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나팔 1 (계 8:6-7)
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이 시간에는 “복음의 나팔”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복음은 우리 심령을 살리는 나팔입니다. 예수님께서 요5:24-25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곧 이 때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죽은 심령의 부활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믿을 때 우리 죽은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살아날 뿐 아니라 말씀이 깊이 다가올수록 변화합니다. 본문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는 행2:17-21과 롬1:17입니다.
행2:17-21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니까 사도행전에서 신령하게 적용하였듯 일곱 나팔의 천재지변과 전쟁 같은 상황은 문자대로 해석하기보다는 비유나 상징적인 계시록의 특징에 맞게 신령한 관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즉 성령의 임하심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롬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처럼 복음 나팔이 성령으로 울려 퍼질 때마다 각인의 심령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점점 더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러 옛사람은 십자가 아래 사라지고 더 의로워지고 변화되어 갑니다.
그러니까 일곱 천사가 불 나팔은 오순절의 베드로의 말씀과 같이 심령을 살리는 능력 있는 복음이며 일곱 나팔은 그 복음 앞에서 변화되어져 가는 우리의 심령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럼 복음의 나팔이 심령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먼저 부패하여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고 구원 얻기에 무능한 나를 구원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예수 없이는 살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첫째 천사의 나팔입니다.
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본 재앙은 하늘에서 살인적인 피 섞인 우박이 쏟아지고 또 하늘에서 내려온 불길이 땅을 휩쓸어 땅과 수목과 각종 풀들의 삼분의 일이 불타 없어집니다. 이 융단 폭격 앞에 피할 곳도 없고 살아남을 수도 없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수 10장입니다.
수 10장을 보면 기브온을 침공한 아모리족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여호수아 군대의 칼에 죽은 자들보다 하늘에서 떨어진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습니다(수10:11).
생각해 보십시오. 수10:2에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했듯이 안에서는 이 강한 기브온족이 대들고 밖으로는 여호수아 군대가 포위하여 칼은 번뜩이고 하늘에서는 주먹 같은 우박이 쏟아지니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해와 달까지 머물게 했던 전쟁 아니었습니까?
이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기브온족이었지만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언약에 따라 돌보아주시는 은혜였습니다. 언약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다는 이 약속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 때문에 싸워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피 섞인 우박만이 아니라 덧붙여 불이 나와서 함께 땅에 쏟아집니다. 6일 전쟁 때도 하늘에서 불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닙니다. 지구상의 땅과 수목과 풀의 3분의 1을 사를 만큼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여기 불은 무엇일까요? 렘5:14을 참고하면 불은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입니다. 시18:7-8에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피 섞인 우박은 우리가 본래는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음을 보여주며, 하늘의 불은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임을 각각 보여줍니다. 엡2:3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도 불구하고 기브온과 같이 우리를 사랑으로 선택하시고 예수 믿게 하셔서 구원해 주신 은혜를 깨달으시란 말씀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과 땅위에서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 속에서 이 진리를 깨달을 때 가슴 치며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과 같습니다.
행2:36-37에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우리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우리가 못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예수의 복음을 만났다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통해서 구원해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하며 감당할 수조차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 나팔의 효과입니다. 이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이 하늘에서 쏟아진 우박과 불로 땅의 삼분의 일이 타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고 각종 푸른 풀도 탔는데 땅과 수목과 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땅은 세상적인 우리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선지서에 이 땅에 시내가 흐르고 꽃이 피며 새가 노래할 것이라는 예언은 일차는 우리 마음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묘사한 것입니다. 우리 세상적인 마음이 심판을 받습니다.
다음에 수목과 풀은 우리 인성의 상징입니다. 성경에서 인생을 풀이라 하고 수목은 본래 유한한 인성의 상징으로 곧잘 쓰였습니다. 그래서 사40:6-8에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그런데 그냥 풀이 아니라 각종 푸른 풀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이 내세우는 자기 인간의 의로움, 자기 공로, 자기 선행, 자기의 주장, 자기의 부요와 권세와 개성 등 온갖 것들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자기가 하나님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심판을 받아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회개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회개하기 전에는 우리 속에서 제 멋대로 존재했는데 복음의 말씀 앞에서 가슴 치며 회개하니 이런 죄악들이 더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즉 하나님의 진리 말씀 앞에서 내려놓게 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삼분의 일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체를 다 심판하시지 않고 왜 삼분의 일입니까? 3은 완전하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셋 이라는 말이 아니라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 셋 중에 하나만 사라져도 완전의 의미는 사라지고 맙니다.
이처럼 복음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육신 중심으로 하나님 되어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잘못됨을 깨닫고 내려놓게 됨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내가 하나님 되어 내 중심으로 살아온 걸 생각하면 어찌 가슴 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가 하나님을 뵈올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사6:5) 외쳤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의 복음을 들었다면 그리고 진정 은혜 받은 심령이라면 이런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야 정상입니다. 이 귀한 역사는 복음의 나팔을 진정 듣고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신 은혜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하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욱더 복음의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하나님 되어 살아왔던 죄인임을 깨닫고 가슴 치며 회개하고 돌아오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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