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복음의 일군 2 (계 1:10)

nam씨 2022. 8. 6. 14:34

복음의 일군 2 (1:10)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 시간에 복음의 일군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성도의 간증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눈 오는 거리에서 한 소녀가 얇은 옷을 입은 채 밥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화가 치밀어서 당장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왜 이런 일을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무슨 대책이든 대책을 세워주셔야지요."


그 말에 한 동안 하나님은 말이 없으시더니 그 날 밤에 아주 문득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대책을 이미 세웠었노라. 그러기 위해서 나는 너를 만들었고 너에게 복을 주었노라." 이 말씀을 깨달은 그는 한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교회와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누구를 원망하기 전에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얼마나 잘 감당하였는지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도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나이로 본다면 너무 많아 더 이상 일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또 예수를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온갖 핍박을 받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영어의 몸으로 자유롭지 못한 요한이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여전히 변함없이 귀히 쓰임 받는 일군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음으로 양으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귀한 복음의 일군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계속하여 복음의 일군이 구비할 조건은 무엇일까요?


4.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요한이 계시를 받은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여기 복음의 사명이 주어진 날이 주의 날이었다는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즉 계시록이 주일날 주어졌다는 역사적 시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매일 주의 날이 될 때 비로소 성령 충만하게 쓰임을 받는 복음의 일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줍니다.


성경에서 주의 날은 어떤 날입니까? 구약에서 여호와의 날로 표현되는데 이 날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침묵을 깨시고 나타나시는 날이요, 악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도 잘 알아야 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범죄한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이지만 신령한 의미로는 성령이 임하셔서 마음의 죄악을 심판하사 소멸하시는 날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욜2: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그렇게 말씀하시고 30절에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주의 권능의 은혜가 가만히 있어도 임할까요? 110:3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 다 바쳐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고 사랑할 때 옵니다. 2장의 예언이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강림으로 성취된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주의 날은 나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요,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는 날입니다. 주일만이 아닙니다. 일 년 365일 언제나 주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하는 곳에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래서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그랬습니다.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된 것도 다 의미 없이 된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매일 주님을 높이며 살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수를 믿음으로 받고, 성령충만은 하나님을 늘 경외함으로 받습니다. 이 기본을 지키지 않고 이상한 방법으로 체험하려고 하니까 귀신의 영이 임합니다. 초대교회가 모범을 보여준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기본이 잘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처럼 매사에 주님을 온전히 높이십시오. 찬양과 경배를 마음을 다해 드리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 앞에 엎드리고 겸손하면서 순종해 보세요.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던 그 성령의 은혜가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 때 진정 성령에 사로잡혀 감동된 사역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5. 매사에 성령님을 스승 삼고 살아야 합니다.


10절 하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내 뒤에서뒤는 요한의 배경을 말합니다. 요한의 배후에는 주님이 계셨습니다. 복음 전도자가 되려면 함께 하신 성령님을 스승 삼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물론 성경을 보거나 해석함에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30:20-22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늘 공부하고 자료를 모으고 최선을 다하면서 알지 못할 때는 하나님께 엎드리고 늘 여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이 마음속에서 떠오릅니다. 성경이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벧후1:19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됩니다. 전체적으로 성경의 중심과 맞아야 하고 그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나팔소리는 복음의 나팔을 말합니다. 구약성도들은 여러 가지의 나팔로 찬양했습니다. 금나팔 은나팔 양각나팔, 재료에 따라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모두 복음의 나팔입니다.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사람의 말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지만 그 속에도 하나님의 신령한 메시지가 담겨 있으므로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들려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배후에 계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 뒤에서라는 말씀 속에는 그 시각 요한이 앞을 보고 있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거나 성경을 연구할 때 우리 배후에서 주님의 깨닫게 하심이 함께 하는 것 이것이 가장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읽고 또 읽으면서 원어 문맥 용례 문화 배경 등을 수집하고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앞서간 성경기자나 진리의 선배들은 어떻게 이해했는지 여러 책들을 참고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의 뒤에서 나팔소리가 들립니다.


항간의 계시를 받아서 썼다는 책들 중에 엉터리 같은 책들이 많습니다. 달랑 성경만 가지고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배경도 문맥 원어 등 여러 방향에서 다가가지 않으면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고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관심할 때 그 소리는 주님의 음성이 아니라 자기 소리요 사탄의 소리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잘하시기 바랍니다. 충분한 연구와 준비 속에 발견된 여러 재료들을 소재로 하여 성령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그냥도 알게 하실 능력이 계시지만 여러 소재들을 섭렵하는 동안 주님은 우둔한 우리들의 지각을 열으시어 더 분명하게 조명해 주십니다.


반대로 아무리 열심히 연구하며 성경 본문을 잘 이해한다 해도 배후에 깨닫게 하시고 적용케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의 해석이나 메시지에 응용은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복음 준비에 성령의 지도하심을 받는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나팔 소리가 우리 마음에 다가올 때 비로소 힘차게 나팔을 불 수 있을 것입니다.


6. 분명하고 감격적인 복음의 진리를 취해야 합니다.


10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그런데 그냥 나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성을 나팔에 비유한 것은 나팔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 즉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나팔은 곧 복음의 상징입니다. 계시록을 복음적으로 접근해야지 달리 노스트라다무스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요한이 들은 그 나팔소리와 같은 음성은 큰 음성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크다는 것은 늘 구원과 관계된 영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에게는 물리적으로 큰 소리였지만 그 상징하는 바는 우리 영혼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구원의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야 합니다계시록 역시 하나님의 말씀 복음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계시록은 다른 말씀이 아닌 비유와 상징으로 설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우리 영혼을 지도하는 신령한 교과서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복음의 큰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사건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이 사건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그런데 여기 "믿음으로란 사실 성령의 은혜를 암시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체가 되는 것 같지만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믿어지지 않으므로 믿음으로란 곧 성령의 은혜를 전제로 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시록을 공부하면서 느끼겠지만 우리가 온전한 천국백성이 되게 하는데 신령한 여러 가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하나님 나라, 신론, 인죄론, 구원론,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 보혈, 십자가, 교회, 성령, 부흥운동, 자아처리, 대적론, 육체론, 세상, 마귀,,, 등등 성경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진리들을 간추려 우리 영혼이 성화에 이르도록 구체적으로 지도할 것입니다.

 

이처럼 따분하기 그지없던 성경 말씀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깨달을 뿐 아니라 나의 구체적인 영혼의 문제를 지도해 주며 실재로 다가오게 될 때 그 기쁨과 감동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할 것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이 베일에만 싸여있지 않고 신령한 교과서와 같이 우리에게 구원과 성화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다가올 때 그 큰 감동은 이루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전도자이기 전에 먼저 복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주의 날 삼고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연구하거나 우리의 모든 삶에 성령의 스승을 인정하세요. 그리고 성경 속에서 분명하고 감격적인 복음의 진리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신약으로 구약을 이해하고, 전체 성경으로 계시록에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을 아는 자라면 누구나 해석 가능하도록 그렇게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복음을 알고 경험할 뿐 아니라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성령의 더불어 역사하심 가운데 널리 전하는 복음이 일군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