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더 좋은 것을 택하라 누가복음 10 : 38 - 42
찬 송 : 211, 213, 216, 321.
할렐루야!!
오늘도 이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마치고자 이 시간에 주님 앞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루살렘 동남쪽으로 약2.7Km 정도 떨어진 베다니(Bethany)라는 한 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베다니 마을은 예수님과 절친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의 삼남매가 살고 있는 동네로 유명했는데(요11:1), 이때에도 예수님은 이들의 영접을 받고 이곳에서 머물러 쉬셨던 것입니다. 추정하기로는 삼남매 중에서 마르다가 제일 맏이로서 집안일을 꾸려나가고 있었고, 가운데가 남동생인 나사로이며, 막내가 마리아인 듯합니다.
어느 날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영접하였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 일행이 잡수실 음식을 준비하느라 몹시 분주하였고,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의 태도에 불만을 터뜨렸으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두둔하셨습니다.
이 삼남매는 일찍이 부모님과 사별을 하고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이 집안에 유일한 남자인 나사로가 그만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빨리 찾아서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였으나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지 여러 날이 지나서 예수님이 요단강을 건너 유대 지경으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빨리 사람을 보내어 나사로가 병들었으니 오셔서 고쳐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요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면서 이틀을 더 머물다가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로 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나사로는 죽어서 장사를 지낸 뒤였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반은 원망 어린 말로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장사지내고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요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바로 이와 같은 인연이 있는 집이니 예수님이 오셨는데 얼마나 반갑고 기쁘겠습니까?
나사로의 가정에는 경사가 난 것입니다. 또 전에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온 마을에 퍼지고 또 다른 지방에서까지 와서 마르다의 집은 용신할 수 없게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에 여념이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천국 복음은 항상 어디서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전파하시고, 넓은 들판에서도 가르치시고, 집안에서나, 회당에서나, 어디서나, 천국에 대한 말씀을 전파하셨든 것입니다.
②우리 신앙인 들이 살아가는데 우선적인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들은 세상일에 바쁜 나머지 주님의 말씀 듣는 일과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실현하는 일을 결코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이 말씀 속에 등장하는 삼남매의 행함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들의 믿음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만약에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 오늘날 우리들은 마음과 몸이 분주한 마르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잘못된 것을 발견하여야 하겠습니다.
마르다는 이 집안의 어른입니다. 어른답게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마음과 몸이 분주하였습니다. 이러한 마르다의 모습에서 우리는 마르다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또 집안일도 충실하게 잘 돌보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40절)고 함은 그녀가 정성을 다해 주님을 공궤 하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염려도 하고 근심도 했던(41절)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주님을 대접하려는 마르다의 마음은 복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쉬움을 주는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마르다 에게 한 가지 책망 받을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르다가 예수님과 그의 일행을 육신적으로 대접하기 위해서 너무도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분명 많은 양의 음식을 아주 다양하게 빈틈이 없을 정도로 준비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르다는 여러 가지 많은 일로 해서 분주하였고 결국 그 일로 인해 염려하고 근심하였습니다. 실로 마르다는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대접하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에 소홀히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를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①예수님을 위하여 열심히 준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②그러나 그런 일로 분주한 것보다는 더 중요한 것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 예배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③많은 것으로 대접하려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하려고 하다가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많은 것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한 가지라도 충성되이 하여야 합니다. 헌금도 많이 하려고 하면 한 푼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마르다는 결국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다가 동생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는 것을 불평하게 되고 또 예수님에게도 원망을 하게 됩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우리는 세상의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 영혼을 유익하게 하는 데에 있어서 방해가 될 때가 많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바쁜 세상사는 우리들의 경건 생활을 방해하고 또 결국에는 불평과 노예로 옭아매는 덫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얼마나 바쁘고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그러나 그 바쁜 것이 과연 주님을 위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복음성가를 한 절 부르겠습니다.
눈물의 참회록
1. 지금껏 내가 한일이 주를 위한 것이었는지
지나간 세월 돌이켜 주님 앞에 아룁니다.
이한 몸 주를 위하여 목숨 버린다 했으나
주의 영광 뒤로하고 나의 자랑 앞세웠으니
내가 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예수 이름을 파는 가롯유다와 같습니다.
2. 한평생 주를 위하여 변함없이 살겠다던
베드로 같은 믿음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맘 속엔 허영과 교만만 있고
주님 지신 십자가는 짐이 된다 벗었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율법을 앞세우는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2. 좋은 것을 택한 마리아의 모습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택한 것은 예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더 좋은 편'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선택에 의하여 결정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처럼 빼앗기지 아니하는 ‘더 좋은 편'을 택해야만 합니다. 신앙생활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 삶으로 형성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일로 분주하며 불평하게 되었던 마르다와는 달리 마리아는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모든 처분을 주님께 맡기며 오직 주의 말씀만을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리아는 언니 되는 마르다와는 달리 자기가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 한가지만으로도 만족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오직 주님의 말씀, 주님의 은혜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신 더 좋은 편의 삶의 무게와 내가 택하여 붙잡은 삶의 무게를 잘 달아 봄으로 소멸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신앙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신실한 신앙의 뿌리를 주님께 내리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항상 소유해야 하며,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으십시오. 내 인생의 뿌리가 튼튼하게 내려져, 내가 원하고 바라는 삶의 열매를 주님 안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선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라”(마24:32) 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이미 잎사귀가 무성해진 여름입니다. 여름은 표면으로는 무성한 계절이요, 이면에서는 부패하는 계절이며, 가을 전의 계절로서 경고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유두고’는 창가에 걸터앉아 말씀을 듣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좋은 삶의 자리를 택하십시오. 내가 택하여 살고 있는 삶의 자리가 바로 내 인생인 것입니다.
<예>1904년 영국 왕 에드워드 7세가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W.Booth)를 버킹검 궁으로 초대를 하여, "부스 장군! 당신은 정말 훌륭한 일을 했소. 위대하오. 수십 년의 박해와 고난을 극복한 장군께 경의를 표하오."라고 37년간이나 박해를 받아왔던 그를 칭송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방명록을 쓰라고 했지요. 그러자 그는 펜을 들어 "폐하, 어떤 이의 야망은 예술, 어떤 이의 야망은 명성, 어떤 이의 야망은 돈, 그러나 나의 야망은 인간의 영혼입니다" 라고 자신의 삶의 선택을 요약해 썼답니다. 부스의 나이 75세 때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내가 내 인생에 무엇이 가장 유익한 것인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택한 것은 주님의 은총이요, 평강이요, 영적인 지혜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마리아처럼 이것들은 결코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아니하도록 항상 더 좋은 것을 택할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그러므로 삶의 우선순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둘 때에야 우리들은 비로소 다른 모든 것들을 바르게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동생 마리아가 분주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마르다에게 오히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어떤 것도 마리아가 택한 것을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①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깨달아서 그것을 내 것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② 좋은 것을 택하였으면 열심히 하여야 하며 절대로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즉 이 세상의 일들과 이 세상에서 얻는 것들은 언젠가 우리들로부터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는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들에게서 빼앗아 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3.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비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또는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고, 신앙인들 속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육신을 위하여 다른 것들도 때로 유익하지만 영적인 것은 필요 불가결한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육신 때문에 간혹 필요한 것이지만 영의 것은 언제나 반드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또 어느 한 순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평생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적인 다른 것들은 부분적으로 필요하나 영적인 것은 전반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떤 것들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필요하나 영에 속한 신령한 것은 모든 인류에게 다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① 어느 편을 택하였습니까.
마르다와 같이 분주하고 열심은 있는 것 같으나 세상적인 것을 택하였습니까? 아니면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였습니까?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믿음이 달라집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바꿔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순간의 선택이 여러분의 영원한 생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② 지금 여러분들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분주하고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앞에 와 있습니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의 믿음의 자세가 잘 못 되었다면 빨리 깨닫고 새롭게 고쳐져야 합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마르다형의 신자와 마리아형의 신자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대접하는 그 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에 매달려서 정작 좋은 것, 한 번 흘러가면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놓친다면 그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잘못된 일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해야 할 일이 아무리 많이 있다고 해도 그 중에서 자신의 영원한 구원과 영생의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본문 42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리아는 이 좋은 것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은 온갖 조미료를 넣어서 맛있게 만든 음식이 아니라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귀 기울여 듣는 마리아의 진지한 경청의 태도가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다른 동네 사람들보다 배나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부지런하고 근면한 것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큰 덕목 중에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바쁘게 사는 것만이 근면하고 성실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바쁜 것이 더 좋은 것을 얻는데 지장이 된다면 과감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바쁜 생활이 구원의 생활, 은혜의 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된다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소홀히 한 적이 없습니까? 오늘 못 들으면 다음에 듣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넘어간 적은 없습니까? 그리고 마르다처럼 자기만족을 채우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을 한 적은 없습니까?
이 시간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좋은 것을 택하고 이 축복을 절대로 남에게 빼앗기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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