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문을 활짝 열면 시100:1-5, 맥추감사
감사의 문을 활짝 열면 시100:1-5,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행복 경쟁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빌헤름 웰러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탈무드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 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 들어갑니다. 결국 물질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 갑니다. 건강도, 명예도, 은혜도, 행복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 가는 것입니다.
금년 하반기를 보내고, 상반기를 시작하는 첫 주일 맥추감사절로 지키면서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의 문을 활짝 열면”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감사의 문을 활짝 열면,
1.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구약 본문 시100:4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을 그 문, 그 궁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궁정은 아무라도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왕이나 왕비, 왕자, 공주, 대신들이나, 시중을 드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일정한 자격이 있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예배당에 아무나 들어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아들딸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택하신 백성들, 왕 같은 제사장이 들어오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궁정인 이 예배당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궁정의 문을 밟은 것 만해도 영광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전은 세상의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롭고 복된 자리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감사 찬송함으로 예배당에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형식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볼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여 세상을 사랑 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연락하는 곳이 너무 좋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즐기는 곳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롬 살롱, 나이트클럽, 술집, 요정 등 너무 화려하고, 풍성하고, 즐거운 곳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성전은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곳이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할 일 없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가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전에 나와 감사로 예배하는 자들과 세상에 속하여 세상 연락을 좋아하는 자의 결국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 하나의 물방울이 생겼습니다. 그 물방울이 뭉쳐 북쪽 골짜기로 방향을 잡게 되면 그 물방울은 라인 강을 타고 북해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동쪽 골짜기로 방향을 잡게 되면 그 물방울은 다뉴브 강을 통해 흑해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남쪽 골짜기로 방향을 잡게 되면 그 물방울은 로네 강을 통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게 됩니다. 물방울은 똑같은 곳에서 시작되었지만 극히 미소한 방향의 차이로 말미암아 수 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전혀 다른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인생들의 모습도 이와 꼭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며 사는 자'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행자지하며 사는 자'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이 갈라지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차이가 점점 뚜렷해지다가 결국 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또 한사람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한번 뿐인 인생이 후회 없는 인생, 낭비 없는 인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방향을 잘 잡아서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인생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인생이 펼쳐질 수 있을까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들의 삶은 진정 보람 있고 축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의 문을 활짝 열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2.은혜와 믿음이 더욱 충만해 집니다.
구약 본문에 보면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먼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절 전반부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양하며 나아가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까닭입니다.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인 까닭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려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음에 우리를 친히 지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절 후반부에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했습니다. 우리 인체를 신묘막측 하게 지으신 분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분이요, 우리를 택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삼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지으시고, 하늘 기업의 상속자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이시오,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3절 후반부에 계속해서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진정한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주셔서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분이 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자가 되면 은혜와 믿음이 더욱 충만해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애완동물 가운데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습니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기억장치가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특별한 차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10가지를 잘못하고 한 가지만 잘해주면 그 한 가지 잘해주는 것 때문에 주인을 졸졸 따르고 고맙게 생각한답니다. 반면에 고양이는 10번 잘해주다가도 한번 잘못해 주면, 잘해준 것 싹 잊어버리고 잘못한 것 때문에 토라져서 주인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인들도 보면 강아지 형의 신앙 자세가 있고, 고양이형의 신앙 자세가 있습니다. 고양이형의 신앙 자세는 하나님이 열 가지 복을 주시다가도 한 가지 조그마한 고난을 허락하시면 그것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며,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강아지형의 신앙 자세를 가진 사람은 열 가지 어려움이 있다가 한 가지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각 절마다 감사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했고, 16절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했으며, 17절에는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늘 감사하게 되면 *은혜를 은혜로 아는 믿음이 생깁니다. 먼저 감사를 넘치게 하면 자족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은혜가 은혜로 우리에게 감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납니다.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기게 됩니다. *은혜 체험을 통해 구원의 확신이 넘치게 됩니다. 눅 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이가 예수님께 나와 제사장에게 보여주려고 가다가 고침 받은 사실을 알고 그 중 한 명 사마리아 인만이 주님께 나와 감사했을 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하고 말씀 하시면서 (눅17:19)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성도가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외면하고 감사치 않을 때, 지금까지 너를 돌보아 주었는데, 너의 구원을 위해 나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했는데 너는 내게 감사할 줄도 모르는구나! 하시며 섭섭해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의 문을 활짝 열어 은혜와 믿음이 더욱 충만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3.평강 가운데서 모든 환난을 이기고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골3:15-17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평강은 '에이레네' 라는 단어로 '평화, 평안, 화목' 을 뜻합니다. 히브리어 샬롬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평강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하신 주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화목케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평강의 은혜를 주십니다. 어느 여 집사가 남편이 가정 일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바가지를 긁다가 부부 싸움이 되었습니다. 속이 상해 시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려고 나섰습니다. 시장에서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누가 뒤에서 소리칩니다. "아주머니, 사과하고 감사하세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부부싸움을 하고 나온 줄 누가 알았지? 사과하고 감사를 하라니?" 뒤를 돌아보니 그 소리는 과일장사가 한 말이었습니다. "사과하고 감 사세요."라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 집사는 그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이 집사는 사과하고 감을 사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남편에게 사과를 내놓았습니다. "사과하니까 사과 드세요." 그 다음 감을 내놓으면서 "감 드세요. 감사드려요." 어리둥절한 남편에게 말합니다. "아까는 제가 미안했어요. 바깥일에 신경 쓰실 일도 많은데, 제가 감사해야죠." 그랬더니 화해가 되고 남편이 설거지까지 해주더랍니다.
감사는 아무리 큰 환난이라도 이기게 되고 그런 중에서도 행복해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 미즈노 겐죠라는 분은 11살 때까지 건강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네를 휩쓸고 간 홍역을 앓아 소아뇌성마비가 되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듣고 보는 것 외에는 손가락, 발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희망 없이 누워 지낸지 5년쯤 되었을 때, 마침 우연히 겐조씨네 집으로 빵을 사러 왔던 미야오 목사님이 겐조씨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성경을 주면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미야오 목사님의 정성어린 가르침과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받은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한 것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 12:9)는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글로 표현하여 시를 썼습니다. 이것이 NHK방송에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말을 할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는 겐죠씨가 어떻게 시를 쓸 수 있었을까요? 하루는 그를 진료하는 의사가 눈을 깜박여서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그 방법으로 벽에 일본어 50음도를 붙여 놓고 엄마인 우메지 여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글자 중에 원하는 글자를 짚을 때 눈을 깜박이는 방법으로 시를 지었습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과 각고의 수고로 한 권의 시집이 탄생하였습니다. 『감사는 밥이다』라는 시집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겐죠씨는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은 일본인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은혜를 끼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겐죠씨의 시 한편을 낭송해 드립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라는 시입니다.
병으로 쓰러졌던 그 때에는
눈물이 흐르고 슬펐지만
‘영의 아픔을 치유하시는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라는 걸 깨닫고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친구에게 외면당하는 그 때에는
밤에 잠들지 못할 만큼 원망스러웠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친구 되신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라는 걸 깨닫고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실수했다는 그 때에는
마음이 혼란스러웠지만
‘모든 것을 속죄하신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라는 걸 깨닫고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시의 후렴은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겐죠씨에게는 일생에 소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리 내어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 자기를 찾아오는 분들께 ‘감사합니다.’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 ‘하나님 아버지’라고 크게 소리 내어 불러보는 것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 했다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은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 변화가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구원받은 증거요,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불평 자가 변하여 감사자가 됩니다. 원망 자가 변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 자가 됩니다. 미움과 다툼의 사람이 변해서 용서와 화해의 사람이 됩니다. 십자가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 비판만 하는 사람이 변해서 밝고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변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자가 됩니다. 섬김 받기만 원하던 사람이 섬김의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기적이며 내면의 혁명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이론이나 교리로만, 머릿속으로 만 ‘구원’받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 믿고 용서받고 거듭난 구원받은 자의 삶을 현실의 삶 속에서 누리며 살길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복된 하늘의 신령한 선물들을 받아 누리며 평강 가운데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금년 하반기를 보내고, 상반기를 시작하는 첫 주일 맥추감사절로 지키면서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의 문을 활짝 열면”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감사의 문을 활짝 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은혜와 믿음이 더욱 충만해 집니다.
◆.평강 가운데서 모든 환난을 이기고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