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맡기는 신앙(1) 시37:1-9, 빌4:4-7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1) 시37:1-9, 빌4:4-7
과학자와 생물학자 몇 사람이 알프스 산에 있는 특별한 종류의 꽃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들풀을 따라서 조사하던 중 아름다운 꽃을 찾아내었는데 그 꽃은 양쪽의 험준한 절벽으로 된 협곡에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꽃을 꺾으려면 절벽으로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이 꽃을 보고 있던 그 곳 원주민인 한 소년에게 "만일 네가 저 꽃을 꺾으러 계곡에 내려가면 많은 돈을 주마"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협곡을 바라보더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곧 돌아올께요."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에 소년은 어른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 분이 밧줄을 잡아주면 제가 계곡에 내려가서 그 꽃을 꺾을 수 있습니다. 이 분은 제 아버지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소년이 자기 아버지를 신뢰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 보다 사람들이나, 물질이나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더 신뢰하는 자신을 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가 신뢰하는 것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늘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몇 차래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을 가지고 살려면,
1.매사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시37:5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했습니다. 맡긴다는 것은 믿음과 신뢰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주님을 향한 신뢰요, 신앙인 것입니다. 살면서 무슨 일을 만나든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신뢰가 무너지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은총을 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지 못하게 하려고 미혹하고 시험을 합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미혹할 때도 하나님을 의심 하게 만들어 시험에 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할 때에도 사단은 욥이 처한 좋은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환경이 나쁘게 변하면 욥의 믿음도 변할 것이라고 참소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호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우겨대자 욥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은 사단은 욥이 사람이 당할 수 있는 모든 불 시험으로 시험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욥의 신뢰와 믿음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깜깜한 밤하늘의 별처럼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변한다고 믿음이 깨어진다면 그 모습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했습니다.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쓰 대장이 시카고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만 믿고 그를 의지하라고 설교를 하는데 한 노동자가 앞으로 나오더니 "여보시요, 부쓰 목사, 그리스도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하며 당신을 도와준다고 이야기하나 만일 당신의 아내가 죽고 어린것들은 엄마를 못 잊어 마구 울어댄다고 해도 지금 하신말씀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부쓰 대장의 아내가 열차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녀의 시신이 구세군 교회로 운구 되어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다시 집회를 인도하는 자리에서 "얼마 전 바로 여기에서 집회를 가질 때 어느 분이 아내를 잃고 애들이 울어대는 데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를 의지할 수 있느냐고 하셨는데, 그분이 여기에 계시다면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은 지금 갈기, 갈기 찢어진 상태이나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 새로운 노래를 담아주셨습니다. 내 그릇에 주신 거죠..."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은 거기에 참석해있었습니다. 앞으로 걸어 나온 그는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그렇게 도와주시는데 왜 의지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역경이나 큰 환난을 만난다고 신뢰가 깨어지고, 믿음이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어떤 경우를 만나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에 굳게 서는 성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본문 시37:4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했습니다. 성도는 내가 살면서 무엇을 가까이 하고, 기뻐하며 살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며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보다 물질을 기뻐하며 사는 자는 항상 마음을 물질에 마음을 두고 더 많은 물질을 축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살게 됩니다. 명예와 권세를 기뻐하는 사람은 세상의 출세를 위해 온 마음을 기울이며 삽니다. 세상 연락을 기쁨으로 사는 사람은 불나방처럼 달콤한 연락을 찾아 사는 길인지 죽는 길인지도 모르고 뛰어듭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인이라 해도 실상은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형식적이고 허울뿐인 외식하는 신앙을 가진 자일뿐입니다.
그러나 참 믿음의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기뻐합니다. 돈보다, 세상 명예나 권세보다, 세상 연락 보다 주님을 더 사모하고 사랑합니다. 행여 주님과 사이가 멀어질까봐 염려 하면서 더욱 기도에 힘쓰게 되고,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게 되고, 주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같은 마음으로 미워하고, 주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주님과 한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행하기를 힘쓰며 매사에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힘쓰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시편 16:8-11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2:2-3에 "보라 하나님은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했습니다. 기쁨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함께 동거, 동행하며 사는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도 기쁨이 충만하고 주변에도 기쁨의 관계를 이루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사단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불신앙에 빠지게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달콤한 유혹으로 죄악의 기쁨을 누리도록 하여 결국 타락시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요 10:10절)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시험에 빠져 불순종 하게 됨으로 하나님과 교제가 깨어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떠남으로 그때부터 인간에게는 기쁨 대신 근심이, 평안 대신 두려움이 그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2:13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주님이 주시는 참 기쁨을 맛볼 수 없기 때문에 기쁨을 찾되 세상적인 방법으로, 인본주의적인 노력으로 기쁨을 찾고자 몸부림을 치지만 그런 일시적인 기쁨은 만족이 없고, 더 깊은 수렁에 빠져 탄식하며 몸부림을 칩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는 35분마다 1명씩 자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분에 1명씩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크리스천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정신적인 불안정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뻐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면 오늘날 현대의학도 치료할 수 없는 병들도 치유함을 받을 수 있지만, 주님을 떠나 기쁨과 감사를 잃게 되어 근심이 마음에 들어오면 뼈가 마르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문제가 생겨도 근심 대신 기뻐하면서 감사로 아뢰게 됩니다. 신약 본문 빌4:4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했고, 6절에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늘 기뻐하며 감사하는 자로 살기 원하십니다. 문제가 있을 때에도 문제 보다 크신 하나님, 문제를 능히 해결해 주실 하나님을 믿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복을 받을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참 신앙인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어떤 성도가 열심히 기도를 해도 자기에게 응답이 없어서 실망하고 있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서 하늘의 보화 창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한 창고에 이르렀습니다. 창고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 창고가 어떤 창고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간구 창고’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울면서 매달려서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 하고 간간구할 때 마다 이 보화 창고를 열고 다 나누어주어 버려서 텅 비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 창고로 가니까 또 보화 창고가 있는데 보화가 가득 가득히 쌓여있었습니다. 이 창고는 무슨 창고 입니까? ‘감사 창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쌓은 보물 창고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하도 감사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대로 보물이 쌓여 있습니다.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성도는 잠에서 깨어, 그 때부터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복과 신령한 은혜가 넘치게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은혜와 기적을 체험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감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만큼 많은 은혜와 기적을 체험한 자들이 없었습니다. 허지만 그들은 감사 대신 끊임없이 하나님과 주의 종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노여움을 사는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한다.”고 책망했는데(사1:2-3),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도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마땅히 드릴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지적입니다. 불신앙으로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자에게는 진노와 징계와 심판이 따르지만 감사는 질병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미국에 실업가 중에 스텐리 탠 박사가 있는데, 그가 척추 암 3기라는 진단을 받은 후 모든 사람들이 '그가 절망 가운데 곧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그가 병상에서 일어나 다시 출근하게 되어 지인들이 "아니 어떻게 병이 낫게 되었나요?"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스텐리 탠은 "아 네, 전 주님 앞에 계속 감사만 했는데 병이 다 나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한 기도는 단순했습니다. "주님, 병들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병들어 죽게 되어도 감사합니다. 저는 죽음 앞에서 주님께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살려 주시면 살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주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매 순간 감사하고 또 감사했더니 암 세포가 다 사라지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는 놀라운 고백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몇 차래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을 가지고 살려면,
◎.매사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