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었던 만나 (계 2:12-17)
감추었던 만나 (계 2:12-17)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2:12-17)
이 시간에는 “감추었던 만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갈 때 그 중간 여정인 광야에서 먹었던 여호와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특별한 양식이 바로 만나입니다. 이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또 우리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예표하는 양식입니다.
그런데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이 말씀에서 보듯 버가모 교회는 아직 이 신령한 양식을 먹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하늘의 양식을 먹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의 신령한 만나로 풍족하기를 원하십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말씀의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분별력 없이 어떻게 성경에 감춰진 만나를 먹을 수 있겠습니까? 12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모습으로 나타나신 이유가 뭘까요?
검은 말씀인데 날이 섰다는 것은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버가모 교회가 성경에서 떠나있거나 혹은 말씀에 대한 이해가 명료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허용하는 등 이단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래서는 그 말씀이 진정한 만나일 수 없습니다.
내가 믿는 진리가 성경에서 떠나있거나 전체적 윤곽은 맞는데 이해에 있어서 모호하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 땅에 많은 교단과 교리들 그러나 기본 교리만큼은 정확해야 합니다. 그리고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그들의 메시아관은 고난의 메시아가 아니라 영광의 메시아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른 성경 해석을 위해서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물려준 정통교리의 틀을 떠나지 말며, 또 성경 기자의 시각으로 성경을 보며, 무엇보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의 영감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남이 맛보지 못할 감추인 만나를 먹을 수 있습니다.
2. 예수 이름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13절 “네가 어디에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여기 안디바(안티파스, Antipas)는 예수 이름 때문에 순교한 순교자입니다. 터툴리안에 의하면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명성 높은 감독으로 황제숭배를 거절하다가 불에 달구어진 놋쇠 황소 위에 얹히어 타죽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을 거냐? 황제를 믿을 거냐? 그는 황제를 존중하고 충성했지만 믿음의 대상은 될 수 없었습니다.
13절이 보여주는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만나라는 것입니다. 요6:47을 보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51절)
그러므로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를 위해 수고하고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고 박해를 받을 때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귀한 만나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마5:11-12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5:39에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하신 말씀 대로 성경을 신령한 관점에서 볼 때 예수 만나를 발견합니다. 안디바와 같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붙들고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를 놓지 않을 때 그것이 우리의 만나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3. 성경의 교훈을 지켜야 합니다.
14-15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 교인들은 외부로 오는 박해는 이겼으면서도 내부로 오는 거짓 교훈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먼저 발람은 민수기 22장-25장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발람이 모압 왕 발락의 재물에 눈이 어두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인계와 우상으로 시험에 빠뜨린 인물입니다.
이처럼 버가모 교회가 복음의 자유를 극대화하여 종교적 윤리적 방종으로 오도하지 않았나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즉 이미 예수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어떤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이단적 주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완전성을 믿지만 지나치면 안 됩니다. 한 편을 강조하다가 다른 한 편을 잃어선 안 됩니다.
그럼 니골라당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인 니골라가 타락했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고 확실한 것은 발람의 교훈과 흡사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공로로 구원 받았으므로 무슨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다. 혹은 영지주의처럼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므로 육으로는 어떤 행위를 해도 상관이 없다.’는 그런 주장입니다.
그들의 교훈은 신신학적이고 진보적이고 쇼킹했지만 성도들의 영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교리의 잘못은 성경 말고도 살아보면 압니다. 중요한 것은 그대로 살아보니 되더냐는 것입니다.
사8:20-22에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한다 했어요.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리고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일 것이라. 아무리 장황해도 이단설로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로마서 6장을 보면 바울도 오해를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롬6:1-2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15절에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감추어진 만나의 복을 받으려면 한 마디라도 성경을 지켜야합니다. 듣기만 하고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지식 수준이 영적 수준이 아닙니다. 한 마디의 말씀이라도 믿고 지킬 때 거기서 진정만 은혜와 만나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만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높이고 사랑하면 그 구원의 기쁨과 만족을 누립니다. 우리 모두 말씀의 분별력을 가지고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적용하여 실천하는 진정한 만나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