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베드로후서

거짓 자유에 대하여 (벧후 2:17-22)

nam씨 2021. 12. 17. 21:12

거짓 자유에 대하여 (벧후 2:17-22)


열정적인 이단의 구성원들 중에는 한때 적어도 그리스도의 올바른 복음을 믿는 교회의 성도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미혹에 끌려 거짓을 신봉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과정을 말해 줍니다. 자유를 준다고 다가오는 거짓 교사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자유라는 말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량배는 폭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간주하며, 난봉꾼은 마음끌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참 자유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유에 대하여 각각 그 정의가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단과 거짓교사들은 그들의 개심자들에게 온전한 자유를 제공한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약속일 뿐입니다. 오히려 끔찍한 멍에 아래로 속박될 뿐인 것입니다. 그들이 제공한다는 자유는 거짓 자유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이단이 주장하는 자유가 왜 거짓된 자유인지를 설명하고 그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이단의 자유는 거짓된 약속에 근거합니다.(17-18)

신앙인의 중요 요소인 믿음은 이단에 빠진 자들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가 다른데, 그것은 그 믿음에 성취의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는 반드시 성취를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왕상8:56)에 "그 선한 말씀(약속)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이단들과 거짓 선생들의 약속이 헛된 것들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세 가지 생생한 예를 들고 있습니다.

1) 물 없는 샘

샘이란 솟아나는 샘을 의미합니다. 우물은 말라도 여전히 우물이라 부르지만 샘은 물이 솟지 않으면 더 이상 샘이 아닙니다. 물 없는 샘이란 '진리가 없는 선지자들', '복음이 없는 교역자들', '사랑이 없는 종교인들'에 대한 적절한 표현입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의 특징은, 겉모습은 매우 그럴 듯해서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실상 몰려든 사람들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2)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란 가짜 교사들의 특징인 빈약함과 공허함을 비유한 것입니다. 안개가 빛을 가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이고, 광풍에 밀려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처럼, 가짜 교사들은 잠시 동안 빛이신 그리스도를 가리나 결국 그들 자신과 가르침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호수나 바다에서 부는 질풍에 의하여 밀려가는 안개 또는 구름에 대한 묘사입니다. 구름은 보통 비를 동반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름은 단지 폭풍이 올 것을 알려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소란과 요동만 일어날 뿐 유익한 것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싹 마른 심령의 토양에 단비를 뿌려 주기를 기도하지만 거짓 선생들은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면 그들 속이 원래가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3) 캄캄한 어두움 같은 약속

이 말은 흑암의 깊은 곳이란 뜻입니다. 이단과 배교자들은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그들 자신들조차 결국 흑암의 가장 깊은 곳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유1:13)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18절에서 허탄은 '마타이오테토스( )'로서, '허영(虛榮)', '허황됨', '공허(空虛)', '덧없음', '무상', '허무함', '허무맹랑(虛無孟浪)' 등을 뜻하고(롬8:20, 엡4:17), 자랑은 '휘페롱카( )'로서 '부풀린', '과장된' 등을 뜻합니다. 이교도들에게서 겨우 피해 나온 교인들을 유혹한 가짜 교사들의 방법은 음란입니다. 가짜 교사들은 허황되고 과장된 말을 하여 믿음이 약한 교인들을 육체적 정욕에 사로잡히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자부했습니다.


2. 이단의 자유는 타락으로 이끄는 것일 뿐입니다.(19-20)

가짜 교사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갈2:4, 5:1, 요8:32, 36, 고후3:17)를 오해하고 남용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오해 및 남용의 심각성은,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2:16-17)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등의 말씀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귀한 생명을 바쳐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하신 목적은 도덕 폐기나 방종이 아니라, 사랑의 종노릇을 하며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방종케 하면서 자유를 준다고 하는 가짜 교사들은 실상 '멸망'의 종들입니다. 그 이유로 베드로는 유명한 공리인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20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곱 귀신의 비유(마12:43-45)를 연상시킵니다. 가짜 교사들을 비롯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진리를 알고 믿은 교인들이, 다시금 세상의 죄악 속에 얽매이고 지면 믿기 이전 상태보다 더 나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입술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시인할지 모르나, 그들의 행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각양 좋은 하나님의 은사들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것이므로 믿기 전보다 더 나쁜 상태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딛1:16)에는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3. 배도자의 결과(21-22)

베드로는 배도(背道)의 결과가 도를 알고 믿기 이전보다 더 나쁜 상태가 되는 이유에 대해 (21절)에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라고 보충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명령은 예수 믿는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자로서 전수 받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계명들을 지키지 않고 저버리는 것보다 아예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더 나은 것입니다.

(22절)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배도자들 특히, 가짜 교사들에 대한 경멸조의 비난입니다. 베드로는 전통적으로 불결과 경멸의 대상으로서 함께 일컬어져 왔던(마7:6) 동물의 종류인 개와 돼지의 구역질 나는 습관에 대한 잘 알려진 속담을 인용합니다. 이 속담은 (잠언26:11)의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를 자유롭게 인용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의도는 주를 믿어 구원받은 자가 다시금 멸망에 이르는 옛 죄악 생활로 돌아간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미 9절에서 말한 대로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실" 것입니다. 배도자, 거짓 교사들의 거짓 자유의 유혹에 결코 넘어가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