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주신 것 (벧후 1:3-4)
주님께서 주신 것 (벧후 1:3-4)
예수를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나눠주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재물, 자녀, 건강 등도 하나님이 주시지만 다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나눠주시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1. 신기한 능력
3절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생명
사람에게 두 가지의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적 생명이고 하나는 영적인 생명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담 이후로 죽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고 전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죽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생명을 나눠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이 생명이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1) 이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습니다.
(요3:3)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손발이 움직이고, 밥만 잘 먹는다고 살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은 살았지만 영혼은 죽어서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2) 이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가 선물로 주시는 이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3) 성령으로 난 생명입니다.
(요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우리 육신의 생명은 부모를 통하여 주신 육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 갈 수 있는 이 생명은 오직 성령으로 난 것입니다.
(4) 이 생명을 거듭난 생명, 즉 중생(重生)이라고 합니다.
(요3:9-10)에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육신으로 어머니 뱃속에 태어나는 것과 달리 아담으로 죽었던 영적인 생명이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2) 경건에 속한 모든 것
신기한 능력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면 그 거듭난 생명이 자라기 위하여는 꾸준히 영양과 물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한 마디로 [경건에 속한 모든 것]입니다. 경건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배와 삶입니다. 예배 속에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가 있습니다. 찬송도 있고 성령의 사귐이 있습니다. 그런 예배를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은 새 생명의 음료수에 대하여 말씀했습니다.
(1)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적인 물
(요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2) 경건에 속한 예배는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는 생명의 물입니다.
(요4:23-24)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 우리에게 주신 것의 근거와 내용
생명과 경건은 모두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한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이어갈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허락하십니다. 근거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가능합니다. (벧후1:2)에서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충분한 지식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순종을 동반하는 지식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가 누구입니까?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바로 내용입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을 받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행1:4)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아버지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인 믿음은 (엡2:8절)에 보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3. 이 믿음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세상과 더불어 살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에 빠져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1)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하려고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할 것 같이 보이지만 언젠가는 썩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언젠간 썩을 것에 얽매어 살진 않습니까? (약4:4)에는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고
사람이 어찌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까? 새 생명을 가졌고 새 생명의 영양인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생명과 양식인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알므로 얻는 하나님 아버지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입니다. 이것을 순종함으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귀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시련이 있을지라도 신앙성장의 보람을 거두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