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종 로마서1:1
새로운 소망가운데 출발하는 우리 교회가 믿음을 새롭게 다져가는 설교를 하려고 계획하던 중에, 우리 전체 교회의 신앙의 기초를 분명하고, 또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로마서를 선택하여 일년 내내 계속해서 강해설교를 해나가려고 합니다.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도와서 로마서에 나타난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깊은 신앙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로마서는 사도인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에 있는 신앙이 어린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기초적인 진리를 체계적으로 알려 주므로 바른 신앙을 가지고 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도록, 그리고 다가오는 핍박을 이겨 내도록 하기 위하여 쓴 책입니다.
바울 사도가 쓴 책이 신약성서 안에 13권이 있습니다. 이 책들을 보면 바울은 서론에서 반드시 자기가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편지들 속에서 바울이 자기를 지칭할 때 잘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라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을 아주 자주 썼고, 또 이 용어를 매우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종이란 말은 그리 유쾌한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아는 대로 종이란 노예를 가리킵니다. 자유가 없이 남의 수하에 있어 심부름이나 해주고, 명령받은 일을 하면서 지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필이면 남들이 다 싫어하는 이 용어를 쓰기를 좋아했을까요? 바울이 종이란 말을 쓸때마다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할 때 종이란 말은 말할 수 없이 자기를 낮추는 말입니다. 나는 그분 앞에서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리스도 앞에서 나는 없다는 의식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살고, 죽으라면 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 하라고 하시면 하고, 힘 주시면 감당하고, 힘 주시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고 자아가 죽은 사람입니다란 뜻입니다. 자기의 학문이나 자기의 가문이나 자기의 신분 이야기는 그분 앞에서 생각조차 할수 없는 분, 그래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라고 하신 일만 할수 밖에 없고, 일의 결과도 오직 하나님의 것으로 돌릴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종으로만 살아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 말을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과 위엄에 굴복되어 그분의 종만 되어도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낀 것입니다.
한편으로 바울 사도가 나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고 말할 때, 자기를 비하시키는 것이지만 그러나 결코 비굴하거나 절망해서 하는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할 때에 이 세상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직분으로 생각하면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난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그의 종으로 일한다는 것을 그의 가장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한 때는 바울 자기가 핍박한 분입니다만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본 후에는 그분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이요, 하늘과 땅 아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며, 심판하시는 주님이신 걸 알았습니다. 적어도 자기는 그분의 종이란 말입니다. 시시한 임금의 종도 아니요, 돈 많은 어떤 사람의 종도 아니고, 돈의 종도 아니요, 명예의 종도 아니란 말입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의 종이란 말입니다. 만왕의 왕의 종, 이런 분의 종이 된 것은 이 세상 무엇으로도 비교되거나 바꿀수 없는 엄청난 직분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 앞에서 자만하거나 자랑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속으로만 이 직분을 세상에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안으로는 무한히 영광스럽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겸손한 종의 모습으로 그리스도만 나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성전 안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 거룩하신 분, 두렵고 떨리시는 분, 이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 그 존엄하신 분 앞에서 자기는 티끌만도 못한 존재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표현할 때 "보좌를 하늘에 두고 앉아 계시고, 이 땅을 그의 발 바침대로 삼고 계신 분(사66:1)"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하늘의 의자에 앉아 계시고 발은 이 땅에 딛고 계신 하나님을 말입니다. 우주 전체에 가득차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인간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두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 주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으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듯이" 시들고 없어져 버릴 준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하나님의 종이란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고 부족해서 종의 종되기도 모자란 사람이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 가장 영광스런 신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하고 말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을 강조합니까? 자기는 종이지만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용하시는 종이란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속에는 웅변적인 말이 들어있습니다. 내 말을 듣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거와 같고, 나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말은 아닙니다. 자기는 한없이 낮아지지만 자기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를 당해서는 안돼기 때문에 이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받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왜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종이란 말 다음에는 사도란 말을 덧붙여 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고린도에 보내는 서신에는 아예 종이란 말을 빼고, 사도란 말만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사도성에 대하여 문제를 삼고 바울을 배척한 교회입니다. 바울이 무슨 사도냐, 우리와 똑같은 사람에 불과한데, 그러므로 바울 의 말이 절대적일 수 없다고 부정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조차도 부정하던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에는 당당하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다고 강조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와 같이 바울을 천사처럼 대접하는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쓸 때에는 단지 종이란 말만 쓰고 사도란 말을 쓰지 않습 니다. 사도란 말은 강조하지 않아도 빌립보 교회는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처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또 골로세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이라고 강조해서 디모데를 사도 인 바울 자기와 동등의 위치에 놓고 있습니다. 아마도 디모데가 앞으로 교회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도 바울 자기와 동등하게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와 동등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무엇을 하는 직분입니까? 이 종의 직분을 설명하기를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 새번역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따로 세우심을 받았다 "는 말입니다. 이 종으로서의 사도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특별히 따로 분별해서 세운 직분이란 말입니다. 5절 이하 에 보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 그리스도의 종은 복음을 전하는 직분인데,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잘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고 믿어 순종하도록까지 하는 일을 맡은 것입니다. 복음을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도록까지 이끌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은 복음에 대하여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에 대하여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자세히 알고 가르칠 수 없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바울은 3절 이하에 복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아들에 관한 것인데, 그 아들이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셨으며,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어떻게 구약에 예언되었고, 어떻게 이 땅에 오셔서 사셨으며, 왜 십자가에 죽으셨고, 어떻게 부활하셨고, 장차 어떻게 오실 것인가를 잘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잘 전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것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대로 오신 분으로 믿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부활하심을 믿습니까? 그리고 장차 심판주로 오실 것을 믿습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을 믿습니까?
주님의 종은 오직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돈을 잘 버는 것으로 주의 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잘 다스리고, 건물을 잘 세우고, 어떤 일을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종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리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충성하는 자라야 칭찬 듣는 종입니다.
성 프렌스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걸식수사단을 만들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되는 것을 모두 버렸습니다. 이리저리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옮겨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성 프렌시스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사람 이기에 때로는 잘 곳이 필요했고, 머물 곳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날 빈 헛간이 있어서 그 곳에 하루 밤을 지내도록 하고 여장을 풀었습니다. 조금 있자니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프렌시스가 나가보니 헛간에 임자가 찾아와서 주인의 허락도 없이 헛간을 쓴다고 야단을 치고, 프렌시스 제자들은 흥분해서 이 쓰지 않는 헛간인데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이 하루쯤 지나는데 뭐가 그리 말이 많은 가고 항변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프렌시스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루쯤 어디에서 잔들 어쩌겠는가? 주님께서 우리가 잘 곳은 또 마련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가지고 싸움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요,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니 나가서 복음을 전하자." 그리고 제자들을 이끌고 흙의 먼지를 떨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제하고 어떤 것도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지난 번 우리 안수집사님들이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는 94년 지난 해는 전도와 성도를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한 분들이 돋보이는 해라고 의견이 일치했었습니다.
어느 성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이 아직 약한 교우들을 하나 하나 정성껏 돌볼 때 하나님께서 기쁘다 하실 것이라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겠는가고 하는 말을 듣고 신앙의 실제적인 면이라고 느꼈습니다.
바울은 서론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다 이들을 통하여 부름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종이요,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종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복음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돌봄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일군이 된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러한 종들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소서 하고 대답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종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 있을 뿐입니다. 이 땅에 어느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영광은 영광같으나 고뇌요, 고통일 뿐입니다. 이 땅에는 진정한 영광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영광으로 알고 일해야 합니다.
전도하고 돌아온 70인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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