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이기라 (계 2:8-11)
시험을 이기라 (계 2:8-11)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 시간에 “시험을 이기라”는 제목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연단 받는 교회입니다. 달리 말하면 시험을 당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일반적으로 시험이 크면 낙심도 크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험을 이기는 비밀이 본문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시험을 이길까요?
1. 사건을 영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9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여기 실상이라 했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듯 보이는 환경만 보지 말고 그 내막을 보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환난과 궁핍을 당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안전할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금과 같이 만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욥의 유명한 신앙고백이 있지요. 욥23:10에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렇다면 서머나 교회는 진정 부족함이 없는 걸까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연단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책망이 왜 없습니까? 연단 중에 있기 때문에 굳이 책망하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욥7:18에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남보다 연단이 강하다면 하나님께서 더 특별히 쓰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받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에게는 더욱 강한 훈련이 주어집니다. 모세나 바울 같이 특별한 목적에서 쓰일 사람은 더욱 연단이 특별합니다. 이렇게 항상 영적으로 이해하세요. 그러면 감사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2. 영적으로 대처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다시 9절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비방했습니다. 주님은 이 역시 그것을 영적인 눈으로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여기 유대인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도외시하면서 혈통 상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이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사탄의 회이지 하나님이 쓰시는 모임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할지라도 사탄의 도구로 쓰이면 사탄의 회입니다.
“네 배후에 마귀가 그런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되면 대항하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옛날에는 육신적으로 투쟁했지만 이제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로 투쟁하게 됩니다.
남태평양의 솔로몬 군도의 고립된 산악 지역에 있는 쿠아이오족 선교 실화랍니다. 쿠아이오족을 복음화하기 위해 쿠아이오에 들어간 선교사들마다 살해당하여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본 다른 두 선교사는 그들의 배후에 악한 영을 인식하고 솔로몬 군도에서 출발하기 전 7일 동안 금식기도하며 수세기 동안 쿠아이오 사람들에게 역사하고 있는 악령의 세력들을 기도로 물리치며 승리의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선교사들은 금지된 땅에 발을 내디뎠는데 쿠아이오 사람들은 온순한 양처럼 그 선교사들을 허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추장이 중병에 걸려 있어서 그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병들어 있던 추장이 예수를 영접하자마자 머리를 떨구고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부족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이상한 종교로 자기 추장을 저주하였다고 선교사들을 사형 집행할 계획을 세웠는데 놀라운 일은 죽은 추장이 7시간 만에 다시 살아 벌떡 일어나 앉아 가족과 친구들을 부르더니 나는 천사들에 이끌려 저 선교사들이 말하는 천국에 갔다 왔다 하면서 아브라함도 만났다. 엘리야도 만났다. 하면서 선교사들을 풀어주라. 그리고 선교사가 전하는 예수를 믿으라. 말하고는 조용히 예수의 품에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든 쿠아이오 사람들은 즉각 모두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는 300명 이상의 신자가 생겨났고, 산악 지대 곳곳에 16개 이상의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어 약 4,000명 이상의 쿠아이오인들이 그들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쳤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배후의 악령을 모르고 일하는 누를 범치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대가 악하면 그 배후의 악의 영이 악하게 활동하고 있구나. 사람이 악하면 그 영이 악하구나. 그렇게 이해해보세요. 그리고 그를 위해 속으로 기도하고 그 배후의 악령을 물리치세요. 상당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니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3. 육이 아니라 영감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10절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 교회가 육신적으로는 두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려운데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한다니 육신적으로 생각한다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은혜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것을 보니까 두려워하지 않을 은혜를 주셨습니다.
딤후1:7-8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육을 따라 살지 말고 영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느끼는 느낌이 진정한 느낌입니다. 영혼이 불안하면 진짜 불안한 것입니다. 이때는 방심하지 말고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영이 평안하면 별 일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성령을 따라 살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4.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0절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여기서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손길의 정확성입니다. 주님은 고난당할 인원과 어떤 고난 그리고 얼마만큼 당할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시험이 악인들에 의해 진행되기에 무분별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결코 무분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비록 악인의 손을 빌어 고난을 당하지만 모든 것은 교회를 연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정확한 손길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눅12:6-7에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하셨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간증한 안이숙여사는 1937년 처녀였을 때 박관준 장로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국회의사당에 신사참배를 폐지하라. 회개하라고 삐라를 뿌린 죄로 체포됩니다. 나중에는 평양으로 이송되어 6년 감옥살이하는 동안 박관준 장로님은 죽고 안이숙 여사는 사형 집행 몇 시간 전에 8.15 해방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납니다. 그토록 순교의 제물이 되기를 갈망했건만 하나님께서 허락치 아니하시니 불가능하더라는 간증입니다.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니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그런데 본 절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여기 몇 사람은 영적으로는 전체를 의미합니다. 결국 그들은 대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징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10일이라 했는데 역사 속에서 서머나 교회가 꼭 10일간만 시험을 받은 건 아닙니다. 성경의 숫자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10은 연단의 수요 다 채움의 가득한 만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원하신 수준 즉 충성된 믿음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연단은 계속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10일이란 순종의 여부에 따라 단기일 수도 장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 연단의 하나님의 손에서 자유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부르심에 순종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시험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나아가 그 시험 속에서 연단을 받아 더 온전해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 현실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영적으로 대처하고, 영감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정확하신 섭리를 믿고 안심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