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야고보서

꼭 해야 할 경건의 훈련 (약 1:19-27)

nam씨 2021. 7. 10. 14:13

꼭 해야 할 경건의 훈련 (약 1:19-27)

이 시간에는 “꼭 해야 할 경건의 훈련"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이것이 요리문답 제 1문답에도 기록 되었듯 인생의 제일가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경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건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훈련이 잘 되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경건에 대한 성경의 약속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들으시고 받으십니다. 경건하면 성령이 위에 계십니다. 경건한 자를 쓰십니다.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도 유익합니다. 경건은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귀한 자세입니다. 롬1:18에는 경건치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롬5:6에는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귀한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핍박도 따릅니다. 그러나 영원한 영생과 함께 받는 것이니 축복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경건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늘 훈련하고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딤전4:7-8에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럼 야고보가 말하는 경건의 훈련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 언어의 훈련입니다.

19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그랬습니다. 26절에도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언어의 훈련입니다. 언어의 훈련에서는 먼저가 절제의 훈련입니다. 왜냐하면 절제 된 언어생활이 없으면 경건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듣기를 먼저하고 말하기를 더디 해야 합니다. 내막도 잘 알지 못하면서 말부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그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무엇을 들으면 사실여부보다 곧 바로 그것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계하며 조심해야 할 사람입니다. 대체로 배움이 부족한 동네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일은 정통한 소식일지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은 경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에 재갈 먹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의 입에 쇠사슬로 된 재갈을 먹이듯이 우리 입에도 재갈을 먹여야 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줄여야합니다. 평소에 말이 없다가도 한 번 입이 터지면 그칠 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 일주일 정도 정해서 침묵훈련을 하세요. 하고 싶은 말은 글로 써서 합니다. 사람 있는 곳에 가려면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세요. 그러면 그 한 주간이 일생을 좌우할 귀한 성향을 심어주게 될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내 주장만 하지 말고 대화조의 말을 해야 합니다. 남의 말도 존중해야지 내 주장만하고 딱 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항상 절제 되고 다듬어진 아름다운 언어의 훈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2. 감정조절의 훈련입니다.

19절 후반-20절에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지정의 중에서 가장 다르기 힘든 것이 감정입니다. 다른 것보다 시간적으로 빠르고 깊은 상처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성내는 것을 더디해야 하는 이유는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며, 나에게 손해가 되고,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성낼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장 유익 되도록 결정한 일인데 오해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모든 일을 조금만 더디 해보세요. 성낼 일이 있어도 1분만 기다려 보세요. 1분이 너무 길면 30초만 기다려 보세요. 30초도 길면 10초만 기다려 보세요. 10초가 길면 5초라도 기다리면서 생각해 보세요. 과연 성낼 일인가?

사람이 감정을 갖게 되면 혈압부터 오르고 성인병에 치명적입니다.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몇 달간만 속을 끓으면 암세포가 몸을 다 장악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서라도 기다리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5초가 길면 3초라도 생각해 보는 마음만 가지면 충분히 자기감정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3초 만에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글이 있더군요. 3초만 기다려 주고, 3초만 참아주고, 3초만 있어주고, 3초만 생각해 주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이지요. 혹시 누가 악담을 하면 혹시 그 분의 건강이 좋지않아서 그런가? 왜냐하면 병으로 몸에 독이 있으면 마음도 짜증나고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혹은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일까?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정조절훈련을 받아야합니다. 아직도 불완전하지만 내가 죽는 훈련입니다. 욕을 당해도 죽어야 합니다. 세상이 유혹해도 죽어야 합니다. 억울해도 죽어야 합니다. 어떤 일에도 상처 받지 않아야 합니다. 염려도 맡겨야 합니다. 마음에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 받지 않아야 합니다. 대신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과 의에 대해서는 산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정조절훈련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감정도 조절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갇혀서 복음을 전할 때도 구설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꼭 그런 식으로 전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빌립보 교회를 빼고는 모두 돌아서고 말았습니다(빌4:15). 그러나 바울은 빌1:12-14에서 이것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옥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으며 기뻐하라고 권할 수 있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는 지혜를 가진다면 판단은 물론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말씀의 훈련입니다.

21절 중반부터 25절까지 말씀입니다.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말씀 존중이 하나님 존중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복있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눅11:27-28에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먼저는 말씀 듣는 훈련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거나 설교를 듣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함과 사모함과 온유함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옥토 밭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알되 넓게도 알아야 하고 깊이도 알아야 하고 기억도 잘해야 합니다. 이것이 모두 엄청난 도움과 무기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을 행하는 훈련입니다. 22절에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고 사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내가 은혜 받았다.” 하면서 말씀을 듣고 만족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다하는 줄로 압니다. 물론 은혜가 잇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안내이지 본론은 아닌 것입니다. 식품 강사가 아무리 식품을 소개해도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어도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진리를 야고보는 거울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울을 통해 자기 얼굴을 보고는 곧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거울 봐서 때가 묻었으면 씻어야지 더러운 것을 보고도 돌아서서 잊어버린다면 거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행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으로 듣는 훈련과 잊지 않고 그 말씀을 행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거룩한 사람, 사랑의 사람, 전도의 사람, 용서의 사람, 충성의 사람, 겸손의 사람, 소망의 사람, 찬송의 사람, 기쁨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4. 사랑의 훈련입니다.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와 관계 있는 사람에게만 잘합니까? 돈 많고 명예로운 사람에게만 잘합니까? 그렇게는 불신자들도 합니다. 그것은 경건이 아닙니다. 정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경건입니다.

5. 악을 멀리하는 훈련입니다.

21절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그리고 27절에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이것도 왜 훈련일까요? 자꾸만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늘 구원의 복음에 서야 하며 늘 성령의 은혜 받으며 늘 말씀으로 마음을 다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넘어져도 칠전팔기하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여 죄를 두려워하며 노아와 같이 세속에 물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경건의 훈련을 시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해하고 불평하고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삶에서 열심히 훈련하십시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일이 있고 우리가 그 은혜를 의지하여 훈련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써 절제된 언어훈련과 감정조절, 말씀훈련, 사랑의 훈련, 그리고 죄를 멀리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