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실패와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킴 (신10:1-22)
과거의 실패와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킴(신10장1-22)
모세는 우상 숭배로 인해 파기된 언약이 은혜로 다시 회복된 사실을 설명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1. 은혜의 회복(1-11)
십계명 두 돌 판이 깨어진 것은 곧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맺은 언약이 파기된 것을 의미했다. 모세는 깨어진 언약의 회복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드렸으며, 하나님의 긍휼 하심으로 인해 그 기도가 열납 되었다. 본문은 언약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십계명이 기록될 두 돌판을 다시 만들어서 법궤 안에 보존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 주셨으나(출 31:18), 두 번째 돌판은 모세가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에 십계명을 새겨 주셨다(2절). 싯딤 나무는 아카시아(acacia) 나무를 가리키는데, 성경에는 '조각목'(출 25:10; 26:15; 30:1; 36:20)으로 번역되었다. 아직도 네게브(Negeb)나 시나이(Sinai) 반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내구력(耐久力)이 강하여 각종 가구의 재료로 종종 이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두 돌판을 소중히 보관하도록 지시하셨으며,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 돌 판을 궤에 넣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손 대대로 영구히 전수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었기 때문이다(1-5).
이스라엘은 브에롯 브네야 아간에서 발행하여 모세라에 이르렀으며, 그 곳에서 아론이 죽게 되었다. 브에롯 브네야아간은 '야칸의 아들들의 우물'이란 뜻으로, 에돔 족속의 변경(邊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아간'(Akan)이 에서의 후손이기 때문이다(창 36:27; 대상 1:42). 모세라는 '징벌'이란 뜻으로 이 곳은 호르산 부근인데, (민 33:30)에는 복수형인 '모세롯'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모세라'에서 아론의 죽음이 불순종에 대한 징벌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민20: 24). 하나님께서는 아론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직분을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계승시켜 주셨다. 그리고 성전의 직무를 맡을 레위인들이 구별되어 언약은 다시 모든 면에 있어서 회복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용서받은 자들을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이는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긍휼 하심 때문이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진행을 다시 인도해 주셨고, 물이 많은 굿고다와 욥바다 지역에 이르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다시 은혜를 베푸셨음을 나타낸다(6-7). '굿고다'는 '갈라진 틈'이란 뜻으로 이 곳은 가데스 바네아 근처의 '홀하깃갓'(민 33:33)과 동일 지역인 것으로 추정된다(Lange). 욧바다는 '상쾌함'이란 뜻으로 이 곳은 에시온게벨 북방 21km 지점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곳에는 시내가 많아 사람들에게 상쾌감을 안겨다 준 곳이었다. 모세의 중보기도는 마침내 응답되었으며,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해 다시 전진할 수 있었다. 가나안 땅을 소유하는 일이나, 가나안을 향해 행군하는 발걸음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으로만 가능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친히 그 모든 길에 함께 하셔서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활기를 찾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게된다.
그때에(2년 2월에 성막이 완성되었고, 이때부터) 레위인들이 특별히 구별되어 성막에서 수종드는 직무를 공식적으로 맡게 되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특별히 레위 지파가 성막 봉사에 선택되어 구별된 이유는 그들이 우상 숭배 척결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언약궤를 메는 일은 고핫 자손이 맡았다(민 3:31). 언악궤를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규정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보관되어 있는 언약궤에 대하여 백성들이 경외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민 4:15).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8). 그 축복의 구체적인 내용이 (민 6:24-26)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힘을 주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민족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레위인들에게는 종교적인 일에만 전념해야 했기 때문에 분깃이나 기업이 주어지지 않았다(9). '분깃'('헬레크')은 동산(動産)과 관련된 할당물을 가리키며, '기업'('나할라')은 부동산(不動産)과 관련된 상속물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위해 다른 지파들로부터 48성읍(민 35:6,7;수 21:41)과 십일조를 주도록 지시 하셨다(민 18:21-34). 여호와의 거룩한 일을 위해 구별된 레위인들의 기업은 하나님이셨다. 이는 그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직임에 충실할 때에,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실 것을 말한다(민18:20).
< 교 훈 >
1.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하며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신 후에 모든 삶의 분야에 걸쳐서 완전하게 회복시켜 주신다.
2.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신 백성들의 모든 길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셔서 다시 구원의 역사가 진행될 수 있게 해 주신다.
3. 성도들은 지금도 자기의 공로가 아니라,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로 인해 하나님께 용서와 용납을 받게 된다.
2. 순종의 삶을 촉구함(12-22)
*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12-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다(12-13). 율법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주고 성도들이 복된 길을 살게 하려는 축복의 방편이다(4:40; 5:29; 6:2; 8:2).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을 네 단어로 요약하였다.
* 하나님 경외(두려움)와 사랑
거룩한 하나님에 대하여 부정한 인간들이 느끼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을 일으키며, 이 존경심은 성도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는 심령의 가난함을 느끼게 해준다. 두려움이 없는 사랑은 사람들을 태만하게 만들며, 사랑이 없는 두려움은 사람을 비굴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태도는 경외함과 함께 사랑의 마음이 동반되어야 한다.
* 하나님을 섬김, 규례를 순종함
경외와 사랑의 태도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복된 삶을 위해서 주신 규례와 법도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14-15)
하나님께서는 모든 우주와 하늘의 주인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서 특히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셨다(14-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기뻐하셨다('하솨크')다. 기뻐하셨다는 말은 '달라붙다', '결합하다'는 뜻인데, 이는 사랑(시 91:14)과 연모의 정(21:11)을 가리킨다. 모세 설교의 강조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選民)으로 택정된 것이 결코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점은 하나님의 예정하심(엡 1:11)과 예수의 대속 사역(롬 3:23-26)에 의해 구원받은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 마음의 할례(16-20)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백성들은 의식적으로 굳어져 있는 고집이나 완고함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마음의 할례가 요구된다.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는 것은 죄에서 자신을 분리시켜 마음 중심에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고 거룩한 자세를 취하라는 말이다. (30:6; 렘 4:4; 겔 44:7). '목이 곧다'(목을 뻣뻣하게 치켜들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전혀 굽힐 줄 모르는 고집이나 어리석은 거만 등을 나타낼 때 쓰이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 높으신 분께 고집으로 불순종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입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분이시다. '신원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아사미쉬파트'는 '정의를 행하다', '정당한 권리를 찾아주다'는 뜻이다. 실상 고아나 과부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나 천대를 받기 쉬운 계층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들을 신원(伸寃)해 주신다는 사실은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약자들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말한다(렘 22:1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소외 계층을 사랑으로 보살피라고 특별히 명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을 친히 '고아의 아버지' 또는 '과부의 재판장'으로 선포하셨다(시 68:5). 또한 하나님께서는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여기에 사용된 '나그네('게르')란 말은 단순한 여행객이 아니라, 자기 혈족을 떠나 히브리인들 가운데 섞여 사는 이방인 우거객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주민으로서 자기 몫의 땅도, 법적 권리도 없던 약자들이었다. 모세가 이처럼 여기서 하나님의 여러 속성(유일성, 전능성, 불편부당성, 공의성, 자비성 등)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그러한 여러 속성을 바로 깨달아 알 때에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뜻을 바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과거 나그네 역사를 상기시키고 있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에서 이방인으로서 먼저 절실히 겪었던 설움을 통해, 동일한 상황에 놓인 자들의 심정을 헤아리도록 하고, 2) 그들 역시 하나님께 사랑의 빚진 자임을 알게 하여 연약한 이웃을 돕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께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해야 한다.(20)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행위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에게 가까이 나아가게 한다. 여기에서 친근히 하다('베 다바크')는 말은 '~에게 매달리다', '~에게 착 달라붙다'는 뜻이다. 이 말은 남녀간의 완전한 결합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었는데(창2:24),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들의 입으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한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그것을 신실히 지키라는 것을 말한다.
*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21-22)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찬송이시며,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크고 두려운 기적들을 그들의 앞에서 행하셨다. 하나님의 권능과 놀라운 역사가 이방인들에게는 두려움이 되지만, 그의 백성들에게는 찬송의 동기가 된다(2: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에는 불과 70인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셨다. 이 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 중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헌신과 사랑을 드려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교 훈 >
1.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하나님만 섬기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주신 말씀대로 살아서 축복된 삶을 사는 것이다.
2. 하나님은 만물 중에서 특히 우리를 선택적으로 사랑 하셨다.
3.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을 모세는 마음의 할례를 행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4.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며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사랑하신다.
5.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드려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일이 크고 무한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패와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킴 (신10:1-22)
1. 은혜의 회복(1-11)
본문은 언약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십계명이 기록될 두 돌판을 다시 만들어서 법궤 안에 보존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진행을 다시 인도해 주셨고, 물이 많은 굿고다와 욧바다 지역에 이르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다시 은혜를 베푸셨음을 나타낸다(6-7).
2. 순종의 삶을 촉구함(12-22)
*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12-13)
* 하나님 경외(두려움)와 사랑
* 하나님을 섬김, 규례를 순종함
*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14-15)
* 마음의 할례(16-20)
*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21-2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찬송이시며,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