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붙잡힌 사람 43:1-7, 3:11-16

신약 본문 12절에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바울이 예수님께 잡힌바 되어 주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 붙잡힌 사람은 이사야 본문 1절의 말씀처럼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시는 몇 가지 근거는, 먼저,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니라.’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은 다음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연약한 존재라 해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지으셨기에 우리의 연약함도 아시고 우리의 아픔도 다 아시고 도우십니다.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1절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했습니다. 세계 많은 나라 중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해 세계 열방을 구원하시고자 하셨고, 세상에 허다한 사람들 중에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 주의 백성 삼으시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따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했는데, 여기 구속 의 히브리어 가알 은 대가를 지불하고 무엇을 살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출애굽 할 때 애굽의 모든 장자를 희생시키면서 노예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3절에는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다하셨고, 4절에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주며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를 통해 죄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셨고 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벧전1:19, 고전6:19-20). 이러한 근거들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께 붙잡힌 사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께 붙잡힌 사람은,

 

1.주님께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사랑 받는 사람입니다.

구약 본문 4절에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이라고 했습니다. 선민인 유대 백성들은 죄와 무지로 악을 행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고 있는 상황 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들처럼, 비천한 사람들처럼, 의지할 것 없는 소망 없는 불쌍한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보배롭고 존귀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붙잡힌 자이면서도 때로 고난 중에 있거나, 실패하여 어려움 중에 있거나, 질병으로 고통 중에 처할 때가 있지만 그런 중에도 여전히 주님께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며 사랑받는 자 중에 하나로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주 낡고 보잘 것 없는 바이올린 하나가 경매에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이 1실링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방안에 폭소가 일어나더니 그 값으로 그에게 주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경매인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말했습니다. "누가 이 바이올린으로 한번 연주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잠시 방안에 침묵이 흐른 뒤 한 노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 노인은 바이올린을 턱에 괴고 몇 번 활을 시험해 음을 맞추고 나서 그 낡은 악기로 연주를 시작할 때 절묘한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끝났을 때 방안은 감동의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습니다.

다시 경매인은 바이올린을 들고 값을 물었습니다. "5파운드" "10파운드" 결국 "100파운드"로 낙찰되었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그것은 전과 다름없는 바이올린이었는데---. 그 낡은 바이올린은 대가의 연주에 의해 명품으로 바꾸어졌던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낡은 바이올린처럼 우리들이 쓸모없고 무능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가장 가치 있고 위대한 명품 인생으로 바뀔 수 있음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걸레는 아무리 깨끗이 빨아도 걸레이고, 보석은 아무리 진흙탕에 묻혀 있어도 보석입니다. 주님께 붙잡혀 보배로운 자가 되면 아무리 허물이 많아도 주님이 보실 때는 여전히 보배롭고 존귀한 자가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던 베드로는 배우지도 못했고, 출신, 신분, 직업 어느 하나 사람들 앞에 변변히 내 놓을 만한 것이 없었고, 거기다 허물도 많았던 자였습니다. 그는 다혈질의 사람으로 혈기라는 허물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무리들이 검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는 검을 빼들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를 향해 내려치므로 귀가 잘라졌는데, 주님은 귀를 고쳐주시면서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얼마 후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고 하시자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16;23)라고 말했다가 예수님께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16;24)라고 책망을 들은 자였고, 주님께서 잡혀가실 때 멀찍이 따라가다가 예수님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 했어도 주님은 그를 보배롭게 여겨 그를 통해 일시에 3천명이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오기도 하고,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그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병이 낫는 귀한 사도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김 받고 사랑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 위해 바른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을 모르고 목표를 바르게 가지지 못하면 인생을 그르치게 되어 후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따르게 됩니다. 모든 물건에는 그것을 만든 목적이 있습니다. 비행기, 자동차, 시계, 과도 등 모두 목적을 가지고 만듭니다. 그런데 과도로 과일을 깍지 않고 사람을 살상하게 되면 살인 무기가 되는 것처럼 사람도 목적이 잘 못되면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는 타락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생들을 통해 기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 7절에 내 영광을 위해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신약 본문을 기록한 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는 목적을 잘 못 알고 살다가 주님을 만난 후 인생의 목적을 바로 알고 먹든 마시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고, 살든지 죽든지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원한다.‘하면서 본문 12-14절 말씀처럼 예수님을 바라보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뒤에 있는 것을 잊고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기 때문에 목적지가 있어야 합니다. 어디로 가야 되는지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소년 시절, 그의 가정교사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고 합니다. 선생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왕자께서는 임금이 되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희랍을 통일하겠습니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소아시아를 정복하겠습니다." "그 뒤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를 점령할 것입니다." "그 뒤에는?"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손에 넣겠습니다." "인도 점령이 끝나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 때쯤이면 저도 죽겠죠." 스승은 왕자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멀리 돌아다니다 죽으나, 지금 죽어버리나 별로 큰 차이가 없겠습니다."이 이야기는 가치 없는 것에 목표를 두는 인생은 가치 없는 인생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교훈입니다. 알렉산더는 어렸을 때의 자기의 목표대로 왕이 되어 세상을 정복했으나 33세에 요절했는데, 그의 유언대로 자기의 빈 두 손을 관 밖으로 내어놓아 백성들에게 인생의 허무를 알게 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목표가 헛되면 인생도 헛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인생의 목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행인과 나그네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아버지 집에 가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뚜렷해야 하는 합니다. 바울은 경주자와 같이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갔기에 죽음을 앞두고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 바른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살다가 바울처럼 그런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늘 믿음에 굳게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두려움은 성도의 큰 장애물이고, 암초와도 같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영적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에서는 기도와 명상도 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교육)이 들려오지도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 정탐 후 두려움 때문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였습니다. 이사야 42장에 이스라엘이 죄와 무지로 인하여 덫에 걸리고, 노략질을 당하며 고난과 어려움들로 두려움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사야 43장 초두에 하나님은 그러나 이제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강력하게 권면하셨습니다. 주님은 큰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서신서 본문을 기록한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 박해를 받고 큰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주께서 밤에 환상가운데 말씀 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8:9)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담대하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두려운 일이 많은 현실에서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택해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시고 사랑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디언 최초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육학 박사가 된 바르텟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언청이로 태어나 부모의 학대와 형제의 멸시를 받으며, 친구들과도 가까이 하지 못하고 동네의 개와 쥐들과 함께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을 잘 믿는 백인 여자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 여자는 소년을 데려다가 돌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외로움은 서서히 물러가고 새로운 사랑이 이 아이를 감싸게 되었습니다. 무관심과 멸시천대를 받던 이 아이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장 큰 평안과 기쁨과 담대함과 감격을 느낄 수 있었던 때는 학위를 받았을 때가 아니었고, 좋은 옷을 입게 되었을 때도 아니었고, 내가 쓰레기 더미에 있을 때 백인 아줌마가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아 주었을 때라고 고백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이 그를 담대하게 했고, 새로운 인생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어떤 역경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중에서 귀환해야 할 과제 앞에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물과 불 가운데 지날 때 내가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출애굽 당시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신앙 때문에 풀무 불에 던져졌어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어 건지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 위기를 만날 때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그를 담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과 계획이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7절에 내가 내 영광을 위해 창조한 자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붙잡힌 성도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창조하신 자들입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어리석어 보여도 하나님의 명예를 드러내기 위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어느 초등학생이 종업식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와서 "엄마는 음악가가 좋아, 아니면 미술가가 좋아?"라고 묻자 엄마는 음악가도 좋고, 미술가도 다 좋단다.”라고 대답하자 책가방 속에서 통지표를 내어놓습니다. 음악: 가 미술: . 하하^^공부 못해도 주님께 붙잡히면 영광의 도구가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소유 된 백성임을 믿고 믿음에 굳게 서서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께 붙잡힌 사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님께 붙잡힌 사람은,

.주님께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사랑 받는 사람입니다.

.주님 위해 바른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늘 믿음에 굳게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아멘.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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