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주일설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 7장 13-14절)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에 성령이 주시는 감동과 깨달음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여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사랑 안에서 인내하고 절제하는 사순절 시간을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표는 다 다릅니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합니다. 살아가는 방법은 제 각각 다양하지만 결국은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은 똑 같습니다.
내가 앞으로 얼만 큼 숨을 쉬고 살아갈 날이 확보 되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그 시간은 분명히 소비 되고 있고, 언젠가는 단 1초도 허락되지 않는 끝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해 나가야 합니다. 건강한 성인은 하루 6,000번 이상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입는 옷, 먹을 음식, 만날 사람, 입으로 하는 말, 귀로 듣는 음악 등, 일상에서 우리는 계속적인 선택을 요구 받고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은 아주 많은 부분에서 결과의 차이로 나타날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하여야 하는 것을, 넓은 문과 좁은 문, 딱 두 가지로 한정해 놓았습니다.
두 가지 중의 하나를 택하라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 문 이외에는 어떤 대안도 없다는 겁니다. 적어도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우리 모두는 이 두 가지 문 앞에 서 있는 셈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편하면 편할수록 좋은 선택을 하기가 쉽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싫어하고, 자꾸 변화를 주는 것보다 익숙하게 해왔던 것 그대로를 계속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만나는 친구도 단촐해 지고 움직이는 동선도 최소화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좋을 수 있으나 여기에 큰 허점이 있습니다. 너무 편안하다 보니 편안함이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그 편안함이 얼마나 좋은지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것보다 더 획기적인 어떤 좋은 편안함을 경험하지 못하는 한은 오히려 그 편안함이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자, 이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모습이 압축되어 있는 두 구절을 확대해서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 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제자들을 포함하여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수많은 무리 들입니다. 그들의 거의가 유대인들이었고,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로 선택 받은 백성이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었습니다. 앞서 편안함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고 설명 드린 것처럼,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이미 확보해 놓은 당연한 내 것이라는 자의식이 너무나도 강해서 굳이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한 어떤 절박함이나 간절함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에 대하여 부연 설명 하시기를 그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며 작고 협착(험해서)해서 찾는 자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이 당장에 보이는 현실이라면 생명은 희미하게 가려진 먼 미래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이익과 유익이 없이 그저 막막하고 답답하고 복잡하고 진척도 없고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면,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빨리 도망가고 싶을 겁니다.
그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은 무엇을 하라는 말씀일까요?
좁은 문은, 단 하나의 문, 어떤 다른 곳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문을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외길,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구원의 은혜로 열어 놓으신 생명의 문을 말합니다. 예수님 자체가 곧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군중들을 향하여 좁은 문인 나에게로 나아오라고 명령 하셨지만, 이것은 명령이기 전에 제안이기도 합니다.
생명과 영생, 하나님 나라가 내 눈 앞에 확실하게 보여 진다면 당장 멸망을 선택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장 보이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나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넓은문은 우리 눈 앞에 날마다 놓인 현실이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편하고, 쉽고, 좋아 보이고, 안전해 보이고, 즐거워 보이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문으로 들어갈지,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갈지를 요구 받고 있습니다. 그럼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생명의 좁은 문으로 나아가는 것일까요?
이미 다 아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순절 기간에 우리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세 가지를 말씀 드립니다. 들으시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시는 선택과 결단이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영생의 좁은 문으로 인도함 받으려면, 날마다 나의 믿음이 굳건하게 지켜지기를, 사모하고, 갈망하고, 동행하기를 날마다 간구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말씀 하시기를,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네 믿음 대로 될 지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이런 식으로 믿음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확신이 있는 가를 물어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인이시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에 이르고, 부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이 믿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 한지를 깊게 숙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거나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기 위한 배움에 대한 수고를 게을리 합니다. 심각한 것은, 지식적이고 이성적으로 받아 들인 단편적인 학습 효과가 곧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말 생명의 좁은문으로 들어가시기를 원하신다면, 날마다 무릎 꿇고 믿음에 대한 사모함과 갈망함과 동행을 요청하시며 간절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 하십시오.
“오늘 하루,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더 알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오늘 하루, 나의 삶 가운데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기를 간절히 갈망 합니다.”
“오늘 하루, 내 친구 되신 예수님이 나와 항상 동행하여 주셔서 생명의 좁은 문으로 인도함 받는 믿음의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 주옵소서”.
이렇게 날마다, 1년 365일 기도하시면서, 나의 언행심사에 주의하며 살아가려는 겸비한 자세를 취하신다면 좁은문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이 제목으로 날마다 기도하며 살리라 즉시 결단하고 실행하는 분에게 믿음 충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영생의 좁은문으로 인도함 받으려면, 죄와 죽기까지 싸워 이기도록 거룩한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셔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을 없게 하여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려는 것이 사탄의 전략 전술이고 우리는 날마다 너무나 많은 죄의 유혹에 노출된 채로 살아갑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도저히 죄를 이겨낼 방법은 없습니다.
정말 죄와 죽기까지 싸우려는 비상한 각오와 실천이 있지 않으면 우리는 날마다 죄를 범하고, 죄 때문에 근심하다 회개 하고, 돌이켜 살다가 또 죄를 짓는 악순환을 반복할 겁니다. 맨날 죄 짓고 회개하느라 정신 못차리다 보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겨자씨 만한 믿음 조차 쌓아가기 어렵습니다.
이런 나약한 믿음의 상황에서 좁은문을 선택하기는 절대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성령님은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과 끈질긴 죄성을 막아내고 끊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령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이 죄의 유혹에서, 죄의 타락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입니다.
성령의 일하심은 매우 민감하고 세심 합니다. 내가 하려는 말과 행동 앞에서 잠시 멈추시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 먼저 물어보시고, 알려주시는 감동이 무엇인지 듣고 순종하는 훈련과 습관을 계속 하십시오. 그러면 언젠가는 나도 성령님과 같이 민감해지고 세심하게 반응 하시게 될 것입니다. 거룩함 없이는 믿음도 없습니다. 거룩한 성령님과 동행동사 하시는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영생의 좁은문으로 인도함 받으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열매 맺는 삶을 살아내셔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 하실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소위 제자도에 대하여 말씀 하시기를, “모든 재물을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대로 행한다면 진정으로 생명의 좁은문으로 인도함 받는 사람입니다.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가 믿음의 척도가 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면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욕심과 정욕(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 하는 사람은, 죽은 자신의 뜻을 주장 할 수 없게 되고, 살아계신 예수님(하나님)의 뜻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럼 자기 십자가는 또 무엇입니까? 나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혜와 덕을 세우게 하시는 은사 주심에 항상 겸손한 자세를 취하며, 내가 보고, 듣고, 깨닫고, 믿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상과 이웃에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내 개인의 고난이 자기 십자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복음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전해지는데 있어서 죽도록 헌신하고 충성하는 나의 역할과 순종을 의미 합니다.
우리는 믿음 없는 자가 아닌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입니다. 은혜 없는 자들이 아닌 한량 없는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사랑 없는 자들이 아닌 사랑 넘치는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죄 있는 자들이 아니라 죄 없다고 의인으로 선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둠 아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빛 아래에 있는 천국의 시민권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굳건한 마음 가짐으로, 내가 받은 믿음, 은혜, 사랑, 의로움을 우리 이웃에게 널리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부활 영생을 증언하는 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핵심입니다.
오늘부터 전도 대상자를 품고 기도하며, 그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이 곧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작은 실천이 될 것이고, 그러한 삶을 계속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곧 생명의 좁은 문으로 인도함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 좁은문과 생명, 넓은 문과 멸망, 두 가지의 선택 앞에 섰습니다. 모든 선택의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곧 예수님이기에, 생명의 좁은 문으로 인도함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음성대로 순종 할 수 잇어야 하고, 열매로 내 삶의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좁은문은 길이 작고 협착하요 나아가는 자가 적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길이 당장은 어렵고, 지루하고, 불편하고, 짜증나고,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며,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며, 보이지 않는 영생을 약속 받았습니다. 당장 보이지 않지만 이것을 충분 합니다. 구원의 믿음, 곧 예수님을 은혜의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그저 감사와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백성들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예비된 백성이기에 고단한 오늘 하루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사순절 기간에 “생명의 좁은문으로 들어가라”는 우리 주님의 음성이 선포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 하시겠습니까? 저와 함께 우리 모두가 기쁘고 감사하게 이 명령을 받아 들이시고, “예, 주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제가 그 문으로 감사함으로 나아갑니다. 제 영혼을 붙잡아 주시고 소망의 그 나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담대히 선포하시는 강력한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의 친구 되신 주님과 동행하시며, 작고 협착한 좁은 문으로 나아가셔서 믿음으로, 은혜로, 소망으로 힘차게 전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이 좁은 문이요 생명의 문이었음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도 그 길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순종하며 좁은 문으로 나아가오니 소망으로, 영생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 나이다. 아멘.
'신약 > 마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도의 값진 흔적 마11:25-30, (0) | 2024.07.19 |
---|---|
거짓 선지자를 경계하라(마 24:23-26; 7:15-19) (0) | 2023.06.01 |
십자가를 지고 따르자(마16:21-24) (0) | 2023.02.23 |
준비하라 마25:1-13 (0) | 2022.12.17 |
5천배의 기적을 일으키자 마태복음14:15-21 (1) | 2022.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