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의 인증과 자세 (계 22:6-9)
| <성경 본문> 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6절 Καὶ εἶπέν μοι· Οὗτοι οἱ λόγοι πιστοὶ καὶ ἀληθινοί. Καὶ Κύριος ὁ Θεὸς τῶν πνευμάτων τῶν προφητῶν ἀπέστειλεν τὸν ἄγγελον αὐτοῦ δεῖξαι τοῖς δούλοις αὐτοῦ ἃ δεῖ γενέσθαι ἐν τάχει. 7절 Ἰδοὺ ἔρχομαι ταχύ. Μακάριος ὁ τηρῶν τοὺς λόγου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τοῦ βιβλίου τούτου. 8절 Κἀγὼ Ἰωάννης ὁ βλέπων ταῦτα καὶ ἀκούων. Καὶ ὅτε ἤκουσα καὶ ἔβλεψα, ἔπεσα προσκυνῆσαι ἔμπροσθεν τῶν ποδῶν τοῦ ἀγγέλου τοῦ δεικνύοντός μοι ταῦτα. 9절 Καὶ λέγει μοι· Ὅρα μή· σύνδουλός σου γάρ εἰμι καὶ τῶν ἀδελφῶν σου τῶν προφητῶν καὶ τῶν τηρούντων τοὺς λόγους τοῦ βιβλίου τούτου. Τῷ Θεῷ προσκύνησον. <화자에 대한 연구> ㄱ. 공동 인증 – 증인의 원리에 따라 계시록의 신뢰도를 높여줌 ㄴ. 화자 구분 – 자세히 보면 어렵지 않음 ㄷ. 계시록의 정경성 - 계시록 자체에서 주님이 인증하심 <본문이 인증하는 요한계시록> 1. 신실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 - 6절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2.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3.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씀 -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4. 천국복음 -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계시록에 대한 자세> 1. 믿음의 자세 - 6절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2. 실행하는 자세 - 7절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3. 감격적인 자세 - 8-9절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4. 지키는 자세 - 9절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 5. 인봉하지 않아야 - 10절 “인봉하지 말라” 6. 신앙에 적용해야 -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7. 가감하지 않아야 - 18-19절 “이것들 외에 더하면 - 제하여 버리면" 8. 은혜의 안내서 - 19절에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
<다양한 견해들>
여기에 대한 견해를 보면 ‘전체 결론 부분으로 지금까지 진술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간략한 개괄과 마지막 인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의 증언자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천사와 요한으로 믿어진다. 이제 요한이 결어를 첨부하는데 그 근본적인 목적은 그이 책의 권위를 확증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나오는 연결은 대단히 산만한데 요한이 이 부분을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는 의견도 있다. 화자가 다소 산만하게 이어진 듯하나 결론은 신적 계시로서 그 책의 확실성과 종말의 임박을 나타내고 있다. 이 결론을 맺는말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할 것은 별로 없다. 7절의 현재형인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주님은 벌써 오시고 계신 것이다. 이 예언은 미래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가 예언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신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는 늘 미래에 곧 오시며 그 오심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재림의 시간은 우리들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따른 것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등이 있습니다. ☞ 복음으로 보면 ‘계시록의 권위와 해석 시 주의할 점’ 등을 보여줍니다.
<화자에 대한 연구>
ㄱ. 공동 인증 – 여러 대화자가 번갈아 등장하여 산만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마18:16에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는 증인의 원리에 따라 예수님과 천사가 인증하고, 성령과 신부가 한 문서에 공동 인증이라도 하는 듯한 문법 형태는 도리어 계시록의 신뢰도를 높여줍니다. 여기서 요한은 감격스러운 나머지 천사에게 절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정도였습니다.
ㄴ. 화자 구분 – 화자에 대한 구분도 어렵지 않습니다. 개정역 성경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7절과 12절의 “내가 속히 오리니”는 누가 보아도 “다시 오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6절의 “그가 내게 말하기를”, 8절에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10절에 “또 내게 말하되” 는 당연히 본서의 기자인 사도 요한입니다. 그리고 6절은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했는데, 이는 요한이 간접화법으로 전달한 천사의 말입니다. 8-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ㄷ. 계시록의 정경성 - 요한계시록을 마감하면서 본서가 신실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증합니다. 신학적 용어로 성경에 속하는 책을 정경(Canon)이라고 부르는데, 정경이란 원래 ‘기준, 표준, 척도, 모델’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이 정경이 된 것은 계시록 자체에서 주님이 인증하시고, 예수님의 수제자 요한이 기록했고,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정경에 대한 확신은 변치 않았는데, 그것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주님이 나서서 정경성을 입증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인증하는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일까요?
1. 신실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6절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이 말은" 내용상으로 계1:1-3의 반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계시록 전체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여기 “신실하고”의 원문 (πιστοὶ, pistoi, 피스토이)는 형용사 πιστός (pistos)의 복수형으로, "신실한, 충성스러운, 믿을 만한, 확실한"이라는 의미인데, 단순히 '믿을 수 있다'는 수동적인 의미를 넘어, '능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변함없이 충성스러운'이라는 강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하신 인증과 같습니다. 다른 책과는 달리 계시록에 이런 인증성 기록이 많은 것은, 함부로 정경에서 삭제됨이 없도록, 나아가 구원하신 예수의 복음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지라” (ἀληθινοί, alēthinoi, 알레띠노이)는 형용사 ἀληθινός (alēthinos)의 복수형으로, "참된, 진실한, 진짜의, 본질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역시 단순히 '거짓이 아닌'이라는 의미를 넘어, '본질적으로 진실하고 완전한'이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이는 단순히 사실(fact)을 넘어, 존재론적인 진실성(truthfulness)을 나타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한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명과 능력을 가진 실재적 진리임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하면서 인증한 천사는, '일곱 대접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21:9)입니다. 이 천사는 대접재앙에서 기도의 결과인 성령의 은혜를 보여주었고(계16:1-21),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주었고(계17:1), 어린 양의 아내 새 예루살렘도 보여주었던 천사인데(계21:9), 여기서 또 계시록의 참됨과 신실성을 보여준 것은 그 의미가 큽니다. 그러니까 이 천사는 계시록의 복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체험한 산 증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과 악을 처리할 뿐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광스럽게 구원하심을 보인, 계시록의 그 결과로 볼 때 ‘이 말씀이야말로 참되고 신실함이 확실하더라’는 산증인으로서 인증입니다. 만약 마7:6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혹은 마11:19에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하셨듯, 결과로 입증되지 못한다면 거짓된 이론일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계시록은 결과로 입증된 참된 진리입니다.
2. 계시록은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입니다.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선지자들의 영이란 성령의 영감 받아 성경을 기록한 성경 기자들을 연상시킵니다(벧전1:10). 그렇게 하신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계시록을 받아쓰게 하셨다는 것은 계시록이 동일한 영감으로 쓰인 책임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요5:40에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하신 해석의 원칙이 계시록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계시록의 곳곳에 나타나 있는 복음적인 힌트들이 본문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조금만 생각해도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고후3:14-16).
3. 계시록은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계1:1에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 했는데 여기서 다시 강조합니다. 여기 "반드시"는 원문에 (δεῖ, dei, 데이)로 "필요하다, ~해야 한다, ~임에 틀림없다, 반드시 ~이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필연성, 의무, 또는 신적 필연성, 즉 절대적인 확실성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속히"는 새번역에서 "곧 일어나야 할 일들"로 번역했습니다. "장차 될 일"(1:19)은 본문의 "반드시 속히 될 일"과 동의어로, 이런 절대적 확실성은 초림 성령강림 재림 등 언제나 구속사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여기 ‘오신다’는 원문이 (ἔρχομαι, erchomai, 에르코마이)는 놀랍게도 원문상 현재형으로 지금도 임하고 계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지금도 믿는 자와 사모하는 자에게 영적으로 임하시고, 장차 재림으로 온전히 임하실 것입니다. 롬8:9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였고, 롬5:5에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한 말씀처럼, 지금도 임하시는 주님을 갈망하시기를 바랍니다.
4. 계시록은 천국복음입니다.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이 역시 계1:1에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하신 서론의 반복입니다. 그의 천사란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율법도 천사가 전했지만(행7:53), 계시록 역시 천사를 통해 주셨으니, 계시록도 다른 성경처럼 정경성이 충분할 뿐 아니라, 다른 성경과 같이 예수로 해석해야 할 천국복음입니다(마24:14, 마28:19-20). 예수님께서 천국을 여러 비유로 설명하신 것과 같이(마13:34-35), 계시록도 상징적인 부분은 상징성을 살려 해석하되, 계시록에 사용된 그 비유와 상징마저도 성경에서 가져왔거나 힌트 된 것이라는 점에서 성경에서 그 용례를 찾는다면 어렵지 않게 열리게 됩니다.
계시록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히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라 했듯이, 계시록 역시 여러 모양과 여러 부분으로 기록된 책 중 하나입니다. 계시록의 특징은 성도를 양육하기에 합당하도록 영적 초보에서 시작하여 온전함에 이르기까지 신앙훈련의 교본으로 필요한 내용이 잘 짜여 있으며 주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부흥운동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책입니다.
서론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1:3)로 시작하여, 결론에 주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 사인해 주시고, 성령과 천상의 성도와 천사와 교회가 등장하여 이 책의 권위와 내용과 중요성 등을 거듭 부각한 예는 계시록 말고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계 22장은 계시록의 결론임과 동시에 신구약 성경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1. 계시록에 대한 자세는 믿음입니다.
6절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계시록의 서두에서와같이 계시록에 대한 정경성을 여러 방향에서 시사합니다. 즉 신실하고 참된 말씀이며, 성령의 영감을 받았던 선지자들과 동일한 계시를 받아 쓴 참되고 신실한 책이라고 말씀합니다(히1:1-2). 그러므로 계시록에 대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론에서 무너지면 모두 무너지고 맙니다.
2. 진리를 실행하는 자세입니다.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셨지만, 여기서는 “지키는 자”만 언급하신 것은 9절에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한 것처럼 지키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을 배웠는데 변화가 없다면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날마다 경배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리니”는 앞에서 설명했듯 현재형으로 지금도 임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이 순간에도 임하신다는 점에서 이를 소개한 계시록이 어떤 말씀일지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처럼 계시록은 예수 믿어 구원받는 복음의 책이요, 지금도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과 부흥의 책이요(사59:19), 장차 임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의 책입니다. 이 현재형의 의미를 안다면 계시록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알게 됩니다(계1:3). 그러므로 계시록은 초대교회가 모범을 보였듯이 예수를 믿고 온전히 예수 안에서 변화되어가는 복음과 은혜의 책입니다. 계시록을 배웠다면 천상 성도들을 방불할 정도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장차 오실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3. 계시록에 대한 감격입니다.
8-9절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요한이 계19:10에서 사람에게 경배하는 실수를 여기서 천사에게 다시 반복합니다. 이처럼 실수를 기록함은 그만큼 계시록이 우리를 온전케 하는 감격스러운 진리임을 역설적으로 시사한 것입니다.
요일3:2-3에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했듯, 계시록의 메시지는 우리를 거룩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로운 말씀을 모르고 공포로 가득 찬 세속사의 전개로만 해석하여 성도들을 절망에 빠뜨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4. 계시록을 지켜 복을 받아야 합니다.
9절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 1:3이나 22:7의 “이 예언의 말씀을 -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즉 이 천사는 우리 형제일 뿐 아니라 복된 계시록의 말씀을 지켜서 이 영광에 이른 복된 형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형제인 천사는 계시록을 지키는 자의 모델입니다. 이 사실은 계시록이 어떤 책임을 다시 입증해 줍니다. 즉 계시록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부족함이 없는 천국 백성을 훈련하는 책입니다.
한편 이 천사는 사역자의 모델로서 우리에게 큰 비전을 줍니다. 고후6:1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했듯이, 우리도 이 땅에서 이 천사와 같이 귀히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고전3:9). 유념해야 할 사항은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9절) 했듯 겸손해야 합니다. 계시록이 더 온전히 해석되기를 바라며, 계시록을 교재 삼는다면 천국 백성과 하나님의 동역자를 양육함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5. 계시록을 인봉하지 않아야 합니다.
10절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슬픈 일은 계시록이 인봉된 책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의 태도는 인봉된 책을 다루듯 한다는 점입니다. 상당수의 주석가들이 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았고, 주석이 있다 해도 내용은 여전히 인봉된 책을 보는 듯합니다. 혹자는 핵무기 등이 등장함에 따라 이제야 계시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2,000년간은 인봉 되었다는 것입니까? 계시록도 다른 성경과 같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전제하에 해석하되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신약으로 구약을 해석하는 전통적인 성경해석법으로 다가가면 풀리는 책입니다.
6. 계시록을 신앙에 적용해야 합니다.
10절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성경에서 “때”는 구속사의 경륜과 관련이 깊습니다(막1:15, 갈4:4). 여기 “때”는 궁극적으로는 재림의 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구원과 거룩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통하여 죄인들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막1:15), 더욱 영적으로 장성하여 온전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과 비유와 이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그토록 강조하셨건만, 많은 이들이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주를 믿어 영접한 성도에게 주님은 임하셨고,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며 경배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더욱 충만하게 임하시며, 그리고 어느 날엔가 재림으로 온전히 임하실 것입니다.
7. 가감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18-19절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미 계시록의 7복에서 다룬 바가 있듯이 성경을 가감한다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특히 비유와 상징은 어떤 것에 대한 묘사이기에 한 마디만 가감하거나 그 내용이 통일성을 이루지 못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가감하지 않는 이 원칙은 계시록 해석에 중요한 힌트입니다. 한 마디도 가감하지 말고 종이 한 장에 본문이 제공하는 그 설명을 옮겨놓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성경에서 그 용례를 찾고, 계시록 자체에서 주고 있는 교훈이나 힌트 등을 참고해보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어느 날엔가 샛별이 떠오르듯 그 답이 보일 것입니다(벧전1:19-21).
8. 계시록은 은혜에 참여하는 안내서입니다.
19절에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신 경고 역시 계시록 해석에 중요한 힌트입니다. 즉 계시록은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하도록 알려주는 복된 책이라는 힌트입니다. 이 경고대로 제하지 않고 본문을 모두 나열하고 종합하고 분석하고 관찰할 때 계시록이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하는 길을 말씀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의 해석에서 그 사실이 정확히 입증되었습니다.
18절에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했듯, 재앙처럼 보이는 몇 마디 말씀만 붙들고 자기 상상을 추가하여, 계시록을 핍박 전쟁 기근 지진 질병 공해 사망 등 세속사의 전개로만 이해한다면, 계시록의 복음성을 모른 채 두려움에 떠는 절망적인 종말관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해석자들의 문제점은 계시록의 많은 부분을 가감하여 해석의 불모지로 남긴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66권은 성령으로 영감 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계시록 역시 다른 성경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를 신령한 믿음 위에 올려놓기 위한 구원의 진리가 충만한 복음입니다. 이처럼 계시록에 대한 신뢰의 바탕에 설 때 비로소 계시록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 완숙한 믿음에 이른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그리고 본문의 천사의 사역을 하는 영광스런 형제처럼,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고 행함으로 그 풍성한 은혜로 변화 받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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