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구원자 예수님 3 (계 1:15-16)

nam씨 2022. 8. 27. 19:46

구원자 예수님 3 (계 1:15-16)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5절 이 시간 계속하여 “구원자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과거를 문자나 언어로 표현하는 시대라고 하면 현대는 이미지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미지(image)란 심상(心象), 영상(映像), 표상(表象) 등을 뜻하는 말로 인간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사물의 감각적 영상을 가리키는데 주로 시각적인 것을 말합니다.

 

원래 이미지의 어원은 라틴어 이마고(imago)로 '모방'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 용어는 실물의 모습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나 그 의미를 넘어 상징이나 은유로서 무언가를 표현해 낼 때 수사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모습과 아울러 그 모습이 풍기는 어떤 메시지를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의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이미지로 가득한 모습으로 갈릴리에서 보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는 이 모습에서 우리의 구원자시요 온전케 하시는 은혜의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도 주님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주님의 모습은 어떤 의미를 가진 모습일까요?
 

7. 은혜와 진리가 풍성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15절 하 반절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여기 물은 말씀과 성령이요, 많은 물소리는 그 풍부함을 가리킵니다. 엄청난 물이 쏟아지는 이과수 폭포나 나이아가라폭포를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거대한 폭포 소리로 계시하신 이유는 그만큼 은혜로 충만하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1:16-17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폭포수는 수많은 인생들이 다 마시고 남을 은혜의 폭포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더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요7:38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은혜를 받되 풍성히 받습니다. 그래서 약4:6-7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라고 말씀합니다. 폭포는 낙차가 있어야 발생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처럼 아주 낮아지세요. 조금 낮아져가지고는 폭포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낮추사 죄인들과 함께 하신 것처럼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 해보세요. 약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또 새로운 면에서 주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봉사도 해보고 수고도 해보세요. 전도하다 매도 맞아보세요. 마5:11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그 낮춤의 현장에서 주님과 하나될 때 우리들도 폭포와 같은 은혜를 받을 뿐 아니라 그 은혜를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8. 쓰임 받는 일군이 되길 바라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16절에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오른손은 권능이나 구원의 상징입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 즉 주의 종들입니다. 7은 완전수입니다. 일곱별은 당시 일곱교회의 주의 종들일 수도 있지만 모든 시대의 주의 종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붙들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주의 종들의 모습은 우리가 주님의 손에 붙들린 모습이어야 합니다. 내 꿈과 내 비전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비전을 실천하며 그 과정 하나 하나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려야지 내가 하나님을 움직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제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래야 쓰임을 받습니다.
 

시123:2에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이런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능력의 오른손에 붙들려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에 대해 할 수 없다고 불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어린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렘1:7-8) 말씀하셨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은 더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늘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도 내가 하려고 앞설 때 40년이나 늦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맡기신 분야를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손에 지팡이처럼 하나님의 손에만 붙들리면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9.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16절에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여기 검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엡6:17, 히4:12). 그리고 좌우는 흔히 분별을 암시하는 용어였습니다(욘4:11, 출2:12). 삿3:16에도 좌우의 검은 예리함을 가리켰습니다. 성경이 바로 예리한 검입니다.
 

그래서 히4:12-14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했습니다.
 

사람들이 분별력이 없어서 얼마나 세상과 이단의 꾐에 넘어갑니까? 그런데 성경을 많이 안다고 다 예리한 것은 아니고 예리하신 주님이 함께 하실 때 예리한 것입니다. 마치 주님께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성경을 깨닫는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왜 속습니까? 성경을 몰라서 속습니다. 또 왜 속습니까? 주님과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가까이 있으면 주님께서 어떻게든 깨닫게 하여주십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사랑의 천사로 자기를 꾸미고 성경적인 듯한 교묘한 말로 미혹하고 은근히 기성교회를 불신하게 만들어도 진리에 현명한 사람은 속지 않는 것입니다.
 

10. 해와 같이 밝게 살게 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16절에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시84:11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광체가 아니라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다고 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그렇게 하여 주시길 원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은 빛으로 나타나신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악하고 험해서 우리의 마음은 늘 찌들고 밝을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는 기뻐해야 한다면서도 기뻐하지 못하고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온갖 염려와 약함과 부족과 두려움과 절망과 환경이 우리를 눌러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둠을 물리치시고 해와 같이 밝게 살게 하는 강력하신 은혜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주님이 함께 하시면 그 어떤 사람도 해와 같이 밝게 살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고, 순교자들의 얼굴은 광채와 같이 빛났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은혜로 그렇게 살아봅시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의 모습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주실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다 충만한 데서 빋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열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우리 주님의 온전케 하시는 은혜를 모두 다 받아서 그 온전함을 누리고 또 전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