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야고보서

시험에 합격하려면 1 (약 1:1-8)

nam씨 2021. 6. 19. 19:06

시험에 합격하려면 1 (약 1:1-8)

오늘부터 야고보서를 강해할 때 주님께서 야고보에게 주셨던 그 영감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서론을 간단히 소개하면 1절에 기록된 대로 야고보서는 A.D. 60년경에 야고보가 썼고 수신자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 즉 핍박을 피해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서 쓴 책입니다. 야고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과 같은 이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야고보라는 이름이 많은데 그 중에서 본서는 주의 동생 야고보가 쓴 책입니다. 본서의 주제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 주제가 로마서의 믿음으로 의롭게 함을 받는 진리와 다른 것처럼 보이나 다른 것이 아니고 서로 보완적인 사항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론은 이정도 하고 이 시간에는 “시험에 합격하려면”이라는 제목입니다. 시험에는 하나님이 주신 시험과 마귀가 주는 시험이 있는데 이 시험을 구분하는 법이 있어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한 가지는 마귀의 시험은 물리치면 물러가지만 하나님이 주신 시험은 우리가 거기서 온전히 훈련 받고 철저히 변화 받기 전까지는 물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시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은 제목이 있습니까? 그것은 나를 연단시키시려는 것으로 내가 변하기 전에는 철회되지 않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문제의 원인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이 주신 시험에 합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온전히 기뻐해야 합니다.

2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했습니다. 여기 기뻐하다는 동사는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기쁨’을 뜻합니다. 즉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어려운 일 당했다고 기뻐하며 춤춘다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3-4절을 보면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한 사람 만드시려고 특별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련도 은혜입니다. 특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실수록 더 큰 시련을 주십니다. 그 사람은 아주 특별하고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와 예수님의 사랑 받는 신부와 귀히 쓰시는 능력 있는 일군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해병대에 지원하는데 그들은 그 용기 있고 명예로운 군인이 되기 위해 그 심한 경쟁을 뚫고 온갖 훈련을 기쁨으로 감수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받을 수 없는 혹독한 훈련을 받아도 자살하거나 투서 한 장 올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만나면 특별한 은혜인 줄 알고 온전히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기뻐하라 하지 않고 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을까요? 그만큼 우리 인간이 시험 앞에 온전히 기뻐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기뻐해야 1차 시험에서 합격합니다. 이 1차 시험이 아주 중요합니다. 귀한 줄 아는 이 1차 시험에서 합격하면 아주 빠른 시일 안에 신앙의 완성이 있지만 이 시험에 불합격하면 고난은 계속 될 수밖에 없습니다.

2. 인내로서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여기 인내는 ‘중압 아래 머물러 버티는 상태’로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시련이 오면 마지못한 자세를 갖는데 그러지 말고 적극적으로 신앙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에 노예로 팔렸을 때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습니까? 얼마나 잘했으면 시위대장 보디발이 요셉에게 여주인 외에 집의 모든 것을 다 관장할 권한을 주었을까요? 이 잘했다는 의미 속에는 충실과 정직은 물론 애굽의 언어와 문화와 살림 등 모든 면에서 능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련 속에서 최선을 다해 애굽의 1등 시민으로 준비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가 누명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요셉은 옥사장의 신임을 받아 옥중 죄수를 다 맡게 됩니다. 이 역시 얼마나 충성했으면 그랬겠어요. 그런데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자 말자 애굽 총리의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을 보면 그가 그 옥살이에서도 헛세월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옥에는 왕의 죄수들이 오는 것으로 요셉은 거기서 이미 정치학 경제학 지리학은 물론 온갖 지식에 통달한 인재가 됐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 그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신앙을 만들어 나가야합니다. 가령 미움이 있는 곳은 사랑훈련장입니다. 미워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아 나는 얼마나 사랑이 없는가 하면서 사랑 훈련을 해야 합니다. 염려가 있는 곳은 믿음훈련장입니다. 한 순간도 기도 없이는 살 수 없는 일에서 기도의 훈련을 받아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혹시 자신에 대해 실망하거나 나의 나쁜 자화상이 보인다면 그것을 무시하고 그리스도 안의 영광된 자화상에 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질병과 저주에서도 예수께서 저주를 받은바 되셔서 나는 나음 얻었고 나에게는 복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에 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와 같이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분쟁이 있는 곳에 화해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위로 받는 것보다 위로하는 사람이, 이해 받는 것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그 환경에서 내 부족함을 늘 깨달으며 열심히 신앙 만들기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때가 언제까지입니까? 요한계시록 13장을 보면 바다에서 올라온 한 짐승이 있는데 이 짐승이 마흔 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아 하나님과 하늘에 거한 자들을 훼방합니다. 마흔 두 달이면 3년 반입니다. 이 기간만 지나면 짐승의 권세가 끝납니다. 3년 반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입니다. 짐승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짐승 같은 욕망입니다. 이게 자구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령을 거슬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3년 반 동안 훈련 받고 오순절에 성령 충만 받아 짐승 같은 모든 연약함과 악의 세력을 이기고 귀한 성도가 되었듯 우리들도 이 과정을 이수하면 온전히 승리하는 때가 오게 됩니다. 나를 괴롭히는 세력도 내가 변하고 나면 그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온전히 신앙 만들기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3. 언제나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왜 시험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할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극한 어려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복된 신앙 훈련임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방해꾼 마귀는 자꾸만 다른 생각을 주어 훈련 상황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시험에 대해서 합리적인 대처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그 이면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인식함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신앙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른다면 훈련이란 이루어지지 않을 뿐더러 하나님을 대항하는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체벌할 때도 매 맞는 의도를 알게 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고쳐지지만 알지 못한 체벌이 되면 반항심만 생기고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지혜를 구하라면서 의심하지 말고 구해야 한다고 이토록 강조할까요?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누가 그렇게들 의심을 품는지 이런 이상스런 교훈이 주어지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께 지혜 받고 음성 들으라고 하면 다 의심만 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 한결같이 “난 안돼요. 난 못해요. 난 듣지 못해요. 난 없어요.” 하나님께 여쭈라고 하면 들리지 않는데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야고보가 왜 지혜를 구하라고 하면서 좋으신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그토록 믿음을 강조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 받고 음성 듣는 것 이것도 믿음으로 훈련시켜야 할 훈련 제목입니다. 마치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여러 번 불렀어도 듣고도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몰랐듯 하나님의 지혜와 음성이 대개 생각 형태로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인 줄 모른 것일 뿐 믿음으로 구하면 다 임하는 것입니다. 혹은 꿈과 환상으로도 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소리 들으면 실패합니다. 잘못된 생각은 마귀 소리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음성을 듣고 반응해야 시험을 온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싫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시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험 당할 때 온전히 기뻐하십시다. 인내로서 신앙훈련을 받읍시다. 언제나 말씀과 기도에 힘쓰십시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훈련이 이처럼 귀하다는 것을 깨닫고 열심히 신앙생활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