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형태의 신앙 암초 유1:10-11
세 형태의 신앙 암초 유1:10-11
16세기는 유례없는 탐험 시대였습니다. 1492년 남북 아메리카 발견을 필두로, 많은 유럽 국가들이 새 항로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항해에는 막대한 희생이 뒤따랐으며, 신세계 정복을 꿈꾸던 수많은 사람들이 해상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돌아온 이들은 항로의 비밀을 터득해 그것을 항해일지라는 조그만 공책에 기록했습니다. 항해사가 항해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공책인 항해일지는 세계 항로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자 살아서 귀환하기 원하는 선장의 최대 희망이었습니다. 다른 배들은 그 길만 따라가면 안전했습니다. 항해일지에는 암초와 기타 위험물을 표시해 주고, 안전한 항구며 식량과 물의 소재지를 알려 줍니다.
성경 말씀은 영적 항해일지와도 같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믿음의 자취가 어떠한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믿음의 실패자들이 신앙생활 하다가 어떠한 암초에 부딪쳐 믿음이 파선이 되었는지를 자세히 기록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인들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신앙의 세 가지 암초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세 형태의 신앙 암초”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 형태의 신앙 암초는,
1.가인의 길로 행하는 신앙의 암초입니다.
유1:11에 ‘화있을 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했습니다. 성경은 가인의 암초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암초는 시기와 질투라는 암초입니다. 구약 본문 창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아벨의 제물은 열납 하시고,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 가인은 아우 아벨을 시기 질투하여 분을 내게 되었고, 결국은 아우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만일 가인이 아벨에 대하여 시기 질투로 인해 살기를 품지 않고 조용히 만나서 이보게 아우, 축하 하네. 나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안 받으셨는데 아우의 제사는 받으셨으니 어떤 비결이 있어서 그런가? 그 좋은 길을 좀 가르쳐 주게나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아벨도 아마 형님! 이렇게 해 보시지요 하며 나름대로의 방법을 제시하였을 것이고 그 조언을 따라 이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했다면 두 사람 다 얼마나 서로 돕고, 위로하고 격려 하면서 화평의 관계를 이루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 되지 못한 일로 인하여 그 영적인 문제를 잘 못된 방향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가 분하여 하는 모습을 아신 하나님께서 본문 창4:6-7에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가서 8:6에 보면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고 했는데, 내 안에 일어나는 시기 질투를 이기지 못하면 나와 남을 헤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전쟁에 나가 연전연승하며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아지자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다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교만한 하만은 바른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모르드개를 미워하여 그와 그 민족을 죽이려고 하다가 자기가 죽고 말았습니다. 본국인도 아니면서 총리가 된 다니엘을 시기하여 사자 굴에 넣기 위해 모함 하다가 오히려 자기들이 죽게 된 것을 봅니다. 한 동네에 친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둘이 마라톤 시합에 나갔습니다. 한 친구가 1등을 하여 금메달을 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현수막을 걸어주고 동상도 세웠습니다.
그러자 함께 마라톤에 나갔던 친구가 질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사람들이 잠든 틈을 타서 동상이 쓰러지도록 조금씩 팠습니다. 어느 날 밤 또 동상 밑을 파다가 동상이 무너지면서 그 동상에 깔려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성도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내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줍니다. 그에게 좋은 점이 무엇인지 배워 본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가인처럼 시기하고 질투하는 신앙의 암초를 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행하는 신앙의 암초입니다.
본문 유 1:11에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 두 번째 암초가 발람의 암초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유혹(시험)의 암초입니다. 유혹은 모든 인간에게 찾아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는 유혹을 이길 수 있다!, 나는 불혹이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담, 이브도 유혹 받고 넘어졌습니다. 아브라함도 유혹 받고 넘어졌습니다. 다윗도 유혹 받고 넘어졌습니다. 베드로도 시험에 들어 넘어졌습니다.
한 때 유혹에 넘어졌지만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회개하고 돌이킬 때 사는 길이 있지만, 고집하며 계속해서 어그러진 길로 가게 되면 그 결국은 멸망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발람은 기도하면서 발락에게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물질의 유혹을 받고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미혹의 길로 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라고 하실 때에 제자들은 너나없이 근심이 되어 '내 니이까?'라고 묻는데 갸롯 유다도 '내 니이까?'라고 묻고 있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면 눈은 예수님께 가 있지만, 손은 돈 주머니를 꼭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유다는 탐욕에 이끌려 스승도 팔아먹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탐욕에 이끌려 심지어는 남편도 죽이고, 아내도 죽이고, 부모도 죽이는 자가 되기도 합니다.
딤전6:9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파멸로 이끄는 것은 좋은 의복이나, 좋은 집이나, 좋은 음식이나, 좋은 지위나, 좋은 명예나, 좋은 차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을 불행하고 파멸로 몰아가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고 했습니다. 욕심에 이끌려 미혹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 길의 결국을 훤히 들어다 보시는 하나님께서 발람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민22장에 보면 먼저, 가지 말라고 말씀으로 막으셨습니다. 다음에, 나귀로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 못하는 짐승의 입을 열어서까지 그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이 열리게 하여 칼을 들고 그의 가는 길을 막고 있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막으심을 알고도 발람은 고집스럽게 발락에게로 갔습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이기에 결국 저주를 면치 못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발락 왕에게 간 발람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듯 했으나, 결국 미디안 사람들에게 우상에게 제사 드리는 일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혹하여 간음하게 만드는 꾀를 내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해서 심판을 받게 했고, 결국 자신도 심판을 받았습니다. 민31:8에 보면 모세의 명령에 따라 칼에 맞아 죽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치욕적인 이름을 남기게 되었는데, 벧후2:15에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고 함으로 삯군의 대표 격인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탐욕의 결과로 하나님의 선지자에서 이런 비참한 존재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성도가 유혹을 이기려면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깨어 있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유혹에 빠지면 평생 쌓았던 모든 공든 탑이 무너지고,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유혹은 아무리 가까운 친구로 찾아 올 찌라도 유혹은 적이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 올 찌라도 유혹은 독약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리쳐야 되고, 이겨야 됩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시험을 당한 내용이 물질의 유혹, 명예의 유혹, 권세에 대한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검으로 단호히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본받아 유혹을 이기고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가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고라의 패역의 길을 따르는 신앙의 암초입니다.
유1:11에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했습니다.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는 다단과 아비람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한 자입니다. 고라의 패역은 교만에서 온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교만은 큰 신앙의 암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마칠 즈음에 모세가 나이가 많아지자 고라를 중심하여 다단과 아비람과 온 등이 당을 짓고 백성 가운데 유력한 족장 250인과 함께 모세를 대항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항하여 비방한 내용은 하나님이 회중 전체에 계시므로 회중 전체가 거룩한데 왜 모세와 아론만 스스로 회중의 총회 위에 높은 자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1-3절).
고라는 레위 지파 고핫 자손으로서 성막 봉사에 참여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 참여하던 자로서 백성들에게 상당한 신임과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따른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족장 250인들도 각 지파와 종족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고라는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의 직분인 제사장직을 탐내어(10-11절) 권위 있는 자들을 선동하여 반역했습니다. 고라당이 모세를 비방한 내용은 회중 전체가 모두 거룩하다는 관점에서 볼 때(출19:6) 모세가 너무 많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정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의 의지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교만하여 자신의 위치에서 겸손함으로 충성하는 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단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높아지려고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쫓겨났습니다. (유1:6).
아무리 회중의 지지를 받은 자라도 모세는 모세고, 고라는 고라입니다. 모세가 고라가 될 수 없고 고라가 모세가 될 수 없습니다. 분수를 알지 못하고 대적하다가 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산채로 땅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만드신 것은 하나님을 받드는 영광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들을 섬기라고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분수를 모르고 섬기기 싫다고 반역한 무리가 되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유 1:6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했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고,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미국의 잡지 「The Defender」의 편집인 윈 포드 씨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 오하이오 주에 ‘체스터 베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일생 하나님을 모독하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큰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부자로서 82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자기 동상을 만들었는데 한 손에는 '만유의 정신적인 자유'라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고, 그 왼쪽 발밑에는 성경책을 밟고 있는데 거기에는 미신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큰 소리를 치기를 '만약에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고 성경이 정말이라면 내가 죽은 후에 뱀들이 나를 둘러 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죽은 후에 윈 포드 씨가 조사해 보니, 그가 죽어 하관할 때에 큰 뱀이 땅에서 나왔고, 다른 묘지는 뱀이 없는데 그의 무덤에는 어느 때는 뱀들이 우글거려서 20마리나 잡아 죽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윈 포드씨가 그의 무덤에 갔을 때 뱀 5마리를 발견해서 동행인들이 죽였는데 그 사진을 찍어 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듭니다. 우리 모두 교만의 암초를 피하여 고라처럼 패역의 길을 가지 않는 겸손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세 형태의 신앙 암초”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세 형태의 신앙 암초는,
❍.가인의 길로 행하는 신앙의 암초입니다.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행하는 신앙의 암초입니다.
❍.고라의 패역의 길을 따르는 신앙의 암초입니다. 이 암초들을 피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