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

육체까지도 변화되는 날 (슥 14:12-15)

nam씨 2020. 10. 17. 13:38

육체까지도 변화되는 날 (슥 14:12-15)

이 시간에는 “육체까지도 변화되는 날”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을 간단히 요약해 말씀드리면 여호와의 날에 열방이 멸망당하고 이스라엘이 온전한 승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영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의 교회와의 승리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 성도에게 임할 메시아 왕국의 승리는 심히 큽니다. 특별히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 육체가 부활하는 대 변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정말 신나는 때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이 시간에도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육체에도 큰 변화가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은혜 받으면 육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1. 육체대로 행치 않고 육신의 관점에서 행하지 않게 됩니다.

12-13절에 예루살렘을 친 열국 백성이 여호와께 재앙을 받아 살이 썩고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말세에 화생방전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독가스라든가 세균의 영향으로 순식간에 살아있는 인체가 썩게 된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확실한 것은 이처럼 주님이 은혜 주시면 우리 육체가 죄에 대하여 죽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죽어도 잘 죽어야 합니다. 불교처럼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목석과 같이 무념무상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관계에서 죽었고 하나님과 의의 관계에서 산 것입니다. 은혜 받으면 육신적으로 사는 삶이 죽습니다. 육체의 본능대로 행치 않고 육체의 관점에서 행하지 않고 육체대로 말하지 않게 됩니다. 사단의 종, 죄의 종으로 행치 않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육신적인 것은 온전히 장사지내지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육신이 됩니다.

13절에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로 크게 요란케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이 말씀은 그 날에 열방 군인들이 혼란 중에 서로 오인하여 서로 치다가 멸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미디안이라든가(삿7:21) 블레셋(삼상14:20) 등을 보면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요즘 같이 무전기가 있는 시대에도 특전사들 끼리 교전하여 많은 사상자를 낸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으면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이 있게 됩니다. 아셔야 할 것은 은혜 받아도 육체는 여전히 본능 가운데 있습니다. 본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내가 육체의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내가 내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고 나아가 이 육체를 드려 열심히 내어 주님을 섬기고 선한 일에 힘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몸에 싸워 승리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3. 육체로 말미암아 신령하고 복된 결과가 많게 됩니다.

4절에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때에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 곧 금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그 날에 예루살렘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두 힘을 합해서 싸운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열방에게 빼앗은 귀한 전리품이 심히 많게 됩니다.

이처럼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죄의 열매를 맺었던 육체일지라도 은혜 받으면 달라집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몸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하늘의 신령하고 복된 상으로 가득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몸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이 영적으로 빈곤하다면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아담에게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으리라고 하시면서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셨는데 우리 마음의 옥토를 위해서도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배부를 것입니다. 행함 없는 마음 만의 믿음이라면 죽은 믿음입니다.

 

몸을 드리는데 영이 잘된다는 말씀 얼마나 신비합니까? 흙으로 만든 없어질 몸이고 실수투성이 죄악된 몸이지만 주를 위해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것으로 열매 맺어주십니다.

그래서 고전15:42-44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이 보잘 것 없는 몸이지만 주님 섬기는데 아끼지 마시고 늘 드려보세요. 열심 내어 보세요.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늘의 상으로 가득하고 형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전리품의 신령한 의미입니다.
4. 주신 육신의 것들도 주의 영광 위해 쓰게 됩니다.

15절 “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육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이 모든 짐승은 당시 전쟁에 동원된 수단이요 도구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사람만이 아니라 이 짐승 하나하나에게도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한 파멸을 뜻합니다.

이처럼 은혜 받으면 내 소유라는 육신적 생각은 철저히 파괴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은 목적이 아니요 수단이요 도구입니다. 목적으로 알면 큰 실수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유를 이제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쓴다는 말씀입니다. 가족부양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성경이 말씀한 대로 물질생활하고 성령께서 감동하시는 대로 주를 위해서 충성해야합니다. 물질생활은 우리 신앙의 외적 고백이요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생활이 바로 되지 않는 한 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성령 받은 초대교인들의 물질관이 바뀌잖아요?

물질적으로까지 회개했다는 것은 참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겉보기에는 진실로 회개한 것 같았지만 물질문제가 잘못되어 성령을 속이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물질을 보면 믿음이 보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야 천국 가는데 어떻게 그 믿음이 참인 줄 아느냐? 최소한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는 것으로 봅니다. 신약시대에는 그 이상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율법이 정했던 한 주간 중 하루, 열 칸의 한 칸인 십일조, 이 정도도 못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십계명도 최소한의 계명입니다. 최소한 그 정도는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사랑하는 만큼 사랑해야 합니다. 이 최소한의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믿음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미의 니카르도의 간증을 보면 “나의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와 헌금들을 도적질하고 있다. 가서 나의 사람들에게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한 사람들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전하거라.” 한 말씀은 결코 비 신학적인 말이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왜냐하면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하셨는데 하나님께 마음 못 드리는 것이라면 참 믿음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세 가지 회개를 말했습니다. 머리의 회개, 가슴의 회개, 돈지갑의 회개, 머리의 회개란 지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가슴의 회개란 열심과 사랑과 정의 등 마음의 뜨거움을 말합니다. 그리고 물질의 회개란 물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회개의 척도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 관리 잘하십시다. 육신 관리 잘하면 육신 때문에 영육 간에 큰 복을 받지만 관리 잘못하면 육신 때문에 천국에도 가지 못하고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물질 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도 육신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육신대로 살지 않고 육신을 드려 하나님을 위해서 사셨고 육체를 십자가에 내어주어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받아 우리 육신, 하나님께 드리며 살다가 이 땅에서도 잘 되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상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