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나팔의 준비 3 (계 8:3)
복음나팔의 준비 3 (계 8:3)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이 시간에도 “복음나팔의 준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순절의 베드로의 설교와 같이 심령을 살리는 복음의 나팔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3절부터는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납니다.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앞과는 다른 새로운 준비의 성격임을 시사합니다. 즉 앞에서는 말씀의 준비였다면 여기서부터는 기도의 준비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잘 준비해도 기도 없이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복음전도로서 승리한 기록인데 그 승리의 보이지 않는 배후에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예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나팔을 위한 기도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3절 “제단 곁에 서서” 이 말씀에서 천사가 선 위치가 나타납니다. 그 위치는 제단 곁입니다. 이 제단은 분향단입니다. 분향단은 금단이라고도 하며 이 단은 하나님의 법궤 앞에 있어 기도를 상징하는 단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분향단 곁에 섰는데 성도들이 드린 기도의 향을 받기 위함이지만 그 선 위치가 주는 교훈이 큽니다. 기도는 천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기도를 사람에게도 하고 천사에게도 하는데 그것은 성경 어느 부분에도 나타나지 않는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혹은 어떤 이들은 사람 들으라고 기도하는데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또 천사가 분향단 곁에 섰다는 것은 그곳은 천사의 자리이지 성도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스스로 기도의 위치에 있지 않고 남이 하는 기도 구경이나 한다면 그는 제단 곁에 선 사람입니다. 천사의 자리에 서지 말고 정확한 기도의 위치에 서시기 바랍니다. 기도란 어느 개인이나 주의 종들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서로 서로 해야 할 성도의 의무입니다.
천사의 위치에서 성도가 서서 기도해야 할 자리가 간접적으로 나타납니다. 분향단 옆도 아니요 뒷도 아니요 앞입니다. 즉 하나님 앞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해야 합니다.
몸만 나오라는 것 아닙니다. 몸은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마음은 세상에 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오면 우리는 막상 무엇을 기도할 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책임지시고 주장하시고 인도하십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의 기도여야 합니다.
“금향로를 가지고” 천사가 금향로를 가졌는데 금향로는 계5:8에 금대접이라고 했습니다. 왜 금일까요? 금은 먼저 신성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서 드려져야 하고, 또 신성이니 성령으로 진심이 담기게 드려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욕심과 무지로 가득한 주장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늦습니다. 요일5:14에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유익합니다.
롬8:27에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전파를 위하는 제목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 받아 기도할 때 복음나팔을 위한 기도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금향로”의 금의 두 번째 의미는 보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금은 보배로운 믿음을 상징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믿음으로 도우심이 오니 보배롭지 않나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막11:22에서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약1:6-7에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찰스 스펄전목사는 “기도는 지렛대이다. 기도라는 지렛대를 이용하면 어떠한 것도 움직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기도는 능력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받으실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1974년 우리나라 대학생선교회에서 엑스플로 74라는 집회를 계획할 때 당시 기독교 인구의 10분의 1인 30만 명을 합숙 훈련시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당시 중순장으로 봉사하는 영광을 얻었지만 말이 그렇지 불가능한 문제가 재정, 동원, 교육, 숙식, 수송 등 74가지의 문제나 되는데 그 앞에서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을 때 오로지 믿음으로 구하고 밀고 나가 74 가지의 기도가 다 응답되었습니다.
이 믿음 가지고 복음전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불신자도 어렵지만 신자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교인들이 다 자기식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그 틀을 바꾸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차라리 불신자 전도해서 훈련시키는 편이 더 쉽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가장 어려웠던 대상이 당시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라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4. 복음나팔이 되려면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천사가 “많은 향을 받았”다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진실하고 많은 기도여야 한다는 것을 봅니다. 형식적인 기도로서는 복음나팔이 될 수 없습니다. 입술은 복음의 내용일지 몰라도 그 말씀으로서는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후11:11에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했습니다.
초대교회 베드로의 메시지에 3,000명씩 회개하고 돌아온 것도 그를 위해 기도하는 마가 다락방의 120명의 기도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찰스 피니라는 부흥사의 배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히 기도동역자 아벨 클렐 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대중 앞에 나선 적은 없지만 기도에 전심을 쏟았습니다. 복음의 운동은 이런 기도운동의 밑받침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5. 복음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여기 모든 성도의 기도라. 한 사람의 기도가 아닙니다. 이처럼 기도는 합심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하셨습니다.
어느 교회 일인데 어느 성도의 남편이 유서를 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남편이 동창회에 갔는데 아내가 버는 돈으로 생활한다고 친구들이 준 핀잔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교인들까지 동원해서 동서남북으로 찾아다니는데 찾을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새벽 2시 경에 교인들이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시골 큰 형님 댁에서 찾았다는 연락이 왔는데 어머니 무덤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오른손에는 농약병을 들었고 입에는 하얀 거품이 흐른 흔적이 있어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입 주위만 약간 타들어갔지 속은 멀쩡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그가 말하기를 어젯밤에 죽으려고 농약을 마시려는데 등 뒤에서 엄청나게 큰 손이 세게 뒤통수를 때려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그 시각이 바로 교인들이 기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합심의 기도는 더 큰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죄 짓는 걸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사람 100명이 있다면 나는 충분히 지옥문을 흔들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6. 희생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이 말씀은 어찌 보면 난해합니다. 계5:8에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기도 따로 향 따로 인데 이 두 가지를 합해서 드린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건 그대로 어떤 의미를 던져주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뭘까요? 즉 모든 성도의 기도와 향을 합해서 드린다는 것은 그냥 기도가 아니란 말입니다. 향은 희생의 상징입니다. 기도한다는 소문만 있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희생을 다한 진실한 기도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출30:34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지향의 향품을 취하라” 했는데 여기 향들은 모두 고난을 통과한 산물들입니다. 나무에서 진액을 빼내거나, 조개껍질을 부수고 빻아서 만듭니다. 구지뽕에서 기름을 빼낼 때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액을 빼내듯 향품을 만드는데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는 몸과 마음과 힘과 땀과 인내와 진심과 정성을 다 드려 드리는 기도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때 얼마나 성의 있는 기도냐 그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빗방울이 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본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141:2에도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한 기도처럼 작정한 기도 변함없이 드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분향단은 우리에게 기도의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구주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한 복음의 나팔수가 되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 복음의 말씀 준비는 물론 기도준비 많이 하여 우리의 심령과 온 세상을 변화시킬 복음의 나팔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