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서난자(요일3:4-12)
하나님께로서난자(요일3:4-12)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짓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게 되는가 / 먼저 죄가 무엇이며 성경에 말하는 죄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사도바울은 로마서6장에서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자의 종이 되는줄 알지 못하느냐 하였다. 죄의 세가지 특성이 있다.
먼저 죄는 관계성에 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두시며 동산 모든 실과는 먹을수 있으되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시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무슨 뜻인가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가운데서만 생명이 있고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것은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표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함이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손을 대지 않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다.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선악과에 손을 대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선악과에 손을 대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깨어졌음을 말한다. 여기서 죄가 시작된 것이다.
죄란 무엇인가 ?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과 불화하는 것 자체가 죄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사람과의 관계도 깨어지고 불화한 상태에 있으면 그것은 죄가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 하다가 불화한 일이 생각나면 그 제물을 그대로 두고 먼저 화목하라고 하셨다. 불화한 상태 그 자체가 죄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관계도 진실하지 못하면 그것은 죄가 된다. 그러므로 죄란 그 관계성에서 먼저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즉 하나님과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깨어지고 불화한 상태로 있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로 죄는 그 소속에서 찾을수 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자의 종이 되는줄 알지 못하느냐 하였다. 즉 내가 누구에게 속하였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 속하였다면 세상적 가치관과 삶의 목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 갈것이다. 그것은 세상적으로 보기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듯 보여도 그가 세상에 속하여 있다면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산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은 죄가 된다.
셋째로 죄는 목적이 잘못된 것이다.
설령 선을 행하고 의를 이루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고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죄가 된다. 왜 예수님은 너희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갈수 없다고 하였는가 ? 그것은 바리새인의 의가 자신을 위한 의였기 때문이다.
사도요한 지금 하나님의 자녀와 죄의 문제를 이런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느냐 내가 누구에게 속하여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이런 관점으로 말하면서 하나님의 자녀와 그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9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였다.
하나님께로서 난자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속 즉 누구에게 속하여 있느냐 하는 것이다. 6절에 보면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 속하고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하지 않는다고 않는다고 그러나 반대로 죄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 죄를 관계와 소속의 문제로 생각할 때 죄를 짓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께로서 난자가 아니고 마귀에게 속한 것임을 말한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한다. 요한복음1장12절에 보면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였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것은 죄를 없이 하기 위함이다. 4,5절 죄를 짓는자 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내신바 된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게 될 때 나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서 다 없이 하셨다. 내게는 죄가 없다. 이제 하나님의 씨 생명이 거하게 된다. 이것이 거듭남 중생이다. 성향과 삶의 목적 가치관 의식이 바뀌었다. 삶의 중심도 그리스도중심적으로 바뀌었다. 이전에 내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즉 하나님께로서 난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처럼 그런 죄악된 삶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목욕을 한자처럼 이미 그의 몸과 마음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었다.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하는 말씀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도께 속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 속하여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그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해야 한다. 왜 죄를 범하게 되는가 ?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12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12절에 가인의 예를 들면서 가인이 왜 그 동생 아벨을 죽였는가 ? 그것은 악한자 즉 마귀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속하여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그리스도와관계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내 삶속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6절에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7절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9절에 저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는 말씀이 바로 그 뜻이다.
사무엘상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왕 사울에게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아말렉이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급하여 광야를 지날 때 해를 끼치고 중도에 방해를 하였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때 아말렉은 이십만 이스라엘은 일만이었다. 숫자적으로는 아말렉과 절대로 싸워 이길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 싸움에 개입하셔서 이십만의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그러면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대로 아말렉에 속한 모든 것을 다 진멸하지 않고 우 양을 살려 두었다. 이때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이 우양의 소리가 어찜이요 물었을 때 그 우양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살려 두었다고 하였다.
이에 사무엘 선지자는 말한다.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과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이다. 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께로 난자이다. 하나님의 씨 즉 말씀과 생명이 거한다. 또한 성령이 우리 위에 안에 곁에 역사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속하여 있다. 그리스도와 생명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다 영원히 없이 하였다. 의롭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 내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씨 즉 예수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거기에 내 생각이나 내 뜻을 가미해서는 안된다. 전적인 순종이 필요하다. 성령과 말씀을 쫒아서 매 순간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서 난자의 삶이요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이다. 이제 나의 삶을 돌아보자 진정 나는 하나님께로 난자인가 ?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가 ? 하나님께로서 나고 주님안에 참 생명과 의 와 거룩이 있다.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