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주님 오심의 3대 시제 (계 1:5-8)

nam씨 2022. 7. 23. 14:39

주님 오심의 3대 시제 (계 1:5-8)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 시간에 “오심의 3대 시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계시록의 주제를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주님이 오신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야 구원의 완성은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여러분 마음에 주님이 오셨습니까?


학창시절에 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 ​'봄의 교향곡'이라는 가곡을 많이 불러보셨을 것입니다. 1절만 소개하면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 백합같은 내 동무야 /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런 가사입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인데 저는 이 가곡이 단순한 봄의 노래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사 작곡하신 이 분들은 대구 청라언덕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었고, 여기서 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은유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피어날 때 우리 마음은 온통 봄동산으로 변한다는 진리입니다. 마음에 심겨진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자라면 새가 깃들일 만큼 되듯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시고 또 장차 온전히 임하실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온통 하나님 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오실 때 그냥 오시지 않습니다. 주님 자신이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이지만 또 온갖 아름답고 온전한 또 다른 선물을 가지고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벧전1:13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오심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3대 시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임재의 시제에 담긴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임재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주님의 임재의 현재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5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 은혜와 평강은 주님의 현재적 임재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과거의 풍성이 오늘의 풍성함이 될 수 없습니다. 이 풍성함은 현재에 임재해 계신 주님을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세 번이나 평강을 축복하셨습니다. 요20:19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축복하셨습니다. 요20:21에도, 26절에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을 축복하셨습니다. 이 평강을 누리는 것을 가리켜 임재의 체험이라고 합니다. 이 체험이야 말로 보통 엑스타시와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경험입니다. 단지 주께서 함께 하신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합니다.
 

이 임재를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현재적으로 함께 하신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주님이 임재해 계시지만 이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무관심하면 임재의 체험을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요14:16-17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셨습니다. 내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은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이 임재의식을 가지고 대하시기 바랍니다.

 

즉 함께 하신다는 의식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보이는 분을 대하듯 늘 대화하며 찬양하며 조심하며 순종하며 살아 가세요. 그 때 주님은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그 느낌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는 것 좋지만 먼저 현재에 영으로 와 계신 예수님부터 인정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동거 동행 동역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전에 은혜를 맛보았던 사람들이 다시 그 은혜를 찾기 위해 헤맵니다. 이 집회에는 안계실까? 저 집회에는 안계실까? 어떻게 해야 주님을 체험할까? 그래서 울면서 “제게 찾아와 주세요. 버리지 마세요. 은혜를 주세요. 그 때의 그 복된 경험 속에서 살게 해 주세요.” 그렇게 부르짖으면 조금은 체험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역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와 계신 주님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이미 은혜와 평강의 보따리를 가지고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와 현재적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서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체험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과거에 주님이 이루신 공로는 우리에게 자유와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5절 한 반절에서 6절에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기서 예수님의 과거를 말씀합니다. 이미 오셨던 주님에게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우리를 위해 이루신 공로입니다. 그가 이루신 공로는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기억할 것은 이것은 이미 이루신 사실이란 점입니다. 롬5:8-9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가 나기도 전에 우리를 죄에서 해방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용서함을 받습니다. 죄가 아무리 크고 주홍 같더라도 담대한 믿음으로 이 은혜를 받아누리시기 바랍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나라가 되었나요?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로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정권을 인정하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그래서 눅17:20-21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럼 제사장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제사장이 된 것은 성령을 주심으로서 이루어졌습니다. 슥12:10에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승천하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우리는 나라가 되고 백성이 되고, 예수님이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주심으로 우리는 간구하는 심령을 가진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이 예수님의 공로를 확신하고 적용하여 구원의 확신과 양심의 평안과 신령한 직분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과거에 오신 주심을 잘 믿는 것입니다.
 

3. 장차 임하실 주님은 이 땅에 놀라운 부흥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7-8절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다시 오실 주님도 현재진행형으로 지금도 오시고 계신 주님과 장차 온전히 임하실 주님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치 기차가 플랫 홈에 들어왔지만 아직 지나가고 있고 온전히 멈출 때가 있는 것처럼, 주님은 죄인을 대속하시기 위해서 이미 오셨고, 지금 믿는 자와 함께 계시며, 또 많은 부흥의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시면서 오시고 계시고, 그리고 장차 완성을 위하여 온전히 오실 것입니다. 이 임재의 3대 시제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흥의 영으로 주님이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애곡하고 통곡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부흥의 현장에 임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그동안 주님을 불신하고 자행자지했습니다. 제가 주님을 찔렀습니다. 제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충성하지 못했습니다.”
 

사사기 2장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가슴을 치며 울었던지 '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보김이라고 땅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영적부흥을 위해 임하시면 가슴 치며 통곡하는 복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의 변화는 주님이 성령으로 더 충만히 임하실 때 옵니다. 그리고 이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불신세계에도 회개의 역사가 넘실거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종말에는 양상이 다를 것입니다. 7절 말씀이 문자 그대로 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원수들이 후회하며 통곡할 것입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영혼과 육체를 함께 불 못에 던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눅12:4-5에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하셨습니다.

 

그럼,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학자들은 이 구름을 "하나님의 영광의 가견적인 상징물이라. 즉 상징적이면서도 실재적이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종말에는 영광중에 그러면서도 문자 그대로 그렇게 임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이 구름의 또 다른 의미는 꼭 영광의 구름만은 아닙니다. 마 17장과 계14:14에 나오듯이 예수 말고 나머지는 가리는 역할입니다. 오직 예수 신앙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그 얼굴과 옷이 해와 같이 빛날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말할 때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자고 말할 때에 희고 빛난 구름이 나타납니다. 왜 나타납니까? 덮기 위해서 나타납니다.


마17:5-8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했습니다.


눅9:36에도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했습니다. 흰 구름이 나타나 다 덮어버리고 예수만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변화산의 사건은 구름이 엘리야도 모세도 다 덮어버리고, 제자들의 말도 덮어버리고, 제자들의 생각 속의 초막 세 체까지 다 덮어 버리고 오직 예수님과 그 말씀만 나타나는 오직 예수의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세속에 물들거나 다원주의가 아닌 오직 예수의 믿음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는 자에게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리는 주님이 임하시는 성령부흥의 현장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부흥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확고한 터전 위에서 하나님께 한없는 영광을 돌릴 때 주님이 부흥의 불길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온전한 영광을 아버지께 돌려드릴 때 상상할 수 없는 부흥의 불길로 임하셔서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통곡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오심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입니다. 주님은 이미 오셨고,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며, 또 갈망하는 자들에게 오시고 계시고, 그리고 장차 온전히 오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담긴 이 귀한 진리를 깨달아 오직 예수의 믿음으로 예수님의 공로를 받아들이고 오신 주님을 믿고 동행하며 더욱더 주님이 부흥의 영으로 임하시기를 갈망하고 그리고 온전히 오셔서 우리의 육체와 우주까지도 변하게 해주시기를 갈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