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합격하려면 2 (약 1:9-12)
시험에 합격하려면 2 (약 1:9-12)
지난 시간에 시험에 합격하려면 3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뻐하라. 그래야 신속한 신앙의 성숙이 있다. 다음은 인내로서 온전히 이루라. 그 환경에서 신앙의 최선을 다할 때 온전해진다. 다음은 언제나 지혜를 믿음으로 구해야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음성을 듣는 자가 시험에서 좋은 도움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시험에 합격하려면 이라는 주제로 네 번째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4. 시험의 환경을 자랑해야 합니다.
9-11절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여기서 '낮음'은 성경에서 주로 겸손함을 나타내는데 쓰이는데 여기서는 사회적 지위나, 신분, 경제적 형편, 심지어 신장의 왜소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낮고 천함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하나님이 내신 장치들이니 지장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카스트라는 계급제도가 있어 하급에 속한 사람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해도 비천한 상태가 있다 해도 자랑으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물리쳐도 물러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연단을 위해 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육신으로는 바라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눈으로 보면 감사하고 자랑해야 할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마23:12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주 높아질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을 기회, 복 받을 기회를 주셨어요. 스스로 낮추기 어려운데 강제로라도 낮추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가장 복된 자리로 앉혀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환경을 그냥 신앙으로 수납하면 됩니다. 자존심 내던지시고 겸손히 수납하세요. 이렇게 온전히 낮아지고 겸손해지면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귀한 복을 주시고자 할 때 비천한 자리로 내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하시기 전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40일 금식하시고 마귀에게 온갖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육체가 처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든지, 아니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든지, 온갖 넘어뜨리려하는 세력, 물어뜯는 세력이 있을지라도 나를 더욱 낮추고 감사하고 이기면서 나가야 합니다.
다니엘이 들어간 사자굴의 사자는 우리를 해하려는 악한 인간의 세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57:4에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했습니다. 잠30:14에도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그랬습니다. 이렇게 해하려는 악인이 있습니까? 광야에서 들짐승들이 주님과 함께 있었지만 주님을 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해하려는 세력이 있다해도 거기서 그 악인이 변화될 만큼 내가 변화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하고 자랑해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없어질 세상에 맘 두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것에 맘 두게 해 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10-11절에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겸손하게 하는 훈련일 뿐 아니라 세상에 맘 두지 못하게 하는 훈련인 것입니다. 영원한 것에 마음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를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가나안 땅에 오게 하셨지만 조금의 땅도 주시지 않으시고 아직 낳지도 않은 자식과 그의 씨에게 주신(행7:4-5)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11:8-16을 보면 하늘 본향을 사모하도록 하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허락하신 시련은 나에게 천국 가는 좁은 길이요, 예수 안에서 높아지는 길이요, 더 크고 잘 되는 길입니다.
오만한 성품과 과음으로 군대에서 쫓겨난 젊은 장교가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했으나 실패했으며 사업을 했지만 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맞은 젊은이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반사병으로 입대하여 새로운 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위가 됐고 소령이 됐으며 나중엔 더 큰 부대 지휘관이 됐습니다. 그 뿐입니까? 그의 겸손하고 성숙한 인품이 알려져 링컨 밑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내다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18대 대통령인 그란트 장군입니다. 그가 군에서 내쫓기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지 않았다면 이 겸손을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험을 주시는 것은 겸손을 배우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걸 잘 알아야합니다. 아무리 정통신앙을 가졌다 할지라도 겸손함이 없다면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은혜가 없어요. 똑 같은 신학을 가졌음에도 영성의 차이가 그래서 납니다. 그래서 성 프란시스는 영성을 겸손에다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비천한 자리로 끌어내리셔서 훈련시키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5. 합격하려면 시험을 참아야 합니다.
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아무리 하나님께서 귀한 기회를 주셔도 참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참는다는 뜻은 참을성 있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계속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밥이 익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집을 짓는데도 때가 있습니다. 국가의 거대한 계획들은 수십 년이 걸립니다. 모세라는 한 지도자가 나오기까지 80년이 걸렸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는 수천 년이 걸렸습니다. 우리 신앙훈련도 때가 있습니다. 기간이 있습니다. 요셉의 고난도 때가 있었습니다. 시105:17-19에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없이 낮추시는 것 같아도 다 때가 있어요. 그러므로 인정하실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낮아지고 죽어지고 순종하고 충성하면 높여주실 때가 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끝까지 참으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도 끝까지 참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군인이 훈련소에 입소했으면 훈련을 제대로 받아야지 적응을 못해서 자꾸 부모님 면회나 신청하고 돈이나 보내 달라하고 집으로 자꾸 전화하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함석헌씨의 “고난의 선물”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고난은 죄를 씻어준다. 고난은 인생을 씻어 깨끗하게 한다.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든다. 이마 위에 깊은 주름살이 갈 때 마음속에 깊은 지혜가 생기고, 살을 뚫는 상처가 깊을 때 영혼에서 솟아오르는 향기가 높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 고난을 견디어 냄으로써 생명은 한 단계씩 진화한다.” 그러므로 온전한 축복이 임하기까지 온전히 참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6.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12절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그랬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여호와께 드릴 때처럼 하나님을 사랑함에 합격해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의 사랑을 깨달을 때 그 신앙은 비로소 최상의 신앙으로 바뀝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뛰어도 자기를 위한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모르고 성숙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대접재앙이 마지막 재앙입니다. 대접은 고난의 잔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깊이 깨달아 갈 때 신앙의 완성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 시험을 합격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12절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시험에서 합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여기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의 성령으로 풍성하게 해주심입니다. 연단의 결과는 생명적인 풍성함입니다. 계시록 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약속했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에게 하늘의 생명수가 흐릅니다.
천상에 올라와 흰옷 입고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은 바로 이 환난을 통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연단을 거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계14:4-5에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즉 합격한 자들입니다. 이 영광스런 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연단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주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큰 복 받으려면 시험에 합격하십시다. 그러기 위해서 시험을 온전히 기뻐하고, 인내로서 최선을 다하고, 언제나 지혜를 구하며, 겸손하게 됨을 자랑하면서, 끝까지 견디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받아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