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탄이 기쁜 이유 (눅 2:8-14)
예수 성탄이 기쁜 이유 (눅 2:8-14)
우리가 성탄절을 기쁘게 맞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나심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기뻐해야 하는지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성탄절인 오늘은 예수 성탄이 기쁜 이유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일이 왜 우리에게 기쁜 일인가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문 10-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일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기 예수의 탄생은 모든 인간들이 다 기뻐해야 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해도 왜 이날 쉬는지 그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정말 기뻐하며 이 성탄절을 보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 나신 사건이 인류에게 가장 기쁜 사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인간들은 이 사건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몰라서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이 도대체 무슨 사건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아기 예수 탄생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요일 4:9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의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분명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요 3:16-7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요한이 믿음의 눈을 열고 볼 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여러 가지 하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인간 구원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제사 제도를 세우셔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하신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신 사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기 예수의 성탄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성탄 사건은 그 무엇보다도 기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야만 했을까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죽게 될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보내시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외아들을 아낌없이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제 후배의 아들이 아빠의 그 큰사랑을 깨닫고 통곡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큰사랑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사랑하는 여러분! 이 찬양을 가슴으로 뜨겁게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성탄절을 정말 기쁘게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구원의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사람 가운데 파울 틸리히(Paul Tillich)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쓴 책 가운데 신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 도서 가운데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폴 틸리히는 모든 인간들에게는 다양한 관심이 있지만 그 중에 궁극적인 관심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관심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 그 깊은 내면에는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궁극적인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면서 정말 여러 가지 관심이 있습니다. 출세하고 성공하고자 하는 관심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고자 하는 관심이 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관심이 있습니다. 명예를 얻고 인기를 얻고 이름을 남기고 싶은 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 저 너머 또 다른 관심이 있습니다. 다른 관심이 다 채워지고 해결돼도 여전히 해결되어야만 하는 관심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관심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관심입니다. 이것이 궁극적 관심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 인간은 이 궁극적 관심을 해결할 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찾기 위해 어떤 이는 벽을 바라보고 9년 간 면벽 수도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한 평생 고행을 하며 지냅니다. 어떤 이들은 금욕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선행을 해 봅니다. 그렇지만 길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은 있어도 진정 그 길을 찾은 사람들은 없습니다.
길이 있어야 합니다. 길이 열려야 합니다. 길이 열리면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탄 사건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 사건입니다. 도무지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마치 저 북한 때문에 서울서 만주로 서울서 저 시베리아로 갈 길이 막힌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 오셔서 그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을 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셋째, 보질 것 없는 내게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눅 1:46 이하를 보면 소위 마리아의 찬가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특히 47-8을 보면 마리아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마리아는 나 같이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성탄의 귀한 도구로 써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총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보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 예루살렘이 아닌 정말 보잘 것 없는 작은 고을 베들레헴이었습니다. 그것도 여관도 아닌 마구간이었습니다. 짚을 깔고 말의 밥통인 구유 위에 누이셨습니다. 만왕의 왕이 왜 이토록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사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의 왕족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도 있었습니다. 가장 경건한 체 했던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천사가 이 기쁜 소식을 알려 준 사람이 바로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경건한 일과는 관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성실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무거운 삶의 무게에 눌려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런 목동들에게 이 기쁜 소식이 제일 먼저 알려졌을 까요?
예수 탄생을 알고 스스로 찾아와 경배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경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구주가 나실 것이 예언되어있다는 사실도 저들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구세주 탄생을 알지 못했습니다.
뜻 밖에 이 사실을 깨닫고 경배하러 온 사람들은 동방의 박사들입니다. 이들은 율법도 몰랐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줄도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철저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별을 통해 알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들을 보내셔서 아기 예수 탄생을 경배하게 하셨을까요?
이 일련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마리아의 고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성탄절은 정말 기쁜 성탄절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진정 성탄의 기쁨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과 이 온 누리에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