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가 참 복입니다. 호14:1-8, 눅15:11-24
회개가 참 복입니다. 호14:1-8, 눅15:11-24
이런 풍자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단강에서 회개의 설교를 할 때 세례요한에게 와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부자가 나와서 "우리는 무엇을 회개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옷이 두벌이면 가난한 이에게 한 벌을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부자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세리들이 와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라고 회개할 것을 물었습니다. "너희에게 정하여 준 세금 이상은 받지 말고 이미 받았으면 도로 돌려주어라" 세리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와서 "우리는 무엇을 회개하여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칼이나 무기로 남의 땅을 빼앗지 마시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군대는 공격하지 않고 방어만 하게 되었습니다. 창녀가 와서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음란한 마음을 버리고 시집을 가서 한 남자를 머리처럼 섬기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창녀들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수많은 고침의 역사, 회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또 범죄 하였습니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세례요한에게 나와서 또 고백하기가 창피 하여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로 할 수 없으니까 가슴에 죄목을 써서 달고 나타났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서서 한명 한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간음죄'라고 가슴에 붙이고 온 창녀에게 다가 가신 예수님은 그 종이를 떼어 자기 가슴에 붙이며 "네 죄를 내가 대신 지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적 죄'라는 종이를 붙이고 온 사람에게도 다가서서 떼어 주님 가슴에 붙이며 "네 죄도 내가 대신 짊어졌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인죄' '거짓말 한 죄' '시기한 죄' '질투한 죄' 모든 죄목을 다 예수님은 자기 가슴에 붙이며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쁨에 넘쳐서 돌아갔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패역을 고쳐주시며 기도응답을 주시고 원하는 자에게 나타나 주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를 담당하신 일에 대한 풍자적인 이야기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회개가 참 복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회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호14:1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했습니다.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순종하는 자로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불의한 길로, 패역의 길로 빠져 살았습니다. 이러한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이렇게 죽어 마땅한 죄의 길로 행하는 백성들에게도 살 길이 있음을 애타게 외치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라는 이름의 의미는 ‘구원’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음란한 아내 고멜을 아내로 맞게 됩니다. 고멜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한 모습을 알려주고, 동시에 그러한 타락한 백성들이라도 사랑의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너무나 음란한 여자여서 호세아와 살면서 다른 남자와 나가서 같이 살았습니다. 호세아는 그런 아내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데려다가 전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가출하여 다른 남자와 같이 살고 있었지만, 호세아는 수소문해서 또다시 아내 고멜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용서하며 다시 살며 사랑하여주었습니다. 호세아는 고멜과 살면서 세 아들을 낳았는데, 첫 아들은 ‘이스르엘’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셨다’라 의미입니다. 두 번째 아들은 ‘로루하마’로, 이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아들을 ‘로암미’로, 이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음란하고 더러운 죄에 빠진 백성들을 하나님은 흩으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반열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만이 사는 길입니다.
고멜은 범죄 하였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였습니다. 고멜은 음란하였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였습니다. 고멜은 다른 남자 품으로 수없이 많이 갔었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았습니다. 고멜은 돌로 때려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으나 호세아는 죄를 감추어주고 끝까지 살려 주었습니다. 이 모습이 고멜처럼 범죄 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나눠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아버지가 재산을 나누어 주자 둘째 아들은 그 재물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여 다 낭비해 버렸습니다. 때마침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떨어진 둘째 아들은 돼지치기 일을 하게 되었는데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해도 그것마저 주는 사람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부끄럽지만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얼싸 안고 기뻐하시며 잔치를 했습니다. 임페리얼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림이 있는데,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성당에 들어가려고 하는 데 주교가 못 들어가게 막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사연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로마 통치를 반대하는 1500명을 주후 390년 무참히 학살한 황제입니다. 그가 이태리 밀라노를 방문하여 마침 주일이라 성당에 들어가려는 중이었습니다.
암부로시우스 주교가 막아서면서 못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왜 못 들어가나?” “당신은 죄인입니다. 사람을 죽인 죄인입니다.” “다윗왕은 더 큰 죄인이지 않는가?” 이 때 암브로시우스가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도 다윗처럼 회개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윗의 회개는 침상을 눈물로 적시는 처절한 회개였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패역을 돌이키시고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고 보아 주십니다. 오늘 사랑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치유하십니다.
성도가 신앙생활 하다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세상이 더 좋아 보여 그럴 수도 있고, 탕자처럼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더 좋아 보여 그럴 수도 있고, 미혹에 빠져 주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둘째 아들과 같이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 이것저것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아서 신앙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설교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찔려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것만 같아서 불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세상 속에 파묻혀서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는 둘째 아들이 한 것과 같이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방탕한 삶은 일시적으로는 행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해치고 우리를 파멸로 빠지게 하는 삶일 뿐입니다. 이를테면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먹고 싶다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먹고, 운동하기 싫다고 편안히 누워만 있으면 당장은 자유롭고 행복한 것 같지만 비만이 되고 건강을 잃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일시적인 즐거움이나 쾌락을 누리려고 술이나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게 되면 결국 건강과 인생이 파탄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길이 좋아 보여 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심령이 피폐해지고, 추해지고, 허탈해지고, 패역한 자의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되면 용서를 받게 되고, 고침을 받습니다. 호세아는 본문 4절에서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라고 말한 것처럼 회개하면 패역을 고쳐주십니다. 패역이란 말은 원어로 ‘메슈바’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등을 돌리고 떠나간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등을 돌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여도 죄를 지으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등을 돌리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 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 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고 말했습니다.(사 1;15) 등을 돌리고 떠나가시던 하나님이 다시 회개한 자를 향하시고 돌아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내게로 향하게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버리고 회개하면 고치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신약 본문에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하게 지내다 모든 것을 잃고 난 후 너무 염치가 없어서 아버지께 품꾼의 하나 같이 대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시 받아 주시고 먹고 재워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 온 것처럼 목을 끌어안고 기뻐하시며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새 신발을 신기고, 이웃을 초청하여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종이 아니라 사랑 받는 아들로 받아 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회개함으로 용서 받고 고침 받기를 소망합니다.
3.회개하는 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되고 참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 못하면 사단에게 속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거짓 믿음에 속기가 쉽습니다.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예수님을 영접할 것과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믿고 나는 구원 받은 천국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신앙의 가장 큰 중심이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회개가 전제 된 믿음이라야 합니다. 회개가 뒷받침이 될 때 주님에 대한 믿음도, 영접도, 십자가도 비로소 가치가 있고, 구원의 능력이 있고, 천국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서 진실한 회개가 따르는 믿음이 생명 있는 믿음입니다. 성경은 영원한 형벌로 부터 구원받기 위한 조건으로 믿음보다, 회개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첫째가 회개이고, 둘째가 믿음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 믿음이요, 참 복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순서상으로 먼저, 회개이고, 다음이 믿음입니다. 믿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회개란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주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이 복음을 전할 때에 첫 소리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셨습니다. 회개가 없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도 없고, 회개가 없으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신 것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천국은 회개하여 죄 사함 받아 의의 예복을 입은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회개 없는 믿음은 신기루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사람들이 죽게 된 사건에 대해 말씀 하시면서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4-5)고 말씀 하셨습니다.
구약 본문 호14:5-8에 호세아서의 총 결론을 보면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운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같으리니 그 그늘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 올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즙 같이 되리라.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리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에게 주시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늘 아버지 곁에 있었던 맏아들은 감사 대신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처신에 불평했지만, 둘째는 감사와 감격으로 넘쳤을 것입니다. 로마에서 시민들을 괴롭히는 강도가 있었는데, 너무나 악하고, 교묘해 시민들이 그 강도 때문에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황제는 드디어 많은 현상금을 걸고 잡으라고 했지만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황제 앞에 나타나 ‘그 자의 목을 가지고 왔나이다.’ 하면서 자기 목을 받쳐 들고 말했습니다. “그 목이 여기 있습니다. 내가 그 강도입니다. 나는 회개하고 싶어서 황제님 앞에 내 목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이제 결코 강도짓하지 않겠습니다. 그 동안에 지은 죄로 괴롭습니다. 내 목을 마음대로 하여 주옵소서.” 황제는 그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회개하는 아름다움을 믿고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를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참 복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회개가 참 복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치유하십니다.
○.회개하는 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되고 참 복을 받게 됩니다. 아멘.
<2022. 11. 02.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