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회복하라 계시록2:1-4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 시간에는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제목입니다. 계시록 2장과 3장은 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불꽃같으신 눈동자로 에베소 교회의 영적상태를 살펴보시며 칭찬과 아울러 책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에베소교회에 주신 가장 큰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사랑이 아닙니다. 처음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첫사랑입니다. 첫사랑이 무엇입니까? 남녀 간에 어떤 계산도 시간도 공간도 환경도 조건일 수 없는 뜨겁고 순수한 사랑과 같은 사랑을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 없이는 한 순간도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청춘 남녀가 처음에는 그런 사랑을 갖지만 결혼하고 나면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 사랑은 사라지고 맙니다. 대부분 의무적이고 사무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뀝니다. 우리 믿음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만 생각해도 기쁘고 즐거워 견딜 수 없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그런 순수하고 희생적인 믿음이어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1. 첫사랑이 없다면 신앙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2절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여기 행위 수고 인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행위는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했으므로 믿음을 말하고, 수고는 사랑의 수고 즉 사랑을 가리키고, 인내는 소망의 인내이니 소망을 가리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있다면 다 된 것 아닐까요? 영적으로도 튼튼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님을 향한 첫사랑의 감격이 없었습니다. 그 감격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믿음도 있고, 소망도 있고 사랑이 있어도 감격이 없다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온전한 예배도 될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사랑했던 전통은 남아있어서 모두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이 힘겨울 뿐이었습니다. 보람도 감격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이 되어 다가올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믿음이 계속된다면 교회는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촛대를 옮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2. 첫사랑이 없다면 정통 진리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2절 하반 절에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이 말씀을 볼 때 에베소 교회가 얼마나 바른 진리에 섰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른 진리에 섰기에 거짓 사도들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진리의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주님에 대한 감격이 없다면 차가운 말씀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뼈만 가지고 사람이랄 수 있습니까? 혹은 뼈만 먹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통 신앙도 보수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령의 은혜도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단 중에 일제의 신사참배도 거절하고 목숨 바쳐 진리를 파수한 교단이 있습니다. WCC도 강력히 반대하는 교단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닮은 대단히 훌륭한 교단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활력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침체되고 부흥도 미진하고 사회적 영향력도 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에 대해서 미온적이기 때문입니다. 뼈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고전13:1-3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첫사랑이 없다면 주를 위한 고난과 사명도 의미가 없습니다.
3절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당시 에베소 교회는 많은 박해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서기 64년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 밖에서 순교를 당하자 사도 요한은 그를 대신해 에베소 교인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미티안 황제 때에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지중해 연안의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이곳에서 대리석을 채취하는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회는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불사하고 믿음을 배반치 않으며 신앙을 지켜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이 명령하신 선교의 사역에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훌륭한 교회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그 일 때문에 하나님 만날 시간이 없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부흥도 좋습니다. 전도도 좋습니다. 선교도 좋습니다. 선교를 위한 사업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일 때문에 기도할 시간이 없고 성경 볼 시간도 없고 그 일이 목적이 되어 하나님 만날 시간도 없고 신앙의 감격을 잃고 있다면 원 목적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하나님 사랑이 더 선행되어야 합니다. 결혼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밥하고 빨래하고 돈 벌어 부양하고 아이 낳고가 목적입니까? 다른 것 안 해도 돈 벌어 부양하니까 행복할 것이다. 열심히 살림해 주니까 행복할 것이다. 착각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막3:13-15에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귀신 쫓는 것이 첫째인가요? 전도가 첫째인가요? 귀신도 추방하고 전도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나의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더욱 친밀하시기 바랍니다.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소망사랑과 정통진리 순교적신앙과 사명수행이 있다 해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격이 없다면 그 믿음은 가납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그 정도는 믿습니다. 성령 만이 우리에게 사랑의 감격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의 은혜를 받아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한국강해설교연구원원문보기글쓴이: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