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장 36-53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장 36-53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미리 예고 하셨고, 다시 살아나실 것도 분명하게 예고 하셨지만, 부활 이후의 기록들을 보면,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 부활의 믿음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성경의 기록상으로는 부활을 믿고 기다렸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새벽 시간은 제 4경의 시간, 곧 새벽 3~6시 사이였습니다. 성경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막달라 마리아인가요?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을 처음 목격한 장면을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양한 부활 장면을 동시에 비교해 보시면 좀 더 생생하게 전달이 되실 겁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알패오 혹은 글로바라고 불리는 사람의 아내이며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가 무덤에 갔을 때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여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마28:5-5) 라는 말을 하자, 그들이 듣고 무섭고 기뻤다고 했습니다. 두 여인은 다른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빨리 무덤을 벗어나 달음질 하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은 두 여인에게 “평안하냐?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이때에 여자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직접 목격하고, 부활 하신 예수님의 신체를 만져 보기까지 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무덤에 가서 흰 옷 입은 한 청년(천사의 모습)을 만납니다. 이 청년이 말하기를,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봐오리라 하라” (막 16:6-7) 라고 말했습니다. 여인들은 이 말을 듣고 무섭고 떨려서 무덤에서 도망쳐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여인 세 명이 무덤에 갔지만, 천사의 말만 들었을 뿐,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24:10절에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눅 8:3)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천사의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땅에 엎드렸는데, 이 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여인들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렸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많은 여인들이 부활의 소식을 들었지만, 이들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독대한 것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사도 요한)에게 알렸습니다. 두 제자가 무덤에 가서 시신을 썼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만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갑니다. 홀로 무덤에 남아있던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다가 빈 무덤을 다시 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있는 것을 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말하고, 마리아는,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 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한 후 돌이키는데 어떤 사람(동산지기인 줄 앎, 예수님인 줄 모름)이 서서 말하기를,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라고 묻자, 마리아는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 이다”라고 대답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마리아야” 라고 부르자, 마리아는 그때서야 그가 부활의 주님인 것을 깨닫고 히브리말로 “랍오니(선생님)”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다시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하셨고,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자기에게 이런 말씀들을 했다는 것을 알립니다.(요 20:1-18)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단독으로 직접 목격했고, 여러 대화를 주고받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네 복음서를 한 번에 살펴보니, 부활의 현장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가 부활의 첫 목격자 였는지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의 기록으로는 또 다른 마리아인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도 동일한 현장에서 동일한 시간에 부활의 첫 목격자 였습니다.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가 첫 목격자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첫 목격자가 한 사람 더 있었다는 것을 이제 아실 겁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처음 목격한 것이 큰 영광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첫 목격자에만 모든 영광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은 어느 시점, 어느 시대에라도, 실제로 목격(체험 혹은 성령의 감동)하게 된다면, 동일한 영광과 동일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첫 목격의 주인공인 막달라 마리아를 필두로, 부활을 목격한 모든 사람에게는 동일한 영광, 동일한 은혜, 동일한 구원의 역사가 펼쳐졌습니다. 누군가에게 부활의 소식을 백번 듣는 것 보다 내가 직접 목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드시 내가 직접 목격의 순간이 있어야 내 자신의 믿음이 온전해 집니다. 내가 직접 봐야만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부활의 영광, 영생의 소망, 믿음의 진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믿음 이라는 것이, 상대방과 비교해서 내가 먼저이고 너는 나중이라는 선, 후의 개념이 절대 아닙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부활을 목격했다는 것은, 영원한 믿음을 소유하는 극적인 반전의 기회를 잡은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그것을 내가 소중하게 지켜 가는 것이 중요하지, 자랑하고 내세우려고 경험담으로 삼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인들과 제자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부활의 목격은 1회 상영으로 끝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부활의 첫 목격자들은, 당시에 생생하게 느꼈던, 무섭고, 두렵고, 떨리고, 기쁘고, 감동적인 재회의 감격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간증하는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 이후에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표를 정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여인들 이후에 부활의 2차 목격자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부활 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 합니다. 이 말씀 안에는, “너희들이 나를 버리고 도망 간 것, 숨은 것, 내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듣고 무서워하고 있는 것을 다 안다, 걱정하지마라, 내가 너희들의 떨리는 마음을 다 안다” 이런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 다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정말로 놀라고 무서워했는데, 37절에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은, ‘귀신(ghost)’를 말합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귀신인가 생각해서 무서워했다는 겁니다. 분명히 피를 흘리며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셨는데 멀쩡한 육체로 살아 오셨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38,39) 라고 하시며 못 자국 난 손과 발을 보여 주십니다.
‘곡성(哭聲)’ 이라는 영화를 보면, 일본인 배우가 연기한 마귀가 동굴에서 천주교 부제를 이 말씀으로 농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귀신도 얼마든지 성경 말씀을 가지고 부활의 믿음을 방해 할 수 있습니다. 부활 사건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귀신의 장난이지, 아니면 진실한 성령의 감동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육체의 모습과 못 자국을 보고나서야 진짜로 부활하신 것이 믿어졌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들에게는 차례대로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① 마음에 있는 모든 의심의 덩어리들이 시원하게 제거 됩니다.
② 귀신을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이 환하게 열립니다.
③ 무섭고 두려운 마음 대신에 하늘의 평강이 충만하게 채워집니다.
④ 못자국난 손과 발을 보게 될 때 연약한 믿음이 굳건하게 세워 집니다.
부활의 주님은 부활절에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부활의 영광을 지니신 실체의 모습을 우리 앞에 보이시고, 우리 마음에 찾아 오셨습니다. 00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마다, 또 기도 하실 때마다, 의심이 믿음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평안으로 바뀌고, 성령이 감동주시는 큰 은혜로 인해 부활의 소망이 항상 가득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은 디베랴 호숫가에서 재회를 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잡은 생선을 구워서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앞으로 부활의 목격자들이 되어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감당할 사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신 일입니다. 구약에 예언 되었던 모든 성경 말씀이 예수님으로 인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이 깨달아지고, 믿어지게 하시고, 마음에 새기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성경 말씀이 살아 역사하심으로 하늘의 능력이 덧 입혀진 제자들은 이제 거칠 것이 없도록 완전히 새롭게 변화 되었습니다. 부활과 말씀, 이 믿음의 두 축이 있었기에 모든 제자들이 복음의 길, 순교의 길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매번 부활절을 지나면서, 나약한 믿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을 공급받게 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금방 힘이 떨어집니다. 그 이유가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믿음은 분명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게 되고, 뚜렷한 영적 성장의 동력이 됩니다. 말씀 읽고, 묵상하고, 필사하고, 암송하고, 여러 가지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사모하시면, 반드시 우리 주님이 그 마음을 열어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강력한 부활의 믿음으로 붙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① 마음의 의심을 제거해 주시고, ② 평강을 주시고, ③ 육체를 보여 주셔서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④ 말씀으로 강력한 무장을 시키신 다음,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일 평생 감당해야 할 분명한 사명을 전달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에서부터 회개가 일어날 것을 예언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오심과 교회의 역사가 시작 될 것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이 회개,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돌이키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 될 것인데, “너희가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라”는 당부입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을 직접 찾아오신 주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강력한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시켜 주셨습니다. 한 시라도 이 사명을 잊지 않고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 이것이 모든 믿는 자들이 일평생 따라야 할 변하지 않는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모든 일에 증인 되라는 그 사명에 죽도록 충성을 다했습니다. 제자들을 이어서, 기독교 2천년 역사 동안 모든 부활의 목격자들이 다 증인이 되어서 수고와 헌신과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수고하신 허다한 증인들의 순교의 피가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 왔습니다. 참으로 지난 믿음의 선배님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우리 주님은, 우리 교회와, 우리 모두에게도, 역시 이 사명을 내려 주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의 사명에 대해서 “복음을 위하여 택정(구별하여 선택)함을 입었다고 하면서, 일평생 복음 전도를 위해 필사적으로 사명을 이루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사명 주심, 바울의 사명 선언이 우리교회에게도, 나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00교회와 모든 성도, 우리 모두가 부활의 목격자이며,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마음에 의심을 품지 마십시오. 더 이상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싫어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기도하는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그리고 더 이상, 내 가족과 이웃에게, 부활을 전파하는 증인의 사명을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당장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십시오. 그것이 부활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우리 주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우리 주님이 들려주시는 사명의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부활을 목격한 믿음으로,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묵묵히 헌신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복음의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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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부활 하신 주님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었사오니, 앞으로 남은 인생, 부활을 증인으로, 내게 맡겨진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묵격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증인으로 우리를 세상에 파송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