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보궐로 본 기도의 교훈 (행 1:15-26)
사도보궐로 본 기도의 교훈 (행 1:15-26)
본문은 예수님 승천 이후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을 기다리면서 했던 사도를 보궐하는 장면입니다. 사도를 보궐했던 이유는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고 자결했기 때문입니다. 내용 분해를 해보면 15-20절은 가룟 유다의 최후가 성경에 예언된 것임을 상기시키는 장면이고, 21-22절은 사도될 자의 자격과 사명을 언급함이고, 23-26절은 사도로 맛디아가 뽑히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사도 보궐에서 여러 가지 내용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중에 한 가지 기도에 관해서도 몇 가지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 본문이 주는 기도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1. 기도한다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5절에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베드로가 궐이 난 사도를 보궐하기 위해서 말하기 시작하는 내용입니다. 앞의 1:14에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했는데 그렇다면 기도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문제점을 발견하고 보완하고 고치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한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중풍병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은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와서 지붕을 뜯고 예수님께 들것에 달아내렸습니다. 주님은 그 믿음을 보셨습니다.
어떤 곳에 불이 났는데 믿음 좋은 어떤 사람이 불을 끄기 위해서 기도하자고 제안했답니다. 믿음 좋은 소리죠? 그러자 목사가 말하기를 우리 불을 끄면서 기도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이건 믿음 나쁜 소릴까요? 그러나 잘 알아야 합니다. 불이 났는데 기도만 하면 되겠습니까? 이처럼 몸이 약하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사람의 방도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노력만 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두 가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도우시고 만나게도 하십니다.
2. 기도하면서 성경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6절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다 성경에 예언대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에 관하여 마태는 슥11:12을 인용했고, 베드로는 시109:8을 인용했습니다. 서로 보완해서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귀한 교훈은 기도하면서 성경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는 기도는 허공을 치는 내 생각입니다. 내 생각은 응답 되지 않습니다. 기도에는 주고받는 것이 있습니다. 주는 것이 기도라면 받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 없이 기도만 하면 마귀에게 속습니다. 기도하다가 어떤 것을 받든지 분별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인데 너 오늘부터 예수해라.” 할지라도 속아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보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성경 보고 이것이 가장 좋은 기도법입니다. 이 조화가 잘 이루어질 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교회도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좋은 교회가 됩니다. 기도만 하는 신비적인 교회도 바람직하지 않고, 말씀만 있는 교회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혹은 조화는 이루었는데 두 가지 다 부족하다면 안 됩니다. 이 두 가지가 넘쳐야 합니다.
3. 은밀한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기도도 있습니다.
24절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회중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하셨다고 사람 앞에서 하는 기도는 다 잘못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를 나타내려고 외식하는 기도를 금지하신 것이지 합심기도나 공중기도를 금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합심기도나 공중기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행4:24-31을 보면 사도들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의 기도가 나타납니다. 우리들도 이 여러 가지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성령 충만을 위한 기도의 응답은 준비가 차야 됩니다.
26절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하나님께서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얻게 하셨습니다. 성령강림과 사도 보선의 문제는 중대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기다리면서 사도 보선한 것은 시간이 남아서도 우연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12지파와 12사도는 교회 형성에 중요한 기초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어요.
계21:12-14에 “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했습니다. 열두 사도가 천성의 기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서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도적인 신앙이 아니고는 은혜의 풍성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가 잘 닦여야 해요. 교리적으로 닦이고 실천적으로 닦여야 합니다. 경건이 파괴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12수를 깨려고 노력합니다. 구약의 12지파도 단지파가 마귀에게 넘어갔지요? 신약의 12사도 중에도 가룟 유다가 마귀 꾐에 넘어갔습니다. 12수는 교회수요, 12수는 신앙훈련수며, 12수는 제자의 수입니다. 그러기에 사탄은 우리가 같지 않는 신앙을 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같잖은 신앙이 아니라 주님 본 받은 같은 신앙 가져야 합니다.
찰스 스탠리의 「기도 응답의 비밀」에 보면 찰스가 기도를 시작하기만 하면 늘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일하거나 공부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기도만 하면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 문제로 1년을 씨름하며 기도했는데 주님이 원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탄이 잠을 통해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잠으로서 기도를 방해한 것입니다. 사탄에게 기도만큼 위협적인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같지 않는 신앙은 버리십니다.
진리에 서서 신앙훈련을 잘 받아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항구적인 성령 충만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주시지 않음이 아닙니다. 우리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회개로서 준비 되어야 하고, 경외하는 생활로서 준비 되어야 하고, 겸손과 진리로 준비 되어야 합니다. 그랬기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3년 반 동안 말씀과 경건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학생을 세 명 맡겨주었는데 년 말에 열 명으로 부흥시킨 교사도 있고, 열 명을 맡겼는데 한 명 데리고 있는 교사도 있습니다. 이처럼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무엇을 맡긴들 감당하지 못합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아무리 성령 충만을 주셔도 옛 낡은 습관으로 살면 하루도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잘 서야 합니다.
우리 신앙만 제대로 되면 구하지 않아도 아버지께서 넘치도록 주십니다. 백부장 고넬료처럼 경건하여 날마다 예배하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신앙이 준비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이 12수를 채우는 신앙의 보궐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신앙회복이 바로 12수를 채우는 것입니다. 어떤 요소가 문제입니까? 말씀입니까? 기도입니까? 겸손입니까? 사랑입니까? 우리의 궐이 난 신앙은 무엇입니까? 참 제자가 되는 것이 12수를 채우는 것입니다. 이 기초가 잘 될 때 항구적인 성령 충만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본을 받으십시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닮은 참 제자가 되십시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고 주님이 귀히 쓰실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