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사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1-11

nam씨 2021. 12. 4. 15:41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1-11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그런 소망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때로 너무 아파서, 힘들어서 위로를 받고 싶은데, 주위에 자기를 따뜻하게 위로해 줄 사람이 없어 긴 밤을 눈물로 보낼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말로 괜찮을거야한다고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배고픈 자에게는 빵이 주어지고, 병든 자에게는 치유가 이루어지고, 신용불량자에게는 빚을 갚거나 탕감을 받을 때 실제적인 위로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빵은 먹어도 다시 배가 고프며, 병은 고침받은 후에 또 다시 병들고, 돈은 있다가 없어집니다. 진정한 위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이사야 선지자는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활동하였던 선지자입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하였습니다. 앗수르는 남 유다까지 공격하여 왔다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 185천명을 전멸시킴으로 앗수르 군대가 떠나가는 위기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남 유다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고, 마침내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남 유다 백성들은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바벨론에 사는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바벨론 강가에 와서 시온을 바라보며 통곡하였습니다.(137) 저들의 유일한 희망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저들의 눈에 바벨론 제국은 여전히 강력하고, 자신들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 또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깨어진 가정 속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청소년들은 사랑과 협동보다는 내신과 수능이라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젊은이들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좌절하고 있습니다. 장년들은 어떻습니까?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입니다.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밖에 받지 못합니다. 노인들은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외롭게 살아갑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벌써 12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국민이 집단적인 우울증, 패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문재인 대통령도 실토했습니다.

 

이 모든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술과 도박과 게임과 향락에 빠져 세상의 근심을 다 잊어버리고 즐기면서 위로를 받으려 합니다. 그렇다고 위로가 됩니까? 상처가 치유되고 아픔이 사라집니까? 잠시 위로를 받을 수 있겠지만 진정한 위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 것인지 해답을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오늘 본문 1절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 것을 주목하여 보십시다. 비록 그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 끌려갔지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의 이용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외면하거나 배반하고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 중에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향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선포합니다.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2) 노역의 때 곧 바벨론 포로생활이 끝났다는 이 말씀보다 더 기쁘고 큰 위로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70년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은 다시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워낙 강대국이었기에 저들이 로마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절망스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시므온이라고 하는 노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기도하는 중에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위로자를 보게 될 것이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시므온은 즉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데려온 것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2:25-33) 그렇습니다. 시므온이 기다렸던 이스라엘의 위로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good news 입니다.(2:10-11)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천사가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2-23)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복이요, 참된 위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 가운데 고통을 당하고, 상처받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우리를 위로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오셔서 지금 이 곳에 함께 계십니다. (복음성가) 왜 나면 겪는 고난이냐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위로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본문 9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라.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전하라 하였습니다. 당신의 고난의 때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믿는 자마다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전체 역사를 통하여 한 번 걸리면 100% 죽게 되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그 병은 어떤 명의(名醫), 어떤 의술로도 정복하지 못하였으며 앞으로도 고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병의 이름은 죄()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3:23)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습니다.(3:10)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따라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에서 살게 되며, 죽은 후에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때 진정한 위로가 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을 닮기 원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도록 진정한 태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허한 말이나 값싼 동정심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죄와 저주로 묶인 사람들의 결박을 풀어주고, 참된 위로를 줄 것입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이 세상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찾아오시겠다고 하십니다. 직접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시도록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3)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이 예언은 예수님이 오실 당시 세례 요한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을 찾아 온 유대인들이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그러자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1:22-23) 대답하였습니다.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3:1)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란 곧 회개하는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심령에는 주님이 오시지 않습니다. 회개하면 지옥같은 삶 속에서도 천국의 삶과 위로를 얻게 됩니다.

 

본문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오시도록 골짜기는 돋우어지고, 가로 막힌 산과 언덕은 낮아지고, 고르지 아니한 곳은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은 평지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골짜기처럼 깊은 상처가 있고, 산과 언덕과 같이 높은 교만과 자존심, 미움과 분노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고르지 않고 모난 성격과 험한 쓴뿌리가 있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 심령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죄의 습관을 뽑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길을 평탄게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도 주께 돌아오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바리새인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23:13)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고 상처를 준다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실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릴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1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왕으로 오시어 악한 영을 멸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11)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로 오시어 양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기만 하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는 참된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으로는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와 실망을 줄 뿐입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제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 내가 보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죄 용서와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이제 회개하고 내게로 돌아오라. 마음속에 뿌리내린 모든 죄를 뽑아버리고 주님이 오실 길을 평탄케 하라. 그리고 이 소식을 사람들에게 소리높여 외치라.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시편 7328절을 함께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은 전파하리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