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예배설교. 일의 시작 보다 끝이 낫다 (전 7장 1-10절)
송구영신예배설교. 일의 시작 보다 끝이 낫다 (전 7장 1-10절)
매년 연말에 교수신문에서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 합니다.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선정 되었습니다. 이 말의 출처는 논어 ‘위령공편’에 등장하며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잘못이다’라는 뜻의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선정에 참여한 교수들은 학계의 연구 윤리 문제와 함께 반성 없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으면서, “많은 사람이 잘못 됐다고 하는 데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할 이유도, 고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될 것 같아 우기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동아일보 오피니언 [횡설수설/이진영]과이불개, 2022. 12. 12 기사 인용)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장)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잘못을 고쳐 좋은 쪽으로 옮겨간 사례가 여럿 있다”며 세종대왕의 예를 들었습니다. ① 중국에 사신으로 간 권희달이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자 “사람을 잘못 알고 보낸 것이 심히 후회된다. 고 말하면서 그를 파직 시켰고, ② 역병이 돌았을 땐 미리 예방하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한다. 고 했으며, ③ 군자감(군량미와 군수품 담당 관청) 붕괴사고 때는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으로 이후 세종 재위 기간 내내 비슷한 참사는 반복되지 않았다는 사례들을 소개했습니다. (동아일보 오피니언 [횡설수설/이진영]과이불개, 2022. 12. 12 기사 인용)
올해의 사자성어 2∼5위도 소개 했습니다. 2위는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의 ‘욕개미창(欲蓋彌彰)’, 3위는 과이불개하고 덮으려고만 하니 계란을 쌓아 놓은 듯 위태롭다는 뜻의 ‘누란지위(累卵之危)’, 4위는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는 뜻의 ‘문과수비(文過遂非)’, 5위는 눈먼 자들이 코끼리 만지듯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한다는 뜻의 ‘군맹 무상(群盲撫象)’이었습니다.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 성어들에서 비추어 본 한국사회는 곳곳에서 암울하며, 그 이유는 정치 지도자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도무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무책임함에서 비롯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럼에도 암울한 시대에 제 역할을 못하는 지식인에 대한 자성도 함께 담아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과이불개’,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 ‘과이불개 시위과의’,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이것이야 말로 잘못이다. 이 말을 지도자들이나 타인에게 적용하지 말고 내 자신에게 적용했을 때 과연 누가 이 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이외에는 이 말을 피해갈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을 겁니다.
한 해를 지나면서 우리는 아쉬움도 많고 후회도 많습니다. 잘못 판단하고 선택한 것도 많습니다. 모르고 한 잘못과 알면서도 한 잘못도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시간이 많습니다. 고쳐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한 해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한 해의 마무리는 온전한 회개로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잘못했다고 고백은 많이 하면서도 또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여 저지르는 것은 결코 회개가 아닙니다. 그 행동은 그저 감정적인 후회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회개는 반드시고 고쳐지고, 바로 잡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한 해 동안 말과 행동으로 잘못하였던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신년에는 잘못을 고치고 바로 잡아서, 좀 더 거룩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존귀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전도서를 쓰면서 자신의 인생과 뭇 사람들의 허무한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해 주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돈도, 권력도, 명예도, 자존심도, 교만도, 전부 다 헛것만 남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죽는 것이 인간의 일생입니다. 우리는 죽은 후에 오직 우리가 이 땅에서 지니고 살았던 믿음과 행위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간이 옵니다.
얼마나 부자였는지, 높은 자리에 있었는지, 사람들로 부터 칭찬을 받았는지, 어떤 업적을 일궈 냈는지 아무런 관심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하나님만 사랑했는지, 예수님만 믿었는지, 성령님만 동행했는지, 이 세 가지만 기억하시고 판단을 내리실 겁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이후에 성전을 건축하고 성전을 지었던 최소한 20여 년간은 하나님 앞에서 순종 잘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백성들을 잘 다스렸습니다. 잠언 삼천 개와 노래 천 다섯 곡을 지을 정도로 누구보다도 지혜가 출중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집권 후반기로 가면 갈수록 이방 여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 이방 여인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섬기던 여러 가지 우상들을 가까이 두고 분향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솔로몬에게는 “후궁이 칠백 명이고 첩이 삼백 명”(왕상 11:3)이나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우상들이 있었을지 가히 짐작이 됩니다. 여인들에게 들어가는 비용, 우상에게 제사 하는 비용 등, 관리 비용들만 해도 엄청나게 탕진했을 겁니다.
이런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솔로몬이 자신의 지난날의 인생을 관조하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탄식하며 인생의 허무함을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은,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반면교사의 말씀입니다. 연말연시를 정리하는데 딱 좋은 말씀이며 또한 인생의 말년에 이르면 이를수록 새기고 또 새기며 회개와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귀중한 말씀입니다.
오늘 전도서 말씀은 지혜로운 자와 우매한 자를 대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쓰라린 실패와 불순종을 경험한 솔로몬이 쓴 내용이라 내용들이 참으로 실감나게 써졌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면서 우리가 살았던 지난 한 해의 시간을 정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1~3절. 지혜로운 초상집 vs 우매한 잔칫집.
먼저 1~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역설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이름, 죽는 날, 초상집, 슬픔은 언뜻 보면 우울하고 슬픈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지혜 자가 가져야 할 것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좋은 기름, 출생 하는 날, 잔칫집, 웃음은 겉보기에는 기쁘고 행복한 것들로 보이지만 실상은 우매한 자가 가지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는 4절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지혜 자와 우매한 자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의 차이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혼인집에 가면 즐겁게 웃으며 축하해 주고, 초상집에 가면 슬픔으로 애도하면 되지, 뭘 이것을 두고 지혜로운 자와 우매한자를 나누는 기준으로 삼을 것 까지 있느냐 라고 반문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강조한 것은 ‘마음’입니다. 잔칫집에 있는 사람들은 온통 먹고, 마시고, 웃고, 허세 부리고, 과한 칭찬이 오고 가는 것들에 집중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너무 과하게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적인 쾌락, 순간 적인 즐거움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상황을 잔칫집으로 표현한 겁니다.
매일 같이 내 마음이 잔치집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장의 즐겁고 기쁘기만 한 잔치 행사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집중하거나 시간을 낼 여유가 없을 겁니다. 그저 먹고 마시는 일상이 가장 중요한 행사이며 최대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잔치 그 자체에 안주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마음이 초상집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 바쁜 나머지 잊고 지냈던 죽음이라는 문턱을 생각하며, 내 인생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삼을 수 있습니다. 순간의 삶이 아닌 영원의 삶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 가득한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부요함과 향락에 빠져 우상숭배자의 길로 가버렸습니다. 잔칫집과 같은 마음으로 살았더니 망해버린 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는 허탄한 고백을 했습니다.
그토록 부유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이 인생 후반기에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니, 잔칫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우매한 자였음을 스스로 자인 한 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지혜를 충만하게 받아서 동방의 모든 사람들 보다 뛰어났다고 칭찬 받았던 솔로몬이 자신 스스로를 우매한 자로, 잔치 집에만 머물고 있는 우매하고 어리석고 아둔한 자라고 실토 했습니다. 이런 고백을 바탕으로 솔로몬이 진짜 말년에는 제대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자가 되었기를 바라봅니다.
우리 모두가 송구영신 예배를 들이면서,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지혜롭다고 자평하면서 잔칫집에 머물러 있었던 자인지, 아니면 우매한 자라고 이웃에게 평가 받지만 초상집에 머물러 있었던 자인지, 스스로를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2022년에 머물렀던 자리를 잘 정리 하시고, 2023년에는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지혜를 구하며, 당장의 이익과 성과보다 영원과 영생을 소망하며 우리 주님과 동행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5~7. 지혜로운 자에게 듣는 책망 vs 우매한 자들이 부르는 노래.
5~7절에서는 책망과 노래가 나옵니다. ‘책망’이라는 단어는 큰 소리로 꾸지람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백이면 백 모두가 책망이나 꾸지람을 받으면 기분 좋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회사에서나 공무원들의 잘못에 대해 징계를 할 때 가장 약한 처벌이 구두 경고에 해당하는 ‘견책’이라는 징계인데, 꾸지람을 주는 정도의 가벼운 징계입니다. 가장 약한 징계임에도 기분이 다운되고 업무를 지속하기가 싫어지게 만듭니다. 아무리 가벼운 책망에도 사람의 감정은 흔들리고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반면에 노래를 부르는 일은 신나고 즐거운 상황이 있는 경우입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오랫동안 기도했던 기도 제목이 응답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옵니까? 할렐루야!, 아멘! 을 외치며 찬양이 멈추지 않고 터져 나오는 경험들을 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책망을 듣는 것이 지혜로운 자이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우매한 자라고, 여기서도 반대로 말합니다. 책망은 당장은 아프지만 후회 할 만한 행동을 조심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만, 노래 부르는 것은 당당은 마음을 좋게 하지만 금방 타 버리는 나뭇가지처럼 잠시 잠깐의 제한 적인 기쁨만을 가져다 줄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왜 사람들은 지혜로운 자가 들려주는 책망의 소리를 무시하고, 우매한 자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몰려드는 것일까요? 7절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탐욕과 뇌물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 만큼 무수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더 가져야 한다는 탐욕을 자꾸 부추깁니다. 그리고 뇌물(부정하고 거짓된 물질)에 익숙해지게 만들어서 정의와 공의에서 자꾸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렇다 보니, 남들이 다 하는데 내가 이정도 하면 뭐 어때 라고 하면서 탐욕을 정당화 하고, 뭐 이 정도야 괜찮지 않아 라고 말하면서 거짓과 부정함에 적당히 타협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남겨주신 진리의 말씀과는 섞이기는 어렵고, 지루하고, 기약이 없지만, 세상과 사람이 주는 소리에는 섞이기 쉽고, 빠르고, 현실적인 재미를 가져다줍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지 못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우매한 자가 되기 쉬운 환경이 내 주변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혜로운 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책망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책망에 대한 무서움과 두려움도 잘 느껴 지지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매한 자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는 거부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들리고 내 입술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 노래들을 따라가며 살아가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우리 주님의 책망의 소리가 얼마나 들리셨습니까? 못 들으셨다고요? 아닙니다. 못 들으신 것이 아니고 우매한 자의 노래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책망의 소리가 그 소리에 묻혀 버린 겁니다. 우리 주님은 지혜의 책망을 쉬지 않고 하고 계십니다. 내 주변의 소리를 줄여 보시고 잠잠히 기다려 보십시오.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회개와, 소망을 주시는 사랑어린 책망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실 겁니다.
여러분, 돈에 대한 탐욕을 부추기며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대는 세상의 소리들, 이제는 그만 멈추게 하고 아예 들리지 않도록 꺼 버려야 합니다. 2023년에는 생명과 진리의 길로만 인도 하시는 지혜로운 자이신 우리 주님의 음성만을 들으시며, 돈에 대해서 자유롭고, 뇌물에 대해 단호히 거절하는 의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 8~10절. 일의 시작보다 끝이 낫다. 참는 마음 vs 교만한 마음.
마지막으로 8~10절은 일의 시작 보다 끝이 낫다는 말씀과, 참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이 주는 교훈은 높은 자리에서 우쭐 대고 조급하게 구는 우매한 자와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고 묵묵히 인내하는 지혜로운 자를 대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하다, 낮은 자리에서 섬긴다. 라고 하면 바로 우리 주님의 삶이 떠오릅니다. 주님이 살아가신 발자취를 따라서, 주님의 언행을 쫓아서 살아가려고 하는 자세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서 가장 잘하신 모범은 일의 시작 보다 끝이 나은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 하시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마지막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귀한 끝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아름다운 끝 모습을 보이실 수 있었던 원인은, 하나님 본체 이시면서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 하심과, 모진 고통과 치욕을 감당하시고 죽음까지도 ‘인내’하실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을 전체를 예수님의 끝에 대비해 본다면, 우리는 날이 갈수록 점점 좋아져서 시작보다 끝이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가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끝은, 예수님 잘 믿고 천국으로 부름을 받는 것이겠죠.
그러나 짧게 끊어서 보면 한 해를 보내는 송구영신의 시간에는 지난날에 예수님처럼 겸손하지 못했고, 예수님처럼 인내 하지 못했던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롭게 주어지는 새 해에는 정말 겸손의 사람으로, 인내의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서 시작 보다 끝이 낫게 되는 믿음의 열매들을 맺어 갈 수 있습니다.
한 해를 시작 할 때는 반성하고, 회개하고, 새로운 결심을 굳게 하지만 연말이 되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둥지둥 바쁜 시간만 보내고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허비한 것을 후회하는 일이 반독되고 있습니다.
2023년 한 해 만은 정말 시작 보다 끝이 나은 삶을 살아 갈수 있도록 겸손과 인내의 예수님을 굳게 붙잡으시고, 힘찬 출발을 하십시오. 그리고 속도를 줄이지 마시고 방향을 틀지 마시고 오직 예수 방향으로만 직직, 또 직진 하십시오.
주님만 믿고 열심히 한 해를 사신 후에 다시금 일 년을 뒤돌아보는 연말의 시간이 오면, 지나간 시간 속에서 우리 주님이 얼마나 좋은 길로, 복된 길로 인도해 오셨는지 아름다움 끝을 보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송구영신 예배에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지난 한 해를 뒤로 하고 앞으로 주어지는 한 해를 지혜로운 자로 살아갈 것인지 우매한 자로 살아갈 것인지 안내해 주셨습니다.
① 잔칫집에 있는 우매한 자보다 초상집에 있는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라고 인도 하십니다.
② 우매한 자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장단을 맞추지 말고 지혜로운 자가 내리는 책망을 들으라고 인도 하십니다.
③ 예수님의 겸손과 인내를 본 받아서 시작보다 나은 끝을 향해 새로운 마음과 결단으로 주님과 동행하자고 인도 하십니다.
과이불개, 지난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 하지 않고, 고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모든 언행에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들을 모두 회개 하시고, 지혜로운 자의 삶으로 인도함 받으셔서, 감사와 기쁨과 열매가 넘치는 2023년으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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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2022년 한 해를 건강하게 보내도록 인도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신 은혜와 사랑이 많으나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저희들의 불순종과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2023년에는 하나님의 음성만 듣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새 날 새 소망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