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예수님 히4:14~16
제사장 예수님 히4:14~16
살다보면,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내가 신앙이 과연 진실한가? 충분히 강한 믿음인가? 특히 내가 믿고 살아온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바로 그와 같은 상황과 필요속에서, 큰 위기가운데 두려워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격려를 주기 위해 기록된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우신 신성한 직분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입니다.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해주시기 위해서 왕과 같은 직분자를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시기 위해서 선지자를 세워주셨다면, 제사장직은 우리의 연약함을 치유해주시고, 죄를 정결케 하며 몸과 영혼을 회복시켜주시기 위한 직분입니다. 이 세 가지 직분을 수행하는 자를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이 되시므로 온전한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 본문은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그것도 대제사장으로서, 더 나아가 다른 대제사장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하신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하시는 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누리고자 합니다.
■1. 너무도 존귀하신 대제사장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 많은 제사장들이 있었고, 또 많은 대제사장들도 있었겠지만, 우리 예수님은 다른 대제사장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승천하신 분> (14a)
승천하셨다는 것은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도 낮아지심과 반대로 높아지심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가장 높으신 대제사장 예수님!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분이 그와같이 가장 높으시고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분이시며,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분이시므로 우리가 이런 분을 모시고 있음에 감사와 기쁨과 자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아들> (14b)
또한 다른 제사장들은 그들이 아무리 귀한 직분자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라고 하는 인간적이고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들 자신이 완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흠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하신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오직 예수님만이 갖고 계신 특징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점입니다. 어떤 대제사장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제사장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분이 우리를 치료해주고, 싸매주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분>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본문과 가까운 5:10~11에는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구약성경을 보면, 원칙적으로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만 세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전설적인 대제사장 멜기세덱은? 레위지파가 나타나기 훨씬 전 아브라함 시대에 홀연히 등장해서 그에게 복을 빌어준 대제사장입니다. 멜기세덱은 어떤 존재입니까? 히7장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7:1~4)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토록 위대하신 분이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에게 계십니다. 그분의 높으심, 그분의 하나님되심을 묵상해봅시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해 용기를 냅시다.
■ 2.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다.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렇게 높고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대제사장으로서 해주시는 일은? 기도와 치유, 예배와 용서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동정해주시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실로 주님은 넘치는 긍휼과 동정심을 가지고 우리를 대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인격 자체가 다른 제사장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에 대해서 충분히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이 점이 무엇보다도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이것은 단순히 위로자나 치료자 즉 대제사장이라는 의무감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깊은 공감을 갖고 우리를 대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인간 대제사장은 아무리 훌륭한 자가 된다고 해도, 결국 식상해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진실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다가오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장면을 적어도 세 번 이상 발견할 수 있습니다.(눅19:45, 요11:35, 히5:7)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에게 대한 깊은 동정심을 갖고 대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그러신 줄 믿습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롬8:34) 이분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의 모든 부분에 대해 잘 이해하시고 충분히 이해하심. 그러면 왜 예수님은 다른 제사장들과 달리 우리에게 대한 깊은 동정심을 갖고 계실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모든 아픔을 직접 다 겪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시련)을 받으신 이...”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예수님은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과 아픔과 외로움과 배신감. 심지어 절망감까지도 다 느껴보시고, 체험하셨기에 충분히 알고 계신 것입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아노라” 저는 이런 부분에서 요1:46에 나오는 나다나엘에 대해서 하신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실로 주님의 긍휼과 동정심은, 이와 같은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요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그러나 죄는 없으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다 겪으셨지만, 그 체험 속에서도 죄에 빠지지 않으셨음은 또한 우리가 기억하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우리와 같이 연약함으로 인해서 죄에 넘어갔다면, 그는 온전한 대제사장으로서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한 기도와 중보의 사역을 감당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다른 사람을 구원해낸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온전한 대제사장은 연약함을 체험하더라도, 죄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인데, 그런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안계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은 내 이름을 아시고, 내 사정을 아시고, 내 억울함과 원통함과 분함을 아시고, 나를 이해해주십니다. 그렇다고 의무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 제사장은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ㅜ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사정과 마음과 상태에 충분히 공감하시고, 이해하시고, 정말 넘치는 사랑으로 나를 위해 치유와 기도의 사역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그 어떤 말보다도 큰 힘과 격려가 될 것입니다.
■ 3. 담대히 요청하라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대제사장이 계시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힘이 되고 든든한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우리도 용감하게 고백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시118:6) 이런 큰 사랑과 도움을 받는 저와 여러분은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분이 주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때를 따라, 즉 늘 항상, 그리고 적절하게 돕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린 이런 놀라운 영적 사실들을 믿어야 합니다! 외로울 때는 친구처럼 대해주시고, 두려울 때에는 담대하게 해주시고, 양식이 필요할 때에는 어떤 식으로든 공급해주시고... 등등. 마치 저명한 의사들이 환자들을 적절하게 진단하고 처방해주는 것처럼, 예수님은 가장 정확하게 우리를 돕고 계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말이지 기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의 특권과 능력을 마음껏 구사하자 이 말입니다. 저 자신도 쉽지는 않더라구요. 그러나 기도를 놓치면 안됩니다. 수시로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난은? 기도의 기회일 뿐입니다. 기도하라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신호가 바로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여! 위기 중에 있는 교우들이여! 기도합시다.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합시다!
기도할 때에는, 담대하게 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되 당당하게, 담대하게 요청해야 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중보로 인해서 구원받고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하나님아버지께 요구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4:14) 그렇습니다. 당당하게 기도하고 담대하게 살아갑시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많이 힘드십니까? 큰 위기 속에 있습니까? 마음에 낙심이 됩니까? 그렇다면, 진지하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묵상해보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동정하신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제사장이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의 사랑과 긍휼을 느끼며 삽시다. 힘들고 어려움에 내 마음이 약해지려고 하면, 지체 없이 그분 계신 은혜의 보좌로 달려갑시다. 그럴 때면 그때마다 도우시는 놀라운 은혜의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든지 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