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

대림절주일설교.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로마서 13장 11-14절)

nam씨 2020. 11. 28. 14:16

대림절주일설교.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로마서 1311-14)

 

오늘은 대림절(대강절)이 시작되는 첫 주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대림절은, 구원자가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림절(대강절)은 문자 그대로 큰 기다림이라는 뜻인데, 어원은 오다라는 뜻의 라틴어 adventus(아드벤투스)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나타남’, ‘도착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구원자가 오시고, 구원자가가 나타나시고, 구원자가 도착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교회력은 대림절로부터 시작이 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이번 주부터 사실상 한 해의 시작이 되었다는 심정으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다는 새로운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구원자가 오실 것이라는 대표적인 예언들이 있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9:9)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7:14)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11:1)

“5.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23:5,6)

 

이런 예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시기(나타나시기, 도착하시기) 6~8백 년 전에 전해진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예언의 책이라고 하고, 신약을 성취의 책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법과 제도가 없거나 너무 허술해서 힘쎈 자가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무법천지 였습니다. 무시당하고, 버려지고, 차별 받고, 가난하고, 병들고, 노예가 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참한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세상이 갈수록 악하고, 음란해져 가고 있지만, 고대사회보다 현대 사회가 그래도 나은 점이 있다면, 평등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최소한의 평등도 법과 제도에 의해 강제적으로 시행된 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차별과 불공정의 시대 - 여성 유리천장, 소득수준이 곧 계급, 약자에 대한 무차별 폭력 등)

 

이런 면에서 이스라엘은 암흑과 빛의 시대를 전부 맛본 참 부침이 많은 국가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수백 년을 지내다, 비옥한 땅과 성전을 가진 복 받은 나라가 되었다가, 나라가 공중분해 되고 백성들은 짐승처럼 타국으로 강제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라는 강력한 신흥제국에 의해 무력으로 지배당하는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암흑의 시대를 벗어나는 길은 오직 강력한 구원자(메시아)’가 등장하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예언의 시대를 지나 신약의 성취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다 이루어진 완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무언가를 기한 없이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처럼 막연한 것이 없습니다. 언제 기다림이 끝날지 예상되지 않는다면,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소망은 점점 줄어들고, 포기와 좌절감만 쌓아지는 것이 무작정 기다림의 치명적인 역효과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미 기다림의 완성이 이루어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참으로 복을 타고난 세대입니다. 우리에게는, 특히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포기와 좌절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직 소망만이 우리 마음을 기쁘고 평화롭게 해 줍니다. 이것이 전부 기다림의 완성을 완벽하게 이루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대림절을 지나시면서, 내 마음속에 계시는 영원한 나의 주인,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그분만을 기대 하십시오. 소망하십시오. 만남의 복은 우리 모두에게 열려있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해서 기다림을 소홀히 해야 한다거나, 고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대림절은 시작하는 첫 주이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 꿰는 심정으로 몸과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불러보고, 부실했던 믿음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내 시선, 내 마음, 내 언행을 주님 앞에서 바르고 반듯하게 교정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기다림의 완성, 구원의 완성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찾아오심과, 만나주심의 소망이 충만하게 채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구원의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11절을 읽어 드립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아멘.

 

여기에서 시기는 종말의 시점을 말합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안다는 것은, 특정한 시기(날짜)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종말(마지막)의 시간이 반드시 임한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긴장감 있는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라는 말은, 그 날이 도둑 같이 온다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운 전 중에 잠시 한 눈 팔거나 졸게 되면 어, , 어 하다가 순식간에 큰 사고가 나는 것처럼, 종말의 시간은 한 순간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종말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금방 오신다는 주님의 말씀대로 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후반부 말씀으로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처음 믿을 때보다 믿음의 정도, 믿음의 성장이 크게 일어났다면, 구원의 시기와 때를 누구보다도 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믿음이 계속 자라나는 사람은 하나님과 계속 거리가 가까워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 하나님의 크신 영광,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엄청난 광경이 점점 선명해진다는 뜻입니다.

 

노인들의 3대 거짓말이, “1. 난 별로 먹고 싶은 것 없다, 2. 너희 좋은 대로 해라 난 아무려면 괜찮다 3. 너무 오래 살았어, 빨리 죽어야 하는데...” 이 중에서 나이가 많든 적든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 중에, “난 언제 죽어도 좋아, 주님이 빨리 오시면 참 좋겠다.”라고 정말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진짜 만남을 잘 준비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 그런 수준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매 년 반복되는 대림절을 보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특별한 메시지가 바로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아멘.

 

대림절은 구원자를 기다리는 절기이기 때문에 수동적인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대림절을 지날 때마다 능동적인 절기라는 생각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비록 보잘 것 없고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이라 할 지라도 믿음이라는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다듬을수록 빛나고, 다져질수록 견고해지고, 다시세울수록 쑥쑥 자라납니다.

 

 

 

믿음을, 다듬고, 다지고, 다시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 곧 능동적인 기다림의 자세입니다. 그렇게 능동적인 자세를 취할 때, 믿음은 처음 보다 계속 성장하게 되고, 그와 정비례해서 구원이 나에게 정말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능동적인 기다림의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야말로, 시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고, 자다 깰 때가 벌써 왔다고 하여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준비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에 기대어 대림절을 시작하는 00교회의 모든 성도는 올 해 대림절부터, 수동적인 기다림을 버리고 능동적인 기다림의 자세를 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기를 늘 생각하는 긴장감 있는 신앙생활, 그리고 때가 오늘 당장 임하여도 놀라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믿음은 처음보다 얼마나 나아지셨습니까? 내 믿음의 정도를 스스로 평가해 보시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믿음,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의 믿음을 향해 가까워진 구원의 주인을 맞이하러 능동적으로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러면, 능동적인 대림절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오늘 말씀에 따라 세 가지를 말씀 드립니다. 이 세 가지는 올 해 대림절 기간 중에는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회개, 회개, 또 회개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12절을 읽어 드립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아멘.

 

능동적인 기다림의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어둠의 일을 벗는 일”, 즉 어둠 가운데서 은밀하게 행하였던, 구원자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도 행하고 있는 악한 죄악들을, 빛 앞에 드러나게 하는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구원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구원자이신 우리 주님을 만나려는 사람이 어둠가운데 있다거나, 여전히 죄 가운데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주님을 만나려면 그 어느 누구도 티끌만큼의 죄악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대림절은 회개가 우선입니다. 무엇보다도 회개에 힘써야 합니다. 과거부터 현재 까지, 알고도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생각나는 죄, 생각나지 않는 죄까지, 철저하고도 세밀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진실한 회개는 용서함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는 진실한 회개를 능동적으로 선행 할 때,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빛의 갑옷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는 자만이, 빛 되신 우리 주님 앞에 당당히 설수 있고, 만남의 순간을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는, 이번 대림절 기간에, 회개하고, 회개하고, 또 회개하는 진실한 회개가 가장 능동적인 기다림의 첫 번째 행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절제하고 구별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13절을 읽어 드립니다. “낮에 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아멘.

 

대림절이 평소의 생활과 아무런 구별이 되지 않는 다면, 능동적인 기다림의 대림절을 준비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 만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인데, 뭔가 좀 다르고 특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13절의 말씀에는 우리가 평소 즐기던 것들을 함축해서 보여 줍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일들이 평소의 생활이었다면, 대림절만이라도 그런 행동들을 절제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번 대림절에는,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말고, 자신을 단속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반드시 가야만 하고 만나야만 하는 약속이 있다면, 최소화 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나만의 시간을 확보 하신 후에, 내가 능동적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해 보십시오.

 

제가 한 가지 팁을 드리면, 그 시간에 온 가족이 말씀 놀이로 함께하면 참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저녁 시간에 돌아가면서 성경 읽기 놀이를 한다든지, 정해진 본문 필사 하기를 한다든지, 복음서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성경책에 대부분 빨간색으로 표시) 중심으로 읽고 묵상해 보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대림절의 의미도 가르쳐 주고, 능동적인 대림절을 준비하는 자세를 교육하고, 가족애를 다질 수 있으실 겁니다. 13조 이상의 효과가 충분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이번 대림절 기간에, 평소에 하던 일이나 하고 싶은 일, 연말에 이사람 저 사람과의 만남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고, 오직 구원자 되시는 우리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시간으로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능동적으로 반응하셔서 몸이 준비되고, 마음이 준비 되는 절제와 구별의 시간을 보내시는 00의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육신의 일이냐, 구원의 예수님이냐, 하나만 선택하십시오.

 

14절을 읽어 드립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아멘.

 

대림절의 주인공은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를 기억할 때 구원이 가까이 왔음을 체험 하지만, 예수님을 기억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갈 때는 육신의 일을 도모하여 정욕에 빠진채 허랑방탕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냐, 정욕을 위한 육신의 일이냐,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구원은 당장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먼 훗날에야 이루어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우리는 내 일, 내 돈, 내 자존심, 내 자랑, 내 정욕을 채우는 일에 열정과 시간을 쏟아 붓습니다. 그러다가 부활절, 감사절, 성탄절 각종 절기 때만 되면 반짝하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믿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말입니다.

 

익히 들어 고보 다 아시는 말씀이지만, 알고만 있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이 옷을 입었으면, 그 옷의 품위와 존귀에 걸맞게, 십자가의 길, 구원의 길로 나아가며 방향에 맞게 걸어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평소에는 육신의 일을 도모하다가, 자기 정욕을 위해 헛되게 살아가다가, 무슨 때만 되면 하는 척 하는 가짜 믿음, 남들 눈을 의식해서 하는 체 하는 속이는 믿음으로는 구원의 문을 통과하기는 어림도 없습니다. 하는 체, 하는 척, 이렇게 적당히 믿으려 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능동적인 대림절을 준비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정욕을 위하여 자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는 자신의 빗나간 속도와 방향을 성찰하고, 급브레이를 밟고, 다시 주님앞에, 다시 복음 앞에, 다시 말씀 앞에 서는 사람입니다. 빨리 결단하고, 과감하게 끊어낼수록 큰 은혜가 주어집니다. 주님 앞에서 망설이지 마십시오. 주님 만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만 선택하기를 지금 이시간에 과감하게 결단하는 그런 사람을 부르시고, 그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을 반드시 만나 주실 것입니다.

 

대림절은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무엇보다도 힘쓰십시오.

가족 모두가 절제하고 구별된 시간을 보내십시오.

바쁘고 분주한 일상 다 제쳐두고 오직 우리 주님에게 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다시 맞추십시오.

 

00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능동적으로 대림절을 준비 하시면서, 적극적이고,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담아, 구원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는 굳센 믿음을 지니고, 우리 주님과 기쁨의 만남을 잘 준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모두가 구원이 가까 왔음을 깨닫게 하시고, 강하고 굳센 믿음으로 우리 주님을 기쁘게 맞이 할 수 있는 거룩한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구원을 주시고 영생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