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 지라도 (하박국 3장 16-19절)
주일설교(위드 코로나).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 지라도 (하박국 3장 16-19절)
2년 가까이 모든 사람들을 통제와 고통 속에 갇히게 했던 코로나 상황이 11월부터는 위드코로나로 접어들었습니다. 점점 일상으로 회복하려는 노력들이 진행이 될 터인데, 기본적인 방역수칙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협력해서 더 안전하고 쾌적한 일상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박국 3장의 일부 이지만, 설교 내용은 하박국 1~3장의 전체 시대 상황과,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 속에서 우리가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신앙의 회복을 어떻게 이루어 갈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일생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하박국 선지자 역시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크나큰 위기의 시대를 겪고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유다 왕국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였고, 동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 중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나라 없는 설움,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타민족에게 치욕을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겪었습니다. 위로는 왕부터, 아래로는 서민 대중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겪어야 했던 치욕과, 수모는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싫은 기억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바로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국란이 끊이지 않던 시기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활동 시대 전의 국제 정세를 잠깐 설명 드리겠습니다.
유다 왕국의 제 16대 왕은 ‘요시아’왕 이었는데, 그는 이스라엘 땅의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고, 신앙의 개혁운동을 펼친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요시아 왕 당시 북쪽에서는 바벨론이라는 신흥 강국이 등장하여 기세를 떨치던 때였으며, 바벨론 군대는 과거에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 제국의 수도를 함락시켰습니다. 뿔뿔이 흩어진 앗수르 제국의 군대는 이집트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당시 이집트의 왕인 ‘느고(바로 느고)’는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이 때 요시아 왕은 군사를 이끌고 가서 앗수르를 도우러 가는 이집트 군대의 앞길을 막아섭니다. 느고가 요시아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대하 35:21)라고 전합니다.
그러나 요시왕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듣고도, 이를 무시하고, 변장까지 하고 므깃도라는 곳에가서 이집트 군대와 싸웁니다. 이 전투에서 요시아왕은 화살을 맞고 전사하는데, 그의 나이 39세였습니다. 단 한 번의 중대한 실수로 인해 그토록 칭찬 받던 왕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요시아 왕의 죽음 이후 유다 왕국은 급격하게 나라의 국운이 기울어집니다. 요시아 왕의 사후 네 명의 왕이 있었는데, 먼저 그의 두 번째 아들인 ‘여호아하스’가 유다의 17번째 왕위에 앉았지만, 3달 만에 이집트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를 자기 나라에 포로로 끌고 가고, 대신에 요시아의 첫째 아들인 ‘여호야김(본명은 엘리야김)’을 18번째 왕위에 앉힙니다.
그러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유다를 침공하여 자기 나라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해서 ‘여호야김’왕을 자기 나라로 포로로 끌고 가고, 8살 밖에 안 된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을 19번째 왕의 자리에 앉힙니다. 그리고, 불과 석달 열흘이 지나서 느부갓네살 왕이 다시 유다를 침공해서 여호야긴 왕을 포로로 끌고가고, 요시아왕의 셋째 아들인 ‘시드기야’를 왕위에 앉힙니다.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20대)으로 11년 통치 끝에, 느부갓네살왕의 3번째 침공을 받아, 자기 아들들은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네 명의 왕들을 보면, 비극 그 자체 입니다. 힘이 없는 나라의 최후는 항상 아프고 쓰린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하박국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유다 왕국이 처참하게 붕괴되어가는 시점에 활동을 했습니다. 동시대에 활동하던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부짖으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도무지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절한 기도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3장 이전에, 1장, 2장에서 하박국은 두 번에 걸쳐 하나님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드러냅니다. “2. (하나님!)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13. 주께서는 눈이 맑으시므로, 악을 보시고 참지 못하시며, 패역을 보고 그냥 계시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보고만 계십니까? 악한 민족이 착한 백성을 삼키어도, (언제까지)조용히만 계십니까?”(표준새번역, 합 1:2;13)
하박국은 분노하면서 하나님께 따지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아주 유명한 두 구절입니다. 첫째 구절은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2:13)라는 말씀입니다. 찬양의 가사로도 불려져서 잘 아실 겁니다. 이 말씀의 뜻을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진짜 하나님의 의도는 이렇습니다.
『너희들이 악을 행하고, 거짓을 행하고, 우상을 섬기고,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온갖 불의와 거짓을 행한 것을 인정 하느냐? 나 여호와는 그런 민족 그런 나라에 대해 무수히 많은 경고를 보내고, 무수히 많은 사람을 보내어 돌이키도록 기회를 주었는데도, 너희들은 듣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그들이 애써 한 일이 다 헛수고가 되고, 그들이 세운 것이 다 불타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나 만군의 주가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나 여호와가 물이 바다를 덮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안정한다면,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권세가 있듯이, 모든 것을 빼앗을 권세가 있음을 인정하고, 유다를 망하게 하는 것을 받아 들여라, 그것이 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아, 그만 원망해라, 징계(심판)를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인정하는 자세이다. 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둘째 구절은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2:20)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배와 관련해서, 또는 기도와 관련해서 자주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본 뜻은, 『너희들은 평소에 어디에 있었는냐, 나는 성전에 있는데 너희들은 밖으로만 돌아다니니 않았느냐, 나에게 무엇을 물어 본 적이 있느냐, 나에게 무엇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너희들은 말 못하는 돌과 나무에다 대고 이것 달라 저것 달라, 복을 달라고 그렇게 정성을 드리면서도, 도무지 나에게는 나아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성전에 머물러 있지만, 나는 여전히 잠잠히 너희들의 말을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너희들에게 지혜를 말해주려고 준비하고 있지만, 너희들은 여전히 밖에서만 떠들고, 마시고, 춤추고 있구나, 성전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내 앞에서 듣지 않는 자들을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박국아, 더 이상 성전에 나아오지 않는 네 백성, 더 이상 내 앞에서 잠잠하지 않는 네 백성을 내가 징계의 채찍으로 내려치리라. 너는 받아들여라』 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 두 구절을 기억 하실 때, 이 말씀이 하박국이 따지듯이 묻자, 하나님이 징계의 정당성, 공의의 집행을 강하게 추진하시고자 드러내시는 대답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1, 2장을 자세히 읽어 보시면,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운 분이신지, 얼마나 징계에 철저 하신 분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하박국은 애절한 기도를 드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언제나 옳습니다. 반드시 실행이 됩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은혜이든, 멸망이든, 심판이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교훈을 보면, 대대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인정 하면서도, 멸망과 심판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조차도 자신의 나라가 그토록 교만하고 부패하고 불의와 불순종에 찌들어 있었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시 않음에 대해 쉽게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냉정한 말씀인지는 몰라도, 세워질 사람은 세워지고, 망해야 될 사람은 망해야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인 된 교회는 점점 부흥하고, 사람이 주인 된 교회는 쇠락해야 합니다. 의인이 복을 받고 불의한 자가 멸망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복음에 충성하는 자가 영생의 면류관을 받고, 욕심을 따라 살고 거짓 믿음으로 가장하며 사는 자가 버려짐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공의이며, 진리입니다.
나라를 잃어 봤던 우리는 큰 아픔을 지닌 민족입니다. 가족이나 개인의 일로 큰 실패와 좌절을 겼어 봤던 분들은, 다시는 그러한 일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회복과 성장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마냥 어린아이처럼 봐주시기만 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들이 당장의 징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항상 저울질 해 보이시고, 불법과 불의로 인해 무게추가 내려가고 있음도 수시로 재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이 개인의 회심, 신앙개혁운동 이었다.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우리 가족이 불화를 겪지 않으려면, 우리 자녀들이 다른 길로 빠지지 않게 하려면, 내 자신이 믿음의 실패자로 살지 않으려면, 공의와 심판과 징계를 내리시는 엄하신 하나님 앞에 날마다 서야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전에서 잠잠히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아가, 말씀을 듣고, 들리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회복이 일어나고, 용서가 주어지고, 새로운 능력의 지혜를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하박국의 간절한 심정으로 따지듯이 하나님께 묻고, 간청하는 자세를 취하시되, 먼저 회개하는 마음, 먼저 인정하는 마음, 먼저 순종하는 마음을 구하시며, 코로나 이후에 모든 면에서 회복의 길로 나아가시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자신이 너무 급하고, 답답하고, 분노한 나머지 따지듯이 하나님을 상대했던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하박국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눈군가 내 뺨을 때렸다면, “저는 맞을 만한 인간인데 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한 대 더 때려 주세요”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뭐요? 이 사람이 미쳤나, 너도 한 번 맞아 봐라” 서로간에 싸움이 날 것은 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과 오래참음을 내세우는 분이십니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과 민족을 징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징계가 있다면, 그것을 먼저 인정할 때 용서와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 드리지만, 제일 불쌍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다가는 종말의 시간에 심판자 앞에 섰을 때,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부인 당할 수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잘못과 죄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대다수는, 자신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시인 받을 만하다고 착각하고 교만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제 완전히 하나님을 인정하며 기도를 올려 드리는데, 그 기도의 장면이 3장 전체에 담겨 있습니다. 3장 1절에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라고 했습니다. ‘시기오놋’은 바른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고 비틀거리다 회개하는 상황, 또는 울부짖으며 통곡하며 애통하는 상황의 뜻이 있습니다. 하박국이 어떤 심정으로 기도했는지 ‘시가오놋’에 잘 담겨 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하박국이 처음 기도를 드린 내용은 2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 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아멘.
“수년 내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말씀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부흥회 하면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말입니다. 이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뒤에 나오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는 말씀입니다. “진노 중에라도”는 것은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100%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진노하신다고 해서 분노하거나, 짜증내거나, 따지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100% 수용의 자세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인정과 수용의 자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역사하시게 되게, 수년 내 부흥하게 되는, 수년 내 나타나게 되는 강력한 회복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부흥을 소망 하되, 먼저 자세를 낮추고 하나님의 진노를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하박국은 15절 까지 계속 기도하면서 일절 마음에 요동함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창조하심, 운행하심, 섭리하심, 일하심, 기회주심, 용서하심, 경고하심, 징계하심, 심판하심, 구원하심 등, 전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세를 무한하게 인정하고 신뢰하는 기도를 풍성하게 올려 드렸습니다.
하박국은 선지자 다운 모습으로 돌아와서, 물이 바다 덮은 같으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성전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 잠잠히 엎드리는 올바른 태도로 나아갔습니다. 설령 순간적인 감정 때문에 하나님께 대하여 분노와 짜증과 따짐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기도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꼭 배우고 실천해야 할 교훈의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주시든지, 빼앗아 가시든지 / 칭찬하시든지, 질책 하시든지 / 상급을 주시든지, 징계하시든지 / 번성케 하시든지, 멸망케 하시든지/ 무조건 인정하고 무조건 신뢰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태도이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취할 태도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는 더욱더 이러한 모습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드디어 오늘 본문으로 이어집니다. 16절에서 하박국은 심판당하는 자로서의 두려움과 극한의 공포를 드러냅니다. 창자가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어 들어가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지만, 강력한 군대의 침공으로 인해 초토화가 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이러한 심판의 두려움을 뛰어넘어 백성에게 미칠 재난의 날을 참고 기다리겠다고 고백합니다. 이를 악물고 다짐한 후에 올려드린 기도가 바로 16~17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16~17절의 내용을 너무나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주신 것이 없어도 감사하자, 하나님만 바라보자, 이러한 단편적인 이해와 설명을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앞에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유명한 말씀이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왜 제가 이제껏 하박국 전체 상황을 이렇게 길게 설명을 드렸는지 말씀 드립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 지라도”입니다. 문자대로 생각하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괜찮다는 의미 일 수 있습니다. 자족하고 만족하라는 그런 의미일까요? 이 말씀을 때할 때는 먼저 네 가지의 신앙고백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들어 보시고, 이 고백들이 나의 고백,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의 고백, 나아가서 우리 민족과 나라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① 내 자신이 완악하고 목이 굳은 행동을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심판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잘못된 언행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분노하고 짜증내고 따져 대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되, 어떤 질책과 매 맞음과 징계와 심판과 멸망까지도 100%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② 내 자신이 성선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싫어하고, 거부하면서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 사람의 소리만을 듣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는 줏대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성전으로만 나아가 잠잠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진리의 말씀을 듣는 일을 최우선으로,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겠습니다.
③ 내 자신이 물질적인 풍요와 여러 가지 삶의 필요들을 계속 요구하면서,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부흥하는 것만을 끊임없이 요구하면서도, 정작 쌓여가는 죄악들로 인해 참을 수 없이 진노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였으니, 이제는 부흥과 풍요에 앞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구하며, 회개하는 자로, 돌이키는 자로 살아가겠습니다.
④ 내 자신이 너무나도 참혹한 죄악들을 저질러서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오니, 창자가 뒤틀리고, 뼈가 썩어가고, 입술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무서운 징계가 내려온다고 하여도, 용서와 회복을 구하며 그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겠으니, 제발 내 자신이 구원의 기회를 잃지 않게 하시고, 다시 복음 앞에, 다시 하나님 앞에서 사랑 받는 자녀로 살아갈 기회를 주옵소서.
하박국은 진노를 인정하고, 징계를 받아들이며 다시 하나님을 찾고 신뢰하는 마음을 담아, 징계와 심판으로 인해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라고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박국 전체의 내용을 살펴보았으니,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와 의도를 이제는 제대로 아실 겁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진정한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고,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이후에 이 땅의 모든 성도,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의 참 된 신앙 고백이 되기를 진정으로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찾으시고, 돌이키는 자를 다시 품에 안아 주십니다.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 지라도”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그냥 주신 것에 만족하고 자족하는 삶을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멸망의 심판까지도 100% 인정하면서, 청종의 삶으로 나아가고,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자는 절절한 신앙고백의 기도입니다. 이 시대에 정말 우리가 외쳐야 하는 간절한 기도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위드 코로나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위드 갓(GOD)의 정신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히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히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성령님 한 분이면 충분히 인내 하며 소망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 지라도”, 우리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참 믿음 하나만으로, 모든 면에서 용서 받고, 모든 면에서 회복하고, 참된 구원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 지라도”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구원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함을 얻게 하시고, 온전한 믿음과 순종으로,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용서와 회복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