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사야

내게 주신 위대한 사랑 이사야 43:1~7

nam씨 2021. 7. 17. 15:15

내게 주신 위대한 사랑 이사야 43:1~7

 

여러분은 세상을 살기 힘들고 어려울 때 무엇으로 극복하시나요?

 

사람이 정말 살기 힘들고 어려울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면,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사랑 받고 있나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주님이 하신 말씀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이 뭘까요?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랑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으로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은 사랑 속에서 태어납니다. 부모의 사랑 속에서 태어나고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랍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자기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 속에서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나요? 가족입니까? 친구입니까?

 

여러분은 그들의 사랑에 만족합니까? 혹시 부족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고 걱정 마세요.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크고 더 위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헤아리기 힘든 놀라운 사랑이고 풍성하기 그지없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는 감동적인 희생이 있습니다. 누구의 사랑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그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 사랑을 받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를 자세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믿어도 됩니다. 그 사랑은 참되고 그 사랑은 완전하고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 고백입니다.

 

이사야 성경은 모두 66장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용적으로 전 후반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39장이고 후반부는 27장입니다. 참 신기하죠? 내용도 그렇습니다. 1장부터 39장까지 경고하시고 책망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구약적인 냄새가 농후합니다. 그러나 40장부터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돌아올 것을 말씀합니다. 신약적인 냄새가 풀풀 납니다. 그중에 40~43장까지는 마치 신약의 복음서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 오늘 우리는 43장을 보고 있습니다. 43장은 하나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내용입니다. 그 사랑을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을 살펴보면 여실히 들어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1. 창조주가 피조물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1절을 보세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왜 이렇게 부르실까요? 야곱은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기 전의 이름이고 이스라엘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후 받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야곱인 우리도 사랑하시고 이스라엘인 우리도 사랑하십니다.

 

잘 살펴보면 내가라는 표현이 12라는 표현이 24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당신을 누구로 소개합니까? “나를 창조하신 여호와”, “나를 지으신 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분은 나를 창조하시고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나를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렀고 하나님 것이라고 소유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救贖(구속)은 수갑 채우는 拘束(구속)이 아닙니다.

 

나를 구원하려고 값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누구기에 창조되고 구속되는 그런 엄청난 사랑을 받습니까? 그럴만한 자격이나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그게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저는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을 보면 소망이 생깁니다. 이 야곱은 간사하고 욕심이 많고 좀 야비하기까지 합니다. 때로 비굴하기도 하고 때로 이기적입니다.

 

형을 피해 20년간 외삼촌 집에서 살다가 돌아옵니다. 그때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군사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모든 가족과 짐승, 수하들을 먼저 강 건너 가게하고 자기는 건너지 않습니다.

 

왜죠? 부인과 자식은 다 죽어도 자기는 살아남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와 씨름합니다. 그래서 그를 변화시킵니다. 그리고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바꾸어줍니다.

 

왜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버리지 않고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이유는 그가 나를 창조하셨고 택하시고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가를 지불하고 구속하였기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런데 정말 안 어울리는 사랑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주와 피조물인 인간의 사랑입니다. 그것도 인간 쪽은 별로 사랑하는 것 같지 않는데 창조주가 일방적으로 사랑한다고 외치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것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사랑입니다.

 

 

 

2. 완벽한 보호자의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보호가 아주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2절을 보세요.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람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물이고 불입니다. 그런데 이 물과 불은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입니다. 물 없이 며칠 버틸까요? 불이 없이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물이 없다... 난리 나죠? 불이 없다... 이것도 난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물과 불이 넘치면, 통제가 안 되면 그것처럼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도 없습니다. 홍수 수해... 수많은 인명이 죽습니다. 화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재앙은 이 물과 불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통제가 안 되면 재앙이고 심판입니다.

 

노아홍수, 물로 심판한 재앙입니다. 소돔 고모라, 불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마지막 심판도 불로 심판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런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이 말씀은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이 물처럼, 불처럼 위험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인데 그때도 함께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래서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분의 사랑은 나와 늘 함께 하며 지켜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고 염려할 것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놀다가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면 난리가 나죠? 왜요? 불안한 것입니다. 나를 지키고 돌보는 분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소리를 지르고 엄마를 찾습니다. 그때 소리만 들려도 불안이 사라집니다. “엄마 여기 있다이 소리만 들어도 모든 불안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는 소리를 듣고도 불안해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수없이 약속하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도 불안해합니다. 왜요?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니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보호자는 우리와 함께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보호해주시는 것일까요? 3절이 해답입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여기 대저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토록 우리를 보호하려 하느냐?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값을 치렀고 우리를 구하려고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별 보호를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식을 왜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이 여러분 자식을 내 자식으로 알기 때문이고 그 자식을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자식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보다 더한 사랑을 베풀고 계십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를 보배처럼 존귀하게 여기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인 나를 대할 때 어떤 시각으로 대하느냐? 그게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있습니다. 4절을 보세요.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이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보이기에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암시하는 것은 실제로는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가 아니란 의미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대신 내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실제 역사적인 사건으로 성취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다른 백성들을 대신하게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또 실제로는 하나님 앞에 죄악을 범한 백성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고 그들을 보배처럼 존귀하게 여기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조건이나 형편을 보시고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기에 사랑하십니다. 그저 자격 없지만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못났어도 내 새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7절을 보세요.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우리가 누구라고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자입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지느냐?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겉보기와 다른 자 인 것입니다. 겉으로는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여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 즉 하나님 백성, 하나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단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창조 목적이 분명한 자입니다. 왜 만드셨나?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그 목적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잘났고 복이 많아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받은 것이 많다는 것은 잘 먹고 잘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사명이 많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치 않으면 주신이가 어찌 하겠습니까? 한방에 거두어 가시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자은 것 하나에 손을 살짝만 대도 꼼짝 못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기에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주셨을 때 잘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지음 받은 목적, 맡겨주신 목적대로 살아야 하고 써야 합니다. 그래서 내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야 합니다. 아멘?

 

성도 여러분!

이런 사랑을 받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아무리 힘들게 하고 넘어트리려 해도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 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2) 회복의 약속을 철저히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 회복의 은혜를 빼앗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회복을 믿으세요. 남편이 돌아오고 자녀들이 돌아올 것을 믿으세요. 다만 나는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려운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 사명이 뭔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 사명이 뭔가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방향도 방법도 정해지는 것입니다.

 

내 사명이 뭔가를 아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처한 환경과 위치에서 주님을 기쁘게 하는 도구가 되면 됩니다. 직장을 통해서,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일터를 통해서 주님을 기쁘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재능을 주셨나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세요. 재물을 많이 주셨나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방법을 찾으세요. 그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엄청난 도구로 쓰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알고 살 때 우리는 달라집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 사랑을 받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우리는 분명 변화됩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