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빌립보서

낮아져야 하리 빌2:5-11

nam씨 2022. 12. 10. 16:07

낮아져야 하리 빌2:5-11

우리 주변을 보면 성도들 중에 많은 이들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중에도, 대기업의 총수나 중역들 가운데도, 재벌들 중에도, 또 연예계나 문화계, 교육계, 예술계 등에도 높은 인지도가 있는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들 중에는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은 그리스도를 찾기는커녕 도리어 멀리하고 교회를 비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높아질 줄은 알았지만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겸손히 낮아질 줄 몰랐기 때문이요, 채우는 것은 좋아했지만 욕심을 버리고 비우는 미덕을 몰랐기 때문이요, 자기주장은 잘 할 줄 알면서 자기를 부인하는 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섬김 받기는 좋아했지만 섬길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회 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참된 신앙인은 높아진 자, 성공한 자가 아니요, 예수님을 본받아 온유 겸손한 자, 사랑으로 섬기는 자, 욕심을 버리고 나누고 베푸는 자라고 가르쳐야 하고, 그 모습이 생활화 되도록 힘써야 하는데, 그 보다는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데 더 관심을 두고,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림절 기간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낮아져야 하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낮아져야 하는 까닭은,

 

1.하나님의 은혜는 낮은 데로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따르면서 은혜를 받는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은 하나 같이 겸손히 순종할 줄 알고,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비우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2:1)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말씀은 네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을 다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믿음의 순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을 때 그들이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자신의 직업과 삶의 터전을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세리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가 세관에 앉아 사무를 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마태는 즉시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 때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5:28) 당시 비록 동족들로부터는 욕을 먹고 미움을 받았지만 세리가 누리고 있던 것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직업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물질의 걱정이 없이 안정되게 가정을 꾸려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다는 말은 그가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 모두를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누구나 겸손과 자기 부인 없이는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 하시고 은혜 주십니다. 149:4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했고, 18:12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했으며, 4:6에는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비워야 할 것 중에 가장 먼저인 것은 자기 의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책망을 들은 이유는 그들이 신앙생활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고, 십일조 철저히 했으며,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구제도 많이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고,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옷자락에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했습니다. 정말 거룩하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런 그들은 자기 의로 충만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며, 교만하여 자기들처럼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칭찬과 은혜는커녕 예수님께로부터 외식하는 자들이요,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이요, 천국 문을 막는 자들이요, ‘화 있으리라는 책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겸손한 믿음으로 은혜 충만한 성도들이 됩시다.

 

2.믿음의 사표인 예수님께서 친히 낮아지심의 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서신서 본문 빌2:55-7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본체란 말을 요1:1-3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절의 말씀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절에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절에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다.’고 증거 합니다.

본체라는 말은 '본질적인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본질을 소유한다는 의미로, 다른 말로 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하나님 자체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이 땅에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말 합니다. 성육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시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신 영광을 버리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복음서 본문에 예수님의 탄생 기사를 보면 예수께서 어떻게 낮아지셨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이란 시골 가난한 어촌이 고향입니다. 부친 요셉은 가난한 목수입니다. 태어나시기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5:2)한 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미가선지자의 예언이 응한 것은 바로 로마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호적 명령은 식민지 백성들에게 인두세를 거두고 전쟁터에 끌고 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인구 조사는 매 14년마다 실시되었는데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첫 번 실시한 것이었습니다(2). 황제의 인구 조사 령으로 요셉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이미 잉태한 마리아와 함께 갔는데,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라 여관도 만치가 않은데다 여관마다 이미 온 소님들로 방이 차 요셉은 아마 어느 사관 주이에게 만삭이 된 아내 때문에도 간곡히 부탁하여 그 집 마구간 한편 구석을 잠자리로 마련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 곳에서 해산하여 말구유에 뉘이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누운 자리는 짐승의 먹이 통인 말구유였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철두철미하셨습니다. 인생의 맨 밑바닥의 자리에까지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의 삶 역시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죄인과 강도 취급을 당하시며 온갖 모욕과 멸시와 수난을 당하시다가 십자가에 처형 되셨습니다.

서신서 본문 5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께서 가지셨던 생각을 품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태도와 행실을 가져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속하여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지식, 세상의 유행,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지만, 하나님께 속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진 생각과 삶의 자세와 행동이 삶의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처럼 겸손히 낮아진 마음을 갖아야 아버지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본문 8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본받아 겸손히 낮아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께서는 겸손히 낮아진 자를 아들과 함께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서신서 본문 빌2:9-11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은 낮아지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주셨습니다. 부활의 영광, 승천의 영광, 하늘의 높은 보좌의 영광을 주시고, 만민을 심판하실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대상,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받으실 대상이 되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고 박해하던 로마가 그 후 400년도 되기 전에 예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가는 유일한 길이 되시고,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당당히 구할 수 있는 존귀한 이름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이 예수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본받아 사는 자들을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하늘 기업을 받게 하시고 높여 주실 것입니다. 영국의 거부였던 피츠제럴드는 아이가 열 살이 넘었을 때 아내를 잃었습니다. 상심이 컸던 그는 아들에게 더욱 정성을 쏟아 부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들마저 병을 앓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홀로 된 피츠제럴드는 거장들의 예술작품을 수집하여 그 슬픔을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피츠제럴드도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유언에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 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소장품을 경매에 붙이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수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소장품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대단한 것들이었으므로 사려는 사람들이 예상대로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예술품들은 경매 전에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그림 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방의 무명 화가가 피츠제럴드의 외아들을 그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제목의 보잘 것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경매에 붙여진 것은 바로 그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아무도 입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초라한 모습의 한 노인이 손을 들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가 그 그림을 사면 안 될까요?" 그는 피츠제럴드의 아들을 어릴 때부터 돌보았던 늙은 하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그림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변호사는 경매를 중지시킨 다음 큰소리로 피츠제럴드의 유언장을 읽었습니다. “누구든지 내 아들의 그림을 사는 이가 모든 소장품을 가질 것입니다. 이 그림을 선택한다면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니 모든 것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사랑 하셔서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참 빛으로 예수님은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으나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세상 것을 더 귀히 여기면서 예수께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을 세상의 누구 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분이라고 고백하며 사랑하는 그들을 하늘 기업의 상속자들로 삼으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히 순종함으로 주님 발자취 따르다가 주님과 함께 영광에 이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대림절 기간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낮아져야 하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낮아져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은혜는 낮은 데로 임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표인 예수님께서 친히 낮아지심의 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낮아진 자를 아들과 함께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20022. 02. 07. 호현낙선>

 

출처:성산 사랑원문보기글쓴이: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