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 마24:42-51, 엡5:15-21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 마24:42-51, 엡5:15-21
헤밍웨이의 작품 가운데 ‘노인과 바다’라는 명작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노인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다가 자기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큰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는 악전고투하여 그 고기를 뱃전에 매어 끌고 간신히 바닷가로 나옵니다. 그러나 바닷가로 오는 동안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달려들어 고기를 다 뜯어 먹습니다. 노인은 그 상어 떼와 싸웁니다. 천신만고 끝에 노인의 배가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큰 고기는 상어 떼들이 다 뜯어먹어 버렸고 노인은 지쳐서 쓰러져 버리고 맙니다.
그리하여 바닷가에 남은 것은 상어 떼가 뜯어먹다 버린 앙상한 고기의 뼈, 찰싹거리고 밀려 왔다 밀려가는 바다의 파도, 그리고 노인을 태웠던 배와 지친 노인의 모습뿐이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통하여 한평생을 땀 흘리고 수고하여 그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싸워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 노인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는 바닷가에서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사는 것과 일하는 것이 그 노인의 경우처럼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하겠습니까?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어떻게 주님 앞에 존귀한 성도의 모습으로 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령님의 도우심을 사모하여 주의 뜻을 알기를 힘쓰는 성도입니다.
서신서 본문 엡5:17-18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욕심에 이끌려 가치 없는 것에 자행자지하며 사는 자가 되지만, 슬기로운 자는 내 뜻을 버리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기를 힘쓰며 삽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아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는 일에 열중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 뜻과 내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 뜻은 버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기 위해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이 경건의 시간이 하루의 생활시작에서 제일 먼저 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할 수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알 수 없습니다.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도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엡5:19-21에서 성도가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을 몇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19절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악할수록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주신 은혜를 혼자 조용히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서로 화답하면서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할 때 성령을 충만히 받습니다.
*또한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20절에서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건강할 때든지 병들었을 때든지, 성공했을 때든지 실패했을 때든지, 기쁠 때든지 슬플 때든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때 성령을 충만히 받습니다.
*겸손히 서로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보게 됩니다. 특히 성도를 존귀하게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하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도들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귀한 사람들,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붙들어주고, 세워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복종하는 삶을 삽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서로 존중히 여기면서 성령 충만 하여 주의 뜻 알기를 힘쓰는 성도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2.항상 깨어 준비하는 성도입니다.
우리는 지금 미래를 예측하지 못할 불확실성의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홍수, 한파, 지진, 전쟁, 폭발, 테러, 오염, 배신, 전염병 등 우리가 사는 현실은 도저히 앞을 볼 수 없는, 시기를 알 수 없는 순례의 길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과 비교해 보면, 과거에는 예측가능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 미처 대비를 할 수도, 이해도 할 수도 없는 일들이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이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 되고, 첨단 장비로 안정장치가 되어 있고, 고성능 방어 시스템이 설치된 곳이 많이 있습니다만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두렵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또 요즈음처럼 음란물이나 광포한 행동, 악한 세상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때가 없었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따라 술 취함, 방탕, 도박, 마약, 동성연애, 불륜, 그리고 폭력, 이러한 행위를 자기도 모르게 따라 합니다. 이런 일을 행함으로 타인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방종에 방임함으로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 마24:42에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22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26장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셔서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하기를 당부 하셨지만 육신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깨어 기도하지 못하다가 주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말씀 보면,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깨어 있어라' 고 당부했고, 벧전5:8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 하여 시험에 들게 하고 타락하도록 미혹합니다.
주님께서 본문을 통해 성도가 왜 깨어 있어 있어야 하는지를 말씀 하십니다.
*먼저 종말을 맞을 때가 있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39절에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의 만물이 모두 시작과 끝이 있듯이 인생의 삶도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인류의 구원을 예비하시기 위해 초림이 있었던 것처럼 심판을 위해서 재림할 때가 가까워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들림 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아무나 들림 받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지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자만 들림을 받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라고 말씀합니다. 본문40-41절에서 ‘두 사람이 밭을 갈다가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두 사람이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다가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한 사람은 내침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성도는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롬 8;12~13)는 말씀을 따라 깨어 주님을 더욱 사랑 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날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42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만 아시는 비밀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만 아시고 나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43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정점에 올 줄을 알았다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도적은 주인이 깨어 있을 때는 도적질 할 수 없지만 잠들었을 때는 잠든 모습을 확인 하고 귀중품들을 다 훔쳐 갑니다. 우리 모두 항상 깨어 준비하는 성도로 삽시다.
3.세월을 아껴 충성된 청지기의 삶을 사는 성도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라 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하는 자세에 있어 큰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는 주권자입니다. 그러나 종은 항상 주인의 주권에 맞춰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해야 마땅한 자들입니다.(요13:16-17) 이 모습이 청지기의 자세로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맡은 일군에게 무엇보다도 요구하시는 것이 충성입니다.(고전4:2) 하나님의 일꾼은 반드시 성령을 통해 충성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갈5:22) 미국 침례교선교사 연합회가 선교사들을 위한 서약문에 명시된 글입니다. 소는 항상 밭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제물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충성된 신앙인이 되고, 가정에서 철저한 아버지가 되고, 가족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본문 엡5:15-16에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세월을 아끼라’의 원문의 뜻은 ‘세월을 속량해 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관리할 책임도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선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악한 데 낭비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마귀에게 빼앗긴 시간을 되찾아 내라”는 뜻으로 본 구절을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쓸 수도 있고 마귀를 위하여 쓸 수도 있습니다. 대개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쓰자고 하면 핑계가 많고 이유가 많지만 마귀를 위하여 시간을 쓰는 데는 관대하고 말이 없습니다. 향락을 위해 쓰는 시간은 많지만 하나님을 위해 쓰는 시간은 없습니다. 바로 그런 잘못된 시간표를 고친다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오트밀 회사 ‘퀘이커 오츠(The Quake Oats)’를 설립한 헨리 파슨스 크로웰(Henry Parsons Crowell)의 이야기입니다. 경건한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그는 열심히 예배에 출석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9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장례식을 집례 한 목사님에게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복음을 들으면서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폐결핵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학교를 중단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미래를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디(Moody)가 인도하는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오직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 하나님께 쓰임 받는 위대한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설교 말씀에 은혜를 받고, 그때부터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 하나님께 붙잡혀 위대한 인생을 살아야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디처럼 살 순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무디처럼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돈을 벌어서 무디 같은 전도자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돈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이름은 절대로 드러내지 않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만든 회사가 퀘이커 오츠였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경기불황을 겪으면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한다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시간만 절약한 것이 아니라 영양소를 채워주는 식생활의 변화를 가져왔고, 퀘이커 오츠 회사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범죄 예방 기구에 기부하고,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불황으로 실업자가 넘쳐나고 범죄와 매춘 등 악의 기운이 넘치던 시카고에 ‘시카고 범죄 위원회’를 세워 사회정화 사업에 힘썼고, 기독교의 존재감을 높이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돈을 벌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하신다면 자신의 이름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겠다.’던 서원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이 일을 감당했습니다. 89세에 세상을 떠났을 때, 무디 성경학교 교장 윌 휴톤(Will Houghton) 박사는 장례식에서 이렇게 추도사를 낭독했습니다. “헨리 크로웰은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한 모든 일에서 자신을 숨기고 예수만 드러내려고 부단히 애쓰셨습니다.” 헨리 파슨스 크로웰, 그는 어떻게 행할 지 자세히 주의하여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세월을 아껴 충성된 청지기의 삶을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어떻게 주님 앞에 존귀한 성도의 모습으로 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사모하여 주의 뜻을 알기를 힘쓰는 성도입니다.
♡.항상 깨어 준비하는 성도입니다.
♡.세월을 아껴 충성된 청지기의 삶을 사는 성도입니다. 아멘.