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 요일 3:1-4
하나님의 자녀 요일 3:1-4
1. 시작하는 말
현재의 자기를 안다는 것과 한 걸음 더 나아가 장래의 자기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나,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일반 교인들은 물론, 소위 세상에서 출세했다고 하는 교인들이 부정과 비리 그리고 뇌물 등과 관련되어 회자되는 것을 볼 때마다, 현재의 자기를 안다는 것과 장래의 자기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지식이나 교양, 인격이나 깨끗한 양심, 부나 명예, 지위나 권세 등등을 갖춘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도움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현재의 자기를 알고, 또 장래의 자기를 아는 길은, 오직 창조주시자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야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 당연히 드러내야 할 행동 양식을 드러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사랑
요한 사도는 현재의 교인들에 대해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 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종이 되어, 마귀에게 끌려가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부모님들이 당신들의 고통보다 자식의 고통을 더 괴로워하신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그 생명까지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짐작케 해 줍니다. 죄와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멸망의 운명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만도 감사하기 그지없는 일인데, 게다가 죽음조차 빼앗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귀하고 영예로운 신분과 특권까지 주셨으니 그 은혜를 어찌 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좀 아쉬운 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우리를 알아주기는커녕, 알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은 세상이 우리를 알지도 못한다는 점이 바로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노르웨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어떤 소년이 숲 속에 놀러 갔다가 새알 하나를 주워 집에 가지고 와서 거위가 품고 있는 알들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마침내 부화가 되어 새끼들이 나왔는데, 그 알에서 나온 새끼는 다른 새끼들과는 달리 부리가 뾰족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 새끼는 거위 흉내를 내면서 어미 거위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새끼는 날개가 크게 자랐습니다. 어느 날, 독수리 한 마리가 저공 비행을 하면서 거위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때 이 새는 "나도 저 새처럼 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날개를 쭉 펴더니, 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그 새는 바로 독수리였던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낙원에서 사랑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며, 만물을 다스리는 영예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람에 죄와 죽음의 종인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고귀한 신분에 맞는 품위를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신령한 생활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령한 생활을 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3. 장차 주님과 같아질 하나님의 자녀들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더 영광스런 미래의 우리 모습을 예비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요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는 장차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그분과 닮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라고 하였고, 또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나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49-50)라고 했으며, 또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4)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장차 주님과 닮은 존재가 되어 천국에서 살 때에는,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광스런 소망을 확고히 붙잡고 사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세상의 고난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서 5:3 이하에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갖는 모든 세상적 소망이란 신기루와 같은 것이 아닙니까? 굉장히 아름답고 웅장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없는 것이 모든 소망의 특성입니다. 필연적인 죽음 앞에서 모든 소망은 하나도 예외 없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바 주님과 같아질 우리의 소망만이 영원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주님과 같아질 자녀들의 현실 생활
요한 사도는 부활 승천하신 주님과 같아질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소망이 성취되기까지 이 세상에서 마땅히 취해야만 할 생활 자세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닮은 존재가 될 소망 곧 영화의 소망을 가진 성도라면, 마땅히 주님 안에서 자신을 순결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순결이란 인간의 윤리. 도덕상의 순결이 아니라, 주님의 절대적 순결을 표본 삼는 것입니다. 믿음의 행위를 강조한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죄 곧 불법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영지를 소유하여 구원받은 사람은 도덕법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짓거나 어떤 법을 어겨도 죄나 범법이 아니라고 주장한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을 의식한 말씀입니다. 진정 죄에서 구원받았다면, 계속적으로나 습관적으로 죄악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5. 맺음말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항해하던 배가 파선이 되어서 선원 한 사람이 파도에 밀려 어느 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섬의 원주민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추장 앞으로 데려 갔습니다. 이 선원은 "내가 이제 저들의 손에 죽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원주민들은 자기를 임금으로 후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원은 왕의 자리에 앉아 권세를 누리며 살게 되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그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1년에 한 번씩 왕을 세웠다가 1년이 지나면 그 왕을 다시 무인도로 보내서 그 곳에서 죽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겁을 한 이 선원은 "구원받을 길이 없을까?" 하고 궁리하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명령하기를 배를 한 척 지어서 그 배에 곡식과 과일 나무를 싣고 무인도로 가 심으라고 했습니다. 임금의 명령이므로 그들은 모두 순종했습니다. 드디어 1년이 지나자 그들은 임금을 무인도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임금으로 있을 때에 구원의 길을 준비했던 까닭에 여생을 안전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의 행실은 내일의 자기 모습을 만들고, 장래의 자기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죄를 멀리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장차 주님과 닮은 존재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