:13;슥 9:14). 이는 곧 하나님께서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더 이상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물리쳐 없앨 대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그들이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울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24). 이러한 재앙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으며 무모한지를 잘 보여 준다. 불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은 '열병'(fever)과 '흑사병'(pestilence)을 가리키며, 들짐승의 이는 사나운 야수들의 송곳니에 의해 갈갈이 찢겨 죽을 것을 나타내고, '티끌에 기는 것'은 뱀을 가리키며, 이는 각종 독사에 의해 입는 상해를 의미한다.
"밖으로는 칼에 방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청년 남자와 처녀와 젖 먹는 아이와 백발 노인까지리로다"(25). 남왕국 유다의 몰락을 바라보면서 예레미야가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애 1:20)고 탄식했던 것은 바로 본절의 성취일 것이다. 실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천만인이 둘러치려 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나(레 26:7, 8;잠 3:6). 그렇지 못한 자들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기 마련이다(레 26:36, 37;잠 28:1). 청년 남자와 백발 노인까지라는 말은 패역한 세대, 사곡한 종류에게 임할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과, 그 심판이 예외 없이 엄정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그들을 흩어서 인간에서 그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다마는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 원수가 오해하고 말하기를 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라 하시도다"(26-27). 흩는다는 말(파아)은 '훅 불다'는 의미로서 여기서는 강한 바람에 날려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는 먼지와 같이 비참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마치 자기들의 힘과 용맹 때문인 줄로 오해하여, 이스라엘을 멸시하고 하나님까지 비웃을 것을 걱정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되 당신의 영광을 훼손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민 이스라엘을 완전한 파국에까지는 이르지 않게 하실 것임을 시사해 준다.
2-6. 이스라엘의 분별력 부족(28-33)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28). 모략이 없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주(Lord)로 깨달아 아는 지각(知覺)이나 분별력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Lange).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 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29-30).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만일 지혜로운 마음을 품어서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지 아니하였다면, 하나님도 그들을 대적에게 내어 주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징계의 채찍을 맞고 돌아오기 전에,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여 영원히 축복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심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단순히 기교적인 지식이나 사변적인 학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언약 백성이라는 맥락 안에서, 그 관계를 올바로 유지시켜 주는 총명함과 명철함, 도덕적인 성실함, 영적인 온전함을 총체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호크마'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시 111:10).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못하니 대적도 스스로 판단하도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31-33). '대적의 반석'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믿고 의지하는 이방의 각종 신들을 가리킨다.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지 않을 때에, 물질, 재산, 권력, 심지어 허탄한 우상 신까지 자신의 반석으로 의지하게 된다. 애굽 군사들의 경우(출 14:25), 이방의 술사 발람의 경우(민 23:23), 가나안에 거했던 라함의 경우(수 2:9, 10), 그리고 블레셋 족속 아스돗 사람들의 경우(삼상 5:7) 등이 스스로 여호와를 자신들의 신보다 능하다고 판단하였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484).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서, 이 말은 이스라엘이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음란을 좇는 타락한 백성이 되었음을 비유하고 있는 말이다. 쓸개포도는 '독초와 쑥의 뿌리'라는 말로, 우상 숭배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온갖 죄악된 행위를 의미한다. 후일 선지자 이샤야도 "이스라엘이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사 5:2)라고 탄식했다. '뱀'('탄닌')은 코브라 종류를 가리키며, '독사'('페텐')는 살모사와 같이 치명적인 독(毒)을 지니고 있는 뱀들을 가리킨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치명적임을 말한다(Cavin).
2-7. 하나님의 연민과 심판(34-44)
"이것이 내게 쌓이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34-3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죄악은 그들의 마음 판에 금강석 끝 철필(鐵筆)로 기록되어 있다고 말함으로써(렘 17:1), 회개하지 않는 죄악은 어떤 경우에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36). '판단하다'(딘')는 말은 '재판을 집행하다', '심판하다'라는 말이며, '그 종들'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자기 백성)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후회하다'(나함)는 말도 원래 '한숨을 쉬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동정하다', '긍휼히 여기다'(시 135:14)란 의미로 봄이 타당하다. '갇힌 자와 놓인 자'란 표현은 '모든 사람' 또는 '온갖 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적 격언이다(Pulpit Commentary).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중에 남아 있는 자들이 거의 없을 때를 가리킨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더 이상 멸망 중에 버려 두지 않으시고 마침내 회복시키시며, 이스라엘 중에 '거룩한 씨'를 계속 보존시키실 것이다(사 6:13).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 그들의 희생의 고기를 먹던 것들, 전제의 술을 마시던 것들로 일어나서 너희를 돕게 하라. 너희의 보장이 되게 하라"(37-38). 여기서 '그들의 신들', '그들의 피하던 반석', '그들의 희생의 고기를 먹던 것들', 그리고 '전제의 술을 마시던 것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정성스럽게 제사 드리며 의지하였던 '헛된 우상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환난 날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우상의 무능함과 그것들을 섬겼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역설적으로 준엄하고 꾸짖고 있는 말이다. 이방의 우상들은 고기를 먹지도, 술을 마시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4:28) 나무와 돌덩이이기 때문이다(28:3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것들이 마치 복이라도 주는 것 인양 지성껏 섬겼으니 이제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라는 풍자적 질책이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39). 나와 함께 있는 신이 없도다는 말은 '나 외에는 신이 없다'는 말로서 이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천명해 주는 말이다. 천지간에 인간의 생사 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실 수 있는 신(神)은 우주 만물의 창조자요 인류 역사의 통치자인 살아 계신 하나님 여호와밖에는 없다.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노라 나의 영원히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40). '손을 들다'란 말은 사람들이 맹세할 때 관습적으로 손을 들고 맹세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14:22). 대개 맹세는 자기보다 높은 자를 걸고서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보다 더 높은 자가 있을 수 없는 지고자(至高者)이신 까닭에 불가불 자신을 걸고서 맹세하실 수밖에 없다(히 6:13).
"나의 화살로 피에 취하게 하고 나의 칼로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장관의 머리로다 하시도다.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41-43). 여기서 '화살'과 '칼'은 의인화(擬人化)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자들로 나타난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과 심판 당할 대적의 처참함을 잘 보여 준다. 실로 회개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가 무한하듯, 이처럼 범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역시 철저하다. '장관'(파르아)는 '머리털'이란 의미를 지닌 '페라'에서 파생된 말이다. 열방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대적들에게 행하신 공의로운 심판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더불어 기뻐하고, 또한 주께 영광 돌려야 했다. '속죄하다'('카파르')는 말은 '덮다' 또는 '화목하다'는 뜻이다. 심판이나 징계는 비록 죄에 대한 경고는 될지언정 결코 회복이나 화목의 방편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 흘리는 속죄 행위'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히 9:22). 따라서 이 말은 장차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을 위해 이 땅위에 속죄제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케하는 메시야적 메시지(Messianic Message)로 이해할 수 있다.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44). '호세아'는 여호수아를 가리킨다(민 13:8,16). 그런데 여기서 '여호수아'란 이름 대신 '호세아'란 이름을 쓰고 있는 이유는 본절은 모세의 말에 제 3자가 주(註)를 단 형식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Keil, Pulpit Commentary). 여하튼 호세아(여호수아)가 모세와 함께 백성들에게 노래를 들려준 것은 회막에서 위임식을 가진 이후(31:14) 여호수아가 이제 당당히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을 의미한다.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45-46). 자기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은 히브리인들의 최대 의무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재차 그 교육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47). '허사'('다바르 레크')는 '무익한 말', '빈 말'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생명'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은 참으로 적절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어(히 4:12) 영혼을 소성케 하며(시 19:7),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기 때문이다(딤후 3:16).
2-8. 모세의 죽음 준비(45-52)
"당일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산에 올라 느보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48-52).
아바림 산은 사해(死海) 북 동편, 모압 평원에 위치한 산맥으로서, 요단 강과 사해를 동쪽으로부터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민 27:12). 느보 산은 아바림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서 해발 802m이다. 이 산은 팔레스틴 전역을 살펴보기에 최적의 장소로서, 가시(可視) 거리가 약 100km에 달해 청명한 날에는 헤스본과 예루살렘까지도 볼 수 있었다(Lange). 호르 산은 모세의 형 아론이 임종을 맞이했던 산으로 확실치 않지만 가데스 근처 에돔 변경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모세의 삶은 호렙 산에서 시작하여(출 3:1-17) 느보(Nebo) 산에서 끝나게 된다. 그동안 그의 삶에 있어서의 중요 사건은 여러 산들과 밀접히 연관되었었다. 모세가 단지 가나안 땅을 바라볼 뿐 그곳에 들어가 그 땅을 밟아보지 못할 운명에 처한 이유는 므리바 물 사건(민 20:2-13)으로 인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한 어원은 이러한 성경의 범죄 개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음 도표는 주요 범죄 어원 도표이다.
1) 하타(히), 하마르티아(헬)-"죄"(Sin): 레 6:3, 신 1:41, 삿 10:10, 사 1:4
가장 보편적인 단어, 구약에 700번 나타남. '과녁을 빗나가다', '표적을 맞추지 못하다'란 뜻의 '하타아'에서 유래.
2) 아본-"불의"(Iniquity): 창 15:16, 시 32:3: 구부러지고 비틀어짐
3) 페솨-"위법"(Transgression): 사 1:2, 시 51:13, 잠 29:6, 겔 14:11, 단 8:12, 왕상 12:19.-'어기다', '반역하다'란 뜻의 '파솨'에서 유래. 고의적으로 법규를 파기함, 반역.
4) 라아(히), 포네로스(헬)-"악"(Evil): 창 2:9, 사 45:7
라아-부서져 망가짐, 질병이나 지진 같은 재앙, 포네로스-더럽다, 오염된 상태
5) 아바르(히)-파라바이노, 파라노미아, 파라바시스(헬)-"범죄"(Transgression):
* 아바르-창 12:6, 호 6:7, 단 9:11,
* 파라바시스-롬 5;14, 히 2:2, 9:15,
* 파라바이노, 파라노미아--벧후 2;16, 마 15:2-3-한계를 넘어서 건너감. 언약을 어김, 율법의 함계를 넘어섬.
6) 아노미아-"무법"-법이 없음, 요일 3:4
7) 파랍토마(헬): 롬 4:25, 5:15, 갈 6:1, 골 2:13)-실족, 넘어짐, 죄를 범함. '옆으로 떨어지다', '옆길로 새어 나가다'란 뜻의 '파라핍토'에서 유래.
8) 쉐가가(민 15:22)-'부지중 그릇 행함', '바른 길을 벗어난다'는 뜻인 '솨가그'에서 유래
. 모세의 찬송과 죽음에 대한 예고(신32장)
1. 서론(1-3)
2. 신실하신 하나님과 타락한 백성(4-9)
3. 이스라엘 창조에서의 여호와의 선하심(10-14)
4. 이스라엘의 번영과 배교(15-18)
5. 이스라엘에 내리신 여호와의 심판(19-27)
6. 이스라엘의 분별력 부족(28-33)
7. 하나님의 연민과 심판(34-44)
8. 모세의 죽음 준비(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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